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8화 (128/196)

128회

학교 대항전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신지수에게 실시간으로 문자가 오고 있었다.

-나 이러다 차 안에서 살아야 할 판이야. 이런 씨..

-어디쯤이야?

-도착 했어?

-나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내가 최대한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볼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시간 좀 벌고 있어봐.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온 문자는 1분 전에 온 문자였다.

-정 안되면 거기에 교장 선생님 계실 거거든?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교장 선생님한테 서명해 달라고 해!-

그게 가능할까?

때마침 학교 건물에서 이순신 교장이 나오고는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근데 표정이 떫은 감이라도 먹은 것처럼 영 좋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신지수가 말한 플랜은 안 된다고.

“마음 같아서는 내가 인솔 교관에 서명해주고 싶은데 내가 세종대왕 헌터 학교 교관인지라..규정에 어긋나거든.”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이순신 교장을 비롯해,

여전히 1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러 단체의 거물급 인사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서진아.”

“예.”

내 앞으로 걸어온 이순신 교장.

최대한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해, 귀에 속삭였다.

“지수는?”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

모종의 은밀한 거래를 하듯이 이순신 교장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세종대왕 헌터 학교의 교장인 박세종 교장이 우리를 한 명, 한 명 훑어보더니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 잘생겼구나.”

“감사합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만나서 영광이구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런데 인솔 교관은 같이 안 왔나보지?”

“..예.”

“흠..그렇단 말이지.”

박세종 교관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서서히 미소의 질이 달라졌다.

“순신 교장. 이걸 어떻게 하면 좋소?”

“뭘 어떻게 해? 내가 인솔 교관 하면 될 거 아니오?”

“에이~ 그게 말이 되나. 안 그렇소, 여러분들?”

몇 몇 인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등장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한설휘와 정시아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내 옆으로 걸어왔다.

박아름과 강소라 역시.

레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작게 만들고 내 옆에 엎드려,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 있자니 확연하게 편을 가르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순신 교장을 필두로 한 우리들.

그리고 대척점에 있는 박세종 교관과 인사들.

“너무 안타깝구만, 그래. 달빛 계승자와 태문이 손녀 딸. 그리고 사신 길드의 유망주까지. 이 두 눈으로 활약상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기회를 미뤄야겠어.”

말을 하는 박세종 교장의 얼굴은 전혀 아쉬워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라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금 내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믿을 건 이순신 교장밖에.’

나를 비롯해서 학생들의 시선이 이순신 교장을 향했다.

“정 없게 이러긴가? 세종 교장은 그렇다 치고, 여보게들.”

이순신 교장의 뾰족한 수는 한국인이라면 궁지에 몰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꺼내봤을 ‘정’이었다.

하지만 전혀 먹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학교 대항전’에 참가 하는 목적은 세종대왕 헌터 학교의 차인수라는 녀석 때문이었다. 그 녀석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장해 포섭하려고 했는데.

만약 ‘학교 대항전’에 참가를 못하게 된다면?

다소 과정이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차인수를 포섭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학교 대항전에서 우승했을 때, 얻을 보상을 봤을 때는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보상을 못 받아도 크게 영향은 없었다.

생각 정리가 끝나자 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전혀 아니었다.

특히 정시아와 강소라.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맞아. 우리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니라니까요?”

그녀들의 말을 들은 한설휘.

듣기 좋게 번역을 해서 다시 전달했다.

“저희 교관님 곧 오실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순신 교장.

“학생들이 이렇게나 말하는데, 어른 된 입장에서 조금 기다려주는 게 어떤가? 금방 온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부탁함세.”

“흠..”

이순신 교장의 저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측은했던 건지 여러 인사들과 박세종 교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한 시간. 딱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는 건 어떤가? 어차피 지금까지 기다렸지 않은가? 학생들이 측은하니 조금의 기회를 더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박세종 교장이 말했다.

“한 시간 쯤이야..”

“그건 상관이 없는데..”

“한 시간 안에 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저는 이만 가보렵니다. 내일 봅시다, 다들.”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반쯤이 떠나갔다.

