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회
학교 대항전
40층.
이미 전생의 기록은 뛰어 넘은지 오래였다.
“레이, 이제 조금 쉬어.”
크릉.
슬슬 레이의 달빛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지친 기색이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레이를 이렇게까지 활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본인이 싸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버려뒀지만,
이 이상은 무리였다.
50층.
탑의 꼭대기 층이었다.
본래라면 꼭대기 층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차인수의 눈빛을 보니 기를 쓰고 나를 이기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차인수가 전력을 다한다고 생각 했을 때,
탑을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40층? 41층?
‘안전하게 45층까지는 클리어 해야겠는데?’
나는 눈앞에 생성되는 무수히 많은 설인과 공허하던 공간에 갑작스레 불어 닥치는 눈보라를 여유롭게 관전했다.
꺄아아!!
설인 뒤로 등장한 수룡(水龍).
이번 스테이지의 보스 몬스터였다.
나는 내구성이 거의 다 된 만월검을 꺼내들었다.
제로를 만난 후, 만월검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악화 됐다.
‘토레스가 빨리 새로운 검을 완성해줬으면 좋겠는데.’
본인 말로는 2주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시기상 다음주 정도면 완성하지 않을까?
‘달빛 제 2초식, 월광쇄도.’
나는 달빛 초식을 사용하며 앞으로 대시했다.
+ + +
탑 오르기 경기가 모두 끝이 나고,
전광판에 등수가 표시 됐다.
1등-서진(50층)
2등-차인수(43층)
3등-유우리(39층)
4등-차차라(27층)
1등과 2등, 3등까지는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 하지만 4등부터 꼴찌까지는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차인수 등수야 예상한 결과였다.
하지만 유우리의 등수는 살짝 의외였다.
‘포섭을 할까.’
라는 고민이 들 정도로 유우리의 활약은 꽤나 놀라웠다.
“고생했다.”
일행에게 합류하자,
박태산이 흡족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넷째 날.
내가 1등 함으로써 하늘팀의 종합 랭킹은 12등에서 3등으로 껑충 뛰었다.
+ + +
“하암.”
한 차례 하품을 했다.
“하아암.”
한 번 더.
“너무 오래 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정리하며 머리끈으로 동여맸다.
정시아는 눈을 비비며 해가 뜨고 있는 해안가를 쳐다봤다.
드디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드디어 복귀를 해서 샤워를 할 수가 있었다.
정시아가 이곳에 있으면서 불편한 건 딱 그 점 하나였다.
나머지는 저언~혀 불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취이익.
“응? 왜?”
이번 방학 때 만개한 ‘킹 코브라’ 능력 덕분이었다.
정시아를 보호하듯이, 정시아를 중앙에 두고 똬리를 틀고 있는 킹 코브라.
이 녀석 덕분에 정시아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알아서 먹을 것을 잡아오니, 정시아는 따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경비병이자, 사냥조이자, 든든한 친구 역할을 킹 코브라 혼자서 도맡고 있었다.
취이익.
킹 코브라가 전방 쪽을 보며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누군가 이 쪽으로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슬슬 올 때도 됐지.”
오늘은 마지막 날이었고,
아무리 쉬쉬하고 있다고는 해도 결판을 지어야 할 테니.
정시아는 외딴섬에 도착하자마자 심판이 나눠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대략적인 섬에 대한 정보와 생존 인원이 표시 돼 있었다.
생존 인원은 3일차 때부터 ‘2명’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3일차 때 ‘1명’이 될 수도 있었다.
정시아는 목을 천천히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직도 3일차 때 전기뱀장어에 당한 팔이 저릿저릿했다.
“야.”
킹 코브라의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전방을 향해 누군가를 부르는 정시아.
“내가 아는 놈 중에 황금돌대가리라고 있는데, 너는 그 놈 보다 더 돌대가리인 거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부작. 스윽.
스윽. 사부작.
