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회
학교 대항전
탑 오르기-서진
지혜의 피라미드-한설휘
억겁의 등산-금석
바람의 레이스-강소라
외딴섬에서 생존하기-정시아
박태산이 지목하다시피 정했지만,
다들 크게 불만은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지혜의 피라미드’에 한설휘가 출전하는 건 당연했다.
태양 길드의 유일한 손녀로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아오다시피 한 한설휘. 플러스로 나 때문에 1등을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원래 필기시험 1등은 한설휘였다.
여기 있는 인원 중에 가장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억겁의 등산’은 그냥 딱 금석의 맞춤종목이고.
‘바람의 레이스‘ 같은 경우에는 민첩 스텟이 높고 이동 능력이 있는 정시아도 어울렸지만, 정시아는 그 외에도 가진 능력이 많았다.
하지만, 강소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정령사였고, 바람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바람 정령사였다.
다른 능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바람의 레이스는 강소라가 적합했다.
‘바람의 레이스’에 정시아를 투입하기에는 너무 과투자였다.
남은 건, 이제 ‘탑 오르기’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두 종목인데.
사실상 도찐개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탑 오르기’는 각 층에 있는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지만,
‘외딴섬에서 생존하기’는 몬스터와 경쟁자 학생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피곤하기로 따지면 후자가 조금 더 피로도가 가중 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정시아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지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아, 한 가지가 더 있기는 했다.
‘탑 오르기’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출전을 많이 할 가능성이 높았다. 종목의 성격을 봤을 때, 높은 능력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각 팀의 에이스가 출전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전술적으로 버리는 종목으로 치고, 팀 내 능력치가 가장 낮은 인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 팀의 종목별 인원 선택은 끝이 났다.
“아름이는요?”
정시아가 물었다.
우리의 총 인원은 박태산 교관을 제외하고 총 6명이었다.
나. 그리고 한설휘,정시아,강소라,금석.
마지막으로 박아름까지.
본래 5명이 정원이었고, 혹시 모를 사고나 부상에 대비해 교체 인원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우리 역시 1명이 초과 된 상태라, 1명은 구경을 해야 했다.
이번 주의 그 인원은 박아름이었다.
왜냐하면.
“아름이는 나와 함께 너희들의 서포트를 할 예정이다.”
박아름은 치유 능력자.
이번 주에 실질적인 경기에서 효율적이지 못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제외됐다.
박아름은 워낙 표정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별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30분의 시간이 흘렀고,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 순간 사일런스 능력이 해제되면서 관중석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자, 모든 학교가 제출 완료 하셨겠죠? 과연 어떤 대진이 짜여 졌을지 모두들 궁금해 하실 텐데요, 지금 바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광판을 손으로 가리키는 사회자.
팀의 컬러와 점수가 떠 있던 화면이 사라지고 대진표가 나타났다.
“우선 ‘지혜의 스핑크스’ 대진을 살펴보도록 하죠. 오호~ 이거 이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데요?”
나는 대진표를 확인했다.
한설휘를 포함한 20명의 학생들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1등은 힘들겠네.’
한설휘는 분명 브레인이 확실했다.
하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 중에는 오로지 필기 쪽으로 특화 된 능력자들이 몇 명 있었고, 대진표에 그런 학생들의 이름이 몇 명 보였다.
한설휘는 브레인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특기는 화염 능력이었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애들한테는 조금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억겁의 등산’ 종목 역시 만만치 않군요!”
억겁의 등산 대진표를 확인한 순간, 나는 금석의 우승을 확신했다.
사실 대진표를 볼 필요도 없었다.
금석만큼 체력이 좋은 케이스는 현직 헌터라고 해도 드물기 때문에.
“‘바람의 레이스’ 대진표를 한 번 보실까요?”
강소라가 운이 없다고 하기에는 그녀는 애초에 내 머릿속에 없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능력치로 따졌을 때 B~C급 수준.
