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회
검이 말을 해?
“선전포고라고, 선전포고. 너를 눈독 들이고 있는 길드들한테 엿이나 잡수십쇼~하는 거라고. 가뜩이나 요 근래, 신생 길드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자자한데. 첫 단추를 아주 멋있게 다셨어. 서진씨가 아주 그냥.”
“왜 네가 열을 올려?”
“응?”
나는 창에서 시선을 돌려 정시아를 쳐다봤다.
“내가 만드는 길드에 들어 올 거야?”
“..응?”
“마치, 내 일을 우리 일인 것처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내 귀가 이상한건가?”
“뭐..뭐라는 거야?! 웃기네, 진짜!”
홱.
고개를 돌려버린 정시아.
친구들이 내가 만들 길드에 들어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했다. 하지만 정시아는 이미 사신 길드 소속이었고, 한설휘는 태양 길드 소속이었다.
남은 건, 세 사람.
“나! 나!! 나는 들어갈래! 나 1호! 아..아야..”
강소라가 손을 번쩍 들다가 지붕에 손을 들이박았다.
“바람돌이.”
자는 줄 알았던 금석이 실눈을 뜨며 강소라를 쳐다봤다.
“바람돌이?”
“그래. 서진 길드의 1호는 나다. 너는 2호 해라.”
“싫은데?”
“..어쩔 수 없군. 승부다.”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려는 금석의 몸을 도로 시트 쪽으로 밀어 넣었다.
"할 말 있어?“
고개를 돌려 나와 금석이 있는 뒷자석을 쳐다보고 있는 박아름.
“....”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이제 곧, 부산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박태산이 비장하게 말했다. 비장한 그의 말투와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부산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침대에 바로 누울 거야.”
“나도. 아~ 집이다~”
한 달여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부산에 도착했다.
+ + +
“채린씨?”
부산에 도착한 후,
일행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예의상 본가에 잠깐 들러, 복귀 소식을 알리려고 이실장에게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 내 앞에 퀭한 얼굴로 나타난 채린.
“태산이한테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 전할 말이..”
“....”
숨을 크게 들이쉬는 채린.
“있거든요.”
숨과 함께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채린이 내게 전할 말이라.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급한 일인 것 같은데.
‘뭐지?’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가면서 천천히 말씀 드릴게요.”
나는 채린의 차에 탑승을 했다.
+ + +
“바로 말하기 보다는, 서진씨가 복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
“그래서 일단 저희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긴 했는데..”
“잘하셨어요.”
채린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이었지만, 나는 이곳을 ‘빛의 마을’이라고 불렀다.
빛의 마을 깊숙한 곳에 위치한 무덤 앞.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무덤을 쳐다봤다.
“저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지수한테 서진씨가 왔다는 소식도 알릴 겸.”
“네.”
채린이 마을로 내려가고.
“첸.”
나는 한 걸음 무덤 앞으로 걸어갔다.
“왜..”
한 걸음 더.
“도대체 왜..”
무덤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손으로 무덤 위에 손을 얹었다.
“아아..”
이 세상에서 내가 의지하던.
의지할 수 있던 몇 안 되던 사람이었는데.
내 불찰이다.
첸에게 레볼루션에 관해 말한 게,
내 실수였다.
내가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첸은 지금 살아있었을 텐데.
왜 첸이 짊어지고 있는 과오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 했을까.
첸이 죽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첸이..죽었다.
+ + +
“여~서진이~ 학교 대항전에서 1등 먹었다며? 축하한다.”
빛의 마을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기와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된장찌개 냄새와 함께 신지수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었다. 또한, 살까지 너무 많이 빠져 있었다.
광대가 툭 튀어나와 보일 정도로.
“세리나는요?”
“저기, 저 방에.”
나는 세리나가 있는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가지런히 양 손을 배에 올리고 잠들어 있는 세리나. 병동처럼 그녀의 옆으로 링거 몇 개가 줄지어 있었다.
“찐한 키스라도 한 번 해봐.”
“....”
“혹시 알아? 그럼 일어날지?”
나는 주방에서 언제 나왔는지,
옆에 서 있는 신지수를 쳐다봤다.
“그 날 이후로, 쭉 저 상태야. 뭐가 문제인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해. 아무리 충격을 받았다고는 해도,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됐는데 말이지.”
“교관님은 괜찮으세요?”
“나? 나야 뭐.. 아, 내 정신 좀 봐. 찌개 넘치겠네.”
부엌으로 달려가는 신지수.
괜찮을 리가 없을 텐데.
괜히 물었다.
나보다 더.
그 누구보다 더.
신지수가 느끼는 아픔과 슬픔이 더 클 텐데.
첸은 신지수의 스승이었고,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을 했다.
그것도 무참히 팔, 다리가 잘려있는 모습을.
“야! 밥 먹으러 와!”
나는 방문을 닫으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 + +
“세리나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세리나는 성장통 때문에 몸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첸의 죽음을 목격한 나머지 오랜 시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포인트 상점을 열어 ‘정보방’에 검색해 본 결과였다.
내 말에, 밥을 먹는 건지 돌을 씹는 건지 꾸역꾸역 밥과 찌개를 입에 넣고 있던 신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안심되네. 야, 이년아. 초상집 왔어? 팍팍 좀 먹어!”
깨작깨작 젓가락질을 하고 있던 채린.
신지수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노력 중이야.”
