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회
검이 말을 해?
세나는 죽었다. 오랜 시간 전에.
라고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아니, 단 한 사람.
첸을 제외하고.
나는 논외였다.
저승에서 보고 있는, 귀신. 혹은 유령 따위였으니까.
모두들 죽었다고 알고 있는 세나는,
죽지 않았다.
첸이 살렸고,
세나와 함께 인적이 드문 시골로 도망쳤다.
그들이 도망쳐야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세나는 죽었어야 했으니까.
그래야만 했다.
신. 혹은 영웅은 죽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세나는 세리나를 낳을 때까지 살아 있었다.
아무도 몰래.
이 사실은 첸 역시 몰랐다.
세리나를 잉태 했을 때, 보다 멀리 홀로 숨었으니까.
국가의 영웅이자,
세계 랭커 1위였던 세나.
그녀는 세리나라는 한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쓸쓸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찾아다니던 첸이 뒤늦게 세나의 죽음을 확인했지만, 세리나의 존재는 알 수가 없었다. 첸이 세나를 찾았을 당시 세리나는 보육원에 맡겨진 후였으니까.
첸은 세나의 시체를 한 마을에 안치했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관에 보존했다.
영구 동결 스크롤을 사용해서.
영원한 잠에 빠져든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세나에게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광휘(光輝)의 검.
그녀와 함께 그녀의 검 역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세리나가 각성했을 때,
광휘의 검을 세리나에게 건네 줄 생각이었는데.
[어딜 가냐고.]
“....”
광 뚜껑을 스스로 열고 나온 것도 모자라,
내 앞길을 막고 말을 걸고 있다.
새하얀 검신과 레이피어처럼 길쭉한 날이,
광휘의 검이 확실한데.
“광휘의 검이..에고 소드였어?”
지능이 탑재 된 검.
스스로 생각을 하며 판단을 할 수 있고, 일반 검에 성능과 능력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썩은 에고 소드라고 해도,
A급 이상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에고 소드나, 지능을 가진 아이템은 10개도 되질 않았다.
세나가 생전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걸,
자주 보기는 했다.
하지만, 광휘의 검이 에고 소드일 줄이야.
휘이익~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광휘의 검.
갑자기 내 목에 칼끝을 들이밀었다.
[너, 달빛 능력자인 것이지? 달빛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구나!]
“그렇긴 한데.”
나는 검 끝을 살짝 밀쳤다.
“왜 튀어 나온 거야?”
잠이나 더 잘 것이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 놀래키기나 하고.
[네가 첸이 죽었다고 했지 않느냐? 그 놈이 진짜 죽었어?]
“그래.”
[어허..세나가 아끼던 놈이었는데. 쯔쯧. 근데 말이다. 이 몸이 몇 살인 줄 알고, 자꾸 반말을 하는 것이냐? 이 몸은 무려 200년을 넘게 살아온, 살아온 역사와 같은 몸이니라!]
“아, 예.”
[옳치. 가만가만. 첸이 죽었으면..설마! 세나의 딸아이도 죽은 것이냐! 설마..설마?!]
“세리나를 말하는 거라면, 세리나는 무사합니다.”
[후..다행이로구나. 앞장서라.]
“네?”
사당을 나가려던 광휘의 검.
검 머리를 내 쪽으로 돌렸다.
[첸의 복수를 하러 가야지. 네 놈은 달빛 속성이니, 아마도 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가자!]
나는 광휘의 검 손잡이를 잡았다.
달빛과 빛이 같은 계열 속성이라 그런지,
짜릿하기는 했지만 잡는데 무리는 없었다.
나는 광휘의 검을 잡고 관 앞으로 걸어갔다.
노쇠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는 세나가 보였다.
나이가 100살은 넘어 보였지만,
그녀의 나이는 50도 채 되질 않았다.
첸의 능력 중 하나인, 모순의 축복을 너무 많이 감당한 탓에 겉모습이 빠르게 노화를 했다. 모순의 축복 한 번당, 1년의 시간이 흐른다는 걸 감안하면 30번 넘게 사용 했으니.
첸이 모순의 축복이라는 능력을 사용하기 꺼려하는 이유가 바로 세나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광휘의 검을 세나의 옆에 놓았다.
[뭐하는 짓이냐!]
