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회
학교 대항전
억겁의 등산 본선.
사실상 승자는 정해져 있었고,
여지없니 금석이 1등을 차지했다.
그에 따라 19등에 위치해 있던 하늘팀의 등수가 수직상승해, 6위에 랭크 됐다.
“황금돌대가리! 다시 봤다?”
정시아가 웃으면서 금석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억겁의 등산에서 힘을 다 쓴 건지 별 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금석.
“고생했어.”
“진짜 존멋!”
한설휘와 강소라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반면 박아름은 조용히 금석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담쓰담 했다.
“크흠.”
박태산도 금석의 활약에 입이 근질근질한 것처럼 보였지만, 헛기침을 할 뿐 별 다른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상당히 상기 돼 있었다.
우리는 현재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 모여 저녁 식사와 함께 자축을 하고 있었다.
“근데 시아는 괜찮을까?”
한설휘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식탁에 올려둔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식탁에 자신의 핸드폰을 올려두고 있었는데, 핸드폰 액정에는 정시아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정시아가 출전한 ‘외딴섬에서 생존하기’는 개인 핸드폰으로 실시간 관찰이 가능했다.
보통 첫 날에는 서로 탐색전을 펼치며,
외딴섬이라는 환경을 파악하느라 사상자가 안 나왔다.
하지만 첫 날인 오늘.
20명의 참가자 중 벌써 5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탈락했다.
야마모토 류진.
녀석이 장본인이었다.
목적이 살상인 것처럼 외딴섬을 들쑤시고 다녔다.
“걱정 하지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아잖아.”
강소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 역시 동감이다.
야마모토 류진만 조심한다면 정시아는 1등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이었다.
무엇보다 정시아는 현재 홀로 캠핑을 간 것처럼,
모닥불을 피워 멧돼지를 구워먹고 있는 중이었다.
“하긴. 나 먼저 올라갈게. 벼락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한설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한설휘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지혜의 피라미드’
과연 한설휘는 몇 등을 할 수 있을까?
“같이 올라가자.”
강소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름이도 올라갈래?”
강소라의 물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아름.
그렇게 여자들이 자리를 떠나고.
“석아.”
“예.”
“고생했다.”
드디어 박태산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다가는 나 역시 알 수 없는 전우애에 휘말릴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 날.
한설휘는 ‘지혜의 피라미드’에서 5등을 차지했다.
예상보다 낮은 결과했다.
하지만 본인은 선방했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아쉬워보이질 않았다.
학교 대항전 이튿날.
하늘팀은 두 단계 하락한, 종합 8위에 이름을 올렸다.
+ + +
셋째 날.
강소라가 출전하는 ‘바람의 레이스’가 있는 날이었다.
바람의 레이스는 역풍이 부는 바람의 언덕을 달리는 이른바 중장거리 달리기 경주였다.
바람을 다룰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바람의 레이스에 강소라가 차지한 성적은 14등.
“헤헤..미안.”
경기가 끝나고 강소라가 사과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셋째 날, 우리의 등수는 8위에서 12위로 하락했다.
+ + +
넷째 날.
드디어 내가 출전하는 ‘탑 오르기’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화이팅!”“서진아 무리하지 마!”
강소라와 한설휘가 등 뒤에서 응원을 했다.
그녀들과는 대조적으로 턱하니 내 양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걸로 말을 대신하는 박태산과 금석.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을 느끼며 전방을 쳐다봤다.
높이를 알 수 없는 탑이 보였다.
점수를 측정하는 방법은 눈앞에 보이는 저 탑을 몇 층까지 오를 수 있냐였다.
나는 저승의 모니터실 요원으로 활동할 때의 기억을 떠 올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30층이 최고 기록이었던 골로 기억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1등을 한다면.
그리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정시아가 외딴섬 생존하기에서 상위 등수를 기록한다면.
우리 학교의 첫째 주 성적은 꽤나 호성적이 될 게 분명했다.
“자, 준비 된 선수들은 탑 앞에 정렬해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자의 말에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내 옆으로 레이가 하품을 하며 걸었다.
총 20명의 참가자.
