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회
학교 대항전
“힘내라.”
“하아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 숨을 쉬는 금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박태산과 금석은 울릉도에서 박진에게 훈련을 받다가 도망쳤다.
일명 탈주.
그런 와중에 기자들이 기사를 냈다.
-칩거 생활 중인 박진의 제자가 나타나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기사 제목이었다.
아무리 박진이 속세를 등지고 울릉도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는 하나, 그에게도 귀와 눈이 있었다.
탈주한 제자가 버젓이 자신의 제자라고 말한다니. 물론 금석과 박태산은 최대한 언급을 피하려고 했으나, 기자들 특성상 일단 자극적인 내용을 기사에 우겨 박았다.
그 결과,
분노한 철권 박진 선생.
학교 대항전이 끝나는 대로 울릉도로 오라는 소환 명령을 내렸다. 안 오면 직접 찾아간다는 엄포를 내렸기에, 불가항력이나 다름없었다.
“야. 야! 어디 가! 그 쪽, 아니잖아!”
금석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아닌,
산으로 올라가는 길 쪽으로 걸어갔다.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금석.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도,
얼굴이 그늘지다 못해 검은빛이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친구여.”
“....”
“뚜뚜를 부탁한다.”
“교관님. 쟤 좀.. 교관님?”
분명히 내 옆에 있었는데,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금석보다 앞질러가고 있었다.
“뚜뚜. 레이. 가서 물어 와.”
멍멍!
크릉!
달려가는 뚜뚜와 레이.
평소 사람들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기 위해 소형화를 하고 있던 두 마리의 크기가 순식간에 중형견처럼 바뀌었다.
각자 입에 넝마처럼, 너덜너덜 거리는 금석과 박태산을 물고 온 레이와 뚜뚜.
“갑시다~”
경기장으로 다시 출발했다.
+ + +
“어째, 날이 갈수록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같지.”
분명 경기장의 수용인원은 한정 돼 있을 텐데, 오늘은 유독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경기 시작 전 유명 아이돌 그룹이 경기장의 중간에서 공연을 했다. 전부 능력자로 구성 된 그룹인지, 춤 보다는 기예에 가까운 동작들을 선 보였다.
아이돌 그룹의 공연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
“하아암.”
대기실에 있는 화면을 통해 아이돌 공연을 지켜보다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A그룹의 결승전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준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A그룹의 승자와,
B그룹의 승자가 한 번 더 대결을 해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열기라니.
과연 내일이 되면 얼마나 더 난리를 칠까?
아이돌 그룹이 물러나고, 슬슬 시작할 때가 됐는지 화면이 경기장의 대형스크린을 비췄다.
대형스크린에는 예선부터, A그룹 결승에 오르기까지.
내 활약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쫌 액션 좀 취할 걸.”
한 경기마다 10초도 안 걸렸다.
뛰어가서 스턴 걸고 툭. 장외.
여기까지 오는데 경기한 시간을 전부 합치면 1분은 될까 싶었다.
나에 이어 한설휘의 활약상이 나왔다. 한설휘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건질 영상이 마땅히 없었다. 만약 야마모토 류진과의 경기 영상이 없었다면, 활약상을 스크린에 띄우자고 기획한 사람은 아마도 사표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내 활약상은 1분 만에 끝이 났는데,
한설휘의 활약상은 10분이 넘게 이어졌다.
전부 류진과의 경기 영상이었다.
“나도 잡혔네.”
양반다리를 하고,
턱을 괴고 있는 나.
그냥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도,
얼굴이 잘생겨서인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나는 의자에서 몸을 때며,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였다.
“웃고 있어?”
경기 당시에는 불길 때문에 잘 안 보였는데, 화면으로 보니 류진을 향해 화염을 난사하는 한설휘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싸우는 걸 즐기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피닉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아니면 정시아나 금석 같은 친구들의 영향이라던지.
