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6화 (126/196)

126회

영도의 왕

기절한 대머리 신사.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덤프트럭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혔는데 ‘퍽’이나 ‘퍼억’이 아닌 ‘쿠웅!’이라는 소리가 났으니 어쩌면이 아니라 죽은 게 아닐까?

대머리 신사와 함께 식장 구석에 쳐 박혔던 박대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머리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슬쩍 대머리 신사를 쳐다본 박대식.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동안 폐관수련이라도 했는지 약물을 복용한 보디빌더처럼 몸이 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다.

“저딴 놈한테 시집보내려고 내가 그동안 애지중지 키운 줄 알아?”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당연히 고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를 공격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1번 타겟은 우리가 아닌 박아름 이었다.

“왜 말이 없어?”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 박대식.

“저, 아름이 아버님?”

그 모습이 흡사 박아름을 때리려는 것 같았다.

박아름의 앞을 가로막는 신지수.

“선생은 빠져 있어.”

들었던 손으로 거칠게 신지수를 밀쳤다.

완력이 어찌나 센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다시피 걸어오는 신지수.

“아니, 이 양반이!”

신지수는 고분고분한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콧김을 뿜으며 박대식에게 걸어가려고 할 때 박대식의 손이 아래로 향했다.

박대식의 손이 안착한 곳을 본 신지수.

걸음을 멈추고 두 부녀를 쳐다봤다.

박대식의 손은 박아름의 머리 위에 사뿐히 얹어져 있었다.

“애비가 늦었다.”

한 마디.

“애비가 그동안 미안했다.”

두 마디.

“애비를 용서해라.”

세 마디.

그 후 박대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박아름은 박대식 등장 이후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한 번도 떼지 않았다.

“나 밖에 좀 정리하고 있을게. 이런 건 쫌 쥐약이라.”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정시아가 말을 하며 식장 밖으로 나갔다.

“나도. 둘 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한설휘 역시 식장을 나갔다.

“너도?”

신지수가 내게 물었다.

“교관님도?”

“응, 나도.”

신지수와 나도 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대화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일이었다.

+ + +

“끝도 없네.”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한 시간 동안 위층과 아래층에서 끊임없이 범람하듯 민머리들이 나타났다.

정시아와 한설휘가 넌덜머리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 또 오네.”

신지수가 계단을 가리켰다.

“나 이러다가 대머리 혐오증 생길 것 같아.”

“동감.”

그녀들이 나서기도 전에 레이가 튀어나가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저 정도면 A등급 이상일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민첩은 S등급이 넘지 않을까?”

레이가 활약할 때마다 한설휘와 정시아가 품평회를 열듯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피닉스는 잘 지내?”

내 말에 미소를 짓는 한설휘.

“응. 지금 자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시아를 쳐다봤다.

“너는 훈련 잘 했어?”

“보여줄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방학 때 한 번도 훈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의 능력치를 보지 않았다.

그들을 실제로 만날 때까지 궁금해도 참았다.

그리고 오늘 한설휘와 정시아를 만났다.

그래서 그녀들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이름: 정시아

나이: 17세.

체력: BB(60)

근력: BBB(50)

지혜: AAA(10)

민첩: AA(10)

-이름: 한설휘

나이: 17세.

체력: AAA(5)

근력: BB(80)

지혜: AA(70)

민첩: AAA(90)

두 사람 다 괄목상대를 했다거나, 일취월장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분명 그들의 훈련 성과는 앞에 언급한 사자성어를 갖다 붙여도 될 정도였다.

똑같은 스텟을 가진 다른 헌터와 비교를 해보면 그녀들의 성장세는 분명 압도적이었다. 워낙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장세가 처음부터 상승곡선을 가파르게 그려서 티가 잘 안날뿐이었다.

정시아는 모든 스텟이 고루고루 올라 있었다.

그 중 지혜 스텟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내가 알려준 훈련 방법이 유효한 것 같았다.

