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39화 (139/196)

139회

학교 대항전

첸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죄책감은 꼬리표처럼 하루하루 첸을 옥죄었다.

인체 실험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필수불가결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실험 중간에 손을 떼기는 했지만, 첸은 하루하루가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서진에게 ‘레볼루션’에 대해 들었을 때.

죄책감은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닦을 수는 있었다.

‘내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했다.

-인체 실험 보고서.-

첸은 보고서가 필요했다.

보고서만 있으면 레볼루션을 막을 수 있었다.

자신이 행한 업보로,

무고한 사람들과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안 된다.’

설사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헌터 학교의 방학이 시작되고 첸은 계획을 짰다.

그리고 8월.

실행에 옮겼다.

웨스트 월드 외곽에 도착했고,

Z실험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신이 찾던 ‘인체 실험 보고서’와 각종 자료를 발견했다. 자료를 USB에 옮겨 담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첸은 초조했지만 기다렸다.

이곳은 버려진지 오래였고,

아무도 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첸은 긴장했다.

첸은 발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했다.

첸은 믿을 수 없었다.

“레..레드..”

분명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다.

사신 길드에서 서진의 손에 죽는 걸.

또한 자신의 손으로 레드의 본체를 박쥐에게 옮기지 않았던가.

헌데, 저 얼굴은 분명 레드였다.

첸은 책상 아래에 몸을 숨기고,

레드가 제발 그냥 가기를 바랐다.

레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니,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서진에게 알려줘야 했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증발하듯 갑자기 사라졌다.

분명 계단 올라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제 자리에 멈춰 섰다는 건데.

‘왜 안 움직이지?’

첸은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한 차례 바르며,

품에서 수류탄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들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돈을 탈탈 털어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전송기.’

꽤 대형 아이템까지 전송이 가능한 아이템이었고,

만약 자신이 잘못 되면 USB라도 전송할 생각이었다.

좌표는 자신의 집으로 찍어 놓았다.

집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만약 인체 실험에 대해 아는 누군가가 USB를 손에 넣는다면, 은폐를 시도할 수가 있었다. 인체 실험은 불법이었고, 정부에서 비밀리에 진행됐기에 충분히 은폐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세리나에게 미리 언질을 해놓았다.

만약, 어떤 아이템이 집으로 전송 되어 온다면 서진에게 주라고.

만약에 만약까지 모두 생각해놓았다.

첸은 깊은 숨을 한 차례 들이 마시고 책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설사 레드가 있다고 해도 계속 숨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찾았다!”

“....”

역시.

레드는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다.

단지, 위치가 예상보다 가까울 뿐.

첸은 몸을 일으켰다.

“너, 뭐야?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어라라?”

“레드.”

“내 이름을 알아? 나도 왠지 네 이름을 알 것 같은데. 기다려 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레드.

되살아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고상했던 분위기는 어디가고,

현재의 레드는 마치 어린 아이 같았다.

첸은 레드가 생감에 잠긴 사이,

힐끔 USB가 꽂혀 있는 본체를 쳐다봤다.

없다.

USB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레드의 품에 있다는 소리인데.

꿀꺽.

첸은 마른침을 한 차례 삼켰다.

첸은 S랭크의 능력자였다.

하지만 가진 능력 중 전투 능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과연 레드를 상대로 USB를 뺏어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모순의 축복.’

첸은 탈출은 포기했다.

어떻게 해서든 USB라도 건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버프를 걸었다.

스텟을 1분 동안 대폭 상승시켜주지만,

1년의 수명을 갉아먹는 말 그대로 모순 된 축복이었다.

‘모순의 축복.’

한 번 더.

‘모순의 축복.’

그리고 한 번 더.

3년의 목숨을 담보로 총 3번을 시전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첸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사용하고 싶었지만,

모순의 축복은 마나를 대량으로 잡아먹었다.

3번이 한계였다.

첸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회춘했다고나 할까.

고작 1분의 회춘이었지만,

1분이면 충분했다.

“기억났다! 너 연구원 아니었어? 맞지? 내 몸에 주사바늘 꼽던 놈 같은데. 맞지 맞지?”

“..USB는 어디 있나?”

“USB? 이거?”

호주머니에서 USB를 꺼내는 레드.

씨익 웃으며 자신의 혓바닥에 올려놨다.

꿀꺽.

“내 뱃속에. 왜?”

“....”

“내가 너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데, 그 표정은 뭐야? 섭섭해지려고 하네. 나는 아직도 너희가 내 몸에 주삿바늘 꼽던 게 생생하게 다 기억나는데, 너는 다 잊은 거야? 응? 왜 말이 없어?”

첸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뒤에서 지켜봤다.

첸은 경험상 기회는 딱 한 번.

레드가 방심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합!”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레드의 목을 향해 기합과 함께 손을 뻗는 첸. 그의 현재 민첩 스텟과 근력 스텟은 S랭크에 육박했다. 비록 스텟에 걸 맞는 전투 능력은 없었지만, 스텟만으로도 가공할 스피드와 파워를 뽐낼 수가 있었다.

닿았다.

자신의 손이 레드의 목에.

그 순간 첸은 한 손으로 사과를 쪼개는 것처럼 레드의 목을 움켜잡았다.

레드는 본체가 따로 있어,

아무리 육체를 훼손해도 재생을 했다.

그래서 첸은 레드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켜,

딜로스를 생성하려고 했다.

목의 반가량이 움푹 뜯겨나간 레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뭐해?”

“흐아압!!”

첸은 반대 손을 뻗었다.

“커헉..”

하지만 레드가 더 빨랐다.

