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54화 (154/196)

154회

학교 대항전

미스코리아의 또 다른 명칭은 미인 대회였다.

미인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라고는 하나,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진(眞).

선(善).

미(美).

보편적인 기준과 더불어, 심사위원들의 자체 평가를 통해 수상의 영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학교 대항전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미스코리아 대회. 학교 대항전에 참가한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 역시 지원이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어디서 밥 먹듯이 예쁘다고 들어봤을 미모의 여성들이 참가를 했다. 전국에 있는 미인을 전부 모아놓은 것만 같았다.

참가자들의 수준을 보면 돌 중에 옥석 가리기가 아닌,

옥석 중 진주와 다이아몬드 가리기가 되지 않을까?

“근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죠?”

별개의 대회인 줄 알았는데, 미스코리아와 ‘S급 얼굴 대회’는 같은 장소에서 동 시간대에 진행 됐다.

말이 S급 얼굴 대회지,

사실상 미스터코리아나 다름없었다.

미스코리아가 미인 대회라면,

미스터코리아는 미남 대회였다.

미인이든 미남이든 다 좋다 이건데.

“왜 제가..”

나는 눈앞에 있는 전신 거울을 쳐다봤다.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지금 한창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

“저는 잘.. 서진님, 잠깐 입 좀 다물고 계실래요? 살짝 색이 감도는 립밤 칠해드릴게요. 조금 붉은기가 감돌기는 할 텐데, 진하지 않아서 생기 있는 정도로만 보일 거예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술에 칠해지는 립밤.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정시아..정시아!’

낚였다.

아니, 반 정도 낚였다고나 할까?

대회장에 도착했더니,

정시아가 나를 이곳으로 안내했다.

나는 관중석으로 가는 줄 알고,

순진하게 따라갔더랬다.

알고 보니,

미스터코리아 분장실인 줄도 모르고.

“참가 신청서는 내가 접수 했어. 그러니까 너는 가서 메이크업 받고, 준비하면 돼. 아, 그리고 혹시나 튈 생각하지 마. 이번 주에 각 팀마다 최소 10개 종목 참가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딱 네가 이거 참가하면 10개째야. 오늘 축제 마지막 날이라 다른 종목은 참가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팀 탈락 시키고 싶으면 튀던지~”

나를 분장실에 집어넣고,

할 말을 하고 뚜뚜와 레이를 데리고 갔다.

“다 끝났어요. 워낙 인물이 좋으셔서 메이크업은 살짝 밖에 안 했어요. 뭔가 메이크업을 많이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같아서. 혹시 더 받고 싶은 메이크업이나 수정할 부분 있어요?”

“..아니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광이죠.”

흐뭇하게 웃으며 옆 자리로 이동했다.

분장실에는 나 말고도 참가자들이 여럿 있었다. 하나 같이, 존잘. 혹은 훈남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지 않을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견제를 하듯이 계속 거울을 통해 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아무리 동네에서 날고 긴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두면 또 다시 그 안에서 급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메이크업 끝난 참가자들은 대기실로 이동 하실게요!”

‘정시아..정시아..’

다른 참가자들이 나를 견제하든 말든 나는 오로지 정시아의 이름을 되 내이며 대기실로 향했다.

“그나마 마음에 드네.”

대기실은 1인1실이었다.

만약 다인1실이었으면, 눈동자 굴러다니는 소리에 시끄러울 뻔 했는데.

“흠.”

대기실 한 쪽 벽면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훌륭하고.”

한 번 턴을 했다.

“훌륭하군.”

처음 서진에게 빙의했을 때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자각을 했다.

잘생겼다라는 걸.

거울을 볼 때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러한 감각과 생각들이 많이 무뎌졌다.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자아도취에 빠져서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

“나는..”

나는 거울 앞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어떻게 생겼더라..”

이제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본래의 내 모습이.

이제는 서진의 모습에 어떠한 위화감도, 이질감도 느껴지질 않았다. 이 모습이, 이 삶이 본래의 내 것이었던 것처럼.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서, 많은 생각에 파묻혀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거진 남자들이 내는 거친 육성이었다.

오래 전 기억이긴 하지만,

저런 땀 냄새 나는 환호성을 들은 적이 있었다.

군대에 위문열차가 떴을 때.

나는 대기실 상단에 위치한 TV를 쳐다봤다.

TV에는 지금 밖에서 한창 진행 중일 미스코리아의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아름다움으로 수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델이 런웨이를 하듯,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참가자들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직관해야 하는데. 아.. 정시아..’

TV로 봐도 이렇게 예쁜데,

바로 앞에서 보면 얼마나 더 예쁠까?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청에 돌입했다.

당일치기에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속성 때문인지, 한 번 등장한 참가자는 꽤 오랫동안 스테이지에 머물렀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가진 능력을 사용해 직접 무대 효과를 내기도 했다.

새로운 참가자가 스테이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TV와 동시에 밖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저러다 목 쉬지.’

참가자는 총 30명이었는데, 30번 동안 저렇게 닭처럼 울어대면 목이 나갈 게 분명했다.

화면이 리액션을 담기 위해,

관중석을 잡았다.

“저거, 설마 금석?”

관중석의 중간에서, 체격이 다부진 녀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목이 터져라 ‘워어어!!’거리고 있는 금석의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을지문덕 학교 녀석들과 대결을 하다가 친해졌는지, 한 목소리로 함성을 질러대는 게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아보였다.

금석과 함께하면서 한 번도 금석이 여자에게 눈길을 준다거나 환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내재 된 욕망이 꽤..’

남자네.

남자야.

+ + +

“하아암..”

한 명당 거의 5분 정도의 시간을 소요했다.

