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회
학교 대항전
“저게 어딜 봐서 학생들의 경기야?”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불의 기둥과,
땅에 내리치는 번개.
현재 한설휘와 류진이 대결하고 있는 경기장은 서로 다른 두 속성이 만나,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어찌나 두 사람의 능력이 대단한지,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심판진이 경기장을 에워싸고, 경기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속성 마나를 캔슬 시켰다. 하지만 그 역시 임시방편에 지나질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려나 본데.’
한 눈에 보기에는 두 사람의 대결이 화려하고 치열해 보였지만, 실상 몸 풀기에 지나질 않았다. 두 사람이 전력을 다 한다면, 어쩌면 경기가 중단 될 수도 있었다.
실전 경험이 없다 뿐이지, 류진과 한설휘는 A급 헌터 이상의 능력자들이었으니까.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던 전기와 불이 한 순간 사라졌다.
대신 서로 거리를 두고,
노려보는 두 사람.
류진은 즐겁다는 듯이 이빨을 전부 드러내 웃고 있었고, 반대로 한설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나는 경기장을 에워싸고 있는 심판진과 관객석의 중앙 부근에 앉아 있는 운영진을 쳐다봤다. 서로 눈빛을 빠르게 교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기를 중단시킬 것 같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이번 승부는..”
굴러다니던 눈동자가 공중에 떠 있는 메인 심판에 집중 됐고, 메인 심판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된 순간 나는 재빨리 날아올라 마이크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지금 이게 무슨..”
“심판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나는 어처구니없어 하는 메인 심판의 귀에 빠르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내 말에 내 얼굴을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는 메인 심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해? 저 두 사람의 능력은 최소 B급. 아니 A급 이상이라고. 심판진도 애를 먹고 있는데 너 혼자서..아무리 네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 윗사람들한테 물어나 봐주시죠.”
“무리야. 더 이상 싸우게 내버려 뒀다가는 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관객들이 피해를 입을 수가 있어.”
이렇게 나온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나는 운영진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낯익은 인물을 쳐다보며 SOS 신호를 날렸다.
-심판. 무슨 일인가.
메인 심판이 착용하고 있는 단추 모양의 무전기에서 나이 지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 아무 일도 아닙..”
“교장 선생님!!”
나는 재빨리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되며, 운영진 틈에 있는 이순신 교장을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순신 교장.
나는 간단요연하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 역시 간단하게 답변을 전달해 왔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내가 책임질 테니, 서진 학생의 말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나는 이순신 교장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승낙을 한 메인 심판.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이번 시합은 안전상 무승부에 부치려고 했으나, 경기를 계속 속행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신..”
심판이 말을 하는 틈에,
나는 한설휘와 류진이 있는 경기장에 착지를 했다.
“어이어이~ 무슨 개수작이야?”
류진이 내 얼굴을 보며,
목을 살짝 뒤로 젖히고 좌우로 왔다갔다 거렸다.
“서진아.”
심판이 하는 말을 듣던 한설휘가 걱정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힘 조절 안 해도 돼.”
나는 양측을 번갈아보며,
말을 했다.
“전력으로 싸워도 된다는 소리야.”
류진은 몰라도 한설휘는 혹시나 외부에 불똥이 튈 까봐, 힘 조절을 했다. 그녀의 능력을 나 역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피닉스는 현재 논외로 치더라도, 한설휘는 기껏해야 50%의 힘도 사용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계속 걱정하는 한설휘.
나는 괜찮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서진 선수. 준비 되셨습니까?”
“옙!”
“그럼 결계를 시전해 주시죠!”
나는 심판의 말에 곧바로 경기장을 이탈했고,
심판이 말한 결계를 시전 했다.
‘달빛 제 4초식. 보름달 가두기.’
내가 여태까지 만든 보름달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류진과 한설휘가 있는 경기장을 둥글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충분히 날 뛰어도 될 정도로 널찍하게 보름달을 생성했다. 그리고 곧장 그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보름달의 선명도를 투명하게 바꿨다.