한설휘 다음 영상은 정시아였다.
오늘부터 A그룹과 B그룹이 같은 경기장을 사용 했다.
각 그룹마다 한 경기씩밖에 안 남았는데,
굳이 경기장을 나눠서 할 필요가 없었다.
“정상은 아니야.”
나는 정시아의 활약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B그룹의 경기를 보는 건 어제 이후로 처음이었다.
A그룹과 동시간대에 경기가 치러지다보니,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화면 속의 정시아는 매 경기마다, ‘메두사’나 ‘보이지 않는 공포’로 상대방을 얼리고 맹독으로 여기저기 찔렀다.
그리고 반응을 지켜봤다.
대회를 빙자해,
실험을 하다니.
정시아의 마지막 영상은 어제 있었던 유우리와의 영상이었다. 영상으로 보면 아슬아슬하게 정시아가 이긴 것처럼 보였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정시아 다음 영상은 금석이었다.
“미친놈.”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개싸움을 했다.
맞고 때리고.
때리고 맞고.
금석 정도의 스텟이라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질 않았다.
금석은 S와 M의 성향이 둘다 극한이지 않을까?
‘울릉도에 갔다 와서 좀 점잖아진 것 같더니, 전투 스타일은 그대로네.’
하지만 마지막 경기.
B그룹의 4강전은 다른 경기와 사뭇 달랐다.
첫 시작은 동일했다.
금석이 개싸움을 유도했다.
하지만 전개되는 양상이 전혀 금석의 뜻대로 되질 않았다.
울릉도 가기 전의 금석이었다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힘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시키려고 고집을 부렸을 텐데 화면 속의 금석은 그러질 않았다.
개싸움을 접고,
자세를 바로 했다.
태권도 품새를 하려는 것만 같은 자세였다.
“저 녀석도 재능충이네.”
경기는 금석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
시시하게 일방적으로 금석의 승리로 끝이 났다.
금석이 울릉도에서 박진의 가르침을 받은 건 겨우 한 달 남짓. 헌데, 화면 속의 금석은 박진의 발가락은 들여다 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1년. 혹은 적어도 몇 달만 박진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금석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학교 대항전이 끝나고 울릉도로 금석이 돌아가야 한다는 건 내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울릉도로 돌아간다는 건,
금석이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앞으로 10분 후에 A그룹의 결승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 그대로 오래 기다리기는 했다.
끼익.
“서진 선수. 10분 후에 경기장으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네.”
친절히 스태프가 와서 한 번 더 경기 시간을 알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학교 대항전에서 한 번도 레이와 함께 싸운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는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손이 비는 강소라에게 맡겼다.
레이는 내 소환수로 등록을 해 놨기 때문에, 같이 싸워도 룰 위반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싸울 상황. 아니, 상대가 없었다.
한설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띠링. 띠링.
대기실을 나서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강소라인 줄 알았다. 잘하라는 응원 메시지라도 전하려나 싶었는데, 발신자가 쌩뚱 맞은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만 사람이었지만.
‘토레스 영감이 무슨 일이지?’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서진이냐?
“예.”
-TV로 간간히 보고는 있다만, 왜 이렇게 참하게 굴어?
“예?”
-팍팍 좀 못하겠느냐? 보는 맛이 영 없지 않느냐!!
“....”
핸드폰을 살짝 귀에서 땠다.
갑자기 전화 와서 한다는 말이 노잼 선언이라니. 목소리가 여전히 화통을 삶아먹은 것을 보니 큰일은 아닌 것 같고.
“어르신. 저 이제 경기 들어가 봐야하는데요.”
-흐으음..
아직 내게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끊..벌써요?”
끊으려다가 토레스가 혹하는 미끼를 내게 던졌다. 나는 귀에 전화기를 바짝 갖다 댔다.
-그래 이놈아!!
“알겠습니다. 찾으러 가겠습니다. 오늘 바로.”