그 중 많은 수의 참가자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무래도 내가 이 중에서 가장 경계 인물인 탓인 것 같은데.
그러려니 하고 시선을 넘기려고 하다가 눈에 장작이라도 넣은 것처럼 불타는 시선을 보내는 한 녀석 때문에 그곳을 빤히 쳐다봤다.
차인수.
며칠 전에 겁을 줬지만,
시간이 지나자 효력이 모두 증발 했는지 내 시선을 피하질 않았다.
바로 꼬리를 말 거라고 생각을 안 하긴 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빠르게 꼬리를 바짝 필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재밌는 녀석.’
“규칙은 간단합니다! 가장 높은 층에 오르는 선수 순대로 등수가 정해집니다! 제한시간은 12시간! 준비된 선수는 바로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탑 오르기가 시작 됐다.
+ + +
1층.
고블린 몇 마리가 등장했다.
레이가 곧장 목을 따버렸다.
2층.
고블린 몇 마리와 함께 고블린 마법사가 등장했다.
레이가 역시 목을 따버렸다.
3층.
고블린 로드가 등장했다.
레이가 고블린 로드 목을 따고 하품을 기게 했다.
4층.
오크가 등장했다.
역시 레이가 정리했다.
5층, 6층, 7층.
그렇게 20층까지.
레이가 모두 정리했다.
21층.
드디어 레이의 이빨과 앞발에 버티는 녀석이 등장했다.
3m는 족히 넘는 키에 마계에나 등장할 법한 흉흉한 안광.
온 몸이 근육으로 뭉쳐있는 것처럼 근손실이 전혀 없어 보이는 육체.
거기에다가 이마에 툭 튀어 나와 있는 두 개의 뿔까지.
쿠오오!!
오우거.
녀석의 이름이었다.
두 마리의 오우거가 천장을 향해 흉포한 기함을 토해냈다.
“레이. 원래 크기로 돌아와.”
내 말에 앙증맞은 크기로 19층까지 씹어 먹던 레이가 몸집을 원래 몸집으로 되돌렸다.
“고고.”
레이가 앞으로 달렸고,
가볍게 양 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내가 ‘달빛 가르기’를 시전한 것처럼,
새하얀 반달이 레이의 양 발에서 튀어나왔다.
레이는 각성 후,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구오?
구오오?
오우거 두 마리가 의아한 듯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새하얀 잔상이 남아 있는 자신의 몸.
1초 후.
콰직.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깨끗한 단면을 드러내며 2등분 됐다.
이렇게 21층도 클리어 했다.
“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히 규정상에는 소환수나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너무 날로 먹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도 되나?’
무임승차도 이런 무임승차가 있을까?
다음 층부터는 나도 뭔가 액션을 취해야할 것 같은데.
크르르!(기분 좋아!)
각성 후 레이가 온전히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날 뛰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층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레이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레이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아닌,
야생의 늑대였다.
아무리 달빛 늑대라고는 해도,
사냥 습성을 가지고 있을 터.
“흐음..”
나는 레이를 조금 더 놀게 나두기로 했다.
절대, 네버.
레이를 이용해 먹거나,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가자.”
우리는 다음 층으로 향했다.
+ + +
“이게 말이 돼?”
“나 오늘부터 소환수나 정령 소환하는 방법 알아보려고.”
탑의 외곽.
관전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많은 수의 인파가 혀를 내둘렀다.
각자 앞에 위치한 태블릿을 통해 탑의 내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20층부터 탈락자가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했고,
25층이 고비인 듯 절반의 인원이 탈락했다.
나머지 인원도 얼마 안가 탈락할 것처럼 보였다.
단, 두 명만 제외하고.
“뚜뚜야, 너 이제 레이한테 덤비면 안 되겠는데?”
한설휘가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뚜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치듯이 말했다.
한설휘의 말에 그녀와 마찬가지로 태블릿을 쳐다보고 있던 뚜뚜가 가볍게 한설휘의 손을 물었다.
멍멍!
“레이가 저런 애였어? 난 그냥 귀여운 솜털인 줄 알았는데..”
레이의 활약을 보고 있는 강소라가 충격을 먹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진이 현재 위치한 층수는 35층이었다.
