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회
학교 대항전
16강전에 이은 8강전.
그리고 4강전까지.
16강전의 임팩트 때문이었는지,
모두 속전속결로 승자가 결정됐다.
어떻게 보면 예상 된 결과였다.
A그룹의 결승전에는 나와 한설휘가 이름을 올리게 됐다.
“도망가자.”
A그룹 4강전이 끝나자마자,
한설휘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경기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설휘 선수!! 스카이 신문사의 종탁 기자입니다!!”
“한설휘 선수!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16강전에 보여줬던 새가 피닉스가 맞습니까?!”
“한설휘 선수!!”
학교 대항전에서 주목 받는 선수는 정해져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한설휘였다. 하지만 16강전에 모습을 드러낸 피닉스 때문에 그녀를 향한 주목도가 몇 배는 더 상승했다.
그럴 만도 했다.
피닉스.
그 녀석이 가진 가치는,
단순 수치로 환산이 안 될 정도니까.
‘기자가 더 늘어난 것 같네.’
기자뿐만 아니라,
전국의 길드 관계자들 역시 대거 늘어나 있었다.
학교 대항전 특성상 미리 유망주들을 스카웃하거나,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설휘가 태양 길드의 손녀라는 사실을 다들 알 텐데, 사서 고생들이다.
“서진 선수!!”
“잠깐 인터뷰 가능합니까?!”
“16강전에서 보여줬던 엄청난 결계! 달빛 능력 중 하나인가요? 대답 부탁드립니다!”
“한설휘 선수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정혼 관계가 깨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혹시 여자친구가..”
기자들의 포커싱이 나로 바뀌었다.
16강전 때, 두 속성 능력자의 능력을 차단하는 결계를 시전한 탓에 내 주목도 역시 전과 다르게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주목도가 상승했다기 보다는,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내게 마이크를 들이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의도치 않은 내 활약(?)이,
그들에게 기회의 구실을 제공했다.
“서진아!!”
경기장 입구에서 한설휘가 손짓을 했다.
“실례~”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기자들 머리 위로 가뿐히 점프를 했다.
A그룹의 4강전은 끝났지만,
아직 B그룹의 4강전은 진행 중이었다.
결과도 중요했지만,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정시아와 유우리의 4강전.
과연 누가 이길까?
+ + +
“왔어?”
B그룹 경기장의 관중석.
자리가 모두 만석이었다.
하지만 학교 대항전에 참가한 선수 전용 자리가 따로 있었고, 한설휘와 나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소라 옆에 앉았다.
“금석은?”
내 물음에 강소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금석이 졌을 리가 없었다.
금석이 유일하게 지는 시나리오는 유우리나 정시아를 만나는 건데, 두 여자는 지금 서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기자실에 있어. 박태산 교관님이랑 같이.”
“기자실?”
“응. 뭔가 처음 보는 능력을 사용했는데, 그걸 보고 기자들이 경기 끝나자마자 납치하듯이 데리고 갔어. 뭐라고 하더라..뭐라고 하던데. 아! 철권 박진의 2대 제자가 나타났다!!라고 했던 것 같은데?”
“....”
나는 금석의 4강전 상대를 떠 올렸다.
충분히 금석을 몰아붙일 수도 있는 상대였다.
‘그 능력을 사용했나보네.’
박진에게 단기간 속성 과외를 배운 것 치고는, 꽤 효과가 탁월했다. 그래서 기존에 없던 능력이 생긴 금석이었는데, 나는 이번 대회에서 사용 안 할 줄 알았다.
예선전 때 유우리를 상대로,
사용 안하는 걸 보고.
헌데, 사용했다.
어지간히 지기가 싫었던 모양.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양 선수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둘 다 존나 멋있다!”
“힘내라!”
심판의 호응 유도에 내 시선이 자연스레 경기장을 향했다.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는지,
정시아와 유우리의 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호흡이 상당히 거칠었다.
두 사람의 대진이 확정 됐을 때,
나는 확률이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았고,
누가 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시아와 유우리는 동일한 A급 능력자였고, 유우리는 정시아 못지않게 실전 경험이 있는 캐릭터였다.
