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회
학교 대항전
"죄송합니다..“
나는 힐끔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이름표를 쳐다봤다.
‘박설아’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 이름이었다.
당장 머릿속으로는 누구였는지 잘은 기억나질 않았다.
‘나중에 비중이 있던 캐릭터였나?‘
얼굴은 일단 오늘 처음 봤다.
하지만 이름은 생뚱맞은 것처럼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네가 왜 사과를 해? 그리고 왜 존댓말 써? 우리 동갑이잖아.”
“아니 그래도..”
“됐어. 네 잘못도 아닌데.”
“..미안.”
“사과는 저 녀석한테 들어야할 것 같은데.”
박설아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바로 차인수 때문이었다.
차인수 때문에 박설아가 나를 찾아올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여자화장실 앞.
차인수가 여학생 두 명의 손목을 잡고 뭐라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여학생 두 명의 팀복 색이 나와 같은 하늘색이었다.
하루 종일 여자를 옆에 끼고 살면서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면 사족을 못 쓰는 꼴이라니. 저 정조면 호색가가 아니라 발정 난 강아지가 아닐까 싶었다.
“야. 넌 빠져라. 내가 볼 일 있는 건 저거라고.”
“저거? 넌 사람한테 이거 저거 막 그래?”
“하..진짜, 너는 내가 여자는 안 때리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내가 만약 그런 놈이었으면 지금 너는 한 백 대는 맞았다.”
“너는 여자였으면 나한테 천 대는 맞았어. 이 손 놔. 놓으라고!!”
강소라가 차인수의 손을 떼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차인수의 목적은 박아름인 것 같은데.
“너 뭐하냐?”
뒤를 쳐다보는 차인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잠깐 잊고 있었던 목적이 빠르게 떠오르는 게 보였다.
“하, 이 새끼.”
박아름과 강소라의 손목을 놓는 차인수.
“서진아!”
강소라가 박아름의 손을 잡고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자연스럽게 차인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박설아.
“미안..인수야..나는 그냥..”
“그냥 뭐? 내가 누누이 말했지.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근데 이번에는 잘 했다.”
씨익 웃으며 박설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차인수.
그 모습이 마치 주인과 하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차인수가 박설아와 잠깐 대화를 할 때 나는 강소라와 박아름의 손목을 살폈다.
어찌나 세게 잡고 있었던지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응. 근데 어쩌려고? 싸우면 안 되잖아. 내가 얼른 가서 교관님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싸울 거야.”
“..진짜? 쟤, 아까 경기장에서 보니까 완전 무대포던데..”
강소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차인수를 쳐다봤다.
“진짜 안 싸워. 아름이랑 같이 관중석에 가 있어. 내가 싸우는지 안 싸우는지는 우리 팀 점수 보면 되잖아. 점수가 깎이는 안 깎이는지 바로 적용 되니까.”
나는 말을 하며 복도 천장에 있는 cctv를 가리켰다.
“그래도..”
뒷말을 흐리던 강소라.
“그래! 나는 너 믿어! 아름아, 가자! 빨리 와야 돼!”
박아름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 강소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다.
내 머리 쪽을 비켜가는 주먹.
나와는 달리 차인수는 자기네 팀 점수가 깎이던 말던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신경을 썼다면 아까 그 지랄을 안 했을 테지만.
몇 번 허공에 주먹질을 하던 차인수.
분에 안 차는지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야.”
녀석이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 녀석을 불렀다.
나를 노려보는 차인수.
별 대꾸는 없었지만 내 말을 들을 의사는 있는 모양.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그래, 오해. 나는 사실 네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렇잖아? 카페에서도 네가 다짜고짜 날 공격했고, 나는 방어한 것뿐인데. 안 그래?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투견도 아니고 네가 계속 공격을 하려고 하잖아.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어?”
“잘못?”
“그래, 잘못.”
“했지.”
“그래?”
“그래. 아주 큰 잘못을 했지. 너의 그런 시건방진 태도. 감히 내 앞에서. 그게 잘못인데, 아직도 감이 전혀 안 오는 모양이네?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광주 땅에서는 전혀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야.”
그 놈의 광주 땅.
이 녀석이 예전에 태어났다면 분명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선구주자가 됐을 게 분명했다.
“자, 어떡할래?”
차인수가 다리를 살짝 벌렸다.
“이제라도 네 잘못을 알았으니까.”
“....”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가리키는 차인수.
“뭐해? 기어.”
단언컨대 저 놈은 내가 빙의하기 전 서진 보다,
제일 그룹의 장남 이수혁 보다 더 질이 나쁜 망나니임이 틀림없다.
“사람한테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니. 그건 쫌 아닌 것 같지 않아?”
나는 말을 하며 차인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니, 그리고 말이야. 네가 신이야? 뭘 자꾸 네 발 아래에 두고 싶어 해?”
천장에 있는 cctc는 말 그대로 cctv였다.
즉, 구현화 된 능력만 감지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공기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차인수가 정령을 소환할 모양인데.
나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차인수와의 거리를 좁혔다.
녀석은 정령이 아니면 그렇게 육체 레벨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1단계.’
기분이 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차인수의 얼굴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2단계.’
차인수의 미간이 약간 꿈틀거렸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3단계.’
차인수의 입이 열렸다.
차인수는 정령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재능을 뒷받침 하는 서브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마나 감응’ 이었다.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소환하고 싶은 정령의 원소가 가지고 있는 마나를 세심하게 느낄 줄 알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정령을 소환해야 하니까.
이 능력은 무척이나 피곤한 능력으로,
이 능력이 부족할 경우 강소라처럼 1개 원소 정령밖에 소환하질 못했다.