발로 첸의 복부를 걷어 찬 레드.

하마터면 뒤로 밀려날 뻔 했다.

“뭐하냐고, 지금.”

레드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첸은 맹공을 퍼부었다.

한 마리의 성난 곰처럼 주먹을 거칠게 퍼부었다.

하지만 공격 패턴이 너무 단순해서인지,

유효타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버프로 스텟 보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한계가 너무 빨리 드러났다.

‘남은 시간은 고작 20초.’

레드는 아직까지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능력을 사용한다면 승산은 제로였다.

첸은 왼손에 쥐고 있는 아이템 전송기를 만지작거렸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운에 기대는 수밖에.’

첸은 아이템 전송기의 스위치를 켰다.

정확하게 10초 후.

아이템 전송기는 작동한다.

“아, 슬슬 짜증나네.”

레드의 몸에서 붉은 마나가 넘실 피어올랐다.

“그냥 죽어라.”

그 말과 동시에 첸은 레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레드를 끌어안았다.

레드의 마나가 송곳처럼 몸을 찔렀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레드의 배 속에 있는 USB를 옮기는 방법은.

체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템 전송기는 정상 작동 했다.

왜냐하면, 아이템 전송기는 반경 안에 있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모든 걸 전송했다. 그래서 전투용으로도 가끔 쓰였다.

아이템 전송기는 앞으로 2초 후.

전송 범위 내의 모든 걸 전송할 예정이었다.

“쿨럭.”

피를 토하는 첸.

바닥에 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낭자했다.

첸의 온 몸에 바늘처럼 작은 붉은 실이 관통해 있었다.

1초.

퍽!

갑자기 레드가 능력을 회수하며 첸의 복부를 거세게 걷어찼다.

“어디서 개 수작질이야?”

벽에 처박히는 첸.

삐이이-!

아이템 전송기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첸을 집어삼켰다.

“많이 급했나 보네? 킥킥.”

앞으로 걸어가는 레드.

쪼그려 앉았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 + +

신지수는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힘겹게 광주를 갔더니,

박태산이 만나주질 않았다.

바쁘다나, 뭐라나.

박태산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바쁘다면 진짜 바쁜 거였다.

그래도 말이라도 예쁘게 했으면 좋았을 걸.

박태산에게 퇴짜를 맞은 후,

신지수는 혼자서라도 광주 관광을 하려고 했다.

‘어떻게 왔는데.’

러시아워를 뚫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너무 억울했다.

헌데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자신의 스승인 첸의 연락이 왔다.

‘리나 좀 맡아줄 수 있겠느냐?’

세리나가 요즘 몸이 자주 아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부산으로 달려간 신지수.

“여행 좀 다녀오마.”

“....”

세리나를 맡기고, 여행을 가버렸다.

신지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박태산에게 퇴짜 맞고,

첸은 여행을 가버리고,

자신은 세리나의 보모 역할을 떠안게 됐다.

황금 같은 방학에.

그것도 꽃 같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후우..”

첸이 여행을 떠난 후,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신지수는 잠들어 있는 세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세리나는 몸이 극심하게 아팠다.

첸에게 듣기로는 능력을 각성하기 전,

성장통이라고는 하는데.

너무 짠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보면,

곧바로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다.

“오늘도 읽고 씹었네? 박태산 멋지네?”

공허의 던전이 진화를 했다는 뉴스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별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람이 걱정을 해줬으면 최소한 답장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냐고!”

“으음..”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입을 다문 신지수.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스승님은 언제 오는 거야?’

분명 금방 온다고 했는데,

2주가 되도록 안 오다니.

이러다 방학을 세리나 간호만 하다가 다 보내게 생겼다.

“교관님..”“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아무래도 자신이 아까 소리 지른 것 때문에 깼나보다.

눈을 비비며 눈을 뜬 세리나.

“저 혼자 있을 수 있어요. 가셔도 되요.”

“또 또 그 소리. 내가 좋아서 있는 거라니까?”

“그래도..”

“배 안 고파?”

“네. 아직은..”

세리나는 박태산네 반이었다. 그래서 봄에 첸의 시골집에 같이 갔을 때 빼고는 거의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이 친해졌다.

세리나는 자신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박아름과 공통점이 많은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고 말 수가 적었다.

그리고 착했다.

박아름과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지 신지수는 세리나에게 정감이 갔다.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

정감은 쌓 을만큼 충분히 쌓았다.

신지수는 첸이 오면 곧바로 갈 생각이었다.

“애들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네.”

“지금 전체 순위 2위라고 하더라.”

“우와! 진짜요?”

“응.”

신지수 생각에는 한 단계 낮은 순위였다.

분명히 1등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서진이 있는 이상,

무조건 1등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저 물 좀..”

“누워있어. 내가 갖다 줄게.”

“아니에요. 저 오늘은 괜찮아요.”

자리에서 일어난 세리나.

주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너무 자주 아파서 그런지,

세리나는 입학 했을 때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내일은 죽이라도 해서 먹어야겠네.”

신지수가 핸드폰을 바닥에서 주워 죽 레시피를 보고있을 때.

“꺄아악!!”

세리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간 신지수.

“왜! 무슨 일이야!”

세리나는 첸의 방 앞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표정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교..교..교관님..”

말을 더듬거리는 세리나.

신지수는 세리나를 일으켜 세우면서 첸의 방을 쳐다봤다.

“스..승님?”

왼 팔과 왼 다리가 절단 돼 있는 첸이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남아있는 그의 몸 역시 성치 않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

“스승님!!”

신지수는 첸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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