검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곧 있으면 세리나가 각성을 합니다.”
[나도 알고 있다! 세나의 자식은 곧, 나의 자식인 법!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느냐! 그거랑 첸의 복수랑 무슨 상관이더냐?!]
“세리나가 각성을 하면 님이..당신이..음..광휘씨가..광휘님이?”
[님이라 부르거라.]
“광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얌전히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세리나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어쩌면 이른 각성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호. 그럼 서두르자꾸나. 서둘러 첸의 복수를 하면 될 일!]
“....”
나는 관 뚜껑을 닫았다.
들썩이는 관 뚜껑.
“조만간 악마들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어르신의 복수도 좋지만, 우선 악마들을 썰고 싶지 않으십니까?”
잠잠해진 관 뚜껑.
나 역시 첸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곧, 악마가 쳐들어오는데 레볼루션까지 감당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따로 없었다.
우선 악마 처리가 먼저였다.
레볼루션은 그 다음이다.
“세리나를 잘 부탁합니다, 광휘님.”
나는 사당을 나서려다가,
관 쪽을 한 번 쳐다봤다.
[악마..악마..악마!!]
상태는 조금 삐딱해 보이기는 해도,
세나와 함께 했던 검이니.
세리나를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광휘의 검이 세리나를 올바르게 케어를 했다면,
전생에서 그녀가 서서히 무너져 내릴 일은 없었을 테니까.
‘어쩐지.’
아무리 각성을 했다고 해도,
빛 속성 능력을 손에 익은 것처럼 바로 사용하더니.
‘광휘의 검이라는 조력자가 있었네.’
나는 사당을 나와,
채린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미안해요, 늦었죠?”
“전혀요. 타세요, 서진씨.”
“네.”
나는 조수석에 탔고,
시동을 거는 채린.
이내, 차는 시골길을 벗어나 광활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많이 바쁜가 봐요.”
나는 채린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퀭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만 보니 신지수 못지않게 많이 야위어 있었다.
“하하. 왜요, 서진씨?”
거울을 힐끔 쳐다보는 채린.
“오늘 화장을 대충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대충이 아니라,
채린은 현재 거의 민낯에 가까웠다.
화장할 시간이 없다거나,
겨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뜩이나 바쁜 업무에,
첸의 죽음까지 겹쳤으니.
“요즘 악마들이 출현하는 횟수가 잦죠?”
나는 창밖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말을 하며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는 채린.
납득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비밀리에 처리하고 있는데, 역시 서진씨는 모르는 게 없네요. 실은 지금도 악마가 출현했다고 해서 가는 중이거든요. 혹시 아시는 거 있으세요?”
“전조 현상이에요.”
“전조..현상이요?”
“네.”
“무슨..설마..?”
“설마가 맞을 겁니다.”
악마들은 영악하고 간사하다.
그래서 밑 작업을 하는 걸 좋아했다.
교내 최강자 선발전 때,
악마의 열매를 먹은 악마들이 등장했었다.
그때는 저승의 소녀가 건네준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실제 악마들이 이 세상에 악마의 열매를 뿌리기 시작했고, 힘을 원하는 인간들이 열매를 먹고 악마로 변했다.
그 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악마들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채린씨.”
“..네.”
목소리가 많이 다운 돼 있는 채린.
“리스트를 작성해서 줄 테니까,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 좀 감시 해주실래요?”
“네?”
“이미 악마의 열매를 먹었거나, 앞으로 먹을 인간들이거든요.”
“아..”
“집에 도착하면 작성해서 드릴게요.”
“숫자가..많나 봐요?”
“악마로 변했을 때 골치 아픈 사람들만 추리면 얼추..100명 남짓 정도일 것 같아요.”
“그렇다는 건, 악마로 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뜻인가요?”
“네. 전국적으로 일반인까지 합치면 만 명은 훌쩍 넘으니까.”
“아..”
탄식이 잦은 채린.
마음 같아서는 바로 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악마로 변하지 않는 이상,
일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중요 인물들은 내가 미리 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악마 보다 악마와 손을 잡은 인간들 때문에 사상자와 피해자가 더 많이 나왔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악마의 탈을 쓴 인간.
그들을 조우할 때가 머지않았다.
+ + +
타탁. 탁!
