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38화 (138/196)

138회

학교 대항전

"우와. 서진아!“

강소라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여기가 맞는 거, 확실하지?!”

“맞다고 지금 한 99번은 말한 것 같은데.”

“우와!”

강소라가 이러는 이유는 눈앞에 보이는 안개와 안개 너머에 있는 숲 때문이었다.

하리부가 있는 곰 왕국처럼,

피닉스가 있는 한라산 백록담처럼.

안개 숲은 광주시 북쪽에 있는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A급의 출입금지 구역이라,

평소에는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학교 대항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경계 인원이 다소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끄으으..”

기절시킨 경비원 중 한 명이 깨어나려고 했다.

“어떡할래? 갈 거야 말 거야? 네가 선택해.”

“아..”

나는 딱히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한설휘는 한라산의 피닉스를 만나면 무조건 레벨 업을 할 수 있었고, 금석은 울릉도의 박진을 만나면 무조건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무조건.

근데 지금은 나도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강요하자니, 말에 확신이 생기질 않았다.

“아!!”

머리를 싸매는 강소라.

고민이 깊어 보였다.

불법을 저지르자는데,

고민을 안 하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헌데,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치이익.

[진성. 야, 박진성! 왜 대답이 없어!]

쓰러진 경비병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음성.

“가자!”

강소라가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나를 이끈 방향은,

“어떻게든 되겠지!”

안개 숲 쪽이었다.

숲에 발을 딛는 순간, 차가운 한기와 함께 시야가 극히 좁아졌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만 떨어져도 바로 옆 사람을 놓칠 정도였다.

“내 손 놓치지마.”

이미 강소라에게 안개 숲에서 주의할 점을 알려줬다.

“으..응..”

하지만 듣는 것과,

실전은 엄연히 하늘과 땅 차이라는 갭이 존재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강소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안개 숲에는 따로 몬스터가 존재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 숲이 A급 금지구역인 이유는 시야 차단과 함께 안개가 능력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B급 이하 능력자는,

안개 숲에서 무능력자와 똑같았다.

만약 안개 숲에 몬스터라도 있었으면,

S급 금지구역이 됐을 터였다.

‘음..’

나도 목적지로 가는 게 쉽지가 않았다.

현재 내가 의지하고 있는 능력은 오로지 금석의 ‘야수의 본능’이었다.

본능에 이끌려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의 숲 입구에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불과 1km였다.

내 무게 중심이.

방향감각이 도중에 흐트러지지만 않는다면 시야와 능력이 차단 됐다 하더라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다.

“서진아.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체감 상 꽤 시간이 흘렀을 때,

강소라가 물었다.

“음..”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

나는 강소라의 손을 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내 손을 더 강하게 잡는 강소라.

“왜..왜? 어디 가려고?”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봐야겠어.”

“어떻게?”

“상공으로 가면 안개의 숲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미로에 갇혔을 때, 위에서 보는 것만큼 치트키가 없는 거 알고 있지?”

“그래도 나 혼자 있으면 무서운데.. 혹시나 너 다른데 착지하면 어떡해?”

“자.”

나는 강소라에게 가느다란 실 뭉치를 내 밀었다.

더듬거리며 내 손에 있는 실 뭉치를 가져가는 강소라.

“이게 뭐야?”

“실. 몸에 한 번 감아.”

“잠시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감았어.”

“실 뭉치 나한테 줘.”

“여기.”

나는 실 뭉치를 받아 들었다.

실 뭉치는 강소라에게 연결 돼 있었고,

실 뭉치는 1자로 풀었을 때 10km나 되는 특제 실 뭉치였다. 여기 오기 전에 포인트 상점에서 혹시 몰라, 500p주고 구입했다.

“이제 안심 되지?”

“응..조금.”

“금방 갔다 올게.”

실 뭉치를 풀리게끔 느슨하게 손에 쥐고,

플라이를 시전 했다.

어느 정도 날아오르자 안개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맑은 하늘이 나왔다.

“음.”

우리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자,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실을 이정표 삼아 지상에 발을 디뎠을 때.

“도착했잖아?”

도착해 있었다.

내가 원하던 목적지에.

“여기 어떻게 찾았어?”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강소라에게 말했다.

실을 따라왔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건,

강소라가 이곳으로 이동을 했다는 뜻이었다.

실과 강소라는 연결 돼 있었으니까.

“아니 그게..피피가..”

강소라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전방을 계속 응시했다.

나 역시 강소라가 보고 있는 전방을 쳐다봤다.

안개의 숲 중간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진짜 안개의 숲이 숨어 있었다.

나는 이 숲을 요정의 숲이라고 불렀다.

둥글게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강물은 작은 숲 하나를 감싸고 있었다.

숲의 푸름은 숲 밖의 푸름 보다 더 진했고,

푸름 속을 사람 손바닥만 한, 요정들이 날아다녔다.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만 보기에만은 아까운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은 장면이었다.

“피피가..나를 이 곳으로 끌고 왔어.”

“피피?”

“으응.. 내 정령 이름이야.”

바람의 하급 정령이 약한 바람을 일으키며 강소라의 손을 계속 잡아당겼다. 숲이 있는 곳으로.

정령과 요정.

옆 집 친구나 다름없었다.

숲을 자세히 보면 요정들 틈에 여러 속성의 하급 정령들이 섞여 있었다.

이 곳은 조금 억지를 써서 말하자면,

현세에 존재하는 정령계. 혹은 요정계였다.