35층에 도달할 때까지 서진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와! 32층 돌파!”
“역시 만만치 않네!”
“그러니까! 역시 차인수!”
지금 이곳의 여론은 두 가지로 갈렸다.
탑의 오르기의 우승자를 두고.
차인수냐, 서진이냐.
서진이 앞서있기는 했지만,
차인수의 탑 오르는 속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조금이라도 서진의 속도가 뒤쳐진다면 충분히 차인수가 따라잡고도 남을 정도였다.
“저 아이, 얼굴을 봐라.”
서진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박태산이 화면을 전환 했다.
차인수의 개인화면이었다.
박태산의 말에 하늘팀 전원이 화면을 전환했다.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고 있네요.”
한설휘의 말이 정확 했다.
서진이 레이를 부리는데 필요한 마나는 필요치 않았다.
반면 차인수가 정령을 부리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했다.
그 차이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서진은 굳이 레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탑을 오를 수가 있었다.
“와..”
입을 쩍 벌리는 강소라.
“상급 정령 두 마리를 동시에 소환 하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강소라는 차인수와 마찬가지로 정령사였고,
지금 차인수가 발휘하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 사람 보다 훨씬 더 잘 알았다.
“근데..”
눈살을 찌푸리는 강소라.
“왜?”
한설휘가 강소라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정령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어. 근데 쟤는 정령을 마치.. 물건 다루듯이..”
말을 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강소라.
그녀의 말처럼 차인수는 정령을 막 다루고 있었다.
쓰다가 낡거나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리고 다른 정령으로 갈아치울 것처럼.
“쓰레기 자식..”
강소라는 분했다.
왜 세상은 저런 놈한테 역대급 능력을 준 것일까?
아무리 세상이 공평해, 능력을 주는 대신 인성을 주지 않았다고는 해도 강소라 입장에서는 차인수의 행동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강소라는 화면을 다시 서진의 화면으로 전환했다.
언제 35층을 클리어했는지,
서진은 36층의 땅을 밟고 있었다.
“어, 소라야?”
한설휘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강소라를 불렀다.
“너, 입술에서 피 나!”
“..응?”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분한 마음에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던 모양.
“괜찮아.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자리에서 일어난 강소라.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며 화장실이 있는 뒤쪽 건물로 뛰어갔다.
“너무 분하다, 진짜..”
화장실로 들어간 강소라.
아무 칸이나 들어가, 문을 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찌나 분한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신은 바람의 하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었다.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강소라는 행복했다.
중급 정령.
혹은 상급 정령.
더 나아가 다른 속성의 정령까지.
강소라는 소환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엄마..흑..”
자신의 우상이자,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여인을 떠 올리자 강소라의 눈물이 더 굵어졌다.
‘정령은 네 친구란다, 소라야.’
그녀의 가르침.
‘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면 언젠가 네게 손을 내밀어 줄 거란다.’
그녀의 가르침은 진짜였다.
10살이 되던 해.
정령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간절히 바랐고 바람의 하급 정령이 자신의 손을 잡아줬다.
하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욕심 내지마, 소라야. 정령이 네 마음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레 네게 마음을 열 거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조바심이 나도 기다렸다.
욕심이 나도 꾹 참았다.
현재에 만족하며 살았다.
정령 능력은 엄마의 마지막 유산이었으니까.
정령 능력을 계승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근데..근데..
“엄마아..흐으윽..”
울화통이 터졌다.
차인수 같은 놈이 자신 보다 나은 정령사라니.
“내가..흑..차인수 보다 못한 게..뭔데..뭐냐고!”
강소라가 한참을 펑펑 울고 있을 때,
강소라의 머리 위로 선선한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피..피?”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강소라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바람의 하급 정령이 강소라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위로..해주는 거야?”
사아~
미풍이 강소라의 얼굴을 휘감았다.
“고마워.”
휴지를 뭉텅이로 떼어 내, 얼굴을 슥슥 닦는 강소라.
기분이 여전히 꿀꿀했지만, 꽤나 상쾌해졌다.
화장실을 나서는 강소라.
그녀는 다짐했다.
꼭.
미래에는 차인수를 뛰어넘는 정령사가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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