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53화 (153/196)

153회

학교 대항전

"유우리?“

기모노를 입고 있는 유우리가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기모노를 입고 있네?”

“응응. 분위기 좀 내려고! 여기서 뭐해, 서지나?”

“나?”

나는 힐끔 펀치 기계 쪽을 쳐다봤다.

“그냥, 저냥.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저냥? 근데, 서지나!”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유우리.

“오늘 되게 귀엽다!”

“아..하하..”

‘숙소 가서 옷도 갈아입어야겠네.’

주도면밀한 정시아가 기존에 우리가 입고 있던 셔츠와 신발을 물품보관함에 넣고, 잠가버렸다.

그래서 갈아입고, 신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퍼엉!

퍼어엉!

“걸을까?”

머리에 쓰고 있는 늑대 머리띠를 벗으며 말했다.

여기 계속 서 있다가는 바보들에게 휘말릴 수가 있었다.

“일행은?”

유우리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방향 전환을 시켰다.

내 물음에 귀엽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유우리.

“숙소에서 짐 싸고 있을 거야.”

“벌써?”

이번 주가 축제 기간이라고는 해도,

학교 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의 범주를 벗어난 게 아니었다.

벌써 짐을 싸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내일 일본으로 돌아 갈 거야.”

“응?”

“어차피 본 일정은 다 끝났고, 더 여기에 머물러봤자 기분 나쁘대. 교관님이랑 류진이.”

“....”

“알다시피, 패배했잖아. 우리가..”

우리 팀이 독보적인 1등이긴 했으나,

유우리네 팀은 독보적인 2등이었다.

패자 중 1등이라도,

패자는 패자라는 건가.

“너희 친구들 되게 강하더라. 깜짝 놀랐어. 특히, 시아..였나? 맞지? 대단하더라. 나 사실 알고 있어. 시아가 나 봐줬다는 거. 그래서 경기 끝났을 때 너무 분하고, 또 분해서..”

고개를 숙이는 유우리.

뭔가 웅얼웅얼 거렸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드는 유우리.

“복귀해서 더 열심히 훈련하려고! 더! 더! 열심히!”

활짝 웃었다.

나는 그녀가 일본에서 여태까지 어떤 훈련을 소화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더 열심히 하겠다니.

“쉬는 것도 중요한 거 알지?”

“응! 근데, 서지나.”

“응.”

“쟤들, 네 친구들이야?”

“응?”

내 시선이 유우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많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여학생들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언제 저렇게 불어났지?’

아까까지만 해도,

저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재벌집 아들에,

얼굴은 훤칠하다 못해 빛이 나고.

거기다가 압도적인 능력까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과 요건은 다 갖춘 나란 남자. 딱히, 이 사실에 대해 자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항간에는 내 팬덤이 웬만한 연예인 보다 두텁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저번 주까지는 대놓고 저렇게 덕질(?)을 하지 않았는데, 긴장이 전부 풀려서인지 나를 보는 시선과 눈빛이 많아지고 노골적으로 변해 있었다.

“조용한 곳으로 갈까?”

“조용한 곳 어디? 가서 뭐 할 건데?”

대답은 엉뚱한데서 들려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

“뭐 할 거냐고. 응? 비밀이야? 설휘야, 비밀이라는데?”

“흠..”

“수상한 냄새가 난다, 나. 조용한 곳에 가서 둘이 뭐 하려고 했을까나? 오붓하게 도대체 뭘 하려고 했을까나? 설마 우리 버리고 간 이유가..유우리랑 단 둘이 있으려고?! 그러고 보니 황금돌대가리도 없네?! 마사카!!”

스산한 기운이 뱀처럼 내 등을 조여 왔다.

“헛소리 좀 그만 해.”

나는 몸을 돌려,

정시아를 쳐다봤다.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세 명의 여자들.

그 중, 한설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거야. 그치, 유우리?”

“응? 아닌데. 나 계속 너 찾아다닌 건데.”