외부에서도 보름달 내부. 즉, 류진과 한설휘를 볼 수 있게.
이게 모두 달빛석으로 인해,
달빛력이 대폭 상승한 덕분이었다.
마치 동그란 어항에 갇힌 모양새가 된,
한설휘와 류진.
나는 엄지를 들어 심판에게 시작해도 된다는 사인을 보냈다.
나는 궁금했다.
피닉스 없이 한설휘가 어느 정도 파워를 낼 수 있는지.
야마모토 류진의 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사실 전자 보다는 후자가 훨씬 궁금하기는 했다. 레벨을 알아야 나중에 적절하게 써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경기를 다시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 사인이 떨어졌다.
나는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처럼,
보름달 안의 두 사람을 쳐다봤다.
속성 능력자.
같은 또래.
압도적인 재능.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고,
현 시점에서 가장 라이벌에 가까웠다.
펑. 펑.
한설휘가 보름달을 향해 소각 능력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보름달의 성능을 의심하는 것 같은데.
‘보름달 가두기‘는 레볼루션의 간부인,
레드도 가뒀을 정도로 속박. 결계. 배리어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SS급의 능력이었다.
파직. 파지직.
류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방으로 전류를 흘려보내며,
내가 만든 보름달의 성능을 가늠했다.
그들은 속성 능력자인 만큼,
마나에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그래서 모를 리가 없었다.
보름달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양을.
보름달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질을.
의심이 전력을 다 해도 된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한설휘와 류진.
지금 이 자리에서 부족한 건 단 하나였다.
“팝콘이 있으면 좋겠는데.”
팝콘각이 떴는데,
팝콘이 없다.
화르륵!
파파팟!
한설휘의 등 뒤로 생겨나는 무수히 많은 화염구.
그에 맞춰, 류진의 머리 위로 생겨나는 창 모양의 번개.
속성에는 상성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두 사람의 상성은 누가 더 불리하거나 유리한 구도가 아니었다.
더 강한 쪽이 이긴다.
단순명료한 대결이었다.
결승전에 준하는.
어쩌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한 속성 능력자들의 대결에 관중석이 숨을 죽이고,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퍼어엉-!
콰지직-!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 공격을 감행하는 두 사람.
허공에서 전기와 불이 뒤엉켰다.
그리고 마치 파편처럼 사방으로 불줄기와 전기가 튀었다.
전기와 불의 공방전이 쉬지 않고 펼쳐졌다.
류진과 한설휘는 따지고 보면 마법사 계열이었기 때문에, 본체는 제 자리에서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오로지 마나와 능력을 사용하는데,
집중을 할 뿐.
하지만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류진은 단순한 속성 능력자가 아니었다.
“크하하!!”
지면을 박차고,
한설휘가 있는 쪽으로 달리는 류진.
류진의 능력은 속성 능력이었지만,
기질과 성격은 피에 목마른 전사였다.
류진은 복싱으로 따지면 인파이터였다.
그런 성질 때문인지, 근접전 맞춤 능력도 몇 가지가 있는 류진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불덩이를 전기로 차단하며, 한설휘 앞으로 다가간 류진. 전기로 감싼 주먹을 한설휘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한설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한 줄기의 벼락.
“염옥.”
한설휘를 에워싸는 불의 장막.
류진의 모든 공격을 상쇄시켰고,
오히려 주먹을 뻗은 류진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아뜨뜨..”
붉게 달아오른 손을 터는 류진.
“화끈하네!”
함박웃음을 지으며, 재차 주먹질을 하려는 류진. 이전보다 더 강한 전류가 류진의 손을 감쌌다.
“소각. 장작 태우기.”
그에 맞춰,
한설휘의 손에 화염이 생겨났다.
근접전에 응해주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류진의 주먹을 피하며 손을 통해 흘러나오는 화염포로 류진과 거리를 벌리는 한설휘.
“어이어이!!”
고함을 치며, 거리를 좁히려는 류진이었지만 경계선을 긋듯이 경기장 중간에 생겨난 불의 장막 때문에 움직임을 멈춘 류진.