현재시간 6시 30분.

신지수가 과연 한 시간 안에 올 수 있을까?

예상컨대, 절대 불가능이었다.

+ + +

현재시간 7시 20분.

모든 사람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실격이냐, 아니냐.

정확하게 10분 남았다.

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교장들과 인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언니, 왜 소리 질러요! 귀 아파 죽겠네!”

신지수에게 전화했던 정시아가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멀었대.”

그녀의 한 마디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던 다른 여학생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우리 이대로 진짜 부산에 돌아가야 해?”

“아, 싫다.”

한 마디씩 하는 한설휘와 강소라.

그녀들의 말에 박아름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 아냐. 뭐가 미안해. 너 때문 아니니까 고개 들어.”

한설휘가 내려간 박아름의 고개를 들었다.

“야.”

철푸덕 내 옆에 앉은 정시아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현재 무릎에 레이를 올리고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내가 힐끔 쳐다보자 뒤로 머리를 질끈 묶은 정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방법 없나, 하고. 너라면 왠지..”

“없어.”

“....”

“근데 또 모르지.”

“응?”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뭐라는 거야? 예언 능력으로 뭐 보기라도 했어? 뭔데? 뭐 봤는데?”

“....”

나는 대답 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애매모호하게 대답을 했지만 나도 정확하게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신지수는 분명 여러 가지 수를 고민하다가 박태산에게 연락했을 게 분명했다.

만약 박태산이 제 때 문자를 수신 했다면, 박태산은 어떻게 해서든 박진의 마귀(?)를 벗어나 광주로 올 게 분명했다.

그래서 1시간의 보류 시간이 생겼을 때 박태산에게 문자를 했다.

박태산이 오고 있다는 가정 하에 보낸 문자였다.

-7시 30분까지 오셔야 합니다. 교관님.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1’이라는 문자 옆의 숫자가 사라져 있었다.

내 문자를 박태산은 읽었다.

사실 박태산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있는 장소는 울릉도였다.

아무리 신지수가 이 사단이 나자마자 연락을 했다고는 해도,

시간상으로 무리였다.

울릉도와 광주가 옆집도 아니고.

이미 나는 학교 대항전이 아닌 다른 루트로 차인수와 접선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었다.

크릉.

힘든 기색은 없었지만, 오래 달리느라 피곤했던지 바로 골아 떨어졌던 레이.

눈을 살며시 뜨며 내 품에서 부스럭거렸다.

“깼어?”

크르르.(응. 근데 주인.)

“응.”

크릉. 크르르.(어디선가 뚜뚜 냄새 나.)

“..뚜뚜?”

크르르.(응. 희미하지만 이건 분명히 굉장히 멍청한 강아지 냄새야. 내가 알기로 이 정도로 멍청한 냄새는 뚜뚜 밖에 없어.)

‘설마 진짜 박태산이?’

나는 레이를 품에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미세한 바람이 학교 밖에서부터 안으로 불기는 했다.

“광주에 온 김에 우리끼리 어디 가서 합숙 훈련이라도 할래?”

“훈련할 데가 있어?”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어때? 너희들 생각은?”

“나도 찬성!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애들이 희망의 끈을 놓기 시작했다.

이제 5분밖에 시간이 남질 않았고, 그 편이 심적으로 편할 것 같기는 했다.

크르릉.(점점 가까워져.)

오직 나만이 이상 징후를 눈치 채고 있었다.

크릉.(1km.)

“슬슬, 시간이 다 됐구만.”

임시 부스로 다가온 박세종 교장이 손목시게를 보며 말했다.

크르릉.(500m.)

“이렇게 돌려보내면 서로 아쉬우니, 이벤트전이라도 참가하는 게 어떤가?”

크릉.(200m.)

“이것도 편의를 상당히 봐 준 제안..”

말을 하던 박세종 교장이 입을 다물었다.

레이의 말이 아니라도 이제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모래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폭풍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는 네발짐승이 있었다.