대진표는 무난했지만 과연 그녀가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와우!”
다음 종목의 대진표를 확인한 사회자가 탄성을 내질렀다.
화면에는 ‘탑 오르기’ 종목의 대진표가 나와 있었다.
사실 전 종목 대진표라고는 하지만 참가 선수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뿐이었다.
“빅~~매치네요. 와~ 역시. 탑 오르기 종목에 각 팀의 에이스가 모일 줄 알았습니다.”
예상한 대로였다.
각 팀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대거 ‘탑 오르기’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차인수.’
녀석 역시 ‘탑 오르기’에 참가했다.
내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가 아니라 ’탑 오르기‘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정시아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차인수와는 격차가 존재했다.
차인수는 내가 잡아야 했다.
물론, 녀석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나저나.
의외의 인물이 이름을 올리고 있긴 했다.
‘유우리.’
의외가 아닌가?
스즈란 헌터 학교가 학교 대항전에 참가한 것 자체가 의외인 부분이라 의외에 의외를 더하면 의외가 아닐 수도 있었다.
‘탑 오르기’의 대진표는 분명 쟁쟁했다.
하지만 내가 꽤나 눈여겨보고 있는 학생 몇 명이 빠져 있었다.
“오우!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역시 만만치 않은데요? 여러분! 대진표를 한 번 보십시오! 과연 이 중에 누가 마지막까지 생존할 것 같습니까!”
비율로 치면 거의 반반이었다.
탑 오르기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에이스들이 양 갈래로 흩어졌다.
‘정시아도 쉽지 않겠는데.’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참가 인원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녀석이었다.
“다 죽여 버리겠다!!”
야마모토 류진.
녀석이 정시아와 같은 종목에 출전한다.
“어우, 시끄러워.”
정시아가 류진을 보며 혀를 찼다.
“첫 날 경기 종목은 바로바로!”
사회자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억겁의 등산과 외딴섬에서 생존하기입니다!”
전광판 화면에 큼지막하게 두 종목의 타이틀이 나타났다.
“보통 한 종목의 소요 시간은 하루입니다. 그래서 1일 1종목을 치루는 게 원칙이지만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같은 경우는 장시간 생존할수록 생존 점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첫 날부터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종목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억겁의 등산은 왼편. 외딴섬에서 생존하기에 참가하는 선수는 오른편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숙소로 돌아가셔도 좋지만 이왕이면 현장에서 팀원을 응원하는 게 그림이 예쁘겠죠? 참고로 응원 점수도 있다는 점!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종목은 현장 응원이 불가능 하다는 점~”
길고 긴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갔다 올게~”
정시아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사뿐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 말 없이 뚜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앞으로 걸어가는 금석.
“화이팅!”
“응원하고 있을게! 두 사람 다 파이팅 해!”
강소라와 한설휘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응원했다.
“이동 하자.”
박태산이 남은 인원을 보며 말했다.
사회자는 분명 숙소 가서 쉬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박태산에게 그런 건 절대 없었다.
동료가 경기를 하는데 숙소로 간다?
박태산 사전에는 없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억겁의 등산’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 + +
‘억겁의 등산’ 경기장은 인공산이었다.
인공산의 아래에 위치한 관객석.
관객석마다 태블릿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참가 인원들이 산 속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정찰 드론으로 인해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헬기 뜬다.”
강소라가 공중을 가리켰다.
다른 조인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인원을 태운 헬기였다.
총 10대의 헬기.
외딴섬이라고 종목 이름을 정해놨기는 했지만 인공산과 마찬가지로 인공섬으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외딴섬에 가면 다 자급자족해야 하는 거 맞지?”
“그렇지 않을까? 시아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다른 애들이 걱정 돼서 그렇지. ‘외딴섬에서 생존하기’ 룰 보니까 학생들끼리 서로 공격을 해도 된다고 나와 있던데. 혹시 무분별한 학살을 하진 않을지..”
