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회
학교 대항전
“야,야. 드디어 서진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렸다.
“보나마나 잘생겼겠지?”
강소라가 뚜뚜의 배를 살살 긁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레이의 머리를 쿡쿡 누르며 장난치던 정시아가 대답했다.
강소라와 정시아.
두 사람은 다른 관객들과는 달리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친구이기도 하고,
워낙 자주 보다보니 익숙해진 탓이 컸다.
“애들 크루져 타러 가면, 우리끼리 저녁에 외식이라도 할래? 어때, 시아야?”
“야. 오늘 마지막 날이잖아. 오늘만큼은 우리도 남자랑 보내자. 방금 무대에 올라왔던 남자 애들 다 잘생겼더만. 마음에 드는 애 없었어?”
“나는 쫌..너무 잘생긴 사람은 별로더라. 부담스럽기도 하고, 얼굴값 하기도 하고.”
“서진은 안 그러잖아. 아니다. 그 자식도 가끔 보고 있으면 얼굴 때문에 열등감 느껴지기도 해.”
“킥킥. 근데 시아야.”
“응?”
“가만 보면 금석도 꽤 잘생기지 않았어?”
“..응?”
정시아가 귀에 똥을 집어넣은 것처럼,
좌우로 귀를 탈탈 털었다.
“아니야? 이목구비도 꽤 뚜렷하고 남자답게 생겼잖아.”
“진심?”
“응.”
강소라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는 정시아.
“열은 없는데.”
“아니이. 진짜, 주관적으로 생각을 해 봐. 내 주변에 금석 괜찮다는 애들 꽤 있어.”
“....”
정시아는 금석의 얼굴을 떠 올렸다.
멍청하고, 무식한 금석.
얼굴 역시 참으로 투박하게도 생겼다.
시골에 가면 참으로 인기 좋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변강쇠 스타일인 것 같..
머리를 한 차례 흔든 정시아.
‘뇌가 반이 없기는 해도..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기도..’
다시 한 번 머리를 흔들었다.
“저기, 멍멍이.”
머릿속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때,
강소라 옆에 앉아있던 박아름이 관중석의 중앙 쪽을 가리켰다.
“사나이는~”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군인이 군가 부르는 것처럼 손을 일정한 박자에 맞춰 흔들고 있는 금석. 옆에는 분신술을 쓴 것인지, 금석과 똑 닮아 보이는 사람 여럿이 금석과 똑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피식.
그 모습에 혼란이 말끔히 가신 정시아.
역시.
바보 같다니까.
“근데, 서진은 왜 이렇게 안 나와?”
“응? 아까부터 무대에 있었는데?”
“아..그래?”
잠깐 다른 생각에 몰두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무대를 쳐다보는 정시아.
“역시는 역시네.”
역시 잘생겼다.
오늘의 서진은 더 잘생겼다.
저게 사람인지, 조각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근데.”
미간을 좁히는 정시아.
“저 자식,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정시아.
“뭐하는 짓이야!! 야이 새끼야!!”
+ + +
“이번에는 1초컷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오른 손에 쥐고 있는 만월검을 일부러 빙글빙글 돌리며, 앞에 보이는 킹 코브라를 쳐다봤다.
속으로 한 여자를 떠 올리며,
만월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사악-!
Z모양으로 깔끔하게 절단을 했다.
“킹 코브라.”
나는 새로운 킹 코브라를 소환해 내며,
관중석에 있는 정시아를 쳐다봤다.
눈을 부릅뜬 채,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해서 킹 코브라를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한,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자, 이번에는..”
한설휘의 능력을 사용해,
불에 태워 죽이려다가 앞쪽을 쳐다봤다.
내게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던 스태프가,
다시금 스케치북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서진씨, 그 쯤 하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나는 마지막으로 킹 코브라의 뺨을 세게 후려치곤, 무대를 벗어났다.
+ + +
“자, 이제 대망의 진(眞)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누가!!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의 왕관을 쓰게 될 것 이냐! 두구두구두구!!”
2위인 선(善)과,
3위인 미(美)의 발표는 이미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1위 발표 뿐.
“한설휘님, 축하드립니다!”
이변은 없었다.
만약 한설휘가 1위가 아니었다면,
심사 위원 단체로 안과를 가야했을 터.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관중석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무대 위 천장에서는 꽃가루가 휘날렸고,
진행자가 한설휘에게 티아라를 건넸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티아라를 건네받는 한설휘.
아이템인 것인지 한설휘가 티아라를 쓰자마자 하얀 빛이 커텐처럼 한설휘의 몸을 감쌌다. 빛이 걷히고 드러난 한설휘의 모습.
“와우.”
나는 대기실에서 박수를 쳤다.
개량 한복에서,
웨딩드레스로 의상이 바뀌어 있었다.
개량 한복도 잘 어울렸지만,
새하얀 피부색이 웨딩드레스와 찰떡이었다.
“자, 그럼! 여신의 선택을 받을 미스터는 누가 될 것인지!! 지금부터 호명하는 미스터는 무대 위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무슨 소리지?’
나는 대기실 탁자 위에 있는 대회 책자를 펼쳤다.
“미스터코리아의 본선 진출은 심사위원에 의해 결정 된다. 하지만 본선 진출자의 우승은 심사위원이 아닌, 미스코리아의 1등으로 뽑힌 진(眞)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까 한설휘가 1등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소리인데. 나는 계속해서 책자를 읽었다.
“우승자 커플에게는 데이트권이 주어진다. 데이트권에 포함 된 목록은 크루져 탑승권. 크루져에 준비 돼 있는 별도의 호화로운 만찬. 두 사람만을 위한 불꽃놀이. 연주. 돌고래쇼 등등.”
