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52화 (152/196)

152회

학교 대항전

“매일 악몽을 꾼다. 훈련하는 악몽. 으으..”

후유증이 여전해 보였다.

아무래도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온 것이 아닐까?

내 입장에서는 금석이 울릉도로 갔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로 몸서리칠 정도면 안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진만큼은 아니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럼 가지마. 울릉도.”

아무리 박진의 소환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도,

핑계 거리를 찾으면 한 없이 많았다.

물론, 박태산이나 금석의 입장에서는 왕의 어명처럼 느껴지겠지만.

한참을 말없이 앞을 응시하던 금석.

“나도 그러고 싶다. 근데..”

말을 하던 와중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너랑 싸우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금석과의 결승전.

막판에 금석이 ‘고통의 희열’로 반전을 노리나 싶었지만, 이변 없이 내가 이겼다. 오히려 금석이 막판에 정신을 차린 게 나의 화려한 액션에 소금을 첨가한 꼴이 됐다.

“만약, 내가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내가 약해빠졌다면.”

잠시 숨을 고르는 금석.

“우리는 친구가 됐을까?”

금석의 시선이 먼 허공을 응시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지,

입을 꾹 닫았다.

대답은 너무나도 뻔했다.

No.

이곳에서 내가 형성 한 인간관계.

그리고 앞으로 형성 할 인간관계의 베이스는 ‘강함’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유유자적하게 놀러 온 게 아니니까.

‘내 상황을 말해줄 수도 없고.’

“너 답지 않게, 왜 이렇게 진지 해?”

분위기를 전환하며,

화제 역시 전환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금석의 눈빛은 ‘단호‘ 그 자체였다.

“아마도..”

나는 먼 산을 쳐다봤다.

정해진 대답을 내 입으로 말하려니, 처음부터 이용해 먹을 작정으로 접근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이지만, 금석이 최대한 상처 받지 않는 선에서..

“앞으로는?”

“응?”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친구를 할 수 있을까?”

“....”

이 자식이 오늘 밥을 잘못 먹었나.

“친구지, 그럼. 아니, 무슨 일 있어? 오늘 왜 이렇게 진지하냐고.”

“꿈이 생겼다.”

“꿈?”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금석.

“꿈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울릉도를..”

고개를 푹 숙이는 금석.

“가야겠지.”

웅얼웅얼 거렸다.

“졸업하고 가도 되냐고, 한 번 물어야겠다. 당장 가는 건 아무래도 우울증 걸려서 죽을 것 같으니까.”

성큼성큼 숙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금석.

나한테 져서 현타가 온 게,

분명한데.

현타가 와도 너무 온 게 아닐까?

“야. 근데 왜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지키는..야!! 뚜뚜는 데려가야지!”

아무리 뚜뚜의 지능이 높다고 해도,

내버려두고 가다니.

나는 분수대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 두 짐승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은 보통 꿈이 있다면 이루고 싶다고 말을 한다.

헌데, 금석은 꿈을 지키겠다고 말을 했다.

‘무슨 뜻이지?’

금석의 생각을 모르는 순간이 올 줄이야.

별 일이 다 있다.

+ + +

“꼭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을까? 있으면 쫌 들어보고 싶은데.”

“동감이다.”

4주차 일정이 시작 됐다.

휑하던 학교 내부 공간이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가 풍부해진 공간으로 탈바꿈 했다.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왁자지껄.

하하호호.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곳에서, 나와 금석은 여자 애들 손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입에 칡뿌리를 넣고 다니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지!”

한설휘가 주변 소리 때문에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입가는 하늘 높이 승천 중이었다.

“마자! 너희 내버려두면 숙소에 박혀 있을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정시아가 나와 금석을 째려봤다.

“원래 이런데 오면 다 같이 몰려다녀야 해!”

강소라도 한 마디 거들었다.

유일하게 한 마디도 안 하는 여자는 박아름 뿐이었다. 표정을 보면 박아름도 지금 나나 금석처럼 끌려 다니는 게 분명했다.

“어, 저기 예쁜 머리띠 판다!”

“어디, 어디!”

“저기!”

