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회
학교 대항전
꿀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깨고 말았다.
“차인수.”
엄청난 살기와 함께,
마나를 가감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안개의 숲이 능력을 차단하는 바람에,
차인수가 코앞까지 오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네가 여기 왜 있지?”
“왜? 여기 네가 전세 냈어?”
“....”
요정의 숲은 차인수에게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가뜩이나 싫어하는 내가 침범했으니,
녀석이 반길 리가 없었다.
내 말에 딱히 할 말이 없는지,
눈에서 레이저를 쏠 기세로 나를 노려보는 차인수.
“잠깐 볼 일 있어서 온 거니까,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갈 거야. 지금은 아니고 조금만 있다가.”
‘시간을 끌어야겠는데.’
차인수를 요정의 숲에 들여보내면,
강소라와 조우하게 된다.
지금 표정을 보면 상대가 나라서 저러고 있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바로 물어뜯을 기세였다.
“여기 존재에 대해 밖에 발설 안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가라. 지금 당장.”
“조금 있다가 나간다니까?”
“지금. 나가라.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지라고!!”
오는 길에 화통을 삶아 먹고 왔나.
목청이 쩌렁쩌렁하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나갈 생각이 없는데.
“싫다면?”
나는 위협을 줄 생각으로 차인수 쪽으로 한 발 다가섰다. 헌데, 별로 미동이 없었다.
‘홈그라운드라 이거네.’
요정의 숲에서의 차인수와,
아닐 때의 차인수의 능력 편차는 꽤 크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월광쇄도’를 사용하며,
단숨에 손닿으면 닿일 거리까지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정령을 소환하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정령을 소환하지 못하는 차인수는 기껏해야 C등급에서 D등급의 신체 조건을 가진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령 소환은 즉발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즉발이었다.
차인수 역시 내가 거리를 좁히는 순간,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 우리 사이를 개선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뭐?”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 없어? 지금은 알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너보다 얼마나 유명한지.”
조금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차인수는 나를 싫어해도 너무 싫어했다. 내 가슴을 양 팔로 밀치는 차인수.
“개소리 하지 마.”
“그래, 그럼.”
나는 차인수의 팔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뭐냐?”
“뭐긴. 나랑 여기서 놀자. 심심했거든.”
“이거 안 놔?”
“놓을 거면 잡았겠어?”
“이 새끼가 진짜!!”
아무리 흥분을 해봤자,
나는 놓을 생각이..
“....”
나는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도대체 언제 정령을 소환한 것인지,
땅의 하급 정령 두 마리가 내 발을 하나씩 잡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몇 마리가 바닥에서 튀어 나오더니,
내 몸에 달라붙었다.
“당장 이 자식 손을 내 손에서 떼어 내!”
차인수의 말에 땅의 하급 정령인 노움과 더불어,
땅에서 굵직한 나무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멀든.
땅의 중급 정령이었다.
가뜩이나 요정의 숲이라는 이점 때문에,
하급 정령의 힘이 중급 정령과 맞먹었는데.
중급 정령이라니.
가만 보니 이것들은 차인수가 소환한 게 아니었다. 굳이 소환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요정의 숲에 정령들이 있었으니까.
잠시 그 사실을 망각한,
내 실수였다.
‘달빛 제3초식. 달의 축복 2단계.’
부랴부랴 능력을 사용했지만,
이미 내 손은 땅의 정령으로 인해 차인수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시발..시발!”
욕을 내뱉으며 도주하듯,
요정의 숲으로 달려가는 차인수.
“..야단났네.”
차라리 마음먹고 나를 공격했으면 좋았으련만.
워낙 내 기에 짓눌린 탓인지,
회피를 선택했다.
나는 몸에 달라붙은 노움과, 내게 가지를 치고 있는 멀든을 떼어내며 요정의 숲을 쳐다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소라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어..?”
강소라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바닥에서 피어오른 아지랑이.
순식간에 회오리바람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강소라를 향해 날아오던 불덩이와 물방울을 캔슬시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회오리바람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샐러맨더가 날리고 있는 불덩이를 모조리 요정의 숲 밖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강소라도 영문을 몰랐다.
갑작스레 생성 된 회오리바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군이라는 점이었다.
6개의 회오리바람이 강소라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태풍의 눈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강소라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약하게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휘잉~
휘이이~
회오리바람 너머로 차인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바람 소리에 금방 샐러맨더의 불덩이와 함께 멀리 날아갔다.
강소라는 손을 들었다.
아무리 바람 정령사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돌풍에 가까운 바람은 해를 입었다.
하지만 왠지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뿐만 아니라 손을 갖다 대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었다.
회오리바람에 손을 갖다 댄 강소라.
“....”
이불 안에 손을 넣은 것처럼,
포근했다.
강아지가 손을 핥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강소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잔뜩 성이 난 차인수.
소환 하고 있는 물 속성과 불 속성 이외에 다른 속성의 정령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중급 이상의 정령들로만.
스으으.
갑자기 요정의 숲에 나타났던 회오리바람이 모두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어..어?”
당황한 강소라 옆으로 회오리바람 하나가 다시 나타났다.
사람 크기 정도로 몸집을 부풀리던 회오리바람.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낯선 하얀 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하얀 머리만큼이나 피부가 하얀 남자였는데, 복장이 꼭 하얀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것만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소라를 쳐다보는 하얀 남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잘생겼다.’
하얀 남자를 보고 처음 들은 생각이었다.
이 상황에서 감탄을 하다니.
‘이건 본능적인거야.’
라고 합리화했다.
“공격해! 공격 하라고!”