나는 쭈욱 읽다가 마지막 줄을 읽었다.
“만약, 데이트를 하지 않을 경우 위에 언급한 상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반반씩.”
미스코리아에서 1등을 한 여자.
그 여자가 선택한 남자.
두 사람의 의사가 중요했지만,
대부분 데이트를 선택하지 않을까?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
데이트를 안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였다.
나는 이제야 상세 룰을 확인했지만, 미스터코리아에 참가한 남자들은 이러한 룰을 알고 참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스코리아에 참가한 여자들도 마찬가지고.
“정시아. 설마..이걸 노리고..”
한설휘가 1등을 확률은 굉장히 높다.
나 역시 본선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 말은,
한설휘가 마지막에 나를 선택하기만 한다면.
‘데이트를 하겠지.’
한설휘나 나나 돈이 필요한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렇게 되면?
‘유우리가 남기고 간 오해를 풀 수도..’
한설휘와의 냉전 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계기. 정시아는 그 계기를 마련해주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무대에서 킹 코브라를 신나게 썰어댔다. 나를 골탕 먹인 줄 알고.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100통 넘게 정시아로부터 겟톡이 와 있었다. 온갖 육두문자와 처음 보는 욕설이 난무했다.
탁. 타타탁.
사죄의 문자를 치고 있을 때,
진행자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10명의 참가자 중,
단 3명만이 호명이 됐다.
나는 문자에 마침표를 찍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설휘가 나를 뽑지 않을 확률?
‘0%.’
확신한다.
+ + +
“....”
무표정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한설휘의 얼굴을 쳐다봤다.
‘적당히 해. 진짜. 재미없어. 재미없다니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밀당인지, 아니면 진짜로 나를 뽑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한설휘는 무대에 오른 세 명의 남성 중, 오직 두 명의 남성에게만 시선을 주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소외된 한 명의 남성.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아, 정말요?”
“네.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만나 뵈니, 더 미인이신 것 같아요.”
“호호. 감사합니다.”
앞에 있는 참가자와 얘기를 나누던 한설휘. 드디어 시선이 내 쪽을 향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참가자에게 시선이 향했다.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며,
다른 곳을 쳐다봤다.
너무 눈에 힘을 주고 있어서 그런지,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단단히 삐진 건 알겠는데,
이렇게 무시를 할 줄이야.
나는 손으로 눈가를 스윽 닦았다.
“자, 이제 한 남성에게 마지막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옆에 서 있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최종 선택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질문은 최종 선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질문의 빈도수를 봤을 때, 마지막 질문은 당연히 나를 제외한 두 참가자들 중 한 명에게 하지 않을까?
한설휘는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했고,
마지막 질문이라고 해서 내게 하지는..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 온 한설휘.
내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드디어 처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예쁘네.”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얼마나 전전긍긍 했던가.
내 말에 별 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한설휘. 들고 있는 마이크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처신 좀 잘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
“응?”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다 잘 해주지 말라고.”
“....”
“대답.”
“어..그..그래.”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는 한설휘.
“이 남자로 할게요.”
“..예?”
“이 남자로 한다고요. 최종 결정.”
“어..그러니까 지금 순서는 결정이 아니라 마지막 질문을 하는 차례인데요, 한설휘양?”
“나랑 데이트 할 거지?”
한설휘가 물으며,
살포시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응.”
나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 순간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쉬 세례.
누가 보면 결혼식인 줄.
+ + +
리무진을 타고 이동한 선착장.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운전기사가 떠났고,
나와 한설휘는 크루져에 탑승을 했다.
대회가 늦게 끝나서인지,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크루져에 있는 수많은 전구 때문에 전혀 어둡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오히려 눈이 부셨다.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크루져.
우리 말고 다른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 둘만을 위한 선원만이 있을 뿐.
식당에 도착하자,
코스 요리가 줄줄이 나왔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구석에서 연주가들이 잔잔한 음악을 연주했다.
밥을 다 먹은 후,
갑판 위에 마련 된 카페로 이동했다.
와인이 어울리는 분위기였지만,
미성년자라 커피나 티를 마셔야 했다.
아이스티와 초코라떼를 마시며,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구경했다.
바다를 뛰어노는 돌고래도 구경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바다 바람이 불어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하늘 역시 맑았다.
모든 게 하나의 단어로 귀결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낭만.’
이토록 낭만적인 한 때를 보내고 있는데.
“왜 말이 없어?”
학교에서 여기에 오기까지.
한설휘는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몇 번 말을 걸려고 시도를 했지만,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표정을 보면 삐져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야, 한설휘.”
탁탁.
나는 한설휘 쪽 테이블을 손으로 두드렸다.
초코라떼를 양 손으로 감싸고,
후루룩 마시고 있던 한설휘.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꼭, 신혼여행 가는 것 같아.”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말을 하는 한설휘.
나 역시 그런 느낌을 살짝이지만 느끼고는 있었다. 우리는 따로 환복을 하지 않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복장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느낌이 묘했다.
“그래서 상상했어. 너와 결혼하면 어떤 느낌일지.”
한설휘와 결혼이라.
한설휘의 저 하얀 속살을 합법적으로 탐할 수 있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배시시 웃는 한설휘.
“좋다는 뜻도 아니야. 알겠어?”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근데..음..”
미소를 띠던 한설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뭔가 느낌이..”
내게서 시선을 돌려 먼 수평선을 쳐다봤다.
“그 날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너와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가슴이 막..아파지려고 해. 왜..이런 거야?”
“....”
눈물을 한 방울을 흘리는 한설휘.
정해진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숙명을 이기는지, 지는지.
나 역시 모르기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현재를 즐겨.”
나는 잔을 들고,
내밀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나는 다시 안 올지도 모를,
낭만에 오늘 밤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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