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회
영도의 왕
“이번에 나타난 빌런. 레볼루션 관계자더냐?”
“..예.”
첸은 레볼루션의 탄생에 있어 크나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첸.
“그랬구나, 그랬어. 몸은 괜찮은 게냐?”
“예. 보시다시피.”
“다행이구나. 서진아.”
“예.”
“내가 이번에 잠깐 자리를 비울 것 같구나.”
“....”
“리나가 각성하기 전, 여행을 잠깐 갔다 올까 한단다. 껄껄. 벌써부터 노망나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고 싶은지. 껄껄!”
호탕하게 웃는 첸의 얼굴을 관찰하듯이 쳐다봤다.
웃고 있는 탓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접혀 있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질 않았다.
“세리나는 어쩌시고요?”
세리나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었기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지수나 채린에게 부탁할 참이란다.”
“그럼 뭐..”
나도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근데..’
나는 밥을 입에 넣으며 첸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행 간다는 사람의 얼굴치고는 너무 무거워 보였다.
첸은 사서 일이나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쎄했다.
“여행은 어디로..”
물어보려고 할 때 현관문이 열렸다.
크르르!(주인! 첸!)
다급한 얼굴로 집에 들어온 레이.
“엄마..엄마..”
레이의 등에서 세리나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신음을 하고 있었다.
“분명 어제 성장통을 겪었을 텐데..”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첸.
레이의 등에서 세리나를 양 팔로 들어, 세리나의 방으로 걸어갔다.
크릉..크르르..(갑자기..쓰러졌어.)
내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리나를 쳐다보는 레이.
나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성장통은 지나가게 돼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현재 세리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자, 레이.”
세리나가 각성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한달 반 남짓.
그 기간 동안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크르르?(그냥 가?)
세리나가 걱정이 되는 모양인데.
나는 세리나를 침대에 눕히고 기도를 하듯이 중얼거리고 있는 첸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응. 그냥 가자.”
나는 레이와 함께 첸의 집을 나섰다.
+ + +
-나이트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강찬. 10년간 헌터 자격 정지 당하다. 사실상 헌터계에서 제명!
-휘청이는 제일 그룹. 이번 강찬 사건으로 인해 주가가 더 떨어져..
-나이트 길드의 국내 길드 랭킹이 대폭 하락해 12등을 기록. 과연 나이트 길드는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제일 그룹의 장남, 이수혁. 제일 그룹과 나이트 길드의 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클럽에서 여성 성추행 파문.
-일각에서는 제일 그룹의 매각설이..중략..
-나이트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오늘 아침 기자회견에서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
라이언 때문에 시끄럽던 언론이 맛 좋은 고기를 물은 맹수처럼 앞 다투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기상조였을 뿐이었다.
다만 시기가 조금 더 당겨졌을 뿐, 나이트 길드와 제일 그룹은 손잡고 같이 몰락의 길을 걷는 행보가 원래 예약 돼 있었다.
-곤두박질치는 제일 그룹에 비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조 그룹!
-창조 그룹의 장남이자 달빛 계승자인 서진. 이번 빌런의 습격 당시 몸을 던져가며 빌런을 막으려고 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중략..
-나이트 길드의 하향세에 많은 예비 헌터들의 시선이 태양 길드와 사신 길드를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중략..
사회는 일종의 시소게임이었다.
한 쪽이 내려가면 반대쪽이 자연스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창조 그룹.
태양 길드와 사신 길드.
그리고 나까지.
가만히 있었지만 주가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번 빌런 사건은 모두 만물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밝혀져 세간에는 만물상을 ‘영구 추방’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오늘 아침 출국을 한 만물상. 출국하기 전 기자에게 아침 인사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전해..중략..
-기자회견 없이 나 몰라라 출국을 감행한 만물상. 국민들의 공분을 피해 ‘도주’한 것일까?
아침에 만물상과 짧게 통화를 한 기억을 떠 올렸다.
‘오늘 나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올 거야. 모기 새끼들이 물어뜯을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온 몸이 가렵네. 일단 다른 나라에 가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연락하고. 채린..잘 부탁한다.’
