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회
학교 대항전
광주에 위치한 ‘세종대왕 헌터 학교’.
학교 대항전 바로 전 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참가자’ 신분의 전국 각지의 학생들을 비롯한 교관들.
‘관전자’ 입장의 전국 각지의 학생들을 비롯한 교관들.
거기에 더해 일반인들과 기자들. 혹은 기업과 길드나 여러 단체의 관계자들이 세종대왕 헌터 학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탓에 학교 운동장과 강당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구석진 곳을 가도 어김없이 그곳에는 사람이 즐비했다.
세종대왕 헌터 학교의 교장실.
밖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0명도 넘은 인원.
그 중에 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약해보이는 사람 역시 한 명도 없었다.
이번 학교 대항전의 주최 측이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관계자들이었다.
“올해도 많이들 모였군, 그래.”
소파와 소파 사이의 단 한자리.
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그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들.
“내년부터는 학교 대항전 유치 장소를 아예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나도 동감이네.”
“올해 참가 학교가 20곳 정도인가?”
“그렇지. 15곳은 국내학교. 5곳은 국외학교가 참가 신청을 했다네.”
“크흠.”
사람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처음 말문을 열었던 남자가 헛기침을 한 차례 했다.
그는 이번 주최 측에서 총 관리 감독을 맡은 세종대왕 헌터 학교의 교장인 박세종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박세종을 향했다.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따지면 이 자리에서 급을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학교 대항전에서만큼은 박세종의 지위가 이 자리에서 제일 높다고 할 수 있었다.
“12시에 정상적으로 참가 신청서를 작성한 학교는 총 19곳이라네. 현재 시각은 5시 50분. 아무리 시간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음..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흠..아무리 사정이 있다고는 해도..”
박세종의 말에 몇 몇이 동조를 했다.
아직 1개 학교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순신 교장?”
박세종이 이순신 헌터 학교의 교장을 쳐다봤다.
박세종도 그렇고 이순신 헌터 학교의 교장도 그렇고 두 사람 이름이 학교 이름과 흡사 했다.
교장이 된 후에 개명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박세종 교감의 지목을 받은 이순신 교장이 여유롭게 차를 입에 가져갔다.
하지만 속은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교내 교관으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교장 선생님!! 애들 먼저 보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시간 좀 끌어주세요!’
신지수 교관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게 말이지.”
이순신 교장은 운을 떼고 다시금 입을 닫았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러다가 학교 대항전에 자신의 학교가 참가를 못하게 될 판이었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차가 바다에 전복해서 태평양을 건너가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이었다.
“아니, 근데 세종 교장.”
박세종 교장을 쳐다보는 이순신 교장.
“우리 학교를 견제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박세종 교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견제?”
“아아, 내가 말실수를 했나 보군.”
찻잔을 내려놓는 이순신 교장.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시기와 질투겠구만. 하하.”
“....”
“그럴 만도 하지. 작년에 서시우 학생의 활약으로 우리 학교가 대항전 우승을 했고, 올해도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 학교의 우승을 점치고 있지 않나?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달빛 계승자가 바로 우리 학교 학생이니 말이야.”
말을 하는 내내 이순신 교장의 눈이 힐끔힐끔 벽면 시계를 쳐다봤다.
시계 바늘은 17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네, 못 보던 사이 노망이 들었나?”
“..노망?”
시간 끌기 용으로 도발을 시전 하던 이순신 교장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노망이라니.
나이가 60이 넘어가면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노망’이라는 단어였다.
“그게 아니면 세상 보는 눈이 깜깜해진 것이겠지. 자네 학교에 아무리 달빛 계승자가 있다고 한들, 벌써부터 대정령사 칭호를 듣고 있는 우리 학교 학생. 차인수에게 범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림도 없는 소리!”
“아~ 소문으로 치마만 두르면 헤벌레하는 그 녀석 말하는 건가?”
“뭐..라?”
이순신 교장과 박세종 교장의 눈빛에 스파크가 튀었다.
“아무튼 간에 6시까지 도착 안하면 실격인 줄 알아.”
“이 영감...이.”
박세종 교장이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이순신 교장은 반박할 수 없었다.
주변의 분위기가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촉망 받는 인재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시간 개념이 이렇게 없어서야. 에잉, 쯔쯧.”
“기본이 안 된 녀석들을 봐서 뭐하겠나?”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생각하네.”
째깍째깍.
현재 시간 17시 58분.
박세종 교장이 말한 18시까지 단 2분밖에 남질 않았다.
“아니 이보게들.”
초조해진 이순신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살폈다.
“18시까지라는 규정은 없지 않은가? 안 그런가, 들?”
“규정상 12시 도착이 원칙이지. 하지만 편의상 사정이 있을 경우 사정을 봐주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내년부터는 새로 규정을 만들어야겠어.”
‘이런 쉰 내 나는 영감탱이들이..’
씨알도 먹힐 생각을 안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분.
이순신 교장은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혹시나 신지수 교관에게 연락 온 게 있나 해서.
하지만 없었다.
망신.
그것도 개망신.
뿐만 아니라 이건 치욕이나 다름없었다.
이순신 교장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1분 후의 미래를.
‘밖에 널려 있는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를 작성하겠지.‘
-이순신 헌터 학교. 지각으로 ‘학교 대항전’ 실격-
-사상초유의 사태!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디펜딩 챔피언의 어이없는 실격패.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다양한 기사 제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대로 1분이 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밖에 나가서 능력을 사용해서 생쇼를 하던,
바지를 벗고 미친 짓을 하던 시간을 끌어야 했다.
시계의 초침을 예의주시하던 이순신 교장.
마나를 끌어올리려고 할 때, 밖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걸 느꼈다.