한설휘 역시 정시아와 성장한 부분이 흡사했다.

그녀 역시 지혜 스텟이 다른 스텟에 비해 조금 더 올라 있었다.

이번 방학 때 한설휘와 정시아는 성장을 했다기 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듬는 훈련을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래서인지 능력을 사용하는 정시아와 한설휘의 폼이 전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차분해 보였고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두 사람에 이어 금석의 상태창을 열어보려다가 훈수 리스트를 닫았다.

열어보고 싶었지만 나중에 금석을 만난 후에 여는 편이 더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 같았다.

박진에게 도대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을까?

얼마나 성장 했을까?

‘궁금하다, 궁금해.’

나는 식장 안을 힐끔 쳐다봤다.

박대식과 박아름.

무슨 말을 하고는 있는 건지,

우리가 나올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10시 다 되가는데.”

신지수가 벽면에 있는 시계와 식장 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기왕이면 12시 안에 가는 게 좋은데.”

잊고 있었지만 내일부터 학교 대항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오늘 목적지에 도착을 해야 했다.

‘광주.’

올해 학교 대항전이 열리는 장소이자,

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알아보니까 1시간 지각할 때마다 1점의 페널티가 있더라고.”

“..괜찮다면서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신지수가 남 일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소라는요?”

“곧 올 걸? 뭐 좀 시켰거든. 어? 나온다.”

신지수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식장 안으로 향했다.

박대식과 박아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둘 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어이.”

식장에서 나오자마자 내 앞으로 걸어오는 박대식.

“우리 딸내미 잘 부탁한다.”

“....”

“그리고.”

못마땅한 눈으로 신지수를 비롯해 한설휘와 정시아를 쳐다보는 박대식.

“사위로 점 찍어뒀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가볍게 나를 비롯해서 일행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는 박대식.

“고마웠다. 딸내미를 구해줘서.”

박대식이 사과를 하다니.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여긴 이제 나한테 맡기도 다들 가 봐라. 딸내미한테 들으니까 단체로 어디 간다면서?”

“네.”

“그래. 잘 다녀오고. 갔다 오면 딸내미랑 같이 영도 한 번 와라. 손잡고 오면 더 좋고.”

박대식이 갑자기 내게 왜 이럴까.

박대식의 말 때문에 옆에 서 있던 한설휘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딸내미. 이리 와봐라.”

박대식의 말에 내 앞으로 걸어온 박아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말을 하며 내 손과 박아름의 손을 포개는 박대식.

“고마워.”

목소리는 되게 담담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웃고 있었다.

목각인형 같던 박아름이 웃다니.

“자, 이제 출발 하자고!”

신지수가 활기차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너희 아버지 갑자기 서진한테 왜 저러는 거야?”

박대식을 제외하고 모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정시아가 물었다.

“..우리 아빠는 강한 남자 좋아해.”

그래도 자신을 한 번 이겼던 상대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박대식은 아무래도 대인배 같았다.

“근데 너희 언제까지 손잡고 있을 거야?”

엘리베이터가 1층을 향해 가고 있을 때,

한설휘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나는 놓으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박아름이 손에 힘을 주고 놓을 생각을 안 했다.

“야! 교관님!”

갑자기 소리친 정시아.

“아, 귀청! 왜!”

“아름이 지금 옷 좀 보세요!”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박아름.

그녀의 복장은 지금 웨딩드레스였다.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

다행히 옷 갈아입을 때 박아름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 + +

“이게 말이 돼?”

신지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 역시 동감이다.

나는 창밖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현재 고속도로 위에 체류하듯이 머물고 있었다.

빵빵!!

빠앙!

온갖 클락션이 난무하고.

“야이 새끼들아!! 쫌 움직여라!!”

“바퀴에 본드라도 쳐 발랐나!!”

온갖 고성이 난무했다.

하지만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좀처럼 교통체중이 해소 될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다.