나는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유우리는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

“뭔가..마지막 날은 너와 함께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헤헤..”

“....”

유우리의 오해 가득한 말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까.

“오해하지 마. 유우리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그치, 유우리?”

“아닌데?”

“응?”

“나, 너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런 건데?”

“....”

사랑 고백이 아니다.

유우리가 좋아한다는 건 나라는 남자가 아닌, 내가 가진 ‘강함’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사랑고백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할 리가 없지 않을까?

말이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한설휘의 표정이 무표정하게 굳어졌다.

“서지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우리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 배고파. 뭐 먹으러 가면 안 돼? 둘.이.서?”

“하..하하..”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유우리의 손을 떼 내려고 했다.

“데이트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우리는 빠져주자.”

내가 미쳐 유우리의 손을 걷어내기 전,

한설휘가 몸을 휙 돌렸다.

“쯔쯧.”

혀를 차는 정시아.

“진짜 양다리..그런 건 아니지?”

걱정스레 물어보는 강소라.

평소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박아름 마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들이 떠나가고,

내 곁에는 오로지 유우리만이 남았다.

“헤헤.”

혓바닥을 내밀며,

재밌다는 듯이 웃는 유우리.

“일부러 그랬지?”

“응. 반응이 재밌길래. 너무 심했어?”

“..쫌.”

“근데, 서지나.”

“응?”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엉?”

싱긋 웃는 유우리.

“나도 가야겠어. 짐을 하나도 안 싸놨거든.”

뒷걸음질로 몇 발자국 걸어간 유우리.

“다음에 보자, 서지나!”

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었다.

나 역시 손을 들어 흔들었다.

다음에 보는 건, 보는 건데.

노을이 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얼굴이 왜 저렇게 빨개?’

멀어지는 유우리의 얼굴이 노을에 점점 물들어갔다.

혹은, 다른 것에 물든 걸지도.

+ + +

“오늘은 기필코 승부를 낸다.”

금석이 아침 일찍 콧김을 뿜어대며,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4주차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었다.

내일은 이번 여정의 끝인,

폐회식 날이었다.

고로, 오늘이 어떻게 보면 마지막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겨울 법도 한데.”

금석은 이번 주가 시작한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을지문덕 녀석들과 만났다.

같은 부류라 친해진 건지,

아니면 금석의 말처럼 진짜로 아직까지 승부가 안 난 것인지.

“나는 뭐 하지.”

첫 날을 제외하고,

나는 계속 기숙사에 있었다.

야밤에 몰래 훈련을 하러 나간 것을 제외하면.

‘여자 애들도 이미 나갔을 거고.’

한설휘와 나는 현재 냉전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자 애들이 구태여 같이 다니자고 권유를 하지 않았다.

‘풀기는 풀어야 하는데.’

나는 침대에 누웠다.

사실이든, 아니든 유우리는 오해의 씨앗을 야무지게 심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오해의 씨앗은 시간을 양분 삼아 점점 자라났다.

이래서 오해는 바로바로 풀어야 하는데.

‘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하니..’

풀 방법이 딱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대화를 시도해도, 단칼에 고개를 돌리며 대화를 거절했다.

끼잉..낑..

크르..릉..

양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 중일 때, 레이와 뚜뚜가 내 배 위로 올라왔다. 소형화 크기라, 전혀 무겁진 않았다.

“너희들 왜 그래?”

아픈 것처럼, 구슬픈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보는 뚜뚜와 레이. 이렇게 같이 보고 있으면 꼭 바둑알 같았다.

원래는 둘 다 검정이들이었는데, 레이가 달빛 늑대가 되면서 털색이 하얗게 바뀐 탓에 두 마리가 같이 있으면 색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크르르..(주인..산책 시켜줘..너무 답답해..숨 막혀..뚜뚜는 어제 울었어..)

끼잉..낑낑..

“....”

