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1화 (121/196)

121회

성녀의 호감을 얻으셨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녀의 말이 대회의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성녀.

그녀는 ‘거짓’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역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능력자 사회에서 능력 보다 인품과 덕망이 우선시 회자 되는 유일한 캐릭터.

그녀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린의 손을 놓는 성녀.

따스하게 웃었다.

웅성웅성.

‘저는 십자가 인장 무리와 손을 잡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반대로 저는 십자가 인장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을 죽인 녀석들이니까요.’

채린의 말은 사실이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 사람을 향했다.

한 사람의 대답여하에 따라 사회적으로 꽤나 큰 이슈가 될 게 분명했다.

“잠시 손 좀..”

손을 뻗는 성녀.

탁.

“꺄악!”

거칠게 성녀의 손을 쳐낸 강찬.

어찌나 세게 쳤던지 성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자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감히 성녀님을!”

성녀는 대한민국에서 신줏단지 모시듯이 모시는 헌터이자 능력자였다.

나이가 제법 연로한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발대발했다.

늑대를 품에 안고 옆에서 성녀가 ‘진실의 거울’을 사용하는 걸 지켜보던 서진. 성녀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굽히면서 손을 뻗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네.”

서진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성녀.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표정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성녀는 전혀. 절대.

유약한 성격이 아니었다.

붉어진 성녀의 손등을 빤히 쳐다보던 서진.

품에 안고 있던 새하얀 늑대를 내밀었다.

“손등 대고 있어요. 그럼 좀 괜찮을 거예요. 이 아이 달빛을 품고 있거든요.”

성녀의 마나는 신성력이었는데,

달빛은 그와 유사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크릉.

서진의 품을 발판 삼아 폴짝 뛰어서 성녀의 품에 안기는 하얀 늑대.

“아..”

얼떨결에 하얀 늑대를 안은 성녀였는데,

멍하니 하얀 늑대가 하는 행동을 쳐다봤다.

하얀 늑대는 천천히 자신의 붉어진 손등을 핥고 있었다.

‘따뜻해.’

성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얀 늑대를 안고 있는 손을 올려 얼굴에 비볐다.

크르르.(괜찮아?)

‘어..?’

성녀는 동물의 마음이나 기분을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동물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헌데.

“말..을 해?”

분명 늑대의 소리인데 성녀의 귀에는 음성 번역기를 사용한 것처럼 하얀 늑대의 말이 고스란히 들렸다.

크릉.(응. 근데 이제 그만 비벼주면 안될까?)

“아..아 미안.”

하얀 늑대가 은근슬쩍 앞발로 자신의 얼굴을 밀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볼에서 하얀 늑대를 떼어낸 성녀.

‘신기하다.’

말을 하는 늑대라니.

소유욕이 없는 성녀였지만,

꼭 한 번 자신이 키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털이 어찌나 부드럽고,

따뜻한지 하루 종일 품에 안고 싶은..

‘아차.’

잠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까먹은 성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이름이 서진이었지 아마?’

성녀는 서진을 알고 있었다.

창조 그룹의 장남.

달빛 계승자.

엄청난 망나니.

단편적인 정보긴 해도 성녀는 서진을 알고는 있었다.

‘실제로 보니 꽤..미남.. 아니 완전 미남.. 망나니도 아닌 것 같고..으음..’

만약 게임이었다면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서진에게 이런 메시지가 떴을지도 몰랐다.

[성녀가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호감지수 +1000]

하지만 그런 게 서진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성녀를 향해 손짓을 하는 서진.

서진의 얼굴을 보느라 살짝 넋을 놓고 있다가 화들짝 그의 앞으로 뛰어갔다.

“진실의 거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한 그의 말투.

‘젠틀해..아차.’

하마터면 또 넋을 놓을 뻔 했다.

아무 생각도 안한 것처럼 태연하게 서진의 품에 하얀 늑대 건네기 스킬을 시전 한 성녀.

‘자연스러웠어.’

스스로 흡족해하며 서진의 뒤 쪽을 쳐다봤다.

“이거 놓으십시오. 놓으시라는 말입니다!”

협회장의 손에 붙들려 있는 강찬.

발악을 하듯이 협회장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자네가 시작했지 않은가? 시작을 했으면 마무리를 해야지. 그게 응당 세상의 이치 아니겠나?”

“아무리 협회장님이라도 무력행사를 하겠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마나를 끓어 올리다가 아차 싶은 강찬.

‘너무 흥분 했어.’

마나를 갈무리하며 낮게 숨을 골랐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잠깐 망각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거부하겠습니다. 거부할 권리 정도는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협회장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며 소매를 정돈하는 강찬.

“저는 사진 조작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을 하는 강찬.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는 신빙성이 전혀 없다는 것쯤은.

하지만 여기서 꼬리를 말 생각이 없었다.

‘이 보다 더한 역경과 고난을 헤치며 이 자리까지 온 나다.’

어떻게 해서든 타개할 방법이..

“거짓입니다.”

강찬의 시선이 성녀를 향했다.

분명히 자신과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거짓이라니.

뭐가 거짓이라는 말일까?

강찬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성녀의 두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성녀의 ‘진실의 거울’ 능력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사용 가능한 걸로 알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말에 대해 ‘거짓’이라고 말한 게 틀림없었다.

그때 강찬의 눈에 들어온 짐승 발 하나.

“....”

언제부터 올리고 있던 건지,

자신의 팔뚝에 슬며시 앞발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강찬은 짐승을 가슴에 안고 있는 짐승의 주인을 쳐다봤다.

‘서진.’

그리고 그의 뒤에 숨듯이 서서 서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녀.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되네?”

