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44화 (144/196)

144회

학교 대항전

“탈락 했어.”

강소라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나와 한설휘가 속한 A그룹과 마찬가지로 B그룹의 2차 예선전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치러졌다.

강소라는 1차 예선은 통과했지만,

변경된 2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예정대로 1:1 승부로 경기가 진행 됐으면,

대진표상 8강까지도 노려 볼만 했다고 생각 했는데.

‘운이 나빴네.’

나는 강소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를 했다.

강소라의 스텟은 내가 준 ‘공허의 수정’ 효과로 대폭 상승했다. C급 정도 되던 스텟이 A~B급이 됐고, A~B급 정도의 스텟은 학교 대항전에서 최상위권의 스텟이었다.

하지만 전투 능력과 센스는 여전히 C급에 머물러 있었다. 결정적으로 강소라는 한설휘가 피닉스를 꺼내지 않는 것처럼 바람의 최상급 정령인 진을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한설휘와 비슷한 이유였다.

나 역시 강소라의 생각에 찬성이었다. 지금 강소라가 바람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면 그 파장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복귀하면 강소라한테도 웅담을 나눠줘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앞 쪽을 쳐다봤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B그룹 경기장 내부에 설치 돼 있는 임시 치유소였다.

“멍청이냐, 진짜!!”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금석.

그런 그를 혼내 키고 있는 정시아.

그런 그들 옆에서 조용히 금석을 치료하고 있는 박아름.

“그냥 깃발만 뽑으면 통과인 걸 왜 4:1로 싸우냐고!!”

B그룹의 2차 예선은 A그룹과 비슷하게 파이 나눠먹기였다.

A그룹의 파이가 ‘총알 슬라임‘이었다면,

B그룹의 파이는 ‘깃발’이었다.

강소라한테 대충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정시아의 말처럼 금석은 깃발을 무시하고 같은 조의 학생들을 무턱대고 공격을 했다고 했다.

‘그럴 것 같더라.’

오전에 있었던 전라 노출 사건.

그 사건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분노로 승화시킨 게 분명했다.

“그래서 통과는 했어?”

나는 금석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강소라에게 물었다.

“응. 겨우. 같은 조 애들 세 명을 빈사 상태 만들어서 실격패 될 뻔 했는데, 박태산 교관님이 어떻게 수습을 했나봐. 근데 아직까지 안 오시는 걸 보니, 윗사람들한테 된통 깨지고 있을지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치유소 안을 둘러봤다.

없다.

금석을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

금석의 온 몸에는 가느다란 실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가느다란 상처가 가득 했는데 모두 한 여자의 작품이었다.

스즈란 학교의 유우리.

금석이 전력을 다 했다고 생각을 하진 않지만,

금석을 저렇게 만들 정도라니.

‘일본에서 나랑 싸웠을 때 보다 훨씬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네.’

“유우리는 다친 데 없..”

“서..성녀님!!”

“허얼!!”

“찐 성녀님이다!!”

“성녀님!!”

강소라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할 때,

치유소 밖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시끌벅적함의 중심에는 한 단어가 있었다.

‘성녀?’

대한민국에 성녀는 단 한명밖에 없었다. 헌터 협회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던, 바로 그 성녀. 채린의 억울한 누명을 푸는데, 크나큰 일조를 한 바로 그 성녀.

‘성녀가 왜? 이곳에?’

성녀가 치유 능력자 협회 소속이라는 걸 생각하면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 대항전이 열리는 장소 곳곳에 치유소가 설치 돼 있었고, 치유 능력자 협회 사람들이 지원 나와 있었으니까.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과장되게 말해서, 초등학생 운동회에 세계적으로 탑에 버금가는 치유 능력자가 등판한 셈이었다.

“..어?”

치유소의 입구 천막을 걷으며 내부로 들어온 성녀. 입구 바로 옆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진님?”

“안녕하세요.”

‘진짜 성녀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옷차림의 성녀.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는 전혀 수수하지 않았다.

단순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별칭이 ‘어머니’가 아니었다.

