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48화 (148/196)

148회

학교 대항전

A그룹 결승전이 허망할 정도로 빠르게 끝이 났다. 일각에서는 승부조작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전부 알고 있었다.

압도적인 격차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실제로 서진의 움직임을 포착한 사람은,

경기장에서 거의 없었다.

어쨌든.

관중은 보상심리가 커졌다.

A그룹 결승전에서 보상 받질 못한 박진감. 치열함. 화려함. 능력자 대결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감정을 B그룹 결승전에서는 느끼길 기대했다.

“기권이요.”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선수의 기권 선언에 관중석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어제 너무 열심히 싸웠더니, 아직까지 몸이 뻐근해서리. 다들 이해하시죠? 뭐, 이해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기권이요~”

폴짝.

기권을 선언한 선수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경기장을 내려왔다. 경기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기권이 아니더라도 장외 패였다.

B그룹의 결승전은 A그룹 결승전 보다 더 빠르게 끝이 났다. 이쯤 되면, 각 그룹이 누가누가 먼저 끝내나 내기를 한 게 아닐까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항간에서는 승부조작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각 그룹의 결승전 인원은 모두 같은 학교. 같은 팀의 학생들이었으니까.

“그런 소릴 했다가는 나 이순신의 이름을 걸고 가만두지 않겠소!”

이순신 교장의 엄포에 그런 말이 쏙 들어가기는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멧돼지에게 습격을 받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모두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관중들은 젓가락을 들고,

내일 있을 최종 결승전을 기다렸다.

내일은 부디 먹거리가 풍성하기를 기도하며.

+ + +

“괜찮아?”

“어제 쫌 무리하는 것 같더라니. 기다려봐, 아름이 데리고 올게.”

순진한 양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방금 기권 선언을 하고 대기실로 온,

정시아를 쳐다봤다.

순진한 양들에게 아픈 척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 + +

오늘 아침.

숙소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정시아를 만났다.

우연히 만났다기 보다는,

남자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며 대뜸 하는 말.

“나 오늘 금석과의 경기. 기권할거야.”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정시아는 생각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그녀의 생각 역시 뭔가 느낌이 쎄 했다.

“너랑 금석이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더라고?”

“....”

“그래서 궁금해졌어. 둘이 싸우는 모습이. 그리고.”

몸을 틀어 복도를 걸어가는 정시아.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어 말을 끝맺었다.

“나도 설휘랑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 그럼, 오늘 설휘랑 경기 잘 하고~”

정시아가 손을 들어 흔들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 + +

다시 현재.

정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윙크를 하는 정시아.

“....”

정시아의 계획대로 최종 결승전 매치업은 나와 금석이 붙게 됐다. 또한 3,4위전에는 정시아와 한설휘의 대결이 성사 됐다.

오늘 아침,

정시아의 계획을 듣고 잠깐 생각을 해 봤다.

나쁘지 않았다.

금석의 현재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보다,

내가 직접 확인하는 편도 괜찮았으니까.

문제는 3,4위전이었다.

학교 가면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서로 싸움을 잘해서 친구가 됐는데, 서로 보고 듣기만 했지 막상 서로는 싸워본 적이 없는. 그래서 누가 이기냐는 말에 서로가 조심스러워지는.

한설휘와 정시아는 딱 그런 상태였다. 나는 그런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싸울 일이 없길 바랐는데, 정시아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마귀!!”

벌컥!

닫힌 대기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오는 오늘의 승자.

“뭐하는 짓이냐!”

사실상 부전승을 하게 된 금석이,

정시아의 양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야.”

“뭐하는 짓이냐고!”

“야.”

“마귀이이이!!”

“야이 새끼야!! 어지러우니까 그만 흔들어!”

딱!

주먹으로 금석의 머리를 때린 정시아.

“아야..”

도리어 아파했다.

“황금돌대가리 아니랄까봐. 일단 손 좀 치워. 네 악력을 알고나, 그렇게 사람 어깨를 세게 잡고 흔드냐? 너 거의 악력이 오랑우탄 수준이라고.”