굳이 따지자면,
상성 상 정시아가 불리했다.
왜냐하면 정시아는 능력의 특성상 암살자 역할군에 속한 능력자였고, 유우리는 근접전에 특화 된 칼을 다루는 검사 계열이었으니까.
경기장이라는 한정 된 공간이라면,
상대적으로 유우리가 유리했다.
‘확실히 괴물이네.’
숨을 고르던 유우리가 검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며, 정시아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몇 차례 이어진 일방적인 공격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지친 와중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고,
칼끝이 살아있었다.
도대체 뭘 먹고, 어떤 훈련을 하길래 저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유우리의 공세를 피하는데 급급한 정시아.
중간 중간 ‘메두사’나 ‘보이지 않는 공포’로 유우리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 않았으면 진작 넉다운이 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관중들이 보기에는 유우리의 일방적인 공격. 그리고 정시아의 일방적인 회피라고 볼 수 있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정시아는 기다리고 있었다.
‘맹독’이 유우리를 잡아먹기를.
유우리의 몸을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차렸다. 유우리의 몸 곳곳에 발라져 있는 ‘맹독’을. 정시아 입장에서는 단순한 소모전이 아니라 모두 계산 된 영역 안이었다.
역시 정시아다웠다.
헌데,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아니,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유우리에게는 패시브 능력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정신 강화’였고,
하나는 ‘육체 강화’였다.
이 두 가지 능력이 독에 면역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정시아가 지쳐 나가떨어질지,
유우리가 독에 먼저 감염될지.
삭삭-!
흥미롭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정시아가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빠르게 앞으로 그었다.
정시아가 들고 있는 단검은 토레스가 특수 제작한 방어구 관통력이 어마어마하게 붙어 있는 단검이었고, 아무리 유우리라고 해도 맞으면 그대로 다운이었다.
일방적으로 검을 휘두르던 유우리.
몸을 유려하게 옆으로 비틀며 단검을 피했다.
퍽.
순간 발생한 빈틈에 그대로 발길질을 하는 정시아. 지쳐 있어서 그런지 정시아의 발에 적중당한 유우리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킹 코브라.”
정시아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라면 가공할 만한 육체와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킹 코브라였지만, 정시아의 마나가 여의치 않아서인지 길이가 10m정도밖에 안 돼 보였다.
“안 먹힐 텐데..”
킹 코브라를 본 강소라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나는 되물었다.
“아까도 사용했거든. 근데..”
강소라가 말을 하다가,
경기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뱀가죽을 검으로 찢어발기고 있는 유우리.
‘A급 능력자가 소환한 소환수를 저렇게 쉽게 처리한다고?’
강소라의 말을 들으면 아까도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정시아의 얼굴 표정을 쳐다봤다.
낭패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입가가 씰룩씰룩 거리고 있었다.
‘설마..’
나는 정신을 집중해,
정시아의 마나를 읽었다.
“....”
내가 너무 정시아를 얕잡아봤다.
현재 정시아는 마나가 꽤 많이 남아 있었고,
‘킹 코브라’에 소량의 마나밖에 투자하질 않았다.
그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정시아는 킹 코브라를 미끼로 계속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계속 되는 공방전.
체력과 마나가 모두 소모되고,
맹독에 기어코 감염이 된 유우리가 패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 대기실로 찾아간 우리.
“왔어?”
방금까지 치열한 경기를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온하게 치유 능력이 깃들어 있는 반창고를 몸에 붙이고 있는 정시아.
“어떻게 된 거야?”
“뭐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정시아.
“일부러 봐 준 것 같은데. 아니야?”
“에이, 설마.”
“진짜야, 시아야?”
내 말에 한설휘와 강소라가 동조했다.
어깨를 으쓱하는 정시아.
“너흰 어떻게 됐어?”
화제를 전환 했다.
“당연히 이겼겠지?”
“응.”
“역시. 그럼 너랑 설휘랑 A그룹 결승전에서 붙겠네?”
정시아의 말 대로였다.
“그러는 너는 내일 석이랑 결승전이겠네?”
“그러게. 우리 황금돌대가리, 오랜만에 합법적으로 궁디팡팡 해줘야겠네.”