미스코리아 참가자가 30명이니, 도합 150분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 30분이었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장시간 보고 있으니 하품이 계속 나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 5시.

아직 내가 참가하는 S급 얼굴 대회.

속칭 미스터코리아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저녁 늦게 돼서야 끝나겠네.’

나는 눈을 비비며 마지막 참가자를 보기 위해 TV 화면을 쳐다봤다. 사실상 앞 참가들은 에피타이저. 혹은 들러리나 마찬가지였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튼.

나는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의자를 앞으로 당겨, 최대한 TV에 밀착했다.

샤랄라~샤라~

우아하지만, 무겁지 않은 음악이 깔리고.

화아악!

등장하는 길목 양 옆으로 불기둥이 무릎 높이로 치솟았다.

백옥 같은 피부.

단정하게 위로 땋은 머리.

그로인해 돋보이는 뚜렷한 이목구비.

생긴 건 냉미녀나 다름없지만,

사용하는 능력은 화끈하다 못해 뜨거운 불 속성.

한설휘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사람인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

이건 신성모독이 분명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 한설휘.

관중석이 이전과는 달리 조용했다.

그들은 압도당한 게 분명했다.

한설휘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TV로도 한설휘의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니,

직접 보는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한설휘는 마치 저 높이 있는 여왕님 같았다.

범접할 수 없고, 감히 쳐다봐서도 안 되는 그런 고귀한 여왕.

한설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무대 중앙에 서서 관중석을 한 번 천천히 눈으로 훑고, 한복 치마를 양 손으로 잡고 인사를 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게 전부긴 했는데,

전부가 아니었다.

인사를 하고,

수줍게 미소를 짓는 한설휘.

그래.

바로 저게 액기스이자, 하이라이트였다.

“뭐지?”

내가 저런 여자와 정혼을 했던 사이이며,

입을 맞춘 사이라니.

“어깨에 뽕이 차오르는 것만 같네.”

한 명의 살아있는 여신이 퇴장을 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관객석.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억눌러왔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무대보다,

폭발적인 함성 소리였다.

카메라 감독은 이미 리액션 맛집을 알고 있었고, 카메라가 자연스레 맛집 탐방을 하기 위해 돌아갔다.

금석과 을지문덕 학생들.

미친 듯이 한설휘의 이름을 연호하며 다시 나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걔 중 단 한 명. 금석만이 음소거 모드로 시늉만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금석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친한 친구 사이라, 성격이나 많은 부분을 알고 있고 자주 봐서 그런지 현장 분위기에 크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성 참가자들의 무대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참가자들에 대한 심사가 진행 될 동안, 또 하나의 대회! S급 얼굴 대회라고도 하며, 미스터코리아라고도 하는 남성 참가자들의 무대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뜨거웠던 남성들의 열기가,

차갑게 식었다.

반면, 여성들의 열기가 후끈해지기 시작했다.

“참가 번호 1번! 류정호군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호명 된 참가 번호 1번이 무대 위로 올랐다.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여성 참가자들과는 달리 남성 참가자들은 전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고 있는 1번 참가자.

큰 키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마술사인지, 카드를 허공에 휘날리며 장기를 부렸다.

“오빠!! 오빠아!!”

“꺄아아악!!”

나는 TV를 껐다.

역시 아무리 잘생기고 수려해도,

남자 눈에 남자는 그냥 남자다.

잘생긴 남자나 못생긴 남자나 똑같다.

그냥 남자다.

내 번호는 10번이었고,

남성 참가자 중 마지막 번호였다.

여성 참가자 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숫자가 참가를 해서 금방 내 차례가 올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 + +

“서진님, 다음 순서니까 무대 뒤에서 대기하도록 할게요.”

“..네.”

깜빡 잠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를 따라갔다.

잠도 깰 겸 제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내 앞 번호인 9번 참가자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자, 이제 미스터코리아의 마지막 참가자! 참가자 명단을 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대 창조 그룹의 막내 아들! 세계 유일 달빛 계승자! 이번 학교 대항전에서의 명실상부 에이스이자 캐리 머신! 미래가 촉망되며..”

수식어가 많다.

다른 참가자들의 소개는 이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백그라운드에서 살짝 무대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장내 아나운서를 쳐다봤다. 대본을 손에 들고 계속해서 내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과연 그는 미스터코리아에서도 1등을 차지할 수 있을..”

무대로 걸어 나갔다.

장내 아나운서가 당황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황급히 끝마쳤다.

“..까요! 참가번호 10번! 서진군을 큰 박수와 함께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무대 중앙까지 별 생각 없이 걸어왔다.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관중석이 꽤 넓고 인원수도 많았다.

나는 한설휘처럼 관중석을 스윽 훑었다.

‘정시아.’

찾았다.

관중석의 우측 편에서 양 무릎에 레이와 뚜뚜를 올리고 나를 보고 있는 정시아를 발견했다. 그녀의 양 옆으로는 박아름과 강소라가 앉아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정시아에게 삿대질을 했고,

그 다음 동작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메롱.

‘메롱?’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장시간 대기를 하고,

여기에 서 있는데.

메롱?

메로옹?

“오빠..오빠아!!”

“서진 오빠아아!!”

“어떡해, 어떡해!! 실물을 영접하고야 말았어!”

“오빠, 나 주거어어어!!”

관중석에 난입을 하려다가,

터져 나온 여성들의 목소리에 속으로 화를 삭혔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퇴장할 때가 됐다.

뒤를 돌려고 할 때,

앞 쪽에 보이는 누군가가 스케치북을 들었다.

스케치북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서진씨! 아직 미스코리아 심사가 덜 끝나서, 조금만 시간을 끌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

정시아.

정시아..

정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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