쿡쿡.

내 옆에서 금붕어처럼 성녀 얼굴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던 강소라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귀에 소곤거렸다.

“아는.. 사이야? 성녀님이랑?”

“모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헐..미친..이게 재벌의 인맥이란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성녀님, 뭐 찾으세요?”

강소라의 입을 밀어내며 성녀를 쳐다봤다.

중요한 걸 바닥에 떨어뜨린 것처럼,

계속 내 주변을 요리조리 살폈다.

“레이는..”

고개를 힘껏 옆으로 젖혀,

내 뒤쪽을 쳐다보는 성녀.

“여기 없나 봐요.”

“산책 갔어요.”

“아..”

표정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레이는 지금쯤 한설휘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을 터였다. 뚜뚜도 함께.

“근데 성녀님이 여기는 어떻게..?”

내 물음에 성녀의 시선이 천천히 한 곳을 향했다. 내 시선 역시 자연스레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박아름의 얼굴에 딱 시선을 고정 했을 때,

성녀가 내 팔목을 잡았다.

“레이 얼굴 보고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서진님?”

“아, 네. 뭐..”

‘뭐지?’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 친구랑 있는데, 여기 근처로 오라고 할게요.”

“정말요?! 근데 저 때문에 일부러..”

“어차피 근처에서 산책하고 있을 거라서 별 상관없을 거예요. 일단 나갈까요? 다들 성녀님을 쳐다보느라 치료에 에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치유 능력자와 부상자들이 전부 우리가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성녀의 등장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건, 박아름과 정시아. 그리고 금석이 유일했다.

“나는 애들이랑 있을게.”

강소라가 치유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성녀를 따라 치유소를 나가려다,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분명 박아름을 쳐다봤는데.’

신지수 말로는 박아름의 치유 능력이 상위 클래스라고 했으니, 미리 성녀 입장에서 유망주의 얼굴을 보러 온 걸까?

모르겠다.

박아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모니터링 요원 시절에 전혀 눈에 띄질 않아서 내가 아는 정보는 서진에게 빙의 후 알게 된 정보뿐이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성녀에게 호감작이나 쫌 해놔야지.’

성녀와 친분을 쌓아놓으면 여러모로 편했다.

말 그대로 여러모로.

나는 치유소를 나섰다.

+ + +

학교 대항전이 열리고 있는 세종대왕 헌터 학교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가 굉장히 많았다.

그 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나와 성녀.

“근처라고 했는데, 조금 늦네요.”

나는 앞에 보이는 작은 연못을 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어디에도 한설휘와 짐승의 털이 보이질 않았다.

“괜찮아요. 근데 서진님.”

“네.”

나는 굳이 그녀를 쳐다보질 않았다. 그녀의 온화하고 따스한 마나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비슷한 계열의 마나여서 그런지, 아니면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그런지 마나의 공명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실례가 될 수 있는데 여쭤보고 싶은 게..”

“물어보세요.”

“혹시나 서진님의 아픈 기억을 제가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게 아픈 기억이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크리티컬한 아픈 기억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나는 고개를 돌려 성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괜찮다는 신호였다.

내 신호에 입술을 옴짝달싹하는 성녀.

“악마를 직접..보셨잖아요?”

직접 보긴 했다.

학교 최강자 선발전 때,

악마의 씨앗을 먹은 반쪽짜리 악마를.

그 날 저승의 소녀의 농간 아닌 농간 때문에 위기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서시우와 앙금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에 나는 그 날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떠셨어요? 대답하기 힘드시면 대답 안 하셔도 돼요.”

성녀가 내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성녀의 나이는 이제 20대 중반이었고,

그녀는 태어나서 악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능력 특성상 본능적으로,

감지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곧,

악마들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걸.

‘무섭고, 두려운 건가?’

목소리의 떨림을 보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성녀라는 타이틀만 떼어놓으면 일반 20대 여성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분명 모니터로 성녀의 활약을 봤을 때는,

꽤나 강인한 여성이라 생각 했는데.