만약 류진의 속성이 수(水)였다면, 무식하게 불의 장막을 뚫으려고 했겠지만 그의 속성은 뇌(雷). 쉽사리 불의 장막을 뚫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파이어 익스플로젼(Fire explosion)."
한설휘의 능력 중에는 ‘스킬 북’이라는 능력이 있었다. 현재 그녀의 스텟을 생각했을 때는 6~7서클 정도의 다양한 화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러한 화염 스킬로 일방적으로 류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그어놓은 불의 장막 때문에, 피하는데 급급한 류진.
용암이 폭발하듯 지면이 폭발했고,
사방에서 불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무리 류진이라고는 해도,
한설휘의 공격을 모두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류진은 한설휘의 공격을 막은 게 아니라,
전류로 튕겨낸 것이었다.
점점 류진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흠..”
역시 속성 능력자들 대결이라 그런지,
상당히 보는 맛이 있었다.
관중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고,
운영진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전을 하고 있었다.
“흐으음..”
나는 뭘 하고 있냐.
그냥 바닥에 앉아서 바둑판을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경기 양상의 우위를 따지고 있었다.
확실히 한설휘는 괴물이다.
실력에 비해 다소 부족하던 화력과 마나가 피닉스와 맺은 ‘불의 계약’. 그리고 만물상과 토레스 영감에게 받은 아이템으로 충분히 커버가 돼 보였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저 정도로 능력을 난사하면,
일반 능력자였다면 이미 마나 고갈이 됐을 터.
‘전혀 지친 기색이 없네.’
오히려 한설휘의 만들어내는 불의 농도가,
더 진해지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피닉스까지 등판을 한다?
아마도 한설휘가 마음만 먹으면 경기장뿐만 아니라, 도시의 절반 이상을 한순간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A+급. 피닉스가 더해지면 S급. 혹은 그 이상.’
한설휘를 보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흡족했다.
저런 여자를 처음에 떼어놓으려고 했다니.
나는 시선을 돌려 욕을 쉴 새 없이 내 뱉고 있는 류진을 쳐다봤다. 확실히 훌륭하고 뛰어난 재능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가 한설휘라 그런지,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한설휘가 피닉스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실력이 비등비등 했겠지만 지금은..
“음?”
나는 경기장 위쪽을 쳐다봤다. 경기장은 콜로세움 형 경기장이라, 천장이 뻥하니 뚫려 있었다. 분명 화창한 날씨였는데, 경기장 위쪽 하늘만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기괴한 날씨네. 라고 하기에는 먹구름에서 상당한 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저건 누군가의 능력이었고, 능력의 주인은 아무래도 류진 같은데.
‘마냥 피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건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한 것 치고는 좋았는데, 저건 아무래도 제 3자가 저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공격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시전한 ‘보름달 가두기‘를 캔슬 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생성한 보름달이 윗부분까지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름달 가두기를 캔슬하면, 내부에서 생성된 어마어마한 전류와 화기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하물며, 저런 광범위 스킬을 류진이 정확한 컨트롤로 한설휘만 적중시킬 수 있을까?
만약 이곳이 관중도 없고, 개활지였다면 내버려뒀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류진에게는 불합리하고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저건 나나 심판진 쪽에서 캔슬을..
“휘뚜루~마뚜루~”
어디서 나온 건지 화염 깃털을 휘날리며,
하늘로 비상을 하는 새 한 마리.
주먹만한 크기에서,
비상하면 할수록 크기가 커져갔다.
독수리처럼 몸집이 커진 새.
먹구름 앞에 도착하더니,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천둥이 칠 것처럼, 번쩍하던 먹구름이 새의 날갯짓에 날아가는 것처럼 사라졌다.
다시 화창해진 하늘.
지상에서 보니,
마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휘뚜루~”
피닉스를 소환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더니.
“마뚜루~”
정정당당하게 류진을 이기고 싶었던 모양.
류진의 회심의 일격이 수포로 돌아가고,
경기의 승패는 한설휘의 승리로 빠르게 결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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