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4화 (124/196)

124회

영도의 왕

영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구라고 볼 수 있는 영도대교를 지나야 했다. 본래 그 외에 부산대교라던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영도에서 자체적으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즉, 영도대교가 유일한 출입구였다.

“통행료 안 내냐고. 계속 똑같은 말 하게 할래?”

영도대교의 입구.

험상궂게 생긴 대머리 두 명이 위협하듯이 눈을 부라렸다.

“얼만데요?”

“얼마냐고? 하, 이 새끼 봐라. 야 두식아.”

“예, 행님.”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을 어떡하면 좋겠냐?”

“그러게요, 행님.”

“어이, 도련님. 운 좋은 줄 알아. 다른 조가 입구 경비 섰으면 꼼짝없이 가진 거 다 털리고 쫓겨났을 거니까. 얼마냐고 물었지? 너랑 그 품에 안은 개 한 마리. 합쳐서 150만원.”

나는 가만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소소한 팁 조금 챙겨줬으면 하는데. 워낙 살기 팍팍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두 대머리 중 형님이라고 불린 대머리가 실실 웃으며 동생 대머리를 쳐다봤다.

맞장구치듯이 실실 웃는 동생 대머리.

“왜 대답이 없으실까?”

형님 대머리의 표정이 조금씩 위협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크르르.

낮게 우는 레이.

“뭐야, 그 똥 강아지는? 저녁으로 먹기 전에 주둥이 닫으라고 해.”

크르르!!

나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여기서 가만히 저들이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볼 요량이었다.

“아름이 어디 있습니까?”

“아름이? 갑자기 뭔 개..설마 아가씨 말하는 거냐?”

“아가씨요, 형님?”

“그래. 너는 영도에 온지 얼마 안돼서 모르겠지만, 아가씨라고 있어. 지금은 그냥 계집 나부랭이지만. 아, 아닌가?”

“....”

“오늘 대장과 결혼을 하면 형수님인가? 하핫!!”

계집 나부랭이.

대장과 결혼.

여러 가지 키워드가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됐고,

나는 빠르게 키워드를 연결했다.

그리고.

“이..이 새..커억..”

“혀..형님!! 윽..”

두 대머리를 바닥에 눕히고,

그 중 형님 대머리의 목을 조르며 물었다.

“결혼식 시간. 장소.”

“커억..이..씨발놈이..”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는 대신 다리로 형님 대머리의 손을 밟았다.

“결혼식 시간. 장소.”

“그..그만..”

“시간. 장소.”

“마..마천루..시..시간은 8시..”

형님 대머리에게서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대식이 영도의 왕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박아름의 신변은 영도에서 안전한 신분이 아니었다.

기어코 방학 때 영도로 가더니,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

나는 핸드폰을 꺼내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7시 30분-

결혼식까지 30분 남았다.

나는 플라이 능력을 시전해서 날아올랐다.

일반 도심에서 하늘을 나는 능력을 사용하는 건 금지였지만, 내가 갈 곳은 영도였다.

무법지대.

그곳에는 법이 없었다.

나는 마천루를 향해 날아갔다.

+ + +

마천루는 영도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음식점이었다.

비단 영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였다.

나는 마천루 주변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에서의 움직임이나 창 안으로 보이는 마천루 안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개미떼처럼 검은 차가 마천루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마천루 밖과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흡사 조폭 대장의 결혼식 현장 같은 느낌이었다.

“번쩍번쩍하네.”

위에서 보니, 햇빛 때문에 사내들의 민머리에서 빛이 났다.

저 놈도 민머리, 저 놈도 민머리.

머리카락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영도의 대장인 대머리 신사 영향인 것 같은데.

나는 마천루의 상층부에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이었다.

나는 품에서 레이를 내려놓았다.

“아름이 냄새 기억하지?”

크르르.(응.)

“가자.”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민머리들을 마주쳤지만, 곧바로 기절시켰다.

쉬쉬하며 박아름을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

속전속결로 박아름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크르르!(저쪽!)

레이가 비상구 계단을 가리켰다.

비상구 문을 열자마자 민머리들이 손에 담배를 들고 쳐다봤다.

탁. 탁.

모기를 잡듯이 손으로 치우고,

앞서가는 레이를 따라 위층으로 달렸다.

10층 정도 오르자, 레이가 비상구 문을 쳐다봤다.

크르르.(여기.)

우리가 진입한 층이 상층부인 걸 감안하면 거의 꼭대기 층이었다.

나는 레이의 말에 따라 비상구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했다.

아래층과는 달리 조용했다.

적막이 흐르는 복도.

레이를 따라 끝에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크르르.(여기에 있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닫혀 있는 문을 쳐다봤다.

별다른 특색이 없어보였다.

귀를 기울이니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의 말소리였다.

“....”

노크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똑똑.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누..누구세요..?”

안에서 들리는 한 여자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박아름은 아니었다.

“아름이 친구입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영락없는 신부 대기실이었다.

거대한 거울이 벽면에 위치해 있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박아름.

그녀의 뒤로 몇 명의 여자들이 손에 화장품을 들고 있거나, 결혼식 소품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박아름.”

박아름은 내 등장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감은 눈을 뜨지도 않았다.

나는 박아름 옆으로 걸어갔다.

“가자.”

미동도 없는 그녀.

나는 재차 말을 하려다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신지수 교관님이 걱정 많이 하신다. 가자.”

팔에 살짝 힘을 줬다.

헌데, 그녀도 팔에 힘을 주고 버티는 게 아닌가?

“박아름?”

“....”