만물상은 말 그대로 누명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되게 쿨하게 한국을 떴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서진아!!”
지금 시간은 아침 6시였고,
나는 레이와 함께 학교 대강당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입구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오늘은 학교 대항전이 시작 되는 하루 전 날인, 7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 시작인 걸 감안하면 오늘 모여서 출발을 해야 했고, 오늘이 바로 집합 날이었다.
금석, 정시아, 한설휘.
이 셋이 얼마나 성장 했을지.
얼마나 달라졌을지 기대가 됐다.
“오랜 만이다, 진짜!!”
하지만 등장한 인물은 내가 기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서,
내 손을 잡고 흔드는 여자.
기말고사 시험에서 함께 조를 이루었던 바람 정령사인, 강소라였다.
‘얘가 전교 5등이었지.’
잠깐 깜빡하고 있었다.
“너 못 본 사이에 더 멋있어진 것 같아!!”
호들갑을 떠는 강소라.
여름이라 해가 일찍 뜬 바람에, 새벽 6시이기는 하지만 햇살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침 6시면 되게 이른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이 높은 텐션이라니.
“나 있잖아 방학 때..”
내 안부와 함께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강소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행적을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아 참! 너 몸은 괜찮아?”
신나서 떠들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영상 봤어. 너 괜찮은 거.. 맞지?”
“응. 보시다시피.”
라이언과 싸운 영상을 본 것 같은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꼭 잡았으면 좋겠다. 그 나쁜 새끼..”
“....”
나도 꼭 잡았으면 했다.
지금 말고.
조금 나중에.
“어? 서진아 저기 봐봐.”
강소라가 강당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서히 애들이 오나보다 하고,
강당 입구 쪽을 봤는데 웬 이상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자다가 나왔는지 머리는 부스스한 산발에 복장은 어디서 유격훈련이라도 받고 온 것처럼 흙과 먼지 투성이였다.
피부톤은 어디서 태닝을 한 것인지 까무잡잡 그 자체였다.
어기적 어기적.
좀비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걸음걸이로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여자.
나는 그녀가 우리 앞까지 걸어올 때가지 누구인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좋은..아..침.”
힘없이 손을 한 번 휘저으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 여자.
“교관..님? 신지수 교관님?”
강소라가 믿기 힘든 얼굴 표정으로 신지수를 불렀다.
‘이 여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것보다 신지수가 여긴 왜 왔을까?
본래 인솔 교관이자 책임 교관은 박태산이었다.
그런데 신지수가 왔다.
엉망진창인 몰골로.
“어..어..”
강소라의 부름에 힘없이 대답하는 신지수.
“너희.. 지옥을 본 적 있냐?”
대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지옥.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 갈 확률이 높은 곳이긴 하지.’
“나는 봤다..”
“....”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말을 하며 치를 떨 듯이 양 팔로 자신을 껴안으며 몸을 떠는 신지수.
“박진 선생님은..악마야. 악마라고!”
“교관님. 진정 하세요.”
내 말에 나를 처량하게 쳐다보는 신지수.
“어떡해..서진아..”
“네?”
“어떡해 진짜.. 태산이랑 우리 금석이..”
“....”
“살려줘, 서진아. 지금 당장 울릉도로 가자. 울릉도로 가서 두 사람 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도로 주저앉는 신지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냐면, 강소라가 ‘무서워..’라고 중얼거리며 내 뒤로 조금 이동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강소라와 달리 아는 정보가 있었다.
‘이번 방학 때 박태산과 금석은 철권 박진이 있는 울릉도로 훈련을 갔다.‘
그래서 의아한 부분은 하나였다.
‘왜 신지수 교관이 울릉도에 갔을까.’
박진의 훈련은 예전부터 혹독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아무리 그가 1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박진은 박진이었다.
그래서 박태산과 금석이 호되게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자초지종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교관님?”
“....”
내 말에 악몽을 꾸는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신지수.
마치 괴담을 얘기하는 것처럼 그간 있었던 일을 풀기 시작했다.
