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
학교 대항전
8월 1일.
학교 대항전 첫 날이 밝았다.
나는 숙소의 커텐을 열어젖히며 창밖을 쳐다봤다.
서진에게 빙의한 후에는 능력 탓인지 아니면 스텟 탓인지 잠을 오래 자지 않아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동이 트고 있는 새벽.
“으으..으으!”
“서..석아!”
“교관..님..살려주십시오..”
“미안하다..석아..”
“으아악!!”
“석아!”
누가 들으면 긴박한 상황에 놓인 두 사람에 대해 걱정을 하겠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뒤쪽을 쳐다봤다.
분명 서로 다른 싱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현재는 서로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고 잠꼬대를 심하게 하고 있었다.
어찌나 리얼하게 잠꼬대를 하는지 식은땀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대충 어제 두 사람이 박진에게 어떤 훈련을 받고 대우를 받았는지 듣기는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후유증(?)이 있을 줄이야.
크르릉.(야. 괜찮아?)
내 침대에서 자고 있던 레이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뚜뚜에게 다가갔다.
뚜뚜는 편의상 레이처럼 몸의 크기를 작게 만든 상태였다.
멍..멍멍..
크릉?(왜 그래?)
주인과 똑같이 잠자면서 몸을 떠는 뚜뚜.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살며시 살결을 맞대는 레이.
크르르.(주인. 보신탕이 뭐야? 자꾸 보신탕 뭐라고 해.)
나를 보며 말했다.
“강아지가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야.”
크르르?(그래?)
내 말에 혓바닥으로 뚜뚜를 핥기 시작하는 레이.
박진.
그는 대체 어떤 훈련을 시켰길래 두 사람과 한 마리가 이토록 치가 떨려하는 것일까.
‘한 번 만나보고 싶네.’
언젠가 그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다.
아무리 1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건재했으니까.
본래라면 라이언이 출현할 때 박진에게 도움요청을 하려고 했다.
라이언과 박진.
두 사람은 무투파 중에서도 제일가는 무투파였다.
라이언의 대항마로 박진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져 얼마 전 라이언이 등장했다.
제로와 함께.
‘또 언제 나타나려나.’
한국 헌터 협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라이언에 대한 수배 명단을 뿌렸다.
라이언뿐만 아니라 온 몸을 검은색 천과 붕대로 감고 있는 제로 역시.
국내나 국외.
모두 경계가 강화 돼서 단시간 안에 출현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했다.
‘만물상.’
그가 박쥐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가 새로운 나의 눈과 귀였다.
물론 그는 전혀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계를 유랑하며 아이템을 수집하는 만물상.
그의 인맥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만물상은 일종의 레이더 기지였고,
그의 인맥은 탐지기였다.
처음 만물상이 우리와 같은 편을 선다고 했을 때,
나는 단순히 아이템적인 부분에서 열렬히 찬성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아이템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였다.
‘정보.’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보의 선독점이었고,
만물상은 내게 선독점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수 있었다.
“허어억!!”
“석아!!”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
금석과 박태산.
유독 돈독해진 사제지간이 눈을 떴다.
+ + +
“뭔가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
강소라가 말했다.
“오늘 길에 사람 진짜 많더라.”
정시아가 말했다.
“뭔가 재밌을 것 같아.”
한설휘가 말했다.
“....”
박아름이 말하지 않았다.
남자들과 동물들은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현재 대기실.
곧, 있을 출정식에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이거 누가 제작 한 거야? 교관님, 혹시 알고 계세요?”
정시아가 박태산을 쳐다봤다.
우리는 학교별로 따로 제작 된 활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하늘색 활동복이었다.
얘기 듣기로는 약간의 물 속성 효과가 깃들어 있는 활동복이라고 했다. 실제로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덥지가 않았다.
“너무 촌스러워.”
박태산이 아무 말도 없자 투덜대는 정시아.
그녀는 팔 쪽 부분과 바지 아랫단을 여러 겹 접고 있었다.
“왜? 나는 마음에 드는데?”
“나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강소라와 한설휘가 벽면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 생각도 두 사람과 동감이었다.
