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20화 (120/196)

120회

정비

"설명을 해주시죠.“

“저희 길드원이 5명이나 죽었습니다.”

“저희 길드원 역시 3명이나 죽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헌터 협회 상층부에 위치한 대회의실.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날이 선 표정으로 회의실 중간에 서 있는 한 여자를 향해 있었다.

채린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어떡하지.’

이 시간은 말이 회의 시간이지, 청문회나 다름없었다.

의문의 빌런이 나타나 사신 길드를 공격했다.

이게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빌런의 목적은 사신 길드.

혹은 내부의 누군가.

즉, 의문의 빌런은 사신 길드와 연관이 돼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헌터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대게 빌런이 되는 거고.

문제는 이번에 나타난 빌런이 너무나도 강력했다는 점과 더불어, 사신 길드를 도와주기 위해 나선 타 길드 소속 헌터들이 다수 희생됐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빌런을 잡지도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짝.

“자자.”

모든 걸 지켜보던 이무신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물 한 모금씩 마시고 진정들 좀 하자고.”

그의 말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각 길드의 수내부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잘 걸렸다.’

‘어디 혼자서 치고 나가려고 해?’

‘길드 평판이나 이 참에 확 깎아야겠어.’

그들의 생각을 이무신 협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사신 길드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다.

세계적인 길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직전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는 좋을 수는 있으나, 대한민국의 다른 길드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은 일이었다.

가뜩이나 밥그릇은 적고, 수저는 많은데 한 명이 밥그릇을 통째로 들고 가버리려고 하니.

서로 간에 견제와 시기, 질투는 분명 서로를 성장 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 마녀사냥이나 다름없었다.

이무신 협회장은 입술을 달싹거리려는 좌중을 보며, 살며시 마나를 흘렸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마스터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명함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신 길드 마스터.”

협회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턱에 팔을 괴고 채린을 쳐다보는 한 남자.

태양 길드. 그리고 사신 길드.

두 길드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탑 급에 속하는 길드의 부길드마스터였다.

탑 급이라고는 하지만,

태양 길드와 사신 길드와 비교 했을 때는 급이 약간이지만 떨어졌다.

나이트 길드의 부길드마스터, 강찬.

“길드 활동 내역을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있습니까?”

“....”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길드 활동 내역은 영업 비밀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외적으로 굵직한 활동은 공유를 하거나 알리긴 하지만, 작고 중요한 업무 같은 경우는 모두 비밀리에 진행 됐다.

채린의 입장에서는 다크니스 길드에서 바보 3인방을 갑작스레 영입을 했다던지, 혹은 박쥐에게 집을 구해주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던지 하는 것들이.

채린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강찬을 쳐다봤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릿한 미소를 짓는 강찬.

“뭐가요?”

강찬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올해 발생한 여러 건의 ‘십자가 인장’ 사건. 모두 사신 길드에서 독식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중 한 건은 화이트 길드와 공조를 통해..”

“부정하지는 않으시군요.”

채린의 말을 끊은 강찬.

여유롭게 주변을 한 번 쭉 훑었다.

“뭔가 구린내가 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저는 ‘십자가 인장’과 이번 사건이 크게 밀접 돼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 자는 도대체 뭐를 알고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짐작인지,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가 하는 말은 정답에 가까웠다.

“사신 길드의 길드 브랜드 평판과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는 딱 ‘십자가 인장’ 사건을 처리하고부터입니다.”

내친김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찬.

“어쩌면 말입니다.”

채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성과를 내기 위한 자작극이 아니었을까요?”

“그게 무슨..”

“이봐요, 그건 쫌 선 넘은 발언 아닌가요?”

“나이트 길드 부길마. 언행을 조금 자제하시죠.”

아무리 이곳에 있는 이들의 공통된 목적이 일치한다고는 하나,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었다.

강찬은 그 선을 넘어도 훨씬 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채린 옆에 서서 진정하라는 듯이 양 손을 들어 보였다.

“채린씨.”

길드 마스터라는 호칭에서 이름을 부르는 강찬.

그의 호칭 변화는 단순히 한 가지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내가 너 보다 우위에 있다.’

강찬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채린을 쳐다봤다.

“길드 활동 내역을 공개 하시겠습니까?”

“싫다면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딱!

손가락을 한 번 튕구는 강찬.

“증거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뒤를 돌아 벽면에 설치 된 화이트 스크린을 쳐다보는 강찬.

타이밍 좋게 화이트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이 나타났다.

어제 발생한 현장에서의 사진이었다.

딱!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구자 사진이 클로즈업 됐다.

상반신이 드러난 빌런의 육중한 몸.

딱!

상반신이 화면에 가득했다.

딱!

가슴팍이 클로즈업 됐다.

“어..어?”

“저..저건..”

“저 문양은..”

딱!

마지막으로 클로즈업이 한 번 더 되자,

여러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런의 가슴팍에 타투처럼 박혀 있는 십자가 문양.

저건 이전에 나타났던 십자가 인장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자,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아까와는 180도 달라졌다.

모든 청중이 강찬에게 귀를 기울였다.

“사신 길드가 ‘십자가 인장’과 손을 잡고 벌인 자작극. 그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졌고, 십자가 인장의 대장이 사신 길드를 공격했다. 왜 사이가 틀어졌으며,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 가설이 낭설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계십니다.”

