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5화 (125/196)

125회

영도의 왕

신지수에게 미션을 받았다.

미션명은 심플했다.

‘막아!! 어떻게 해서든 결혼식 막고 있어!! 내가 갈 때까지!’

그래서 중공군처럼 들이닥치는 민머리들을 차례차례 때려눕히고 있었다.

박아름이 등판하기 전까지는.

8시.

박아름이 신부대기실에서 나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복도에 쓰러져 있는 민머리들에게 시선을 전혀 주지 않는 박아름.

“야! 박아름!”

내 부름에도 곧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그녀가 내리는 층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비상구 계단으로 뛰었다.

“비켜.”

식장으로 들어가는 비상구를 막고 있는 민머리들.

이번 녀석들은 위에서 상대했던 녀석들 보다 기운이 눈에 띄게 강했다.

B등급의 능력치 정도로 추정 됐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키라고.”

“어린놈이 말버릇하고는.”

“그러게나 말이야.”

총 5명의 민머리가 정장의 단추를 풀며 각자 손을 잡았다.

“지나가고 싶거든, 우리를 뚫어야할 거다.”

“....”

비상구를 막아서고 있는 민머리들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흘러나온 마나는 단단하게 그들을 결속하기 시작했다.

흡사 박태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뚫기에 쉽지 않아 보였다.

지금 상태라면.

‘달의 축복 1단계.’

버프와 함께,

‘보이지 않는 공포.’

정시아의 능력을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일종의 환각을 보게 하는 능력이었다.

대다수의 탱커 능력자들은 정신계 능력에 취약했다.

뇌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 지혜 스텟은 A등급이었다.

거기다가 달의 축복까지 시전 했다.

“혀..형님? 배..뱀이 보입니다, 갑자기.”

“나..나도. 으..으아아악!!”

“떨어져! 떨어지라고! 아악!!”

“모..목을 물렸습니다, 행님!”

“정신 차려라!! 이건 최면...으..으아!”

녀석들이 버틸 재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속 돼 있던 녀석들 사이에 틈이 생겼고,

나는 가볍게 뛰어 넘어 문 안으로 들어갔다.

결혼식장.

살면서 와 본적이 처음이었다.

‘칙칙하네.’

검은 양복의 민머리들이 우글우글 했고,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뒤섞인 역한 냄새가 진동 했다.

그 사이에 있는 박아름.

마치, 잡초 사이에 피어난 꽃 한 송이 같았다.

“자, 귀빈 여러분들은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식장 안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가오는 민머리들 너머로 박아름을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난동을 부리고 싶었지만,

박아름이 나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하지마. 부탁이야.’

입모양으로 넌지시 말을 한 박아름.

“....”

결혼식 당사자가 저렇게 나오는데 난동을 부릴 수도 없고.

나는 다가온 민머리들 뒤에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신부 측 하객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한 자리는 해결이네. 안 그러냐, 애들아?”

“맞습니다, 행님!”

“예!!”

턱시도를 입고 있는 대머리 신사.

머리뿐만 아니라 금니가 번들번들 거렸다.

“조용히 있으면 식권이라도 하나 챙겨 줄 테니까, 얌전히 구경하더라고.”

내 기분을 읽었는지 뛰어가서 대머리 신사의 머리에 오줌을 눌 것처럼 이를 드러내는 레이.

‘진정해.’

“길을 터줘야지 한 자리 해결하러 갈 거 아닙니까?”

“하하! 그러네, 그래. 이 새끼들이 눈치도 없이 길을 막고 있었구만, 그래. 애들아, 뭣들 하냐? 길 안 트고?”

대머리 신사의 말에 민머리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아, 참참.”

대머리 신사 옆을 지나치려고 할 때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대머리 신사.

“위에서 우리 애들이 많이 신세진 것 같던데. 결혼식 끝나고 신세 갚을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

대머리 신사는 내가 박대식과 싸운 장면을 지켜봤다.

즉, 대머리 신사의 생각으로는 나에 대한 전투 데이터가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때의 내가 전투력이 1이었다면 지금은 20은 가뿐히 넘긴 상태였다.