소환한 정령들에게 쉴 새 없이 주문을 하는 차인수.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차인수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정령들은 모두 하얀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아~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내 말 좀 저 인간에게 전해줄래?]
“바..바람이 말을..하네?”
눈을 동그랗게 뜬 강소라.
그녀는 자신이 소환하는 피피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피피가 바람으로 전하는 감정을 알 수 있었고,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설마..”
강소라의 시선이 하얀 남자를 향했다.
강소라의 시선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얀 남자.
다시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들리는 말.
[내가 네게 말하고 있어.]
“우..와아!!”
감탄을 하던 강소라.
“크흠..그..그래. 무슨 말을 전해주면 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는 도를 넘었다.]
“너는 도를 넘었다!”
[정령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 들다니.]
“정령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모잘, 죽이려고 들다니!!]
강소라를 쳐다보는 하얀 남자.
자신의 말을 강조해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와 함께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정령은 너의 도구가 아니며, 너에게는 정령을 함부로 다룰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얀 남자의 곁에서 거센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정령왕을 대신하여, 나 바람의 최상급 정령 ‘진’이 명령한다. 현 시간부로 너와 계약 된 모든 정령과의 계약을 파기한다. 또한, 너는 앞으로 어떠한 정령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차후에 정령과 계약을 맺고 싶다면 합당한 태도를 취하라. 우리는 항상 너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니.]
바람의 최상급 정령.
진의 말이 모두 끝났다.
그의 말을 모두 차인수에게 옮겨 말한 강소라.
“개..개소리 하지 마!! 네 까짓 게 뭔데!! 정령왕도 아닌 놈이!! 정령왕 나오라 그래! 정령왕 나오라 그러라고!!”
[너를 이곳에서 강제 추방한다.]
진은 단호했다.
진의 몸에서 흘러나온 돌풍이 단숨에 차인수를 감쌌다.
“이 씨발!! 감히 정령 주제에!! 너 이 새..”
차인수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질 않았다.
돌풍과 함께 요정의 숲 외곽이 아닌,
안개의 숲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소라.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차인수가 날아간 곳과 하얀 남자. 아니, 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바람의 최상급 정령, 진.
처음 본 것도 처음 본 거지만,
데이터도 거의 없었다.
세계적으로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사는 단 세 명이었다.
물,
불.
땅.
그래서 세 속성에 관련 한,
최상급 정령에 대한 데이터는 시중에 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바람의 최상급 정령에 대한 데이터는, 거의 전무했다. 오래 전 정령사 한 명이 소환할 수 있었다라는 데이터만 존재할 뿐, 이렇다 할 관련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차인수가 사라지고,
평화를 찾은 요정의 숲.
[만나고 싶었어. 소라.]
“..응? 네?”
[항상 널 지켜보고 있었거든.]
“..예?”
미소를 짓는 진.
[나는 너희 엄마의 정령이었어. 그 때는 내가 상급 정령이긴 했지만.]
“..예에에?”
[너희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지?]
“..네.”
당연히 몰랐다.
강소라의 어머니는 강소라를 낳고,
얼마 후 죽었으니까.
[이리와. 이곳이라면 조금 오래 머물 수 있으니까 옛날이야기 조금 해줄게.]
강소라의 손을 잡고 나무 앞으로 걸어가는 진.
바닥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부터 하면 좋을까. 그게 좋겠다. 내가 너희 엄마를 처음 만난 날.]
강소라가 몰랐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진.
그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고,
강소라는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와!”
때로는 추임새도 넣으면서.
강소라는 진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 + +
[나중에 혹시나 널 만나게 되면 너희 엄마에 대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진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붉게 눈이 충혈 되어 있는 강소라.
눈가를 스윽 닦으며 멀리 보이는 강물을 쳐다봤다.
아무도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는 정령의 정자도 듣기 싫어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없다는 것에,
어머니를 싫어했다.
하지만 서서히 궁금해졌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런데 오늘 궁금증이 풀렸다.
‘어머니는 대단. 아니 위대한 사람이었구나.’
단지 빛의 여왕인 세나처럼 세간에 알려진 활약상이 적어서 묻혔을 뿐, 어머니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틀림없다.
마침 강소라의 롤 모델 칸은 빈 칸이었다.
새로운 롤 모델로 자신의 어머니를 빈 칸에 채워 넣는 강소라.
“근데..나는 소질이 없는 걸..”
고개를 푹 숙였다.
어머니에 비하면 자신은 정령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웠다.
[너희 엄마에 비하면 아니지만.]
팩트 폭력을 하는 진.
[너는 소질이 있어.]
당근을 같이 내밀었다.
[정령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만큼은 너희 엄마 보다 네가 더 뛰어나.]
그것도 엄청 큰 당근을 내 밀었다.
“그럼 뭐해..피피만 소환해도 벅찬데.”
강소라가 엄청 큰 당근을 맛없다고 버리려고 했다.
[아니야, 소라야.]
맛있다며 다시 권하는 진.
[방금 여기 있던 인간이 왜 상급 정령밖에 소환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어? 마음이 너무 악해서 최상급 정령들이 정령 계약을 거부한 거야. 만약 정령 친화력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다면 아마도 중급 정령과도 계약을 맺지 못 했을 거야.]
이번에는 당근을 조리까지 해서 내밀었다.
“진짜?”
드디어 당근을 베어 문 강소라.
맛있는지 입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소라야.]
“응.”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응?”
계약이라니.
그것도 최상급 정령과.
그것도 이렇게 얼굴과 말투가 쏘스윗한 정령이라니!
강소라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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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어..어째서 아직 연재하지 않은 화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는거져?
ㅂㄷㅂ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