강찬의 말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하지만 많은 길드가 사신 길드에 반감을 품고 있던 터라, 억지라 할지라도 회의실 분위기는 완전히 강찬의 말에 한 표씩 던지는 분위기였다.

‘어..어떻게?’

채린 역시 강찬이 준비한 자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저건 십자가 인장이 확실했다.

하지만 서진의 말에 따르면 십자가 인장은 간부들에게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화면 속의 라이언 가슴에는 버젓이 십자가 인장이 있었다.

채린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대로라면 강찬의 술수에 넘어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은 강찬의 술수에 넘어간 걸로 보였다.

‘정신 바짝 차려.’

여기서 자신이 정신줄을 놓거나,

말실수를 하게 되면 그동안 이루어온 사신 길드의 업적과 세계 길드 5위 안에 들고자 하는 꿈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근데 뭐라고 반박하지?’

단순히 아니라고 해봤자,

믿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믿어줄 분위기였으면 자신이 이렇게 앞에 서 있지도 않았다.

‘레볼루션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 걸까?’

강찬의 말대로 길드 활동 내역을 공개해봤자,

박쥐나 바보 3인방 때문에 걸고넘어질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레볼루션에 관한 정보를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오픈하는 것.

‘회의에서 레볼루션에 관한 언급은 안 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진이 당부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언급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

강찬의 표정은 흡사 먹이를 포착한 하이에나였다.

채린은 크게 숨을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서진씨.. 미안해요.’

“사실은..”

운을 뗐던 채린.

뒷문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뚜벅뚜벅.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품에 새하얀 늑대를 안고 앞으로 걸어 나온 남자.

그의 행동과 동선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협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남자.

그의 인사에 짧게 손을 드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 협회장이 말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지나가다가 재밌는 말을 들어서요.”

핸드폰을 꺼내든 남자.

몇 번 터치를 했다.

녹음한 것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야. 진짜 이거 업로드 해도 되는 거 맞아?

-하라잖아.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어?

-아니 하긴 하는데.. 이건 쫌 아닌 것 같은데..

-이번 일 잘만 마무리 되면 우리 팀장으로 승진 시켜준다고 한 말 벌써 잊었어?

-..아 씨발. 강찬 그 새끼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왜 아무것도 없는 맨살에 십자가 마크를 포토샵 해서 넣으라는 거야?

-낸들 아냐? 야, 신호 왔다. 사진 빨리 올리고 화면 틀어.

뚝.

음성이 모두 끝났다.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은 남자가 물끄러미 강찬을 쳐다봤다.

강찬은 사실무근이라는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누가 보면 제가 조작이라도 한 건 줄 알겠습니다? 조작범은 제가 아니라 제 옆에 버젓이 서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옵니까? 아무리 재벌가의 장남이라고는 해도 선은 지키시죠. 어이 경비. 경비 밖에 없나?”

크르르.

낮게 우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

조용한 시선으로 채린을 쳐다봤다.

씨익.

별 일 아니라는 듯 웃는 모습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혼란스럽던 머릿속과 마음이 파도가 한 차례 밀고 간 것처럼 정화되는 느낌을 느꼈다.

“요즘 제일 그룹에서 비리가 계속 터지는 거 아시죠? 뉴스에 많이 보도 되고 있으니 모르시는 분은 없을 테고.”

몇 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도 없고. 지금까지 터진 제일 그룹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협회장이 의문을 표했다.

“굴뚝에 연기가 덜 나도록 막아주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협회장님? 바로 나이트 길드입니다. 제일 그룹과 나이트 길드. 파트너쉽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헌데 이번에 터진 제일 그룹의 비리 사건은 연기가 너무 거센 바람에 지금 허덕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그 연기를. 사신 길드로 막으려는 겁니다.”

“허..헛소리!!”

강찬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지금 그 발언. 절대 가볍게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

“저도 가볍게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서로 가볍게 넘기지 말자고요. 자, 하나부터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자고요.”

강찬과 대조적으로 늑대를 안고 있는 남자는 굉장히 차분했다.

“방금 제가 튼 음성 녹음. 사실무근 입니까?”

“다..당연하지!”

“그럼 지시한 적도 당연히 없겠네요?”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긴요, 당신이 하는 행동 그대로 하고 있는데요. 왜요? 불편해요?”

“....”

강찬이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손도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들으셨다시피 강찬 부길드마스터는. 아니 이 자리에 나이트 길드와 제일 그룹을 대표해서 나오셨으니 대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강찬 대표님은 제가 제시한 녹음 자료에 사실무근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진실인지 한 번 볼까요? 들어와.”

남자의 말에 뒷문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두 남자.

그들을 보는 순간 강찬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강찬 대표님. 모르는 사람입니까?”

뒷문을 통해 들어온 두 남자의 가슴팍에는 버젓이 나이트 길드의 앰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저는..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흐음. 그래요?”

늑대의 머리를 헝클이는 남자.

좌중을 슥 둘러보더니 사제복을 입고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성녀님. ‘진실의 거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창조 그룹을 걸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저 그게..”

성녀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새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협회장과 눈이 마주친 성녀.

협회장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 두 사람 다 협조 부탁하네.”

협회장이 말한 두 사람은 채린과 강찬이었다.

앞으로 걸어나가는 성녀.

그에 따라 두 남녀의 희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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