“큭큭.”

내게 신세 갚을 생각에 신난 것인지 웃으며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대머리 신사.

나 역시 그를 따라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입장!”

곧바로 결혼식이 시작 됐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대머리 신사.

“멋있으십니다!”

“행님!!”

여기저기서 소리 질렀다.

기분 좋게 손을 들어 호응을 하며 주례자 앞에 서는 대머리 신사.

“자, 다음으로는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부 입장!”

박아름이 식장에 들어섰다.

위에서 봤던 여자들이 박아름의 드레스 밑단을 뒤에서 잡으며 같이 입장했다.

전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상갓집이네, 완전히.’

박아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결혼식은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식인 건지 많은 순서가 생략이 됐고, 주례사의 말 역시 짧았다.

“신부 박아름양에게 묻겠습니다. 박아름양은 박기석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혼인서약이 끝나고 있었다.

이어서 성혼선언문까지 주례자가 낭독하면 이 결혼은 끝이었다.

“박아름양? 맹세합니까?”

“....”

침묵했다.

주례자에게 신호를 주는 대머리 신사.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모양이군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은 두 사람에게 있어 축복의 날이니. 박아름양을 배려해서 맹세의 서약을 한 걸로 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들 중에 이에 동의 못하시는 분들 혹시 계십니까?”

하객은 전부 대머리 신사의 부하들이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동의하는 분위기로 단번에 흘러갔다.

단 한 명과 단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나는 손을 번쩍 들었고,

내 어깨에 걸치듯 앉아 있던 레이가 앞발을 들었다.

“다들 동의하시는군요. 자, 그렇다면..”

무시할 줄 알았다.

그냥 손 한 번 들어봤다.

나는 슬슬 움직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형식상 결혼식이기는 해도 보는 눈과 여기저기 카메라가 많았다.

이대로 결혼식이 끝난다면 박아름에게는 이제 평생 ‘대머리 신사 신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야 했다.

“레이. 크기 변환..”

콰쾅!!

레이와 함께 신지수가 올 때까지 난동을 부리려고 할 때,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이 대머리 새끼들이!!”

다행히 제 때 도착했다.

“지금이 조선 시대인 줄 아나!! 감히 내 제자를 너희 같은 대머리 빡빡이 새끼들한테 넘겨줄 것 같냐!”

옷을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옷차림의 신지수가 씩씩거리며 식장 입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못 본 사이 태닝을 한 것처럼 살이 검게 그을려 있는 두 여자가 신지수 양 옆에 서 있었다.

한설휘와 정시아.

신지수의 보디가드 겸 따라온 것 같은데.

“야, 서진!”

“서진아!”

두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인사는 나중에. 교관님,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겁니까?”

“응?”

“파토 낼 방법 말이에요.”“지금 파토 내고 있잖아?”

“아니..”

맡겨두라는 듯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앞으로 걸어가는 신지수.

“뭣들 보고 있냐! 당장 내 쫓지 않고!”

대머리 신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냐! 당장 나 호위해!”

덩달아 신지수도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신지수의 뒤를 따르며 다가오는 민머리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듯, 능력을 방출했다.

“시아야. 진짜로 공격하면 어떡해!”

“뭐, 어때. 너야말로 불 화력 좀 낮추지? 다 타 죽겠다.”

“응? 아..그러네. 최대한 약하게 한다고 했는데.”

말은 우리라고 했지만 정시아와 한설휘에게 편승해,

나는 그냥 앞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개개인이 일당백 수준인 걸 알아차렸는지 대머리 신사가 꽁무니를 내 빼려고 했다. 대머리 신사는 능력치가 낮은 사람이었다.

간사한 혀.

그게 대머리 신사의 주된 무기였다.

‘달빛 제 4초식, 보름달 가두기.’

나는 달빛 능력으로 도망치려는 대머리 신사의 다리를 포박했다.

“이..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딘지 알고, 감히!!”

“쉿.”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가져다대는 정시아.

“이 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대머리 신사.

정시아가 싱긋 웃으며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피해보시던지.”

휙.

