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회
학교 대항전 마무리
학교 대항전 폐회식이 시작 됐다.
오늘은 드디어 4주간에 걸친 일정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세종대왕 학교의 대강당.
학교별로 일렬로 줄을 서 있었고,
선두에는 각 학교의 인솔교관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이번 대회의 운영진들이 의자에 착석을 하고 있었다.
운영진들의 표정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그 중, 극명한 희비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이순신 교장.
반대로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한 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박세종 교장.
세종대왕 학교는 차인수 원맨팀이었다.
그런 그가 탈주를 하는 바람에 세종대왕 학교의 최종 등수는 10위권 밖에 랭크됐다.
순위가 밀려난 만큼, 박세종 교장의 체면 역시 타 운영진에 비해 많이 구겨졌다. 그 뿐만이 아니라, 차인수가 탈주한 이유에 대해 속 시원하게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가 마무리 되면,
이곳저곳에서 문책을 피하진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럼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하늘 팀의 소감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 학생 한 분만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시선의 파편은 내 쪽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단상 위로 보이는 태극기를 응시하며 딴청을 피웠다. 올라가서 딱히 할 말도 없고, 다른 녀석이 올라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인솔 교관님이 올라오셔도 됩니다.”
시간이 지체되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진행자가 박태산을 쳐다봤다. 내게 쏠렸던 시선이 일제히 박태산을 향했다.
“교관님, 올라오시라는데요?”
나는 수건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수건을 박태산에게 떠넘겼다.
“크흠..”
괜히 한 번 헛기침을 하는 박태산.
우리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단상 위로 걸어갔다.
“음..일단, 이번 학교 대항전을 치르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돼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의례적인 말을 한 차례 읊은 박태산.
가슴을 당당하게 펼치며, 마이크를 세게 움켜잡았다.
“참가 한 모든 학생 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언컨대!!”
목소리에 힘을 주는 박태산.
“저희 학교 학생들이 이 자리에서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서진을 비롯해, 한설휘,정시아,금석,강소라,박아름. 녀석들은 이미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실력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이 아닌! 헌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저는 이 학생들의 성장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야 말로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 인재라고. 특히, 다른 애들에 비해 가려졌지만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저기! 저 친구를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박태산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금석을 가리켰다.
꾸벅꾸벅 절고 있던 금석.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박태산.
진행자가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시계를 가리켰다.
“흐음...”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단상을 내려오는 박태산.
‘안 시켰으면 어쩔 뻔 했어?’
미리 대본을 준비한 것처럼,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저렇게 박태산이 물 흐르듯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박태산의 멘트는 상당히 편파적이고,
팔이 안으로 많이 굽은 말들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우승을 했고,
일정 내내 실력을 보여줬으니까.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 당당히 우승.
누가 반박을 하고, 부정을 할 수 있을까?
“우승 상금으로는 100억원 상당의 학교 운영 지원비가 전달 될 예정입니다. 또한, 개개인별로 헌터 협회에서 가산점을 내릴 예정입니다. 가산점은 학교 대항전에서의 활약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교 대항전이라는 특성상,
팀전이었다.
그래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가산점이 전부였다. 학생 신분에 가산점은 굉장히 큰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형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서류 심사가 있었는데, 가산점은 서류 심사에 굉장히 플러스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여기 딱히 가산점이 필요해 보이는 애들은..’
강소라 정도이려나.
강소라도 내가 데리고 가기로 했으니.
‘학교 좋은 일만 시켰네.’
이순신 교장의 입이 귀에 걸리다 못해,
웃음을 주체를 못하고 있었다.
100억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으니.
교장 된 입장에서 얼마나 좋을까.
보상이 없다고 해도 내가 얻은 게 없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학교 대항전의 보상을 바라고 참가한 게 아니었다.
차인수. 이 녀석을 얻기 위해 참가했는데, 강소라라는 꿩 대신 닭을 얻었다. 닭도 그냥 닭이 아닌 토종닭. 아니, 황금닭이라고나 할까?
아직은 햇병아리 정도 수준이었지만, 강소라가 진이라는 바람의 최상급 정령의 힘을 온전히 소화해 낼 수만 있게 된다면.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닭의 신분으로 꿩을 넘어설지도 몰랐다.
어쩌면 독수리나 봉황이 될 지도.
“2등 팀인 스즈란 헌터 학교는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일본으로 먼저 귀국을 했습니다. 시상에 대한 내용과 보상은 따로 전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3등 팀의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3등. 4등. 5등.
줄줄이 시상이 이어졌다.
마침내 팀별 시상이 모두 끝이 나고.
“자, 그러면 개인 시상이 있겠습니다! 각 종목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거나!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고 생각을 하는 학생 분들은 귀를 쫑긋 세워 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기상부터 시작해서, 체력상,노력상,해피바이러스상,최단기록상,최장기록상 등등. 20개가 넘는 상의 시상이 이루어졌다.
아쉬우니까 개인 상을 주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상의 이름만 봐도 뭔가 허술한 게, 급조한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1등을 한 팀 보다,
다른 팀에서 수상자가 더 많이 나왔다.
기왕 왔으니 기분이라도 내라.
이런 뜻 같았다.
그래도 우리 팀도 몇 가지는 호명이 됐다.
“남자 인기상!! 두구두두구! 하늘 팀의, 서진님! 축하드립니다! 여자 인기상! 한설휘님 축하드립니다!”