어떻게 하다 보니, 각 그룹의 결승전은 하늘 팀의 내전을 하게 됐다. 꽤 이렇게 될 확률이 높기는 했다.
차인수라는 변수가 빠지는 바람에,
확률이 더 올라간 것도 있고.
“그럼 우리 이번 학교 대항전 우승 아니야?”
강소라의 말 대로였다.
3주차의 경기에서 강소라가 예선 탈락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1,2,3,4등을 독식했으니.
4주차 일정은 사실상 보너스 라운드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오늘 있었던 경기로 인해 최종 승자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로 가자.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배가 너어~무 고프네. 먼저 가서 자리 좀 잡고 있을래? 나 반창고만 마저 붙이고 갈게.”
정시아의 말에 한설휘와 강소라가 대기실을 나섰고, 나 역시 그녀들을 따라 나가려고 했다.
“야.”
“응?”
나는 대기실 입구에 서서,
정시아를 쳐다봤다.
“티 많이 났냐?”
“....”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딱히 걔 일본 여자 애를 얕잡아 본 건 아니고~”
반창고를 대충 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시아.
“호구 전략이라고나 할까?”
“호구 전략?”
“그래. 오늘 경기가 전 세계적으로 방송 된 걸 알고 있지?”
“근데?”
“오늘 경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니야. 아, 정시아. 쟤 소환수는 크기만 크지 방어력도 형편없고, 별로 빠르지도 않네. 라고.”
“....”
“뱀은 직접 사냥도 하지만, 굴러들어오는 사냥감도 기다렸다가 화아악! 하고 물어 죽일 줄도 알아야지. 안 그래?”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는 정시아.
“오늘 여러 사람 나한테 호구 잡혔을 걸? 가능하면 너도 호구로 잡으려고 했는데. 까비~”
정시아는 참으로 영악하고 무서운 여자였다.
만약 누군가 오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시아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정시아의 말대로 바로 잡아 먹힐 게 분명했다.
정시아는 힘을 숨겼고,
최선을 다한 척 연기를 했으니까.
“그래도 일본 여자 애, 대단하더라. 하마터면 연기하다가 골로 갈 뻔 했잖아.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
우리는 대기실을 나섰다.
+ + +
A그룹과 B그룹 결승전 날이 밝았다.
평소에는 같이 숙소를 나섰는데,
오늘은 여자 애들이 먼저 출발했다.
아무래도 오늘 내전을 치르다보니,
아침부터 하하호호 하기는 조금 그런 모양이었다.
“야, 석..아?”
슬슬 출발하려는데, 금석이 불안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별 일이네.’
천하의 금석이 정시아와의 대결을 앞두고 긴장을 하다니.
‘근데 쫌..’
다리뿐만 아니라,
이빨까지 딱딱 부딪히는 금석.
‘심한데?’
우황청심환이라도 사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현관이 열렸다.
끽.
문 열리는 소리에 맞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금석.
동공에 지진이 났다.
저벅저벅.
‘교관님은 또 왜 저래?’
현관으로 들어온 박태산이 축 늘어진 어깨를 비틀거리며, 금석 앞으로 걸어갔다.
“교..교관..님..”
떨리는 목소리로 박태산을 부르는 금석.
아무 말 없이 금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박태산.
“미안하다..”
“크흐윽..”
“미안하다!”
“흐윽!”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갑자기 두 사람이 끌어안고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현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박태산의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낸 박태산.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내게 건넸다.
“화장실..화장실 갔다고 해다오..”
“....”
나는 박태산에게 건네 받은 휴대폰을 들었다.
-하늘같은 스승님.
발신자의 이름이었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지금 박태산 교관님 화장실..살고 싶으면 당장 전화 받으라고 전하라고요?”
나는 힐끔 박태산의 얼굴을 쳐다봤다.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전화 안 받으면 당장 이리로 오시겠다고요?”
“여..여보세요.”
전화기를 뺏어든 박태산.
“스..스승님.”
나는 오늘 처음 느꼈다.
저렇게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의 등이 이렇게도 쪼그라들 수 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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