가볍게 미소를 짓는 서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같은 속성 능력자라면, 마나를 공유하는 게 가능합니다. 성녀님의 속성은 빛. 저는 달빛입니다. 같은 속성은 아니더라도 유사 속성인 셈이죠. 그래서 혹시나 해서 시도 해봤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설명하듯이 말을 하던 서진.

다시금 시선을 옮겨 강찬을 쳐다봤다.

“되네?”

“..그러니까 네 말은 너와 늑대 새끼가 마나 통로 역할을 해서 성녀가 능력을 사용 했다는 거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니까 성녀님의 능력이 사용 됐겠죠. 안 그래요, 성녀님?”

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성녀.

“서진씨..아니 서진님..의 말이 맞아요.”

서진의 말에는 고개를 갸웃하던 사람들이 성녀의 말에 곧바로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사람은 지위와 이미지가 중요했다.

“마나 컨트롤이 뛰어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지. 자, 그래서.”

협회장이 강찬을 쳐다봤다.

“사진 조작 지시를 내린 게 사실이더냐?”

“....”

쥐새끼라 할지라도 궁지에 몰리면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보통 쥐새끼가 아닌지 약간의 침묵을 가지던 강찬이 창가에 서 있던 채린을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말한 게 전부 거짓이라면 어째서 빌런이 사신 길드를 습격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저 여자가 교묘하게 말을 지어내 성녀의 능력을 피해갔을 겁니다. 분명합니다!”

존대는 개나 줘버린 강찬의 화법.

그의 화법에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목적은 어제 나타난 빌런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회의의 포커싱은 빌런이었다.

사진 조작이나 그런 게 아니라.

빌런이 왜 등장 했는지.

어째서 사신 길드를 습격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 자리는 이러한 문제를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한 강찬이 목소리에 힘을 주려고 했다.

그때 뒷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고 등장하는 한 남자.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가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리네, 울려. 빌런이 왜 사신 길드를 습격했냐고? 나 때문이다. 됐냐? 내가 그 새끼 아이템 들고튀었거든. 그랬더니 잡으러 왔지 뭐야.”

“....”

“뭐야 그 눈빛들은? 내 말이 구라 같아? 야, 성녀. 나한테 능력 사용해봐.”

성녀를 향해 걸어간 남자.

보란 듯이 성녀의 손을 들어 자신의 팔목을 잡게 했다.

“내가. 나 만물상이 아이템을 들고튀어서 나 잡으려고 온 거다. 구라면 내가 가진 아이템 전부를 건다.”

고해성사를 하듯이 크게 말을 하는 만물상.

잠시 후.

“진실..입니다.”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놈 정체가 도대체 뭡니까?”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정체?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진실입니다.”

“미안하게 됐수다~ 나 때문에.”

“거짓입니다.”

“언제까지 내 팔목 잡고 있으려고?”

성녀의 팔을 떼어내며 서진과 눈빛을 교환하는 만물상.

강찬을 쳐다봤다.

“야. 너 뭐하는 놈이냐?”

건들건들 거리는 만물상의 말투.

“뭐하는 놈인데 남의 여자를 건들고 자빠졌어? 죽고 싶냐? 죽여줘?”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남의 여자라니.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하잖아요!”

“오해하라고 한 말인데, 당연히 오해를 해야지. 아무튼.”

강찬 앞으로 걸어가 강찬의 어깨를 툭툭 치는 만물상.

“너나 니네 길드 나한테 찍힌 줄 알아라. 앙?”

세계 랭커 만물상.

그의 입김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랄하지마!”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드디어 이빨을 드러냈고.

퍽.

“커억..”

만물상의 주먹 한 방에 이빨이 뽑혀나갔다.

+ + +

회의는 그 후로 한 시간 정도 지속됐다.

“다른 나라에 수배 전단을 뿌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회의의 결론이었다.

드디어 다사다난 했던 회의가 끝이 났다.

나는 하품을 하며 내 무릎에서 자고 있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채린만 구해주고 빠지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운이 좋았어.’

녹음 파일을 건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회의실을 향하다가 우연히 사진 조작범들을 발견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진실공방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말을 안 해줘도 되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제 있었던 일이 만물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즉, 만물상만 한국에 없다면 2차적인 공격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딱히 경계를 강화하거나 하지 않고,

빌런을 잡는 데만 초점을 뒀다.

당분간 레불루션에서 한국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고.

나는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현상유지가 얼마나 될지 몰랐지만,

재차 레볼루션이 한국에 모습을 드러낼 경우.

그 때는 그들의 정체를 밝혀야 했다.

“그리고 만물상님은 일주일 안으로 한국을 떠나주시기 바랍니다.”

“예이,예이~”

만물상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만물상은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빌런의 목적은 자신이라고.

그래서 강제추방 결정이 내려졌다.

빌런이 잡힐 때까지.

잡히지 않으면 한국에서 영구추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앞쪽에 보이는 빈자리를 쳐다봤다.

강찬이 앉아있던 자리였다.

만물상에게 한 대 맞고.

채린에게 뺨 한 대 맞고.

협회장에게 다이렉트로 헌터 자격 정지 10년을 선고 받았다.

강찬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10년이면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 사실을 아는지 곧바로 회의실을 이탈했다.

아무도 떠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협회장의 비서가 말을 끝맺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레이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협회장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는데,

내게 다가온 한 여인.

“그 아이 이름이 뭐예요?”

“레이. 레이입니다.”

“아..레이.”

그리고 잠깐 딴청을 피우다가 졸고 있는 레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여인.

“다음에 또 보자, 레이.”

말은 레이를 향해서 했는데,

눈은 힐끔 나를 쳐다봤다.

총총 걸음으로 회의실을 나가는 성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어딜 그렇게 쳐다보냐?”

“서진씨.”

내게 다가온 만물상과 채린.

우리는 회의실을 나가,

아래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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