“그..그래?”

“그래. 아야..”

금석이 손을 거둔 이유는 정시아가 아파해서가 아니라, 오랑우탄이라는 소리를 칭찬으로 들어서 놓은 게 아닐까?

어깨를 문지르며 인상을 쓰는 정시아.

턱으로 내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내일 네 상대한테 인사나 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금석.

금석은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날 만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헌데, 나를 쳐다보는 금석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무표정 같기도 하고,

승부욕에 불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나랑 싸우게 돼서 망설이는 건가?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온 금석.

“아무리 서진, 너라고 해도.”

주먹으로 내 가슴을 제법 힘주고 때렸다.

“안 봐 줄 거다.”

다행이네.

혹시나 마음 약해지면 어쩌나 했는데.

“나도.”

나 역시 주먹으로 금석의 가슴팍을 한 대 때렸다.

퍽.

‘음?’

다시 되돌아오는 금석의 주먹.

이번에는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나 역시 한 번 더 때렸다.

퍽.

그랬더니 금석이 다시 내 가슴을 때렸다.

나도 다시 때렸다.

퍽. 퍽. 퍽. 퍽.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한설휘가 달려와 말렸다.

안 봐 준다는 말이,

오늘부터일 줄이야.

“흐음!”

나는 한설휘의 만류에 콧김을 한 번 뿜어내며 대기실을 나가는 금석을 쳐다봤다.

‘내일이 기대 되네.’

+ + +

“최선을 다 해라.”

결승전 당일.

박태산이 중립기어를 세게 박았다.

박태산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 역시 중립 기어를 박았다.

“둘 다 응원할게!”

“둘 다 다치지만 마!”

하지만 그 중에 중립 기어를 살짝 푼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내 귀에 작게 속삭이는 한설휘.

“살살해.”

또 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치유소에서 할 일이 없어진 박아름이었다. 오늘부터 다시 일행에 합류한 박아름.

금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치지 마. 멍멍아.”

“....”

한설휘나 정시아가 저런 행동과 말을 했으면, 광견처럼 날 뛰었을 금석이었지만 희한하게 박아름한테만 관대한 금석이었다.

“황금돌대가리, 얼굴 빨개졌는데?”

“어? 진짜네?”

“다..닥쳐라! 마귀, 할멈!”

고개를 홱 돌리고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금석.

우리는 현재 경기장 입구에 서 있었다.

여기서 갈라져야 했으니까.

“나도 들어간다.”

나는 금석의 뒤를 따라 선수 대기실이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어디쯤이야?’

걸어가며 레이에게 교감을 통해 말을 했다.

+ + +

“엄청나네.”

지루한 대기 시간이 끝나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관객이야 늘 그렇듯 만석이었지만,

운영진 쪽에 못 보던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이무신 헙터 협회 협회장을 비롯해서, 대한민국에서 S랭크로 분류 되는 헌터들까지.

학생들의 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물급들이 등판했다.

그들의 시선은 분산 되어 있다가,

내가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부 내게 꽂혔다.

‘날 보기 위해 온 거네.’

날 보는 시선에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적개심도 있었다.

S랭크 헌터가 내게 적개심을 보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잠재적 경쟁 상대.

현재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자신들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닐까?

‘S급이라..’

지금 내 상태라면,

저 중에 몇 명은 레이 없이 상대 가능 할 것 같았다.

‘달의 축복’ 능력을 무리하게 4단계까지 사용한다면 몇 명이 아니라 운영진 전부를..

‘아니네. 이무신 협회장은 쫌..’

이무신 협회장은 아직 내 수준에서 무리다. 아무리 현역에서 은퇴했다고는 해도, 그의 실력은 국내 최정상급. 세계적으로 봐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미래에 레볼루션 간부와 1:1로 비비는 실력이니.’

그가 만약 전성기 때,

레볼루션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 했다면 혹시 몰랐다.

이 세상은 이무신 협회장에 의해 구해졌을지.

나는 이무신 협회장을 상당히 고평가했다.

