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회
학교 대항전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기.’
만월검을 꺼내, 정확하게 알자하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양궁이라고 친다면,
내 정확도는 10점이었다.
사아아!
공기를 가르는 반월 모양의 달빛.
알자하의 목에 명중했지만, 아쉽게도 알자하의 양 팔에 막히고 말았다.
역시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라 그런지 반응속도가 훌륭했다.
“뭐냐!!”
“이..이 새끼가 어딜 새치기하려고!”
“서지나!”
내 등장에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 쪽을 봐라. 두 얼간이들아. 너희들이 말씨름 하는 동안 너희 팀원들이랑 촬영 팀 죽어가는 거 안 보여?”
내 말에 동시에 뒤를 돌아본 류진과 차인수.
이제야 확인한 듯,
부랴부랴 능력을 사용했다.
“뇌전(雷電)!”
류진의 손을 타고 여러 가닥의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노엔!”
차인수의 부름에 알자하가 서 있는 땅이 꿈틀거렸다.
“하아압!”
두 사람의 공격에 순간 알자하가 휘청였고,
유우리가 전광석화처럼 알자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만약 우리 팀이었다면,
훌륭한 협공이라고 박수를 쳐주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팀이 아니었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2단계.’
나는 이 자리에 밥을 떠 먹여주러 온 게 아니라,
밥을 크게 떠 먹으로 왔다.
달의 축복을 1단계 끌어올리면서 알자하를 향해 대시했다.
‘뱀의 움직임’
거기다가 조금 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정시아의 이동 능력도 사용 했다.
유우리 보다 반 박자 빠르게 알자하 앞에 당도한 나.
‘달빛 제 7초식. 달의 광휘.’
빛의 속도로 알자의 몸을 연타했다.
유우리가 검을 뻗었을 때는 이미,
알자하의 몸이 바닥을 향해 축 쳐지는 순간이었다.
“서지나! 너무해!”
유우리가 볼 멘 소리를 냈다.
“감히 막타를! 죽여 버린다!”
“이 새끼가..”
류진이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차인수는 욕만 할 뿐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직 내가 뿌린 약이 약효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류진의 주먹을 옆으로 흘리며 말했다.
“빨리 너희 팀들 데리고 던전을 빠져 나가.”
일반 던전 같은 경우,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끝이었다.
하지만 리젠 던전은 달랐다.
특히나 ‘공허의 던전’의 리젠 시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네 개의 던전을 계속해서 클리어하고 있었지만,
공허의 던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내부를 모두 원상복구 시켰다.
즉, 리젠 시간이 하루도 안 걸린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4개의 던전이 하나로 합쳐졌으니.
두두두!
구우우!
벌써부터 리젠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쓰러진 알자하의 몸에 상처가 연기와 함께 사라졌고,
부스러기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이 퍼즐조각처럼 제 위치를 찾아갔다.
“빨리!”
리젠에 휩쓸리게 되면 나조차도 여기 있는 인원들을 전부 구할 수 없었다. 던전의 변화를 세 사람도 느꼈는지 곧장 자신들의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리 팀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왔던 길을 달려갔다.
+ + +
“와!!”
“나이스!!”
공허의 던전 외곽.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촬영 팀의 카메라가 송출하는 화면에는 긍정적인 던전 내부 상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스 몬스터가 죽자마자,
다시금 던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빠져나오고 있어요!”
“레드팀, 노란팀. 하늘팀, 보라팀. 전부 다요!”
모든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던전 입구를 쳐다봤다.
태생이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직업이 달라도,
출신이 달라도,
사람들이 대동단결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죽느냐 사느냐하는 긴박한 순간일 때.
악마가 아니라면 누구나 응원을 하고 기도를 하게 돼 있었다.
“제발..제발..”
“화이팅!”
여기저기서 들리는 응원의 목소리.
응원과 기도가 닿은 것일까?
멍멍!
크르르!
한 마리의 대형견과,
한 마리의 늑대가 등에 사람들을 업고 던전을 빠져 나왔다.
뒤이어 하늘 팀이 빠져 나왔고,
곧바로 보라 팀이 빠져 나왔다.
1분 후.
노란 팀과 레드 팀 역시 던전을 빠져 나왔다.
“와아아!!”
“와아아아아!!”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용사가 따로 있을까?