네발짐승은 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구조물을 밟으며 마치 비행하듯이 움직였다.

그 속도는 흡사 레이와 비슷했다.

순식간에 맹렬한 기세로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낸 네발짐승.

검은 털이 바람에 쓸려서인지 온통 뒤로 밀려나 있었다.

헥헥. 헥헥.

크기는 크기 변환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은 레이와 비슷했다.

혀를 내밀며 거친 숨을 내쉬는 네발짐승.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더니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모두의 이목이 네발짐승에게 집중 됐다.

그리고 모두의 이목은 자연스레 네발짐승의 등에 타고 있는 두 사람에게 집중 됐다.

타잔이 환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헐벗고 있었다.

헐벗은 몸은 온통 햇빛에 그을려 있었고, 온통 크고 작은 상처 투성이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돌을 박아 넣은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육체.

그런 육체에 새겨진 상처와 구릿빛 피부.

피부톤과 상처는 마치 단단한 근육질에 자리 잡은 악세사리처럼 보였다.

크르릉.(하암. 쟤 다리에 근육 저렇게 많이 없었는데. 많이 컸네. 강아지 주제에.)

레이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나는 인간의 시선으로 강아지 등에 타고 있는 인간들을 쳐다봤다.

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은 지옥에서 생환한 자들이었다.

“내려라. 금석.”

원래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둔탁했나 싶을 정도로 무거웠다.

쿵.

태산 같은 사내가 네발짐승의 등에서 내렸다.

바닥이 한 차례 울렸다.

잔디밭인데도 불과하고.

“예.”

뒤이어 앞서 내린 사내 보다는 체구가 다소 작지만 그의 체구 역시 훌륭하다 못해 헤라클레스의 뺨을 때릴 정도였다.

쿵.

그가 역시 땅을 밟자 잔디밭이 한 차례 진동했다.

“7시 29분.”

임시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온 태산 같은 사내.

“서명해도 되겠습니까?”

박태산과 금석이 등장했다.

+ + +

-이름: 금석

나이: 17세.

체력: AAA(98)

근력: AAA(60)

지혜: D(80)

민첩: B(30)

이게 금석이 방학 전 능력치였다.

하지만 현재 능력치는 이거였다.

-이름: 금석

나이: 17세.

체력: AA(78)

근력: AA(90)

지혜: C(70)

민첩: AAA(60)

한 달 만에 이룬 성과라고는 전혀 믿을 수가 없는 변화였다.

체력 스텟이 1단계 상승했고, 근력 스텟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첩 역시 B에서 AAA로 한 단계 상승했다.

하지만 지혜 스텟은 무려 3단계나 상승해 있었다.

도합 금석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스텟을 6단계나 올렸다.

“야. 천천히 좀 먹어.”

우걱우걱.

아슬아슬했지만 우리는 학교 대항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됐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1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간단하게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인데 금석이 입에 접시라도 넣을 기세로 음식을 때려 넣고 있었다.

본래라면 박태산이 이런 금석을 만류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금석을 만류하는 학생들을 만류하고 있었다.

“도대체..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설휘의 한 마디에 게걸스럽게 밥을 먹던 금석.

얌전하게 먹는다고는 하지만 금석과 마찬가지로 입에 음식을 우겨넣던 박태산.

마지막으로 바닥에서 진공청소기처럼 고기를 먹던 뚜뚜까지.

“우..울어? 왜 그래? 교관님은 또 표정이.. 어? 뚜뚜야?”

“남자는..울지 않는다.”

말을 하는 금석의 눈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울지 마라..석아.”

말을 하는 박태산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멍멍!

짖는 뚜뚜의 눈과 콧방울이 촉촉했다.

“고생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관님.”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왔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말에 대놓고 금석이 ‘꺼억..꺼억.’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과 입은 쉬지 않고 고기를 탐하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 오신 겁니까, 교관님? 신지수 교관님 말로는 마지막 훈련이 남았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박태산이 휴지로 눈가를 슥 비비며 비장하게 말했다.

“탈북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됐다.”

“....”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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