한설휘의 목소리에는 진정 걱정이 물들어 있었다.
누가 들으면 정시아가 피에 굶주려 있는지 알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이었다.
“에이 설마~ 응? 아름아, 왜 그래?”
강소라의 옆에 앉아있던 박아름.
조용히 강소라의 손을 잡았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것 같은데. 아름아, 화장실?”
그래도 강소라 보다 박아름과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곧바로 박아름의 제스처를 해석한 한설휘.
박아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같이 갔다 올게. 마침 나도 화장실 마려웠거든.”
강소라가 박아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석 뒤편으로 걸어갔다.
“소라 진짜 성격 좋은 것 같아. 그치?”
한설휘가 나를 쳐다봤다.
“응.”
동감이다.
강소라는 성격이 참 좋았다.
하지만 강소라처럼 성격 좋은 사람은 속된 말로 널려 있었다.
내게 중요한 사람은 능력치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게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성 보다 능력을 보는 건 쫌 그렇지 않냐고?
인성이 훌륭한 사람 100명 보다 인성이 안 좋더라도 능력이 출중한 능력자가 세상을 구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여긴 천국이 아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
최대한 능력자들을 연료로 갈아서 방향을 천국 쪽으로 돌려야 했다.
“몰랐는데, 소라 어머니가 옛날에 알아주는 정령사였다고 하더라?”
“..그래?”
“응. 나도 이거 건너 건너 알게 됐어. 그래서 조금 알아보니까.. 뒷조사 그런 건 아니고 조금 궁금해서.. 아무튼 진짜 유명했던..”
“시작 한다.”
박태산이 한설휘의 말을 끊었다.
전혀 의도한 건 아니었다.
박태산의 시선은 오로지 금석을 향해 있었으므로.
브로맨스라고 할 정도로 울릉도를 갔다 온 이후에 박태산과 금석의 사이는 우정 보다는 사랑에 가까울 정도로 끈적끈적했다.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생긴 전우애.
전우애가 두 사람 사이에 생겼다.
“정상을 먼저 찍고 내려오면 됩니다. 간단하죠? 5명씩 20명이니까 총 네 번의 예선전을 먼저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심판으로 보이는 교관이 출전 선수들에게 룰과 방식을 설명했다.
심판 교관은 박태산 보다는 못하지만 체격이 다부졌다.
“다 몸이 으리으리한 것 같아.
한설휘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목 특성상 높은 체력을 요하는 종목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성비가 남학생이 훨씬 높고, 체격도 한설휘의 말처럼 으리으리했다.
옷만 벗겨놓으면 보디빌더 대회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자, 우선 1조. 화이트, 블랙, 연두, 보라, 주황. 다섯 개의 팀은 스타트 라인에 서시기 바랍니다. 다른 선수 분들은 뒤에서 1조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학교 대항전의 첫 종목이자 첫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비록 금석은 1조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기..”
양 무릎에 뚜뚜와 레이를 올리고 손 받침대처럼 가볍게 양 손으로 두 마리의 머리를 조물딱 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낯설지만 얼굴은 알고 있는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분명 차인수네 팀원이었던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해..”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박태산은 듣지도 못했고, 한설휘는 갸우뚱하며 나와 여학생을 번갈아 쳐다봤다.
“누구야?”
“그냥 조금 아는 사람?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
“어디 가려고? 이제 경기 시작하잖아.”
“석이 경기는 아직 여유 있잖아.”
“흠..나도 같이 가자 그럼.”
“박태산 교관님 혼자 있잖아 그럼. 자. 뚜뚜랑 레이 좀 데리고 있어.”
일어나려는 한설휘의 무릎에 뚜뚜랑 레이를 올렸다.
뚜뚜와 레이는 아까 피닉스와 술래잡기를 한 탓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금방 올게.”
한설휘의 표정을 보니 여학생과 내가 같이 있는 그림을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질투는 많아가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가자.”
여학생을 데리고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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