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40화 (140/196)

140회

학교 대항전

강소라는 난생 처음 ‘황홀’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게 됐다.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함.‘

딱 강소라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과 느낌이었다.

처음 서진이 안개의 숲으로 자신을 이끌었을 때,

반신반의 했다.

헌데 지금은 아니었다.

“서진아..나 어떡해..”

얼마나 좋은지,

눈물이 나려고만 했다.

숲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나무 앞에 앉아 있는 강소라. 그녀는 자신의 품에 올라타 있는 요정들과 정령들을 쳐다봤다.

“귀여워..귀여워어!!”

너무 귀엽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강소라는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요정과 정령을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강소라의 손길을 피했다.

강소라의 손길을 허락하는 건,

강소라가 소환한 바람의 하급 정령밖에 없었다.

사아아~

강소라의 정령인 피피가 머리를 강소라의 손에 갖다 댔다. 검지로 피피를 쓰다듬는 강소라.

“어어??”

입을 벌렸다.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는 바람의 중급정령인 ‘실라’ 몇 마리가 불과 10m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멋있다..”

실제로 처음 봤다.

검은 부리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하얀 털에서 느껴지는 고고함.

강소라가 레벨 업만 한다면,

하급 정령 다음으로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이 바로 저 실라였다.

평소 바람의 하급 정령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았는데.

떡하니 실라의 실물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후우!”

한 번 숨을 내 뱉은 강소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진은 이곳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이곳은 정령 에너지가 풍족했고,

정령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피피를 오래 소환하고 있어도,

마나가 마르지 않았다.

강소라의 마나는 정령 에너지를 기반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동안은 아마도 평생 피피를 소환하고 있어도 마나가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나 통을 늘려주진 않았다.

강소라의 마나가 10이라고 한다면 10에 정확하게 고정 돼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부르면 먹지 못하는 법이었다.

“음..”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나를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레벨 업을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이틀 후면, 주말이 끝나기 때문에 복귀를 해야 했다.

“어떡하지..”

생각의 미로에 갇힌 것처럼,

아무리 생각의 줄기를 뻗어도 제자리였다.

강소라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선 살기가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전혀 못 느꼈겠지만,

이 곳은 요정의 숲.

바람을 타고 살기가 고스란히 강소라에게 전해져 왔다.

“뭐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멀리서 한 남자가 정확하게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차..인수?”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얼굴의 차인수.

강소라를 보자마자 표정을 와락 구겼다.

“넌 또 뭐냐?”

“....”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차인수는 강소라의 롤 모델이었다.

같은 또래인데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재능.

강소라에게 있어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화장실 앞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저런 놈을 지금까지 자신의 롤 모델이라 생각했다니.

‘후회 돼.’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턱으로 안개의 숲이 있는 쪽을 가리키는 차인수.

“꺼져라.”

“싫은데?”

“말로 할 때 꺼지는 게 좋을 텐데. 내가 여자는 원래 안 때리는 주의인데, 오늘은 기분이 영 뭐 같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져.”

이건 남자와 여자간의 기싸움이 아니었다.

정령사와 정령사간의 기싸움이었고,

재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더라도 강소라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안 꺼져? 아이 씨발. 왜 이렇게 달라붙고 지랄이야?”

요정과 하급 정령들이 차인수에게 달라붙었다.

마치 파리 쫓듯이 요정과 정령을 내쫓는 차인수.

하지만 끊임없이 요정과 정령이 달라붙었다.

“아, 존나 짜증나네. 진짜. 샐러맨더. 나와라.”

아무리 이곳이 요정의 숲이라고 해도 그렇지.

차인수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불의 상급 정령을 소환해냈다. 3m 정도의 키에 불의 골렘 형상을 하고 있는 샐러맨더.

“싹 다 태워버려.”

[거..절..한..다.]

띄엄띄엄 샐러맨더가 말했다.

“거절? 도구 주제에 거절? 어디 이것도 거절해보시지. 강제 명령한다. 여기 있는 것들 다 태워버려. 지금, 당장.”

[으...으...]

샐러맨더가 괴로운 듯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강소라는 한 번도 강제 명령을 내려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제 명령이 가지고 있는 효력은 알고 있었다.

“야!! 그만 둬!!”

강소라가 소리쳤다.

하지만 차인수는 막무가내였다.

“강제 명령한다! 다 태워! 강제! 명령한다!!”

강제 명령은 마치 손오공에게 긴고아 주문을 외우는 것과 똑같았다. 아무리 상급 정령이라고 해도, 버티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화르륵.

이성을 잃어버린 샐러맨더.

양 손에 화염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안 돼. 얘들아! 전부 내에 있는 나무 뒤로 숨어!!”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불에 타 죽게 생겼다.

강소라는 다급하게 정령과 요정을 뒤에 있는 거대한 나무에 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차인수의 곁에 있는 정령이 몇 마리가 남아 있었다.

차인수의 정령 친화력이 너무 높은 탓에, 샐러맨더가 명백한 공격의사를 표출하고 있음에도 차인수의 정령 친화력에 묻히고 있었다.

“피피!”

강소라는 자신의 정령에게 말을 하며 차인수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정령은 강소라의 친구였고, 강소라는 친구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강소라의 이동에 힘을 실어주는 피피.

[그..오..오!!]

늦었다.

양 손을 좌우로 뻗으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샐러맨더.

“이리 와!”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보이는 정령이라도 살려볼 요량으로 품에 안고 납작하게 엎드렸다. 운이 좋으면 샐러맨더의 불꽃이 빗겨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강소라의 마음은 차분했다. 요정의 숲이라는 환경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아아.