정령 친화력이 아예 없는 사람도 이곳에 있으면 친화력이 올라갈 정도로 이곳은 정령사에게 꿈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차인수가 정령의 싹을 만개한 곳이기도 했다.

“서진아! 빨리 와!”

강소라가 피피의 바람을 타고 강물을 건너가며 손짓했다.

“내가 말한다는 걸 깜빡했는데.”

“응?”

“나는 거기 못 들어가.”

“응? 왜?”

“나는 정령 친화력이 없거든.”

말 보다는 행동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서,

플라이를 시전 해 강물을 건너려는 시늉을 했다.

촤아악!

촤아아!

강물이 거세게 위로 솟구쳤다.

내가 몸을 뒤로 빼자 서서히 잦아드는 강물.

“봤지? 나 여기 있을 테니까, 건너 가.”

“그래도..”

“신경 쓰지 마.”

숙소에서 쉬나,

여기서 쉬나 나한테는 매 한가지였다.

어쩌면 애들이 귀찮게 안 하니,

여기가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킁킁.”

레이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정의 숲 외곽 지역인데도 숲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냄새가 몸을 정화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요정의 숲에 들어가서도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강소라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과연 강소라가 저곳에서 레벨 업을 할 수 있을지.

“에고.”

나는 바닥에 깔려 있는 잔디밭에 누웠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코앞에 안개의 숲이 있었다.

그래서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안개를 보는 것보다,

요정과 정령이 놀고 있는 숲을 보는 게 눈이 즐거우니까.

“하아암.”

환경 탓인지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나는 늘 날이 바짝 서 있었는데,

이곳에는 아무런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안개가 암막커튼처럼,

외부와 나를 단절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

+ + +

웨스트 월드 외곽.

“껄껄.”

한 남자가 거의 허물어져가는 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끼익. 끼이익.

‘마리아‘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흔들렸다.

“태문이 말 대로구만.”

인체 실험에 대한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남쪽의 Z실험실이라고 했던가.”

남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향했다.

+ + +

"이 곳인가.“

별 특색이 없는 하얀 건물 앞에 선 남자.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한 눈에 하얀 건물이 실험실 건물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Z'

남자의 눈에는 보였다.

하얀 건물의 외벽에 간혹 있는 검은 벽돌이 암시하는 알파벳이. 애초에 이렇게 하자고 제안한 게 자기 자신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흐음..”

하얀 건물에 들어가기 전,

주변을 한 번 둘러 본 남자.

먼지투성이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뚜벅뚜벅.

어두컴컴한 복도를 가로질러,

지하실로 곧장 향하는 남자.

품에서 손전등을 꺼내,

앞을 비췄다.

지하는 총 4층까지 있었는데, 남자는 지하1층부터 무엇을 찾는 것인지 꼼꼼하게 훑으며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갔다.

“순신이가 거짓말 한 건 아닐 테고.”

3층을 훑고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하 4층.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유리벽이 두 방을 막고 있었다.

남자는 우선 오른쪽 방으로 들어갔다.

병원이었던 곳인지,

수술대가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각종 수술 도구가 구석 한 켠에 위치해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살펴보는 남자.

“흐으음.”

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히는가 싶더니,

옆방으로 건너갔다.

왼쪽 방은 여러 대의 컴퓨터와 각종 수납공간이 많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 전기가 들어올 리 만무했지만,

이상하게 컴퓨터 한 대에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며 컴퓨터 모니터를 키는 남자.

-관찰 보고서 542일차-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보고서 하나가 나타났다.

“이건..”

보고서를 쭉 훑어본 남자.

다급하게 커서를 클릭하며, 보고서 외에 뭐가 있는지 컴퓨터를 살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인체 실험에 대한 많은 양의 데이터가 저장 돼 있었다.

남자는 품에서 USB를 꺼냈다.

‘30분?’

컴퓨터에 있는 모든 정보를 USB에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컴퓨터가 구식이고 연결이 불완전하다보니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남자는 혹시 몰라, USB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이 눈에 보이는 서랍을 들추기 시작했다. 딱히 이렇다 할 게 없었다.

‘그래도 저것만 해도..’

남자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10분에서 9분으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쥐라고 추측했다.

왜냐하면 이곳에 올 사람이..

뚜벅. 뚜벅.

황급히 주변을 살피는 남자.

눈앞에 보이는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발소리가 분명했다.

도대체 이곳에 누가 온 단 말인가?

남자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멀어졌다.

아마도 건너편 방에 들어간 듯싶었다.

슬쩍 옆으로 고개를 내민 남자.

건너편 방에 있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경악을 했다. 혹시나 들킬세라 다시 책상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은 남자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어떻게 살아 있을 수가 있지?’

분명히 죽었는데.

분명히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건너편 방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품에 있는 딱딱한 물건을 꺼내, 손에 쥐었다.

뚜벅.

점점 가까워졌다.

뚜벅.

더 가까워졌다.

뚜벅.

이제는 코앞까지 왔다.

“응? 뭐야? 내가 컴퓨터를 키고 나갔었나?”

탁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려왔다.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남자는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세게 움켜잡았다.

뚜벅. 뚜벅.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발소리.

헌데,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뭐..뭐지?’

남자는 의아했다.

발소리가 멀어지다니.

분명 USB의 존재를 확인 했을 텐데.

뚝.

멀어져 가던 발소리가 갑자기 안 들렸다.

남자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간 건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는 분명 못 들었다.

하지만 혹시나 진짜로 간 게 아닐까?

이렇게 계속 책상 안에 숨어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개를 살짝 밖으로 내민 남자.

“찾았다!”

기괴하게 웃고 있는 남자가 자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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