한 쪽 다리를 양 팔로 질질 끌며 정시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
이름은 야마모토 류진이었지만,
정시아는 그를 전기뱀장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맹독을 정통으로 맞고도 움직일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정시아는 3일전 일을 떠올렸다.
다짜고짜 류진이 공격해 왔고, 몇 수를 경합했다.
그 과정에서 정시아는 팔을.
류진은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류진 쪽이었다.
왜냐하면 ‘맹독’을 류진의 다리에 정통으로 꽂았으니까.
분명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류진은 맹독을 맞고도 이틀 째,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기권해. 버텨봤자 너만 손해야.”
뇌(雷) 능력으로 어떻게 해서든 독의 성질을 억제하고 있는 모양인데, 정시아가 보기에는 이미 류진은 한계였다.
다리에서 시작된 독이 이제는 류진의 목과 얼굴까지 번져 있었다.
“디..디랄 하쥐마롸!”
오늘 보니 혀에까지 퍼져 있었다.
정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등과 2등.
점수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정시아는 바로 기권을 하고 2등을 했을 터였다.
“오느으을!! 너의 모글 따버릴 테다! 아게냐!”
“..미친 놈.”
사람이 어쩜 저렇게 대책이 없고,
무식할 수가 있을까?
‘요즘 황금돌대가리는 그나마 사람이 된 것 같은데.’
“너 지금 한계인 것 같은데, 안 들어오고 뭐해?”
정시아는 도발했다.
저런 단세포는 도발이 즉효였다.
헌데, 학습 능력은 있는지 눈을 부라리기만 할 뿐 별 다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자..잠까만..기다려라!”
“응?”
“자..잠까만!”
“..뭐라는 거야.”
정시아는 적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몸 상태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실전도 아니고.’
실전이었다면 바로 죽였을 테지만,
지금은 실전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정도의 뇌(雷) 속성 능력자라면,
나중에 마주칠 일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시아 답지 않은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어쩌면 이 순간 잠깐이지만 금석이 생각난 탓일지도 몰랐다.
“언제까지 기다려? 나 빨리 끝내고 샤워하러 가고 싶은데.”
“자..잠칸만!”
“후..5분 준다.”
“고..고맙다!”
발을 까딱거리며 초를 세기 시작하는 정시아.
3분 정도가 지났을까?
쿠룽!
쿠웅!
분명히 화창한 날씨였다.
그런데 하늘이 갑자기 우중충하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며 천둥이라도 칠 것처럼 번개가 번쩍번쩍했다.
“에이, 설마.”
정시아는 단순히 기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외딴섬에는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의 심판이 존재했다.
더군다나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맞는 순간 바로 즉사였다.
“아니지?”
라고 물었지만, 류진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정시아의 우려가 점점 사실로 확정 되고 있었다.
“진짜 너는 단세포가 아니라 아메바 수준이네.”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렸다가는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뱀의 움직임’을 시전하며 류진에게 달려드는 정시아.
“느..져따! 크하하!!”
콰콰쾅!!
콰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굵은 번개 수십 가닥이 내려쳤다.
수십의 번개는 순식간에 지상을 초토화 시켰다.
+ + +
‘외딴섬 생존하기‘ 경기가 모두 끝이 났다.
“누가 이긴 거야?”
“그게 문제야? 죽었으면 어떡해?”
정시아가 류진의 목에 단검을 갖다 댄 순간,
번개가 번쩍하며 두 사람을 덮쳤다.
그 후 곧바로 관전하던 모든 이의 화면이 암전 됐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아 괜찮..겠지?”
“그러게.. 걱정 되네.”
한설휘와 강소라가 제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들과 달리 박태산은 제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아닌,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노란팀 진영이 있는 곳이었다.
노란팀은 류진의 소속 팀이기도 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다짜고짜 코코로 교관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박태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습니다!”
“지..지금 뭐하는..”