사람들의 환호성이 관중석을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얘들아!”
곧장 하늘 팀을 향해 뛰어가는 강소라.
그녀보다 박태산이 더 빨랐다.
묵직한 몸과 달리 그의 움직임은 총알과도 같았다.
아무 말 없이 네 학생의 몸을 끌어안는 박태산.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네 명의 학생은 느꼈다.
박태산이 자신들을 얼마나 걱정 했는지.
왜냐하면 박태산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뒤 늦게 이상함을 눈치 챈 박태산.
아이들을 품에서 놓았다.
‘네 명? 다섯 명이 아니라?’
분명히 다섯 명이어야 하는데.
이건 유치원생도 알만한 산수였다.
다섯 명이 들어갔으니,
나오는 사람도 당연히 다섯 명이어야 했다.
‘설휘, 시아. 금석, 아름이.’
“....”
없다.
서진이.
혹시나 해서 다른 팀의 인원을 확인하고,
던전 안을 쳐다봤다.
어디에도 없다.
서진이.
‘설마..자신을 희생해서..’
박태산이 생각하는 서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학생이었다. 서진은 충분히 남을 위해 희생을 하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서진..서진!! 서진아!!”
장내가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는 박태산. 당장이라도 던전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던전 앞으로 걸어갔다.
“교관님! 진정하세요!”
“교관님!”
“금방 나올 거예요! 잠깐 볼 일 보고 나온 대요! 교관님! 컴다운 컴다운!”
학생들이 박태산을 만류하고 있을 시각.
서진은.
“오오!! 이런 게 있었네!”
던전을 탈출하는 도중 발견한 샛길에서 S급에 준하는 아이템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 + +
“온 몸이 다 뻐근하네.”
“그러게. 오늘 특별히 뭐 한 것도 없는데.”
“근데, 서진아 그거 뭐야?”
“이거?”
나는 식탁위로 데굴데굴 굴리던 검은색 수정을 집어 들었다.
공허의 던전에서 운 좋게 획득한 S급 아이템이었다.
‘공허의 수정’
등급이 S급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사용 방법이나 효과를 몰랐다.
그래서 포인트 상점의 ‘정보 방’에서 검색을 해봤다.
-공허의 수정
등급: S급.
사용 방법: 양 손을 가져다 대고 흡수를 하면 된다.
사용 효과: 다량의 생명력과 다량의 스텟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설명: 공허의 던전이 끊임없이 리젠하는 동안, 유일하게 리젠하지 않은 아이템. 공허충이 흡수한 에너지를 다량 품고 있다.
요약하면 공허의 수정은 꿀벌이 모아 놓은 꿀 같은 아이템이었다. 치료 아이템으로도 쓸 수가 있었고, 단순히 스텟 경험치를 얻는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무려 S급 아이템이니 만큼,
어느 쪽으로든 효과가 굉장할 게 분명했다.
“오다가 예뻐서 주웠어.”
“나 주면 안 돼?”
정시아가 손을 내밀었다.
큰 일 날 소리를 한다.
나는 그녀가 더 탐하기 전에,
호주머니에 ‘공허의 수정‘을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쓰고 싶었지만,
치유 효과가 붙어 있어서 일단은 아껴둘 생각이었다.
“교관님 왜 이렇게 안 오시지?”
“빨리 들어가서 눕고 싶다.”
“동감.”
우리는 현재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 모여 있었다. 밥을 다 먹은지는 오래였지만, 박태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주최 측과 인솔 교관들 간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내 예상대로였다.
과연 내 예상대로 평가 기준이 정해질지.
아니면 다른 평가 기준으로 평가를 할지.
어떤 쪽이든 우리 팀은 후한 점수를 받지 않을까?
한참 우리들끼리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박태산이 식당에 들어섰다.
이순신 교장도 함께였다.
“여~제군들! 오늘 고생 많았다!”
이순신 교장이 우리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였다.
“자, 그럼. 태산아 네가 말 할래, 내가 말 할까?”
“..제가 하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무척이나 유감..이라고 한다.”
말을 하는 박태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도 안 죽어서 다행이지,
누가 죽기라도 했으면 유감으로 끝날 일이 전혀 아니었다.
“공식 사과 방송과 전체적인 입장 발표는 내일 있을 예정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내일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함구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들, 알겠지?”
