159회
전쟁의 서막
-일주일 사이 랭커 살인 사건이 급증하다!
-확인 된 사망자만 20명이 넘어서는 걸로 알려져. 그 중 S급 랭커도 소수 포함 돼 있어, 충격에 빠진 사람들!
-과연 누가 이런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르는 것인가! 항간에서는 복면을 쓴 남자의 소행이라고도 하는데.
“자기네들끼리 쉬쉬해서, 기사는 나중에 뜰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빨리 떴네.”
나는 핸드폰의 스크롤을 내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 형씨?”
“사..살려줘..”
“섭하게 왜 그래? 누가 보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 같잖아.”
나는 상반신이 악마로 변해 있는 A급 랭커를 쳐다봤다. 하반신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양 손으로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랭커씩이나 되는 분이 무섭긴 무서웠나봐?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거 보면. 아니지. 도둑이 제 발이 저린 건가?”
나는 랭커 옆에 널브러져 있는 B급 능력자들을 쳐다봤다. 저들은 악마가 아니라서, 기절만 시켜 놨다.
랭커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이 녀석을 포함해,
다른 녀석들이 먹은 건 전부 소악마의 열매였다. 분명 대악마가 경작한 중급 악마의 열매를 먹은 놈이 있을 텐데.
‘오늘도 꽝이네.’
그래도 꽤 많은 수를 처리했으니,
성과는 분명 있었다.
우직.
발에 마나를 집중해,
랭커의 목을 지르밟았다.
따릉. 따릉.
나는 발에 치이는 CCTV 잔해를 밟으며,
리조트를 나와 전화를 받았다.
랭커의 리조트라 그런지 전망이 아주 훌륭했다.
나는 노을이 지고 있는 한강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랜만이네. 서시우.”
방학이 시작 되고,
거의 연락을 서로 하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시우는 어둠 능력자.
악마와 계약을 맺어야 했다.
반드시까지는 아니었지만, 맺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악마의 열매를 먹는 것과,
‘계약’을 하는 건 엄연히 달랐으니까.
주종의 관계냐,
공생의 관계냐.
차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나는 분명 서시우에게 계약을 해서 좋은 악마와 하면 안 좋은.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악마 리스트를 알려줬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게 하는 말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많고 많은 놈 중에, 왜 하필 그 놈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나중에 만나서 설명할게. 형, 이만 끊어. 나 지금 뭐 좀 하고 있어서.
“야..야!”
뚜. 뚜.
“....”
베스트도 아니고.
워스트도 아닌.
그런 놈과 계약을 하다니.
서시우가 계약한 악마는 주사위 같은 놈이었다.
워낙 성격이 탱탱볼 같은 놈이라,
어떨 때는 베스트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워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것도 극상이나 극하로.
한 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놈과 계약을 하다니.
주사위가 잘만 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놈이긴 맞는데.
“아..”
나는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주사위가 잘 안 뜨기라도 하면..
“아아..”
서시우는 어떤 인물보다 내게 필요한 조력자였다. 그가 가진 능력과 내가 가진 능력의 시너지가 가장 좋았으니까.
그래서 서시우는 내가 통제가 가능한 상태로 있는 게 가장 좋았다. 헌데 주사위 놈이랑 계약을 하는 바람에 뭔가 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띠링. 띠링.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서시우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여보세요.”
요근래 내가 가장 기다리던 전화였다.
“예, 협회장님.”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할 때가 됐다.
악마와의 전쟁을.
+ + +
헌터 협회 상층부에 위치한 대회의실.
이전, 라이온이 습격했을 당시 열렸던 채린의 청문회 보다 더 많은 인원이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면면이 하나같이 한 곳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로 가득했다.
국가적인 비상사태시,
대통령과 더불어 ‘비상소집’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
헌터 협회장.
그가 가진 권한의 힘이었다.
역사상 비상소집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래서인지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다소 근엄하고 진지했다.
하지만 그 중에 몇 사람.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A급 랭커 몇 명 죽은 거 가지고 비상소집까지 할 일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S급 랭커도 두 명 죽었다던데?”
“S급? 웃기고 있네. 그 놈들은 무늬만 S급 이었잖아. 안 그래? 약해 빠져가지고. 근데 말이야. 시대가 많이 변한 건가? 내 눈에 이 자리에 껴서는 안 될 친구가 한 명 보이는데 말이지.”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회의실 제일 앞 쪽에 앉아 있던 내게 향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곁눈질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무릎에 레이를 앉히고,
쓰다듬었다.
슬슬 협회장이 올 때가 됐는데.
“다들 모인 것 같군.”
이무신 협회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를 따라 들어온 성녀.
두 사람이 회의실 앞에 섰다.
“바쁜 사람들을 모아놨으니, 바로 본론을 얘기하는 게 좋겠지. 자네들을 오늘 모은 이유는 ‘랭커 살인 사건’ 때문이 아니네.”
“그럼..”
“예?”
여기저기서 의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사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그렇지 않은가, 서진군?”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대항전 MVP 특전으로,
협회장에게 부탁을 했다.
국내에 있는 랭커를 한 자리에 모아달라고.