우르르.

“꺄! 너무 귀엽다. 이거 토끼 머리띠 아름이한테 완전 잘 어울리겠는데?”

“여우 머리띠는 시아랑 찰떡이야!”

“황금돌대가리! 너는 이거다! 강아지 머리띠! 그리고 서진, 너는! 늑대 머리띠!”

우르르.

“어머, 어쩜.. 얘들아, 이 티셔츠 좀 봐. 짱 귀엽지 않아?”

“너구리 웃는 표정 봐. 우리 이걸로 단체로 맞춰 입고 다닐까?”

“좋아, 좋아!”

우르르.

“이, 신발 좀 봐! 곰 발바닥이야, 곰 발바닥!”

“여우 발바닥도 있는데?”

“신발도 질러버려엇!”

우르르.

“우리 이제 조금 앉아서 쉴까? 뭐 좀 먹으면서?”

“응, 그러자. 저기 보니까 타코야끼 팔던데. 타코야끼 어때?”

“헐, 소라야 나도 마침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시아야 진짜? 우리 통하나봐!”

우르르.

“타코야끼, 대박 맛있는데? 근데..왜 너희들은 한 마디도 없어?”

“....”

“....”

나와 금석은 아무 말 없이 입에 타코야끼를 쑤셔 넣었다.

동물농장도 아니고.

사람 몸에 동물 머리띠, 셔츠, 신발까지.

멋대로 입혀 넣고.

“석아.”

“지금이냐?”

여자 애들한테 끌려 다니며,

금석과 나는 계속 눈빛을 교환했다.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음 행선지는 동물 메이크업 노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다 동물이 되게 생겼다.

“나 화장실 좀.”

“나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와 금석.

“도망가는 거기만 해 봐. 진짜 가만 안 둬.”

한설휘가 으름장을 놓았다.

“아까 보니까, 화장실 줄 엄청 길더라. 혹시 우리 늦으면 너희끼리 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싱긋 웃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 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가는 금석.

여자 애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머리띠를 바로 벗어버리는 금석.

“저거나 할까?”

턱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펀치 기계가 있는 노점이었는데, 현수막으로 대문짝만하게 ‘펀치! 펀치!’라고 써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밑에 괄호로 ‘학교 대항전 점수 3점’이라고 작게 써져 있었다.

상품이 점수인 경우에는,

일반인들이 참가가 불가능했다.

오직 학교 대항전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만 참가가 가능 했고,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인원이 많이 붐비지가 않았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수십 명이 펀치 기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구경이나 해 볼까?”

동물 커넥션을 구경하고 쇼핑하는 것 보다,

저런 게 훨씬 재밌을 게 분명했다.

인파를 헤치고, 고개를 쑥 내밀었다.

“교관님?”

어딜 갔나 했더니,

박태산이 이 종목의 감독관을 맡고 있었다.

“하러 온 거냐? 잠시만 기다려라.”

나는 목을 긁적이며 금석을 쳐다봤다.

표정을 보니,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펀치 기계 옆에 있는 점수판을 쳐다봤다.

1등에서 10등까지 점수와 각 학교 팀복 컬러가 나와 있었는데, 1등에서 5등까지가 전부 같은 학교였다. 뿐만 아니라 5등과 6등의 점수 차이가 꽤 심했다.

‘황토색 컬러가 어느 학교더라. 아.’

기억났다.

이순신 헌터 학교나,

세종대왕 헌터 학교는 ‘종합’ 헌터 학교였다.

다양한 교관이 다양한 능력에 대한 수업을 가르치므로.

하지만 특성화고등학교처럼 특정 능력에 대한 교육만 하는 곳이 있었다.

을지문덕 헌터 학교.

이 곳은 격투기 특화 헌터 학교였고, 황토색 컬러는 바로 이 학교였다.

‘인재가 지지리도 없기로 유명한 곳이지.’

말이 격투기 특화 헌터 학교지,

싸움박질을 좋아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걔 중에는 양아치들이 태반이었다.