전부 다 작성했다.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악마에게 몸과 영혼을 판 인간들.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힘은 곧 진리나 마찬가지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동족상잔은 하지 말아야지.
“안 그래, 레이?”
크릉.
나는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릉크릉.(근데 어디서 첸 냄새가 나.)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신지수가 준 봉투를 꺼냈다.
레이가 맡은 건,
아마도 첸의 피 냄새가 아닐까?
봉투 속에 있는 종이를 꺼냈다.
어찌나 다급하게 휘갈겼으면,
종이가 구겨지고 찢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 묻은 손으로 종이를 움켜잡은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
종이의 상태만 봐도 그 순간 신지수의 심정이 어땠을지 느껴질 정도였다.
“Z실험실.”
키워드처럼 여러 개의 단어가 크고 작은 글씨로 휘갈겨져 있는 종이.
“실패했다. 자료. 살아있다.”
나는 컴퓨터 메모장을 켜,
키워드를 나열하고 연관성을 찾아내 살을 붙였다.
살을 모두 붙였을 때,
하나의 문장이 완성이 됐다.
‘Z실험실에 자료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실패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레드는 살아있다. 레드는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
거기가 어디라고.
그것도 혼자서.
‘현재의 나라고 해도 가기가 꺼려지는 곳인데.‘
첸이라고 몰랐을 리가 없었다.
그 놈의 책임감이 뭐라고.
왜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을까.
아주 작은 책임감이라도 외면하는 사람이 태반인 세상인데.
도대체 왜.
어째서.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기분이 착잡하다 못해, 심연 속에 정신을 던져놓은 것만 같았다.
‘레드는 역시 살아났나.’
레드의 본체를 제로가 들고 갔었다.
‘근데, 어린 아이라니?’
제로가 뭔가 장난질을 친 모양인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난히도 별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좋은 데로 가십시오. 어르신.’
나는 저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름의 위로가 됐다.
죽어도 끝이 아니니까.
아우울~ 아우우~
교감을 통해, 현재 내 기분이 전해지는지 창밖을 보며 구슬프게 울기 시작하는 레이.
“무슨 소리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오피스텔인 걸 깜빡했다.
나는 레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끄응.끙.(개가 아니라 늑대인데.)
손 틈 사이로 말을 하는 레이.
“밖이나 잠깐 나갔다 올까?”
오늘 이대로는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땀이라도 쭉 빼고 와야지.’
나는 레이를 데리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 + +
며칠 후.
으슥한 골목.
“누구냐?”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머리 위,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또 다른 남자.
그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
“그래. 아주 살기를 풀풀 날리며 내 뒤를 따라오던데. 누가 보냈냐?”
“궁금해?”
폴짝.
담벼락에서 내려온 복면남.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곱게 죽어주면 말해줄 수도 있는데.”
정중하게 양복남에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 텐데?”
“알지. A급 능력자이자, 대한민국 125위에 랭크 돼 있는 대한민국 랭커. 이름은 황철. 유도 능력자.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
“A급 능력자나 되는 놈이 악마의 열매는 왜 쳐 먹었어?”
“..뭐?”
“A급인데도 부족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솔직해지자고, 우리. 어차피 당신 아니면 나. 둘 중에 한 명은 이 자리에서 죽을 건데. 그래, 내가 선심 썼다. 나 먼저 솔직해질게. 달빛 제 6초식. 달빛 소나기.”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달빛 줄기.
“황철. 네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크..크아아!!”
“악마의 열매를 먹으면 아무리 껍데기가 인간이라 해도 속은 악마 새끼로 변한단 말이지. 즉, 빛 속성에 대한 내성이 극악으로 변한다는 뜻이야. 마치, 너희 같은 놈들에게 빛은 드라큘라에게 십자가 같은 거랄까?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지?”
복면을 벗은 복면남.
“내 이름은 코난. 직업은 탐정..이 아니라. 내 이름은 서진이다. 악마의 씨를 말려버릴 남자지.”
나는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달빛 소나기에 몸이 타듯이 녹고 있는 황철을 쳐다봤다.
‘5명 째인가.’
이번 놈은 손쉽게 해치워서 그렇지,
꽤 애를 먹고 있었다.
나는 황철의 몸이 전부 녹아 없어진 걸 보고,
다시 복면을 뒤집어썼다.
다음 타겟을 처리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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