명절보다 더 심한 교통체중.

이건 전부 ‘학교 대항전’ 여파였다.

아마, 고속도로에 있는 대다수의 차들은 광주로 네비게이션을 찍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학교 대항전.

국내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축제나 다름없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고, 그들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세계 각국의 학교를 초청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교관님. 벌써 4시 다 돼가요.”

뒷자석에 앉아 있는 여성 4인방 중,

한설휘가 말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신지수의 휴대폰은 몇 시간 전부터 불이 나고 있었다.

학교 대항전의 주최 측인 ‘세종대왕 헌터 학교’와,

우리의 모교인 ‘이순신 헌터 학교’로부터.

띠리링~

“아, 진짜!”

또 다시 울리는 신지수의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원을 꺼버렸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남해고속도로의 중간지점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진주에 근접했다.

광주까지 절반도 못간 셈이라,

이대로라면 내일 도착할 수도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는 품에 안겨서 쿨쿨 잘도 자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쳐다봤다.

차들이 도로에 드러누운 것처럼 꼼지락만 거릴 뿐 이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뒷자석의 여학생들을 쳐다보는 신지수.

“너희만이라도 먼저 가라.”

“네?”

“교관님 그게 무슨..”

여학생들이 의아하게 신지수를 쳐다봤다.

“우리가 누구냐?”

“....”

“능력자잖아, 이 자식들아!”

그렇긴 하지.

우리는 다 능력자이긴 하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신지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전교 5등까지 모아놨는데 왜 이렇게 머리를 못 굴려? 야, 서진. 너 100m 달리기 몇 초야? 아니 1km 전속력으로 달리면 몇 초 만에 주파 가능해?”

“재보지는 않았지만 몇 초 안 걸릴걸요?”

“그렇지. 그리고 시아랑 설휘. 너희 민첩 스텟 꽤 높잖아? 거기다가 소라는 바람 정령 소환한다고 치고. 아름이는..”

슬쩍 레이를 쳐다보는 신지수.

“레이 등에 업혀 가면 되고. 자, 내 말 못 알아들은 사람 있어?”

“고속도로에서 능력자가 차 없이 달리면 불법..”

“설휘야.”

“네.”

“누가 고속도로로 달리랬니?”

“....”

“일단 고속도로에서 뛰어내려. 다들 오케이? 최대한 빨리 합류 할 테니까 도착해서 알랑방귀 좀 뀌고 있어. 뭣들 해? 안 내리고.”

쭈뼛거리며 뒷자석 문을 열고 내리는 여학생들.

“서진아.”

“네.”

내리기 직전 신지수가 내 팔목을 잡았다.

“애들 좀 부탁한다.”

“..네.”

나는 차에서 내렸다.

“레이.”

내 부름에 크기 변환을 하는 레이.

“아름아 레이 등에 타. 그리고 소라야.”

“응?”

“너도 레이 등에 같이 타. 아름이 근력이 부족해서 떨어질 수 있거든? 그러니까 바람 정령으로 안 떨어지게 위치 좀 잡아줘.”

“응!”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야. 이거 맞냐? 진짜?”

정시아가 의문을 표했다.

“나도 이건 쫌..”

한설휘가 맞장구를 쳤다.

“왜? 나는 다이나믹하고 좋은데!”

강소라가 레이 등에 올라타며 반대표를 던졌다.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상기 돼 있었다.

“이 방법밖에 없기는 해. 내가 알기로 오늘 안에 도착 못하면 불참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 인솔 교관이 없어서 참가 신청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선이야.”

언젠가부터 내 말은 여러 사람들에게 신뢰성과 믿음을 주기 시작했고, 내 말에 여전히 표정은 못마땅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휘와 정시아.

“안 가고 뭐 하냐, 이 똥 강아지 놈들아!!”

신지수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가자. 레이가 광주 위치를 아니까, 앞장 설 거야.”

우리는 레이를 필두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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