이번 악마와의 전쟁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저는 서진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좌중을 둘러보며,
내 소개를 했다.
아무도 이 자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몇 몇이 콧방귀를 꼈다.
“달빛 계승자께서 예언 능력이 있으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겠지.
당연한 반응이다.
세간에 알려진 내 능력은 달빛 능력.
그리고 카피 능력이었다.
헌데, 거기에 더해 예언 능력이라니.
“성녀님. 진실의 거울을 사용해주시죠.”
나는 말을 하며,
성녀의 옆으로 걸어갔다.
“네.”
내 손목을 잡는 성녀.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말을 교묘하게 바꿨다.
실제로 내가 예언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거짓으로 드러날 수가 있었다.
“진실..입니다.”
“뭐라고?!”
“성녀님! 확실합니까?!”
“네. 진실입니다.”
성녀의 확답에 들썩들썩하던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녀가 가진 이미지.
성녀가 가진 능력.
그녀의 말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이 자리에 능력 하나 더 있다고 자랑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우리를 모은 이유가 뭔가? 가만 보니, 이 자리를 소집한 건 협회장님이 아니라 자네 같은데. ”
눈치가 빠른 누군가가,
맥을 짚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전부 알고 계실 겁니다. 요근래, 악마의 출현이 잦다는 것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크흠..”
“그건..”
다들 짐작은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외면하려고 했을 뿐.
이 자리에는 오래 전,
암흑기에 활동했던 헌터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의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진짜 악마들이 곧,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40년 전, 암흑기 때 보다 더 강한 악마들이.”
“뭐..뭐라고?!”
“헛소리 하지마라!”
“세나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이냐!”
나는 ‘세나’라고 언급한 헌터 협회 장로를 쳐다봤다.
‘모욕이라..’
참 낯짝도 두껍네.
자기들이 세나를 죽음으로 내 몰았으면서.
“나는 먼저 일어나겠소!”
“기가차서!”
3분의1 정도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이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원들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한 발언은 내가 서진에게 빙의하기 전 ‘나’로 살았을 때를 예로 들면, 6.25전쟁을 겪은 사람들한테 곧 6.25 전쟁보다 더 참혹한 전쟁이 시작 될 겁니다. 라고 한 것과 똑같았다.
“여보게들. 자리에 앉지.”
이무신 협회장이 만류를 했지만,
자리를 뜨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저럴 줄 알고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태종 기업 회장님. 그리고 제무 건설 이사님?”
입고 있는 양복을 단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한 남자.
“제 아들 얘기가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창조 그룹의 회장이자,
서진의 아버지.
내가 불렀다.
이른바, 아빠 찬스라고나 할까.
창조 그룹은 국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기업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에 꼽히는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었다.
이 자리에서 창조 그룹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헌터계를 은퇴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연로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크흠..”
“큼..”
장로들.
그들에게는 이무신 협회장이 아닌,
아버지 말이 즉효였다.
“이..일단 들어나 볼까?”
“그..그러세.”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나를 쳐다보는 아버지.
계속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나니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를 보는 눈빛에서 신뢰가 느껴졌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나는 빔 프로젝터 전원을 켰다.
“40년 전, 악마를 처리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희생자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제 계획대로라면 한 달. 한 달 안에 악마를 전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희생자 역시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PPT처럼 하얀 벽면에 나타난 계획서.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나는 내가 구상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총 10개의 대게이트가 열린다.
그곳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악마들을 뚫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핵심 코어를 파괴하면 된다.
그럼 끝이었다.
하지만 말만큼이나,
쉽지 않은 계획이었다.
내 계획을 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배가 고픈지 아니면 침이 말랐는지 입맛을 다셨다.
“핵심은 3개의 조가 각 코어를 파괴하러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조는 나머지 게이트에서 악마가 범람하지 않도록 막는 겁니다.”
총 10개의 게이트를 동시에 공략할 수는 없었다.
최대 3개가 한계였다.
그것도 최정예 인원들만 모아야지 가능했다.
3개의 게이트를 동시 공략하고,
나머지 비정예 인원들이 7개의 게이트를 틀어막고 있는다.
내 계획대로만 되면,
적은 피해로 단기간에 이번 대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공격과 수비라고도 볼 수 있었다.
공격팀이 정예 멤버라,
수비팀의 피해가 더 클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게이트를 빨리 닫는 게 급선무니까.
“그래. 모두 서진 학생의 말이 맞다고 칩시다. 근데 말입니다. 혼자서 공격팀 1개 조를 맡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을 들어보면 게이트 하나 하나가 거의 대재앙급인데.”
“혼자 간다고는 안 했습니다.”
“예?”
나는 품에 안고 있는 레이를 흔들었다.
“그깟 늑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크르르.
기지개를 펴듯,
마나를 표출하는 레이.
말을 하던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서진군. 이건 내가 생각해도 아닌 것 같네.”
“나도 마찬가지다.”
이무신 협회장과, 아버지 역시 나라는 1인군단에 제동을 걸려고 했다.
충분히 나는 하나의 게이트를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혼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각 게이트 마다 특색이 있었고,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제각각이었다.
내가 홀로 가려는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
‘필멸자의 영혼.’
난 그 보상이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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