“밥 먹는 것도 노력을 하니? 배가 불렀구나?”
“..야!! 적당히 좀 해! 너만 슬픈 줄 알아? 나도 슬프다고. 나도!!”
밥상을 뒤엎을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린.
“휴..”
옆에 내가 있는 걸 보고, 한 숨과 함께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알고 있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셋이 전부인가요?”
나는 서로를 째려보고 있는 두 여자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화제를 안 돌리면 머리끄덩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응.”
“태산이한테도 말 안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만약 첸의 죽음을 세간에 알리면 그 파장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또한, 레볼루션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절대 피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아니다.
레볼루션을 괜히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봤자,
현재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벌집은 툭툭 건드리는 게 아닌,
한 번에 처리를 해야 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첸의 죽음이 세상에 공표 되는 날.
그 날이 어쩌면 본격적인 전쟁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신 거예요?”
“여기? 세리나 엄마가 있는 곳이니까, 여기 오면 세리나가 빨리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왔지.”
“그걸 어떻게..”
“야. 나도 알건 알아. 왜 이래? 사실 첸 영감의 일기장을 본 것뿐이지만. 유품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거든. 영감탱이 일기장.”
“....”
“너는 알고 있었지? 세리나가 세나님의 딸이라는 사실?”
“..네.”
“너, 예언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미래에서 온 거 아니야? 모르는 게 도대체 뭐야?”
“어르신의 죽음은..몰랐잖아요.”
“아..그러네? 밥이나 먹자.”
분위기가 무거워지려던 찰나,
신지수가 수저를 들었다.
달그락달그락.
조용히 밥을 먹고 있을 때,
신지수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나 휴직계 냈어. 쉬고 싶기도 하고, 세리나를 혼자 두기도 조금 그렇고.”
“잘했어.”
“잘하셨어요.”
“이 참에 푹~ 쉬어야겠다.”
달그락달그락.
다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부엌의 고요함에 노크를 했다.
“근데..”
빈 그릇을 수저로 툭툭 건드리고 있던,
신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아빠는 누구야?”
“네?”
“세리나 아빠는 누구냐고. 그건 일기장에 안 나와 있던데?”
“저도 몰라요.”
“몰라?”
“네.”
사실 알고 있었다.
언젠가 말을 해주려고 했는데.
언젠가라는 시간이 이제는 사라졌다.
내가 첸을 세리나와 엮은 이유.
내가 그에게 세리나를 맡긴 이유.
당사자는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첸이 세리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채린이나 신지수에게 이 사실을 말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침울한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 줄 걸.’
하지만 그 역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여보세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며,
자리를 뜨는 채린.
“다 먹었어?”
“네. 교관님 요리 잘 하시네요?”
“자취 경력이 얼만데.”
정적이 흘렀다.
눈에만 안 보이지,
이 곳은 슬픔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그 탓에, 대화의 공백이 많아졌다.
“아, 참.”
자리에서 일어난 신지수.
방에서 봉투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뭐라고 해야 하지. 유언장이라고 해야 하나. 영감이 죽기 전에 뭐라고 말 한 걸, 두서없이 받아 적었거든. 근데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너 오면 주려고 보관하고 있었어.”
나는 봉투를 꺼내려다가,
일그러지는 신지수의 얼굴을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나중에 볼게요.”
“그..래? 지금 봐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봉투 속에 들어있는 하얀 종이는 피로 군데군데 물들어 있었다. 내가 이걸 여기서 꺼내면 신지수의 기억을 꺼내는 것과 같았다.
“길드에 복귀해야 할 것 같은데.”
다시금 내려앉은 정적을 깨는 채린.
“서진씨, 어떻게 하실래요? 여기 더 계실 거면, 제가 나중에 차 한 대 보내드릴게요.”
“아뇨, 저도 같이 가요.”
“그래요, 그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관님, 조만간 다시 올게요.”
“밥 챙겨먹고 있어, 지수야. 얼굴이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말라가? 태산이가 보면 퍽이나 좋아라 하겠다. 그럼, 간다.”
앙상한 손을 흔드는 신지수.
“조심히들 가. 서진아, 태산이한테는 집에 일이 있다고 대충 둘러댔으니까 혹시나 태산이가 물어보면 너도 그렇게 말 해. 아니면 모른다고 하던가.”
“네.”
“그래. 어서, 가. 오늘 복귀해서 피곤할 텐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신지수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나와 채린.
“채린씨, 저 잠시만 어디 다녀올게요. 10분 정도?”
“네. 차에 시동 걸어 놓고 있을게요.”
“네.”
나는 시골길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
우거진 나무를 지나,
사당처럼 보이는 곳 앞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왔다 갔는지,
말끔한 모습의 사당.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뵙습니다. 세나님.”
휑한 공간 안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관 하나.
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
“이런 소식으로 찾아뵙게 돼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첸이..첸 어르신이..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사죄를 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 이상,
내가 할 말은 없었다.
나는 묵념하듯이,
5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채린에게 약속한 10분이 다 돼 가고 있으니,
이만 가 봐야 했다.
몸을 돌려,
사당을 나가려고 할 때.
덜컹. 덜컹.
“..음?”
관이 갑자기 들썩였다.
나는 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들썩이던 관 뚜껑이 확 열리더니,
뭔가 쑥 하니 튀어나왔다.
[어딜 가느냐?]
“....”
검이..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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