워낙 사람이 많았던 터라 소란스럽던 밖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좌우로 길을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이들.
“크흐..크하하!!”
이순신 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 박세종 교장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다.
1분만에 희비가 교차 된 두 사람.
“아니 그런데.. 학생들밖에 없는데요?”
교장실에 있던 가장 젊은 남자가 의문을 표했다.
그의 말대로 나타난 이들 중 어디에도 교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4명의 여학생과 1명의 남학생.
그리고 하얀 늑대 한 마리.
“저런. 급하게 오다보니 한 사람을 두고 온 것 같구만. 안 그런가, 순신 교장?”
교장 두 사람의 희비가 다시 엇갈리려고 하고 있었다.
+ + +
“아직 멀었어?!”
“조금만 쉬다가 가자!”
살면서 오늘처럼 전속력 대시를 한 적이 두 사람에게 있었을까?
말을 하는 거 보면 전혀 없었던 게 분명했다.
아무리 능력치가 높다고 해도 무한 동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설휘와 정시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든 기색을 표출했다.
반면 나나 레이와 레이 등에 타고 있는 박아름과 강소라는 막 달리기 시작한 사람처럼 얼굴에 전혀 피곤함이 없었다.
“거의 다 왔어.”
“아까부터 그 소리 했잖아!”
“나 진짜 폐가 터질 것 같아. 진짜.”
아까는 의욕을 돋우기 위한 MSG였고,
지금은 진짜다.
우리는 광주에 들어섰고,
저 멀리 희미하지만 세종대왕 헌터 학교가 보이고 있었다.
나와 레이가 묵묵히 달리자,
이를 악물고 따라오는 한설휘와 정시아.
정시아는 한설휘 보다 민첩 스텟이 높았고,
‘뱀의 움직임’이라는 이동기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한설휘는 이동기 능력이 따로 없었다.
피닉스의 도움을 받으면 전혀 힘들이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겠지만 편의상 상공을 비행하는 건 불법이었다.
그래서 한설휘는 피닉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한설휘의 얼굴이 창백했다.
거친 호흡 때문에 입 안으로 들어가는 공기가 현저히 적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짜 거의 다 왔다.
아니, 다 왔다.
-세종대왕 헌터 학교-
아래 보이는 [제 3회 학교 대항전]이라고 적혀있는 현수막.
학교 외곽부터 내부까지 사람들이 겹겹이 자리를 자고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구조물을 발판 삼아 점프를 하듯이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학교 내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했고,
운동장이 바다가 좌우로 갈리듯 갈렸다.
“저기!”
운동장 안쪽에 ‘참가 신청서 작성하는 곳’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보였다.
내 말에 우리는 방향을 살짝 틀어 그곳으로 향했다.
“참가 신청 하러 왔습니다. 후우..”
임시로 설치 된 부스.
나는 숨을 고르면서 교관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했다.
정시아의 ‘뱀의 움직임’.
‘월광쇄도’와 ‘달의 축복’.
거기에다가 금석의 ‘자기 치유’능력까지.
여러 능력의 보조가 있었지만 나 역시 힘들었다.
“하아악..하악..”
“후우..후우우.”
한설휘와 정시아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반면 레이의 등에 타고 있던 박아름과 강소라는 멀쩡한 얼굴로 레이의 등에서 내렸다.
“이순신 헌터 학교 학생들이지?”
“네.”
“자, 여기.”
교관이 참가 신청서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학생란에 내 이름을 작성하고 바로 옆 서명 칸에 지장을 찍자,
내가 작성한 칸이 파란빛으로 물들었다.
“각자 작성하고 서명해야 돼.”
내가 다른 칸 역시 채우려는 걸 본 교관이 말했다.
나는 상태가 괜찮은 강소라에게 먼저 내밀었다.
작성완료 한 강소라는 눈치껏 박아름에게 전달했다.
작성 완료한 박아름.
바닥에 누워 있는 두 여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박아름의 손에서 참가 신청서를 받아 들고,
정시아의 배에 올렸다.
“손가락 움직일 힘은 있지?”
“후우..그 정도..쯤은..후.”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작성을 하는 정시아.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고,
옷이 분명 시스루가 아닌데도 속이 살짝 살짝 비치고 있었다.
“설휘야.”
다음 타자는 한설휘였다.
한설휘는 지금 죽기 직전이었다.
내 부름에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숨을 허덕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너는..어쩜 그렇게 멀쩡..해?”
“....”
한설휘가 작성을 할 때, 멀뚱히 서서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을 쳐다보던 강소라가 다가왔다.
“사람들이 진짜 많아.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을 쳐다본다?”
나 역시 느끼고 있었다.
참가 신청서 접수는 12시였고,
우리는 그보다 현저히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오늘의 이벤트는 참가 신청서 접수가 전부였는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기 위해서 남아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대적인 시선.
호의적인 시선.
호기심 가득한 시선.
무엇이든 간에 관심 가득한 시선 세례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고, 이는 앞으로 있을 학교 대항전에서도 쭉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
한설휘가 힘없이 참가 신청서를 내게 내밀었다.
참가 신청서의 공백은 거의 메워졌다.
하지만 아직 두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인솔 교관’란과,
‘교체 출전 학생 명단’란이.
이 란은 본래라면 박태산과 금석이 채워야 했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부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참가 신청서를 교관에게 내밀었다.
“음..곤란한데.”
“....”
“인솔 교관은 같이 안 왔어?”
“곧 올 건데 지금은..”
“아직 안 왔다는 말이지? 원칙상 기본 단위가 교관 한 명에 학생 다섯 명이라서 인솔 교관이 서명을 안 하면 접수가 불가능해.”
혹시나 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야단났네.‘
진짜 야단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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