딱히 특징이 없어서 밋밋하기는 했지만, 딱 보기에 시원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하늘색 팀복.
이게 학교 대항전에서의 우리 학교의 컬러였다.
“근데 오늘 박태산 교관님이랑 황금돌대가리. 말하는 거 들은 사람?”
정시아가 금석 옆에 가서 금석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미동이 없자 박태산의 어깨를 툭 찔러보는 정시아.
“혼이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박태산과 금석은 울릉도에서의 악몽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이 상당히 심한 상태.
오죽하면 꿈에서까지 울릉도를 떠돌까.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근데, 신지수 교관님은?”
내 물음에 정시아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오늘 아침에 도착했대. 대박이지? 바로 주차하고 골아 떨어졌어.”
“그래도 오기는 왔네?”
“응. 어떻게 왔는데 곧바로 갈 수는 없다고 자기도 여기서 놀고 갈 거래. 그래서 일어나면 연락하라고 했어.”
박태산이 온 이상 신지수는 구경을 하다가 부산을 가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이번에 아프리카를 갔다 왔는데.”
다시 여자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간 정시아.
여자 애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똑똑.
“5분 뒤에 나오시면 됩니다.”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기실 문을 열고 말을 했다.
“네.”
한설휘가 대표로 대답을 했다.
“교관님.”
나는 박태산 교관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불렀다.
눈에 초점이 동태눈처럼 흐리멍텅했다.
“신지수 교관님이 위험합니다.”
이 말 한 마디 초점이 곧바로 돌아왔다.
“어디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박태산.
“뻥입니다. 5분 뒤에 나오라고 하던데요?”
“..알았다. 너희들 준비 다 끝..냈군. 알겠다.”
다음 타자는 금석이었다.
“석아.”
나는 간식으로 준비 돼 있던 육포를 금석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씹는 금석.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너, 괜찮냐?”
“..괜찮다.”
나는 다음으로 바닥을 쳐다봤다.
뚜뚜와 레이가 아까부터 신나게 대기실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뚜뚜는 레이가 옆에 있으니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출발하자.”
울릉도를 갔다 온 이후로,
박태산의 목소리에서 묘한 힘이 느껴졌다.
원래부터 박태산은 듬직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성격도, 능력도, 체구도.
헌데 울릉도를 갔다 온 이후에는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대고 싶어졌다.
이름 그대로 태산 같은 등을 보이며 대기실을 나서는 박태산.
그를 따라 금석이 대기실을 나섰다.
“개 듬직해. 진짜. 교관님 어깨 좀 봐.”
“헐.. 금석 어깨 좀 봐.”
정시아와 강소라가 조잘대며 대기실을 나섰다.
“나는 안 봤다?”
한설휘가 나를 보며 말을 하며 싱긋 웃었다.
“아름아, 가자. 손잡고 갈래?”
박아름의 손을 잡고 대기실을 나서는 한설휘.
“뚜뚜, 레이.”
내 부름에 바닥에서 뒤 엉키던 두 짐승이 내 쪽으로 뛰어왔다.
레이가 각성을 하기 전에는 뚜뚜처럼 털이 검은색이었다.
그래서 가끔 뒷 모습만 보면 누가 뚜뚜고 레이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뚜뚜는 블랙이었고, 레이는 화이트였다.
극명한 대비.
나는 뚜뚜의 정확한 스펙을 몰랐다.
하지만 레이가 하는 말이나 어제 뚜뚜의 움직임을 본다면 A급 몬스터에 준하는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과연 누가 감히 예상을 할 수 있을까?
축구공만한 저 솜털들이 마음만 먹으면 대괴수급에 준하는 괴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금석과 내가 안전핀만 꽉 잡고 있으면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장난치는 건 좋지만 멀리가면 안 돼. 알았지?”
멍멍!
크르릉!(응!)
“우리도 나가자.”
나는 마지막으로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통로처럼 긴 복도를 지나자 따사로운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햇살을 밟으며 복도를 빠져나오자 얼마나 건물 안이 음소거 효과가 탁월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와아아아!!!”