툭 던지듯 손에서 단검을 투척하는 정시아.

단검은 정확하게 대머리 신사의 입을 향해 날아갔다.

“이..익..”

보름달 가두기로 인해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대머리 신사.

최대한 상반신을 움직이며 단검을 피하려고 했다.

“레이.”

크릉!

내 부름에 레이가 점프를 해서, 정시아의 단검을 입으로 낚아챘다.

“진짜 죽일 셈이야?”

“응? 뭔 소리야? 그냥 겁만 주려고 했는데.”

“....”

원래 이 정도로 정시아의 손속은 무자비하지 않았다.

나는 단검과 연결 돼 있는 미세한 실을 보며 생각했다.

‘아프리카에서 도대체 뭐하고 온 거야?’

레이가 정시아의 단검을 안 막았다면 단검은 그대로 대머리 신사의 목숨을 노렸을 게 분명했다.

“근데, 레이라니? 쟤가 레이야?”

한설휘가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어머. 레이야! 털이..하얗네?”

“몸집도 커 졌어.”

“응?”

“크기 변환 아이템 착용하고 있거든.”

크르릉!

내 말이 끝나자 몸의 크기를 원래대로 변환하는 레이.

“우와.”

한설휘가 입을 벌렸다.

“개 멋있는데?!”

정시아가 레이의 볼을 양 손으로 만졌다.

“이 녀석이 뚜뚜에게 맨날 맞던..”

크르릉!

정시아의 말에 코끝을 찡그리는 레이.

“오오~ 진짜 늑대 같은데?”

크르르.(주인. 앞발로 한 대만 때려도 돼?)

레이의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내 의사를 전달했다.

‘장난치는 척 한 대 때려.’

나와 눈빛 교환을 한 레이.

앞발로 정시아의 어깨를 툭툭치는 척 하다가 한 대 세게 때렸다.

“잉?”

자신의 어깨를 매만지는 정시아.

“나 지금 맞은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아니, 진짜..어깨가 지금 쫌 저린데?”

“착각이야.”

“..그래?”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정시아.

레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크르르.(뭘 봐?)

“지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대.”

“아, 진짜?”

“응.”

정시아와 사담을 나누고 있을 때,

한설휘가 우리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놀러온 거 아니잖아.”

일침을 가한 한설휘.

나는 레이의 몸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나를 따라 은근슬쩍 레이의 몸에 기대는 정시아.

우리의 시선이 모두 한 곳을 향했다.

“아름아.”

“....”

“저런 대머리 늙다리랑 한 침대 쓴다고 생각해봐. 저런 놈이랑 매일 밥을 같이 먹는다고 생각을 해봐. 저런 놈이랑 뽀뽀..우웁..”

헛구역질을 하는 신지수.

“아무튼 아름아. 이건 아니야. 네 마음이 어떤지 언니도 알아. 다는 모르지만 조금을 알 수 있어. 근데 이건 아니야. 언니랑 같이, 친구들이랑 같이 가자.”

신지수는 박아름을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아름의 표정을 보니 유효타로 먹히고 있지 않았다.

“아름아.”

“야, 박아름.”

한설휘와 정시아도 신지수를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10분.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박아름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가세요. 여러분들.”

“....”

“....”

“저는 이 결혼 할 거예요. 해야만 해요.”

박아름의 답변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레이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신지수를 비롯해, 한설휘나 정시아는 멘붕 온 것처럼 입을 벌렸다.

“크크..”

승자처럼 낮게 웃는 대머리 신사.

“아름아.”

박아름을 부르는 신지수의 표정에 자신이 없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의사였다.

아무리 잘못 되고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본인 의사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박아름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녀의 의지를 꺾기에는 우리만으로 역부족이었다.

그때, 뒤에서 황소 같은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스피어!!”

허리를 숙여 머리가 앞으로 향하게 돌진을 해오던 남자.

달려오던 추진력 그대로 대머리 신사를 들이 박았다.

스피어.

대머리 신사 이전에 영도를 장악하던 왕이 쓰던 기술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박대식.

박아름의 아버지였다.

박대식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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