인기상이라던지.
“베스트 커플상! 서진님, 한설휘님 축하드립니다!”
베스트 커플상이라던지.
인기투표에 기반 한 상은 거의 우리 팀이 독차지였다.
“자, 마지막으로! 최종 MVP 시상이 남아있는데요, 특별히 이번 시상에는 헌터 협회 협회장님께서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운영진 측에 앉아있던 이무신 협회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다들 너무 고생이 많았다. 후회가 남든, 미련이 남든. 모두 너희들의 앞날에 자양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 그럼 이번 대회에서 누가 가장 날 뛰었는지 확인을 해볼까?”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연 이무신 협회장.
“역시, 예상대로구만. 이 자리에서 예상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서진군?”
“....”
“단상 위로 올라오게.”
짝짝짝.
짝짝.
짝.
박수 소리를 들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탁탁.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이무신 협회장. 나는 마이크 앞에 섰다.
이순신 학교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들을 앞에 두고 섰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학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 중에는 딱히 열의나 열정이 없는 사람도 꽤 있었다.
흔히 말해 동태 눈까리를 한 학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전국에서 수재들을 모아놓아서 그런지,
눈빛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나를 동경하는 것 같기도,
뛰어 넘어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그저 각 학교에서 잘 나가는 학생들일지는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학교가 아닌 밖에서 잘 나가는 헌터. 혹은 사람들이 될 확률이 높았다.
1년. 혹은 2년.
혹은 5년. 10년.
레볼루션과 단기전이 될지 장기전이 될지.
나 역시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로.
“나는 길드를 하나 만들 생각이다. 졸업하면 바로.”
술렁이는 장내.
“여기 있는 누구든, 들어오고 싶으면 문을 두드려라. 받아줄 테니. 단!”
나는 마나를 은은하게 흘렸다.
이 정도면 교관들이나 운영진이 눈감아줄 정도였다.
“최소 B급이다. 자격요건은.”
장기를 두면 말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 졸이 대장을 잡아먹는 판도 나오기도 했다.
10대의 학생은 상상력이 풍부 하고,
어른들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질 않았다.
지금 내 말이 어떤 이에게는 가슴에 불을,
어떤 이에게는 적개심을 심어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꽤 내 말이 흥미로웠다는 점이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극명하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저, 근데 MVP 수상자에게는 특전이 있지 않나요?”
나는 당황한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진행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어..그렇긴 한데..”
“특전을 조금 수정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응?”
MVP 수상자의 특전.
교내 최강자 선발전 때와 마찬가지로 토레스의 제작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토레스는 성격이 괴팍하기는 했지만, 인재 양성하는 데에는 재능기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토레스의 아이템도 좋기는 했지만,
나는 얼마 전 만월검을 새로 얻지 않았던가.
아이템 보다는 다른 걸 원했다.
“협회장님의 재능기부가 필요한데.”
나는 이무신 협회장을 쳐다봤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고말고.
폐회식이 모두 끝이 나고,
나는 이무신 협회장을 따로 만나 재능기부의 내용을 말했다.
“흐으음..”
미간을 좁히는 이무신 협회장.
주름 때문인지 과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믿어주세요. 증명하겠습니다.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만약,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창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네. 그 날을. 저, 파란 하늘이..어둠으로 덮이던 그 날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이무신 협회장. 아련한 옛 기억에 잠겨 있는 듯,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지만 허공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자네를 믿네. 하지만 이번만은 자네의 말이 거짓이기를 바라지.”
자리에서 일어난 이무신 협회장.
“자네 부탁은 최대한 빨리 들어주는 쪽으로 노력 해보겠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주 땅을 벗어나,
부산으로 향할 때였다.
+ + +
“진짜, 대박이다. 서진, 너.”
“깜짝 놀랐다니까?”
“범상치 않은 놈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로 파격적인 놈일 줄이야.”
부산으로 가는 승합차 안.
내가 폐회식 때 한 말 때문에 시끌시끌했다.
이미 기사도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한설휘가 물었다.
내가 길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아주 오래 전이었다.
저승에 있었을 때부터,
홀로 상상을 했다.
나만의 드림팀을 꾸리자고.
헌데, 막상 서진에게 빙의를 한 후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길드를 창설하려는 이유.
혹은 길드장이 되려는 이유.
활동의 자유로움과,
길드장이라는 직함.
두 가지가 필요했다.
길드원은 사실상 머릿수 채우는 인원만 있으면 괜찮았다. 내가 공들여 키운 인원들은 같은 길드 소속이 아니더라도 이미 커넥션이 이어질 만큼 이어져 있으니까.
나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쫌, 됐어.”
“사실, 있잖아.”
나와 금석이 앉아 있는 뒷자석으로 고개를 빼곰 내미는 강소라.
“궁금했었거든. 너는 어떤 길드로 들어갈까. 과연 어떤 길드에서 너를 데려갈까.”
“어,나도.”
정시아 역시 뒷자석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근데 길드를 직접 만든다니. 그것도 졸업하자마자. 어우~역시 서진씨의 스케일은 남달라?”
“비꼬는 것 같은데?”
“뇨뇨~ 전혀, 전혀.”
아랫입술을 내밀고 있는 걸 봐서는 비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근데, 너. 네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기나 해?”
아랫입술을 집어넣으며,
진지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는 정시아.
의미라.
모르고 지르진 않았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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