“별 거 없던데요?”

“네?”

“진짜로요. 생긴 것만 무섭게 생겼지,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못 믿으시겠어요?”

나는 무릎 위에 양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있는 성녀의 손에 살포시 내 손을 올렸다.

“확인 해봐요.”

“아..아니 괜찮..”

나는 성녀의 손을 살짝 움켜잡았다.

내 행동에 머뭇거리는 성녀.

그녀는 ‘진실의 거울’이라는 거짓말 탐지기 같은 능력이 있었고, 나는 사용하라는 듯이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어..어..?”

진실의 거울 능력을 사용한 것인지,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는 성녀.

나는 손을 떼며 씨익 웃었다.

“악마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어요.”

“그게 뭐예요?”

나는 말을 하며 멀리서 뛰어오는 두 마리의 짐승과 한 명의 여성을 쳐다봤다.

“인간이요.”

어쩌면 내 말을 공감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그녀는 내 말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될 게 분명했다.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이 얼마나 더 무서운지.

+ + +

1일차 예선전이 모두 끝이 나고,

본선이 시작되는 2일차가 찾아왔다.

A그룹과 B그룹에서 각각 15명의 진출자가 나왔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1명의 진출자가 각 그룹마다 추가적으로 선발 됐다.

결과적으로 각 그룹마다,

본선 인원은 16명이 됐다.

본선은 예선 1차전과 마찬가지로 1:1 대결 형식이었고, 본선에 이름을 올린 진출자들은 내가 한 번씩은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 학생들이 즐비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예선전처럼, 기권하는 사람들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본선 진출자가 가장 많이 속해 있는 팀은,

내가 속한 하늘팀이었다.

우리 팀은 강소라의 아쉬운 탈락이 있었지만, 네 명이 살아남았다.

두 번째로는 스즈란 학교의 노란팀이 세 명으로,

우리 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살아남았다.

나머지 팀은 많아야 두 명.

적게는 한 명.

혹은 한 명도 진출하지 못한 팀도 있었다.

나는 전광판에 보이는 팀별 점수 합계를 쳐다봤다.

우리 팀과 노란 팀이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고, 차인수가 속한 레드 팀은 차인수의 잠적 이후 순위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사실상 노란 팀과의 2파전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16강전은 아까 시작했다.

나야, 다른 생각을 한다고 가만히 있다고 치고.

나는 전광판에서 시선을 떼며, 앞에서 탐색하듯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는 분홍 팀 학생을 쳐다봤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처럼,

표정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뱀의 움직임.’

나는 정시아의 능력을 사용하며,

앞으로 대시를 했다.

굳이 달빛 능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내 신체 스텟은 A급이었고, 훈수 리스트에 있는 인원들의 능력만 사용해도 나는 충분히 학교 대항전에서 넘사벽급 능력자였다.

‘메두사.’

내 움직임이 너무 빠른 탓인지,

일직선으로 대시를 했음에도 내 움직임을 놓친 상대.

나는 상대의 코앞에 도착하자마자,

정시아의 스턴기를 사용했다.

내 손이 흐물흐물 해지는가 싶더니,

뱀으로 변했다.

“으..”

몸이 마네킹처럼 뻣뻣해진 상대.

나는 가볍게 손으로 툭하고 장외로 밀쳤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분홍 팀 입장에서는 대진 운이 너무 안 좋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16강전은 동시에 4개 조씩 경기가 치러졌고,

슬슬 다른 조도 승자와 패자가 나오고 있었다,

이미 B그룹의 16강전은 끝났다는 소식이 경기장 상단에 위치한 전광판에 작은 글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석과 정시아는 무난하게 8강에 진출했고.

“흠..”

나는 볼을 긁적이며 건너편을 쳐다봤다.

파팟!

화르륵!

저기가 문제다.

본래 대진표대로라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만나야 했지만, 어제 2차 예선 여파로 대진표가 꼬여버렸다.

그래서 16강전에 만나버렸다.

야마모토 류진과,

한설휘가.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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