천천히 눈을 뜬 박아름.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 박아름의 표정은 더 읽을 수가 없었다.

무표정하게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보는 박아름.

“내가 선택한 일이야.”

투명하게 반들거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선택?’

지나가는 뚜뚜가 들어도 안 믿을 말이었다.

박아름은 선택장애를 넘어서 스스로 선택을 전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선택한 일이라니.

나는 박아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세뇌를 당하거나 능력에 조종당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만 나가줘. 곧 결혼식 시작이거든.”

“....”

박아름이 이렇게 단호할 수 있다니.

크르르.(아름아.)

레이가 박아름의 드레스 끝단을 입으로 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방학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캐릭터가 이렇게 바뀌었을까?

“안 나가면 사람들을 부를 거야.”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대머리 신사랑 결혼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

“나는 분명히 나가라고 했어.”

“....”

본인의 뜻이 이렇게나 확고하면 더 이상 설득 하는 게 무의미 했다.

만약 대상이 한설휘나 정시아였다면, 기절을 시켜서라도 데리고 갔겠지만 박아름은 아직 내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치유 능력자.

딱 그 정도.

“그래. 네 인생인데.”

나는 뒤를 돌았다.

“네가 책임져야지. 네 알아서 해.”

나가려고 할 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내 앞으로 걸어와 내 뺨을 갈겼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뺨을 어루만지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를 쳐다봤다.

“말을 해줘야지 알지. 안 그래?”

신부 대기실을 나섰다.

“너냐? 우리 애들을 조진 게?”

“오늘 같은 날 꼭 피를 봐야겠냐?”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를 통해 민머리들이 나타났다.

“어..? 형님, 저 자식 그때 그 놈 아닙니까?”

“응?”

“그 왜 있잖습니까, 예전에 진돗개 토너먼트에서..박대식이랑 떠서 이긴 놈.”

“....”

바로 내게 달려들 것처럼 굴더니 나를 알아보는 놈이 있었다.

호랑이 같던 기세가 갑자기 꺾인 민머리들.

“5초 준다.”

나는 손가락을 펼쳤다.

“살고 싶은 놈은 도망쳐라. 5. 4.”

주춤주춤.

“3.2.1. 그래. 그러던지. 소각.”

나는 한설휘의 능력을 사용했다.

손에서 뿜어져 나가는 불대포.

“으악!!”

“도..도망쳐!!”

민머리들이 혼비백산 비상구 계단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위협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민머리들이 전부 비상구 계단으로 사라진 걸 보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신지수 교관님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뿐만 아니라 아이들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영도의 어린신부가 되겠다는 박아름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그냥 가기에는 모든 원망의 화살이 내게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저기..”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았다.

신부 대기실에서 내 뺨을 때렸던 여자가 어물쩡거리며 서 있었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엄청 강해보이시는데..”

뭘까. 이 전제는.

“저희 아가씨 좀.. 구해주시면 안 될까요?”

“....”

“제발 이 결혼 좀 막아주세요!”

한 발자국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는 여자.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제발..”

엄청 간절해보였다.

나는 그녀가 조금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아름이가 대머리 신사랑 왜 결혼하는 겁니까? 짧게. 요약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상구 계단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점점 내가 있는 층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저희..저희 때문에요.”

“저희라 함은..”

“박대식 쪽 사람들이요. 대머리 신사가 왕권을 쥐고 난 후, 박대식 쪽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그래서..흑..”

“그래서 뭐, 대머리 신사가 아름이한테 자신과 결혼하면 죽이지 않겠다. 이런 소리를..”

“예. 맞아요.”

“....”

그러니까 박아름은 박대식의 똥을 떠안고,

박가네 식솔들을 구하려는 모양인데.

‘뭔가 내 책임도 있는 것 같네.’

내가 박대식을 이기지만 않았어도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들어가 있어요.”

나는 여자의 등을 떠밀었다.

“부탁드려요..”

아련할 정도로 나를 쳐다보며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는 여자.

나는 재차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를 통해 등장한 민머리들을 쳐다봤다.

아까와는 달리 급이 조금 높아졌는지 등장하자마자 기세가 살벌했다.

“뭣들 해? 당장 조지지 않고?”

기세뿐만 아니라 말 역시 살벌했다.

나는 적당하게 공격해오는 민머리들의 연장을 피하며 생각했다.

‘박아름을 구하기 위해서는 딸려 있는 사람들도 구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대머리 신사와 녀석의 식구들을 싹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한 싹을 자른다고는 해도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었다.

언제 또 대머리 신사 같은 놈이 나타나 설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으로는 박가네 사람들을 영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였다.

‘이것도 기각.’

박가네 사람들이 몇이나 될 줄 알고 그 사람들을 영도 밖으로 데리고 나온단 말인가. 아무리 내가 재벌2세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모두 영도 밖으로 데리고 나올 정도로 힘이 있지는 않았다.

사실 가능하기는 했지만 돈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 새끼가!!”

“죽여버려!!”

생각하는데 이 새끼들이 시끄럽게.

나는 단도를 들고 휘두르는 민머리 두 명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레이. 목은 물지마. 거시기도 물지마. 지지야, 그거.”

손을 털며 번개처럼 민머리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할퀴고 물어뜯고 있는 레이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나는 손뼉을 한 번 쳤다.

“전화 찬스.”

나는 신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박아름과 사이가 두터운 그녀라면 딱 알맞은 해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아름이는?

전화하자마자 묻는 신지수.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신지수가 한 마디 했다.

-좆 됐네.

“....”

괜히 전화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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