“멋있다!!”
“꺄!! 여기 좀 봐주세요!!”
콜로세움 형태의 경기장이었다.
관객석을 가득 메우다 못해 중간 중간 통로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로 인해, 귀가 순간 먹먹해졌다.
나는 앞 쪽을 쳐다봤다.
이미 우리 학교 보다 앞서 입장한 학교들이 질서정연하게 인솔 교관을 필두로 오와열을 맞추고 서 있었다.
다들 우리 학교처럼 팀복을 색깔별로 입고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알록달록 해 보였다.
그들의 앞에는 주최 측이자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찰칵.
찰칵.
“서진 학생! 여기 좀 봐주세요!”
“브이 한 번만 해주세요!”
“한 번만 여기 보고 웃어주세요!”
경기장의 측면 부분에 대거 포진해 있던 기자들이 나를 향해 플래시를 터트렸다.
“현재 이순신 헌터 학교의 ‘하늘팀’이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중에서 서회를 보고 있던 사회자가 박수 유도를 했다.
가뜩이나 시끄럽던 관객석이 더 야단이 났다.
“이번 학교 대항전에서 가장 주목 받는 학생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단연코 지금 입장하고 있는 서진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달빛 계승자로 각성을 한, 그의 활약상. 모르시는 분들이 없을 겁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여러분?!”
“....”
박수 유도만 할 것이지 분산 돼 있던 관객석의 시선을 모조리 내게 돌리는 사회자.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윙크를 했다.
참고로 사회자는 남자였다.
“잘생겼다!!”
“옆에 강아지 두 마리 존나 귀엽네!”
“서진! 서진!”
내게 어그로가 전부 끌렸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게 시선이 전부 모여있다는 사실 때문에,
단순히 걷는 것뿐인데 발걸음에 신경이 쓰였다.
크르릉!(누가 나한테 강아지라고 한 것 같은데!)
레이가 관객석을 보며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중압감을 느끼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건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레이의 한 마디 때문에 발걸음이 한껏 가벼워졌다.
찌릿찌릿.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학생들이 안 보는 척하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시선이 대체로 곱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경쟁자이다보니 이런 따가운 시선은 당연했다.
헌데 따갑다 못해 살기를 철철 흘리고 있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빨간색 팀복을 맞춰 입고 있는 학생들 중,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남학생이 어금니를 바득바득 씹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인수.
이전에 광주에 잠깐 녀석을 보러 갔을 때,
기절을 시켰었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나에 대한 적대감이 지대하게 생긴 것 같은데.
잡아 먹는 건 내 쪽이었다.
차인수가 아니라.
나는 녀석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서지니! 서지나!”
차인수와는 반대로 아주 호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란색 팀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작은 키 때문인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이 바닥에 닿을랑 말랑하고 있었다.
“유..우리?”
분명 유우리였다.
일본으로 수련회를 떠났을 때 마주쳤던 스즈란 헌터 학교 소속 학생이었다.
그 때 나랑 대련했던 여학생이었다.
전형적인 여검사 스타일.
‘스즈란은 없었는데.’
내 기억에 올해 학교 대항전에는 스즈란은 참석하지 않았다.
헌데 눈앞에 스즈란 헌터 학교 학생들이 서 있었다.
내가 바꾼 미래가 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가만. 스즈란이라고 하면.’
나는 노란색 팀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학생을 쳐다봤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뻗혀 있는 머리.
번개 마크가 그려져 있는 장갑.
뇌제(雷帝), 야마모토 류진.
어딘가를 맹렬한 기세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시선을 쫓아보니 금석이 있는 곳이었다.
류진과 금석.
일본에서 한 번 붙은 적이 있었고, 금석이 이겼었다.
“....”
어쩌면 이번 학교 대항전은 생각보다 건질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아! 빨리 와!”
한설휘가 손짓했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뒤에 섰다.
“자, 작년의 디펜딩 챔피언까지 입장을 완료 했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학교 대항전에 앞서 간략하게 개요와 일정. 그리고 간단한 전체적인 룰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학교 대항전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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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내일은 3연참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