차인수의 마나 감응 능력은 최상이었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내가 가진 마나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차인수는 상대방의 마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자였고,
마나의 질이나 양으로 상대방의 강함을 측정하는 특이 캐릭터였다.
그런데 내가 가진 마나의 질이 갑자기 달라졌다.
그것도 3차례나 연속.
그것도 기어를 올린 것처럼 팍! 팍! 팍! 하고.
“야.”
차인수는 지금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당황한 차인수를 한 번 부르고 마지막 기어를 올렸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4단계.’
웬만하면 3단계에서 끝내려고 했다.
헌데 반응이 영 시원찮아서 무리를 해서라도 4단계를 사용했다.
달의 축복 4단계를 사용하자마자 차인수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야.”
재차 차인수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이 여실히 말하고 있었다.
차인수는 내게 벽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큰 벽을.
“한 번만 더 나나 우리 팀원 건들면 죽여 버릴 줄 알아. 알겠냐?”
차인수 옆에 서 있던 박설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와 차인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나에 예민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나는 차인수에게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차인수의 눈동자가.
차인수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나는 박설아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고,
뒤를 돌아 복도를 걸어갔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차인수가 꺾일 놈은 아니었다.
차인수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나무 그 자체였고,
지금 내가 한 행동은 나무의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꺾은 정도였다.
나는 차인수를 좋게 좋게 포섭할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가 차인수를 포섭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굴복’시키는 방법이었다.
물론, 좋게 좋게 포섭을 하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녀석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세뇌를 시키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게 아니라 불가능이었다.
‘역시.’
복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
꼬리를 말았던 차인수의 마나가 살기를 품는 게 느껴졌다.
이번 대회가 모두 끝이 나기 전,
저 살기를 모두 꺾어 내버릴 예정이었다.
관중석에 도착을 하자마자 나는 달의 축복을 풀었다.
“후우..”
아무리 스텟이 A등급을 찍었다고는 해도,
4단계는 아직까지 버거웠다.
달의 축복을 풀자마자 온 몸이 오랜만에 운동한 다음날처럼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잘 해결했어?”
“진짜 안 싸웠나보네?”
자리에 앉자마자,
양 옆에서 한설휘와 강소라가 말했다.
“안 싸운다고 했잖아.”
나는 덤덤하게 말을 하고,
앞에 보이는 태블릿을 쳐다봤다.
1조가 등산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풀 스크린에서 선수들의 개인 화면으로 한 번씩 변경해, 쭈욱 훑었다.
다들 별로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1조 선수들이 대부분 중간 지점에 도착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바닥이나 나무에 설치 된 트랩이 등산을 방해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종목의 이름처럼 ‘억겁’이 등장할 차례였다.
사아아.
관중석에 약하지만 미풍이 불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람이 부네?”
“이거 인위적인 바람이야.”
“인위적인 바람?”
“응. 기계 바람인 것 같아.”
역시, 강소라가 바람 정령사라 그런지 바람을 잘 읽었다.
“와, 저기 뭐야? 나무가 휘청휘청 하는데?”
“진짜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관중석의 바로 앞 쪽.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평지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인공산이 시작되는 입구부터 바람의 질이 완전히 달랐다.
나무가 휘청거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태풍급 강풍이 불고 있었다.
태블릿으로 인공산의 현 상황이 더 잘 보였다.
투입 된 선수들이 제대로 땅을 딛지도 못하고 옆에 보이는 나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억겁의 등산이 드디어 시작 됐다.
+ + +
1조와 2조. 3조까지도 경기가 끝이 났다.
총 15명의 인원.
그 인원 중 정상을 밟은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정상 문턱을 밟은 인원도 없었다.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거센 바람.
그와 더불어 진흙탕에, 각종 장애물.
대부분 3분의 2 지점에서 나가떨어졌다.
그 중 각 조에서 가장 정상에 가깝게 등산을 한 1등이 본선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한 조가 남았고,
드디어 금석이 경기에 나설 차례였다.
“괜찮을까?”
“잘 모르겠어.”
앞 조의 경기를 모두 지켜 본 한설휘와 강소라가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믿어라.”
그녀들의 의견을 모두 묵살해 버릴 정도로 굳건한 박태산의 한 마디.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었다.
금석은.
그것도 박진의 훈련을 받고 온 금석이라면.
정상은 못 찍더라도 문턱은 밟을 수 있지 않을까?
“시작한다.”
멍멍!
뚜뚜가 눈을 뜨고 태블릿을 쳐다봤다.
세월아 내월아 하는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던 박아름 역시 시선을 태블릿으로 옮겼다.
중반부까지는 다른 조와 똑같은 래퍼토리였다.
탈락자 없이 무난한 등산이었다.
중반부.
드디어 억겁의 시간이 시작 됐다.
우리 팀은 모두 금석의 개인 화면을 틀고 있었다.
응원하는 사람이니 당연했다.
갑작스러운 강풍을 맞아서 그런지 금석의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어..어..”
강소라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흠.”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기침을 하는 박태산.
갑자기 금석이 눈을 감았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 듯한 금석.
점점 몸의 자세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눈을 뜨고, 고개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기 시작하는 금석.
나는 금석과 같은 조로 편성 된 인원들을 살폈다.
전원 다른 조와 마찬가지로 걷기는커녕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앞을 보며 걸어 나가는 금석.
녀석의 걸음걸이는 독립군의 걸음걸이처럼 너무나도 비장해 보였다.
아무것도 금석을 제지할 수 없었다.
바람도. 진흙도. 장애물도.
금석은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정상을 찍었다.
이 정도는 가뿐하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드론을 쳐다보는 금석.
“크으윽..”
그 모습에 심히 감명을 받은 것인지 박태산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도대체. 도대체!
울릉도에서 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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