그랬기에, 나중에 그의 힘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선순위가 있었고, 그와는 이미 안면을 터 놨기 때문에 성급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채린씨는 안 왔네.’

아무리 둘러봐도 사신 길드의 수장인,

채린이 안 보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사신 길드원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많이 바쁜가?’

요즘 도통 연락을 안 해봐서,

근황을 알 길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이!! 기생오라비 자식 확 죽여 놓으라고!!”

귓가를 때리는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누군가가 목소리에 마나를 싣고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야마모토 류진이었다.

한설휘에게 패한 후,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더니 요상한 대형 깃발을 들고 관중석에서 흔들고 있었다.

아마도 류진은 금석의 편인 것 같았다.

“서지나!! 화이팅!!”

유우리는 내 편이고.

그들뿐만 아니라,

관중석의 열기는 반반이었다.

내가 이기길 바라는 사람 반.

지기를 바라는 사람 반.

네임드만 생각하면 일방적일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들은 금석이라는 언더독이 나를 물기를 바랐다.

“집중력 좋네.”

관중석이 뭐라 떠들던 간에,

경기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금석.

“관객 여러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 해주시길 바랍니다! 선수들이 조금 더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일런스를 걸겠습니다. 사일런스!!”

순식간에 고요해진 경기장.

여전히 관중은 입을 열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수 분들 준비 되면 바로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 된 선수는 오른손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고요함 속에서 심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금석 역시 오른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 선수 준비 완료. 제가 신호탄을 쏘면 경기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타아앙-!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신호탄.

보통 신호탄이 아닌지 하늘에 다다랐을 때, 폭죽처럼 터지며 ‘G.O'라는 영문자가 떠올랐다.

금석과의 경기가 시작 됐다.

금석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만월검을 꺼내들었다.

곧 부서질 것처럼 금이 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처럼 부서지진 않았다.

훈수 리스트에 있는 4명의 인물.

금석,정시아,한설휘,강소라.

나는 이번 대결에서 그 누구의 능력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게 공평하고,

친구로서 정정당당하게 임하고 싶었다.

따지고 들면 훈수 리스트 능력 역시 내 능력이기 때문에 사용해도 정정당당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금석과 싸울 때는 오로지 내가 가진 능력으로만 싸우고 싶었다.

나는 만월검을 쥔 손목을 돌리며 기다렸다.

금석이 눈을 뜰 때까지.

“뭐하냐?”

“응?”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

명상이 안 끝난 줄 알았더니,

눈을 감고 있는 게 전투태세였던 모양.

금석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최대한 금석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합을 맞춰주기로 했다.

코앞까지 달려온 금석.

주먹을 한 차례 뻗었다.

사아악-!

펑!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는데,

금석의 주먹질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바람 가르는 소리하며,

주먹 끝에서 나는 파공음하며.

공방을 주고받으면 받을수록,

금석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금석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인,

‘야수의 본능’.

그 능력 때문에 점점 내 움직임이 읽혔다.

나 역시 금석의 ‘야수의 본능’을 사용 중이었다. 패시브 능력이기 때문에, 사용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금석은 점점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옥죄어 왔다.

급기야 나는 회피를 하던 도중,

안 되겠다 싶어 만월검을 들었다.

채에엥-!

단 한 번.

아무리 만월검의 내구도가 바닥이라 해도 딱 한 번 막았을 뿐인데, 만월검이 파편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만월검이 부서졌다.

“얕보지 마라!!”

눈을 뜨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금석.

“제대로 하란 말이다!!”

“....”

어떻게 알았지.

봐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는 하고 있었는데.

크르릉!!(주인! 주이인!!)

타이밍 좋게 새 무기가 도착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경기장으로 난입한 레이를 쳐다봤다.

“토레스 영감은 왜 데리고 온 거야?”

대형화를 한 레이가 등에는 토레스를,

입에는 검 한 자루를 들고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내 인생의 역작! 만월검-2의 성능을!”

“....”

분명 새로운 검에 대한 이름을 붙이기 귀찮았던 게 분명하다.

“자, 그럼.”

나는 금석을 쳐다봤다.

“제대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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