+ + +
신지수의 모든 얘기가 끝났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오랜만에 박진을 보러 울릉도에 갔다는 걸로 시작했다.
겸사겸사 박태산과 금석도 보고.
(이 부분에서 나는 전후 관계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만났는데 자신도 훈련을 했다고 했다.
금석이나 박태산 만큼은 아니지만 고강도로.
박태산과 금석에 비하면 자신은 새 발의 피라고 했지만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했다.
이 부분을 특히나 강조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복귀할 시간이 찾아왔다.
헌데 박진이 마지막 훈련이 안 끝났다며 계속 붙들었다.
“나만..겨우겨우 빠져나왔어. 그래서 내가 태산이 올 때까지 너희들을 인솔하게 됐어. 울릉도에서 바로 오는 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안으로는 오겠죠?”
학교 대항전의 본격적인 일정은 이주 차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래서 첫 주는 약간의 페널티를 안기는 하겠지만 모든 인원이 모일 필요는 없었다.
근데 문제는 금석과 박태산을 제외하고도 세 사람이나 없었다.
“잘..모르겠네.”
대답을 하는 신지수 뒤로 입구 쪽을 쳐다봤다.
누군가 올 기미도 안 보였다.
“교관님. 팔에 근육 붙으신 것 같아요!”
모든 정황을 들은 강소라가 다시금 텐션을 찾았다.
신지수도 점점 얼굴색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띠링. 띠링.
연속된 문자음.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나 가는 중! 쏘리쏘리! 2시간 정도 늦을 것 같아!
정시아의 문자였다.
-애들아 미안. 나 이제 비행기 탔어. 진짜 미안해.. 금방 갈게!(우는 이모티콘)
한설휘였다.
두 사람 다 사이좋게 지각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온 문자를 신지수에게 보여줬다.
신지수는 임시 인솔 교관이었기 때문에 한설휘나 정시아가 박태산에게 문자를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 천천히 오라고 그래. 12시까지 가야하기는 한데, 양해를 구하면 봐 줄 거야 아마도. 그건 그렇고.”
강소라에게 받은 머리끈으로 머리를 동여매며 나를 쳐다보는 신지수.
“서진아.”
“네.”
“영도에 좀 갔다 올 수 있어? 지금 바로.”
“....”
“아름이가 연락이 안 돼. 울릉도에 있을 때부터 계속 연락을 해봤는데 도통 연락을 받질 않아. 그런 애가 아닌데.”
박아름.
그녀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 중에 거의 유일하기 치유 능력이 있는 학생이자, 신지수의 수제자였다.
그녀도 이번 우리와 함께 하기로 예정 돼 있었다.
전교 5등 안에 드는 학생이었기에 예정이 아니라 확정이 돼 있었다.
“보다시피 내가 지금 죽을 것 같거든. 쫌 부탁 좀 할게.”
“서진아, 나도 같이 가자!”
“아니, 소라 너는 내 옆에 있어.”
“..네?”
“내가 지금 힘들어서 내 손이랑 발 좀 돼 줘야겠다. 우선 바람 정령 좀 소환해 봐. 더워 죽겠네.”
“교관님. 정령은 그런 용도가 아니거든요! 정령은 친구라고요, 친구!”
“그러니까 그 친구 덕 좀 보자고.”
“싫어요!”
“너 이렇게 갑갑한 애였니?”
“갑갑..이요? 살면서 처음 들어요, 그런 말.”
“내가 말을 잘못했네. 융.통.성. 융통성이 없구나, 너.”
신지수와 강소라가 서로를 보며 눈에 힘을 줬다.
“갔다 올게요.”
새우등 터지기 전에 나는 강당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조심히 갔다 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신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당을 나섰다.
+ + +
“분위기가 많이 변했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내가 영도를 방문했던 적이.
영도의 왕으로 군림하던 박대식이 물러나고,
대머리 신사가 새로운 왕이 되었다.
즉, 지금 정권의 우두머리는 대머리 신사라는 얘기인데.
“통행료. 통행료 가져오라고 이 새끼야.”
“....”
아무래도 박대식이 왕으로 있을 때보다 더 팍팍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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