눈을 꼭 감고 있을 때,

머리 위로 바람이 불었다.

피피가 부는 바람이었다.

머리를 든 강소라.

“슬..란?”

불의 상급 정령에 이어,

물의 상급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슬란.

소방수처럼 샐러맨더를 향해 물줄기를 퍼붓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요정의 숲을 감싸고 있는 강물을 끌어왔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차인수.

슬란 앞으로 걸어갔다.

“누가 허락도 없이 나오래? 누가 허락도 없이 이딴 짓 하래!!”

“..미안해. 그렇지만..”

“닥쳐!!”

짝!

차인수가 슬란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자신의 뺨을 감싸는 슬란.

“그래도 이건 아니야.. 샐러맨더가 괴로워하잖아.. 안 보여..?”

“내가 닥치라고 했지. 언제 떠들라고 했어? 어?!”

차인수가 슬란의 뺨을 한 대 더 때리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일어났는지, 다가온 강소라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놔.”

“적당히 해. 분노조절장애가 있으면 정신과를 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뭐?”

“애처럼 적당히 굴라고!!”

“..크..크흐..크하하하!!”

갑자기 중2병 돋은 것처럼 강소라에게 잡힌 반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차인수.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아..”

웃음을 뚝 멈춘 차인수.

“야. 손 치워.”

“안 때린다고 약속해.”

“..치우지마 그럼.”

“읍..”

강소라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린 차인수.

앞으로 숙여지는 강소라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여?”

“끄으..”

“말해 봐.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아..알아..”

“알아?”

“그..래.”

강소라의 턱을 놓는 차인수.

“말해 봐.”

“콜록..후우..”

복부를 맞아서 그런지 기침이 한 차례 한 강소라.

쉼 호흡을 하며 살짝 숙였던 상체를 들었다.

차인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강소라.

“여자 밝히는 개 쓰레기.”

“....”

직설적인 단어만 골라서 내 뱉었다.

눈썹만 살짝 꿈틀할 뿐, 별 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강소라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옛날에는 아니었잖아.”

“..내가 아까 말했지. 네가 뭘 안다고..”

“알아. 구역질나게도 한 때 내 롤 모델이 너였거든. 이름, 차인수. 나이 17세. 키 178cm. 몸무게 65kg. 취미는 만화책 보기. 좋아하는 만화는 나로토. 혈액형은 AB형.”

차인수는 롤 모델이자,

강소라의 아이돌이었다.

그래서 세세한 부분들까지 알고 있는 강소라였다.

“스토커냐?”

“10년 전에 어머니가 사고로 죽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을 곧바로 했잖아. 근데 안타깝게도 계모였지? 그때부터 극심한 애정결핍을 느끼기 시작했고, 삐뚤어지기 시작했잖아.”

“....”

“내 말 중에 틀린 거 있어? 말해 봐.”

이 정도 정보는 차인수 팬 카페의 회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였다.

차인수가 롤 모델이었던 이유는 재능인 탓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

그 부분에 강소라는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강제 명령.”

강소라 딴에는 차인수를 진정시킨다고 한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슬란. 샐러맨더. 당장 저 년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그리고 여기 있는 정령이고 요정이고. 싹 다 죽여 버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급발진 하는 차인수.

“야! 잠시 내 말 좀 들어 봐!”

“집어치워.”

“야..야!!”

강소라는 뒷걸음질 쳤다.

이성의 끊을 놓아버린 샐러맨더에 이어,

중재자로 나타났던 슬란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 돼버렸다.

샐러맨더는 슬란에게 막혔던 화염을 재장전하기 시작했고, 슬란은 입으로 여러 개의 물방울을 날렸다.

강소라에게 날아가는 물방울.

유도탄처럼 강소라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계속 강소라를 따라다녔다.

‘어떡하지..’

강소라의 머릿속에 요정의 숲 밖에 있을 서진이 떠올랐다. 어쩌면 서진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강소라는 물방울을 피해 서진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헌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전보다 더 큰 화염덩어리를 손에 만들어낸 샐러맨더.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멈춰!!”

강소라는 샐러맨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쩌면 내 말이 들릴지도 몰라.’

정령의 지능은 정령의 등급과 비례했다.

상급 정령의 지능은 인간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였고, 샐러맨더는 처음에 차인수의 명령을 거절했었다.

어쩌면.

샐러맨더의 의지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정신만 돌아오게 한다면?

아주 희박한 확률이었다.

하지만 강소라가 기댈 건 희박한 확률밖에 없었다.

투둑. 투둑.

팽이처럼 회전하는 샐러맨더.

몸에서 가는 불줄기가 튀는가 싶더니,

파이어볼 크기의 불덩이가 사방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꺄악!”

아슬아슬하게 전방으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한 강소라.

“고마워, 피피.”

피피가 최대출력으로 자신을 옆으로 밀지 않았으면, 불덩이에 맞을 뻔 했다.

“아아..”

사방이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요정의 숲이 전부 불바다가 되게 생겼다.

‘정신 차려. 분명 방법이..’

너무 신경 쓸 게 많았을까?

따라다니던 슬란의 물방울을 잠깐 깜빡하고 말았다.

뒤에는 슬란의 물방울이.

앞에는 샐러맨더의 불덩이가.

샌드위치가 되기 직전이었다.

‘난 너무 나약하구나.’

체념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갑자기 강소라를 중심으로 사방에 아지랑이가 거세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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