“학생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신 겁니까!”
“이..일단 놓고..놓으시라고요!”
암전된 화면 대신 볼거리가 생겼고,
운동장에 모여 있던 다른 진영의 학생과 교관들이 대놓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박태산이 현재 하는 행동이 잘못 된 행동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함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보는 눈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박태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나머지 하늘팀 학생들도 내 뒤를 따랐다.
“교관님.”
내 부름에도 코코로 교관의 멱을 딸 것처럼 계속해서 흔드는 박태산.
그의 눈을 보니 반쯤 뒤집혀져 있었다.
박태산이 이토록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학생들을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두두두.
하늘팀이 전부 달려들어 코로로 교관에게서 박태산을 떼어내려고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헬기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드는 정시아.
그녀의 몰골은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교관님.”
박태산 교관의 고개를 억지로 하늘로 돌렸다.
정시아의 모습을 확인한 박태산 교관.
“크흠.”
민망한지 헛기침을 한 차례하고,
하늘팀 진영으로 곧장 걸어갔다.
“이..이..”
얼굴이 시뻘게진 코코로 교관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넓직한 박태산 교관의 뒷모습에 삿대질만 할 뿐이었다.
“다행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우리와 합류한 정시아가 혀를 내둘렀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진짜 심판이 1초라도 늦었으면 죽었어.”
다행히 심판이 개입을 했고,
정시아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럼 1등은 누구야?”
“음..그건..”
정시아가 자신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때, 운동장 상단에 위치한 전광판에 등수가 떴다.
-외딴섬 생존하기 등수.
1등-야마모토 류진(종합 점수 92점)
2등-정시아(종합 점수 87점)
3등-이부석(종합 점수 72점)
나는 각 등수를 눌러 상세 점수를 확인했다.
야마모토 류진은 12명을 탈락 시켰다.
그에 따른 가산점이 점수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정시아는 5명을 탈락 시켰다.
그래서 킬 점수에 따른 가산점이 류진 보다 많이 모자랐다.
킬 점수가 두 사람 차이에 결정적인 요소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무승부 처리가 됐기 때문에 점수가 동일했다.
“아쉽네.”
말은 그렇게 해도 정시아는 자신의 등수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정시아가 2등을 함으로써 우리의 첫째 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억겁의 등산-금석(1등)
지혜의 피라미드-한설휘(5등)
바람의 레이스-강소라(14등)
탑 오르기-서진(1등)
외딴섬에서 생존하기-정시아(2등)
하늘팀의 성적표였다.
다섯 가지 종목 중 점수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탑 오르기’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에서 우리는 1등과 2등을 차지했고, 그 덕분에 첫 주차 종합 성적은 전체 2위로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전체 성적 1위는 야마모토 류진과 유우리가 포함 돼 있는 노란팀이었고,
우리 바로 아래 등수인 3등은 차인수가 있는 레드팀이었다.
1위와 2위 3위.
세 팀의 점수 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4위부터는 격차가 급격하게 커졌다.
즉,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세 팀의 삼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다들 고생했고, 주말동안 푹 쉬어라. 사고치지 말고.”
“네!”
“아싸!”
학교대항전은 4주간 치러지지만 주 5일이나 다름없었다.
주말에는 참가 학생도 축제를 즐길 수가 있었다.
“주말에 뭐할까?”
“아까 보니까 먹거리 시장 열렸던데, 거기나 가볼래?”
“좋지,좋지!”
여학생들이 신나서 떠들었다.
“쉴 거니까, 나는 내버려 둬.”
금석이 엄포를 놓고 박태산의 뒤를 따라갔다.
“나도 쉴래.”
나 역시 금석과 마찬가지로 쉴 생각이었다.
방학 시작 후부터, 지금까지
너무 일정이 빠듯해서 제대로 퍼져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푹 쉬어야지.’
나는 레이와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2주차가 시작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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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죄송하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