밤에 한 번씩 데리고 나갔는데,

모자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뚜뚜는 데리고 간 적이 없네.’

밤이 되면 나갔던 인원들이 모두 복귀를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훈련하러 나갈 때 레이만 데리고 나갔다.

금석이 시킬 줄 알고.

헌데, 안 시킨 모양인지 나를 보는 뚜뚜의 콧방울이 촉촉해졌다.

나는 두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미끄럼틀 타듯이 배에서 허벅지로 내려간 뚜뚜와 레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가자. 원 없이 뛰어놀게 해 줄게.”

멍멍!!

크르릉!!

축제 종목 중에는,

소환수들을 위한 종목도 몇 가지가 있었다.

오늘이 축제 마지막 날이니.

‘나도 즐겨봐야겠네.’

나는 신이 나서 미치기 직전인 두 마리를 데리고 숙소를 나섰다.

+ + +

멍멍!!

크릉!!(달려, 뚜뚜!!)

소환수 달리기 경주.

뚜뚜가 억눌러 왔던 질주 본능을 표출하며 압도적인 1등을 차지했다.

크르릉!!(달빛 소나기!!)

멍멍!!

소환수 장기자랑 대회.

시크하게 무대로 걸어 나간 레이가 내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며, 1등을 차지했다.

아우울~

머어엉~

소환수 노래 자랑.

뚜뚜와 레이가 화음을 맞추며, 무슨 곡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인간은 이해를 하지 못했으나, 소환수들에게는 큰 감명과 감동을 주었는지 소환수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왔다.

소환수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를 했고, 이제 한 종목밖에 안 남았다.

“갔다 와.”

멍멍!

크릉!

많이 먹기 대회.

여러 대회를 날 뛰느라,

배고플 텐데 딱 피날레로 좋은 대회였다.

나는 핫도그를 베어 물며, 곰과 골렘 사이에서 야무지게 고기를 흡입 중인 레이와 뚜뚜를 관전했다.

“맛있게도 먹네.”

외형만 소형화 됐다 뿐이지, 뚜뚜와 레이는 원래 덩치가 양옆에 있는 녀석들에 비해 꿀리지가 않았다.

띠링~

엄청난 먹성을 자랑하는 두 녀석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한 번 더.

나는 핫도그를 입에 물며 핸드폰을 꺼냈다.

-야.

정시아였다.

-어디야?

두 통의 겟톡.

나는 답장을 보냈다.

-소환수 대회장.

핸드폰을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곧바로 답장이 왔다.

문자가 아닌,

사진이었다.

붉은 장미 문양이 곳곳에 박혀 있는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한설휘. 다소곳한 포즈로 신부 대기실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한설휘는 평소 화장을 거의 안 했는데,

얼굴에 화장기가 가득했다.

민낯을 보다가 화장한 얼굴을 보니까,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특히, 하얀 얼굴과 대조적인 붉은 입술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뜩이나 예쁜 얼굴에 색감이 더해졌으니,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곧 대회 시작함. 보러 오려면 와. 여기 미스코리아 대회장이야.

사진에 이어 도착한,

정시아의 겟톡.

‘미스코리아 대회라..’

나는 여전히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뚜뚜와 레이를 쳐다봤다.

다 먹으면.

‘가볼까?’

나는 살면서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속물이 아니라,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겠는가.

나는 발을 까딱까딱 거렸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흐르고,

20분이 경과했다.

찹찹.

춥춥.

먹는 페이스를 보니,

배에 진공청소기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장으로 걸어갔다.

“뚜뚜. 레이.”

입에 피가 뚝뚝 흐르는 생고기를 물고 나를 쳐다보는 뚜뚜와 레이.

“그만 먹고 가자. 밤에 더 맛있는 고기 사 줄 테니까.”

왕왕!

크릉!

보기 좋은 떡이 얼마나 찰진지.

다홍치마가 얼마나 어여쁜지.

뚜뚜와 레이를 데리고 미스코리아 대회장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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