을지문덕 헌터 학교의 교훈은 ‘싸워라. 이겨라. 승리하라.’였다. 그래서인지 수업 중에 쌈박질을 해도 너그러이 허용을 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히려 싸움을 독려 한다는 말도 있었다.

‘괜히 엮여봤자, 피곤만 한데.’

“야, 석아. 이거 말고 다른 거 하러..”

퍼엉!!

대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펀치 기계가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일반 펀치 기계가 아닌지, 금세 잠잠해졌다.

띠링띠링.

점수판의 숫자가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띠.띠.띠.띠링!

‘12000점.’

나는 아까 봤던 점수판을 다시 쳐다봤다.

1등이 9000점 언저리였다.

즉, 금석이 새로운 1등에 이름을 올렸다.

1등을 밀어내고,

새로운 왕좌에 등극한 금석.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검은색 장갑을 내밀었다.

“나 안 할 건데?”

“쫄았군.”

“..뭐?”

“쫄았으면 안 해도 된다.”

어깨를 으쓱하는 금석.

장갑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곧장 금석이 있는 쪽으로 향한 한 남자.

낚아채듯이 장갑을 빼앗아 들었다.

체구가 박태산과 비슷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였다.

“지나갑시다~”

“길막 오지고, 지려버리네.”

거구의 남자를 따라 등장한 네 명의 남자.

거구에 비하면 체구가 작았지만 일반인에 비하면 몸이 다부졌다.

얼굴을 보니,

앳된 게 학생으로 보였다.

사복을 입고 있어서 분간을 할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을지문덕 학교 놈들이네.’

“뭐냐, 너?”

금석이 거구의 남자를 살짝 올려다봤다.

“뭐긴, 펀치 치러 왔지. 왜? 전세 냈어?”

“이 새..”

나는 금석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앞에 박태산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가자.”

옆에서 뭐가 좋은지 실실 웃는 낯짝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괜히 트러블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었다.

우리는 박태산에게 인사를 하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때.

퍼어엉-!

아까 금석이 펀치를 쳤을 때 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큰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린 금석.

띠링!

점수판의 숫자가 ‘15000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금석의 이마 혈관이 꿈틀거리는 것에서 멈췄다.

하지만 거구의 남자가 보란 듯이 금석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을 때.

금석은 내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펀치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장갑, 가져와.”

“망신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가져오라면 가져 와, 이 새끼야.”

장갑을 뺏어든 금석.

펀치 기계 앞에 섰다.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장갑을 끼고 펀치를 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장갑은 마나 센서가 부착 돼 있었고, 펀치는 오로지 순수한 근력의 힘만으로 쳐야 했다.

만약, 마나나 능력을 사용하면 장갑에 달린 마나 센서가 바로 반응을 하기 때문에 바로 실격 처리였다.

“후우웁.”

숨을 한 번 들이 쉰 금석.

주먹을 아까보다 더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뻗었다.

퍼어엉!!

올라가는 점수판.

띠링. 띠링. 띵!

-15600점.

“훗.”

가소롭다는 듯이 웃는 금석.

“장갑..가져와.”

이번에는 거구의 남자가 장갑을 꼈다.

띠링. 띵!

-16000점.

다시 금석이 장갑을 꼈다.

-16200점.

다시 거구의 남자가.

다시 금석이.

계속 되는 굉음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두 명씩,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곳이 핫플레이스가 됐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 됐다.

“교관님. 칠 수 있는 횟수 제한 같은 건 없는 건가요?”

보다 못한 내가 박태산 교관에게 물었다.

“대기자가 있다면 기다려야하지만, 대기자가 없다면 계속 쳐도 된다.”

“저렇게 무식한 놈들 둘이서 저러고 있어서 대기자가 안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그럴지도라고 했으면 뭔가 조취를 취할 법도 한데 박태산은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금석이 펀치를 칠 때마다, 박태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이 인간도 한통속이다.

박태산이 있어, 최악의 사태는 가지 않을 테니

나는 금석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나는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넓은 거리로 나왔다.

“레이를 데리고 와야겠네.”

혹시 몰라,

레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안 그래도 될 뻔 했다.

여기저기 소환수나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레이를 데리러 숙소로 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지나!!”

이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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