“네.”
“넵.”
“우선 던전에 들어갔던 모든 학생들에게 광주시를 비롯해, 헌터 협회에서 상장을 내릴 예정이다. 이 상장은 너희가 어떤 길드를 가던지 가산점으로 작용할거다.”
“오~”
“오오~”
“그리고..”
뜸을 들이는 걸 보니 오늘 있었던 경기 평가에 대한 말을 할 것 같았고, 내 예상이 맞았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효처리 됐다.”
“에에?”
“네에?
“그렇게 됐다. 오늘 있었던 팀 전원이 무효 처리됨에 따라, 다른 16개 팀들 역시 무효 처리가 됐다. 오늘 있었던 일은 사고였으니까, 다른 팀들은 물론이고 너희들도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우리를 한 명, 한 명 쳐다보는 박태산.
“너희들이 전원 무사하다는 거다. 질문 있나?”
여학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러면 다들 올라가서 쉬어라. 오늘 정말로.. 고생 많았다. 내일부터 주말이니 다들 푹 쉬도록 해라.”
저런저런.
무효라니.
김이 팍 새는 결과였다.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액션을 과하게 취한 게 아닌데.
‘그래도 얻은 게 있으니.’
어쩌면 승점보다 값진 걸 얻었으니,
나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A급도 아니고 S급 아이템을 획득했으니.
‘이제 슬슬 차인수에게 본격적으로 접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자를 까딱거리며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
강소라가 내 앞에 앉았다.
“간 거 아니었어?”
다 자기네들 방으로 흩어졌다.
혼자 생각에 전념하고 싶어서, 레이도 금석 품에 안겨 보냈다.
근데 강소라가 가던 걸음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아니, 그냥..”
‘표정이 그냥인 표정이 아닌데?‘
“무슨 일 있어?”
강소라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라는 단어가 얼굴에 도배 돼 있었다. 강소라를 볼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게..서진아 목 안 말라? 마실 거 사다줄까?”
뭔가 말하는 뉘앙스가 부탁할 게 있어보였다.
“딱히? 무슨 일인데?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들어줄게.”
“지..진짜?”
순간 밝아졌다가,
다시 시무룩해지는 강소라의 표정.
“괜히 귀찮으면 어떻게 하나 싶고.. 어려운 부탁이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내가 판단할 테니까 말해 봐.”
“음..그게.. 나 여자애들이랑 같은 방 쓰고 있잖아.”
“응.”
“그래서 설휘랑 시아가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무슨 얘기?”
“네가 조언해 준대로 하니까 확실히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괜찮으면 나한테도 조언을 해주면 안 될까? 아..아니, 귀찮으면 안 해줘도 돼. 나 괜찮아! 진짜로!”
이건 귀찮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설휘와 정시아.
두 사람은 내가 저승의 모니터링 요원으로 있을 때,
한 번씩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능력도 알고,
성격도 알고 있어서 조언을 맞춤으로 해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내가 조언을 해주기 이전부터 최상급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에게 약간의 추진력을 심어줬을 뿐이고.
‘헌데 강소라는..’
바람의 하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 능력자라는 걸 제외하면 아는 게 거의 전무했다. 이번에 학교 대항전을 함께하면서 성격이 밝고 명랑한 건 알겠다.
근데 그게 끝이었다.
현실적으로 내가 강소라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흔해빠진 조언밖에 없었다.
말은 괜찮다면서,
눈빛이 아주 기대에 차 있었다.
“....”
내가 한참을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강소라.
“오늘 내가 한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줘! 미안! 괜히 시간 뺏었다! 나 먼저 올라갈게!”
“소라야.”
“응?”
헐레벌떡 뛰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강소라.
“내일 뭐해?”
“내일? 주말이잖아. 딱히 뭐 없는데?”
“그럼 나랑 내일 어디 좀 같이 가자. 확실하지는 않은데 너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지..진짜?!”
“응.”
“고..고마워..진짜..”
“확실하지 않다니까.”
“그래도..”
“확실하면 그때 고마워 해.”
“응! 내일 봐!”
차인수가 역대급 정령에 관한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이유.
확실히 차인수가 괴물과도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괴물이 된 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었다. 과연 그 요소가 강소라에게도 먹힐지.
“모르겠네.”
모든 건 내일 강소라가 하기 나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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