-아니, 광주에 있는 놈이 무슨 수로 오늘..
“입장하라고요? 아,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어르신 제가 경기 끝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뚜. 뚜.
스태프가 와서 재촉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연기했다.
토레스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어쨌든.
“역시 장인은 장인이라는 건가?”
성격은 조금 괄괄해도, 실력 하나 만큼은 확실하다니까.
나는 강소라에게 문자를 하며 대기실을 나섰다.
+ + +
한설휘와 나는 한 번 1:1로 대결을 한 적이 있었다.
교내 최강자 선발전.
그 당시 나는 패배했다.
즉, 상대 전적으로 보자면 1:0으로 한설휘의 우위였다. 그래서인지, 통계 사이트나 많은 도박사들이 6:4 정도로 한설휘의 승리를 예측했다.
4월에 열린 최강자 선발전.
그 후 4개월 후의 재대결.
4개월 동안 한설휘는 분명 더 성장했다.
훨씬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 만큼.
“빨리 끝내고 쉬자.”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승패에 연연하기 없기다.”
글쎄.
“알겠지?”
아마도.
“일어설 수 있겠어?”
레볼루션이라는 목적에 많이 다가서지 않았을까?
+ + +
‘뭐지?’
방학이 시작 되고 한설휘는 피닉스와 함께 생활을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스텟과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말도 안 되게 상승했다. 마나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피닉스와 계속 붙어 있던 영향이었다.
‘마나가..거의 안 느껴지는데?’
학교 대항전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날.
한설휘는 서진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풍기는 기세를 보면 서진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성장을 한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전과 달리 마나를 읽을 수가 없었다.
태풍의 눈.
서진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이, 설마.’
한설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7월 한 달이다.
고작 한 달 만에 서진이 자신이 마나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을 했다고?
서진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못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마나를 숨기는 능력이 생긴 게 틀림없어.’
한설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의구심을 확인해 볼 기회를 얻었다.
학교 대항전 3주차.
A그룹 결승전.
한설휘는 야마모토 류진과의 대결에서 확인했다.
자신의 성장과 성장한 실력을.
무엇보다 4월에 열린 교내 최강자 선발전에서 한 번 서진을 이겨 본 경험이 있었기에, 서진과 경기장에서 마주섰을 때 떨리거나 하는 감정은 없었다.
‘왜 저렇게 능글맞게 웃어?’
서진을 째려보는 한설휘.
한설휘의 눈빛에 서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봐주지 않겠어.’
한설휘는 이번 대결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주변으로 본선 무대와는 달리 한층 강화된 결계와, 심판진들이 여럿 포진 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관중석 역시 값비싼 결계가 쳐져 있었다.
이 정도면 주변 상황 신경 쓰지 않고, 류진과 대결할 때처럼. 혹은 그 보다 더 실력발휘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자! 그럼 대망의 A그룹 결승전을 시작 하도록~~하겠습니다!”
시작 됐다.
서진의 움직임은 웬만한 민첩 특화 능력자보다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설휘는 우선적으로 접근을 막을 용도로 ‘염옥’ 능력을 사용해 자신의 주변으로 불의 장막을 생성하려고 했다.
재 아무리 서진이라 해도, 재 아무리 자신의 능력을 사용가능한 서진이라 해도.
자신은 피닉스와 계약을 맺은 불 능력자가 아니던가.
“빨리 끝내고 쉬자.”
‘응?’
분명 저 앞에 있던 서진이 목소리와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승패에 연연하기 없기다.”
‘응??’
사라진 서진의 모습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알겠지?”
‘응??????’
싱긋 웃는 서진.
손바닥으로 가볍게 자신의 어깨를 밀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항할 수 없었다.
그대로 장외로 떨어진 한설휘.
“일어설 수 있겠어?”
서진이 손을 내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설휘는 바닥에 앉아,
한참동안 서진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서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