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회
정비
"이 개@#!“
“....”
“씨@(#*!”
만나자마자 욕을 미친 듯이 퍼 붓는 걸 보니 살만한가보다.
“형.”
“내가 왜 네 형이야!!”
“언제는 형이라고 부르라면서요?”
“지랄~ 내가 어제 너 때문에 죽을 뻔 한 걸 생각하면 아오~”
병실에 누워있던 만물상이 두 주먹을 쥐고 바르르 떨었다.
“왜 저 때문에..”
“왜? 왜에?”
주먹을 떠는 걸로는 모자랐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만물상.
“아야..”
어깨를 문지르며 도로 누웠다.
대신 눈을 치켜뜨는 만물상.
“네가 제때 왔어봐라. 내가 어제 그 꼴을 당했겠냐? 그러니까 너 때문이지. 안 그러냐?”
“....”
“왜 대답이 없어? 확 그냥 거래고 나발이고 없던 일로 할까보다.”
“인터넷에 형이랑 채린씨 포옹하고 있는 거 사진 돌아다니던데.”
“..그..그래? 크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잖아요. 제가 형이 오라고 했을 때 왔으면 채린씨랑 포옹할 수나 있었겠어요?”
“큼..크흐음...”
창밖을 보며 딴청을 피우는 만물상.
채린과 포옹한 게 퍽 좋았던 모양인데.
“야.”
“네.”
“근데 말이야. 어제 그 괴물 자식은 도대체 뭐냐?”
“....”
“채린은 아는 눈치인데 말을 안 해줘. 근데 너도 보니까 모르는 눈치는 아닌 것 같고. 어제 그 새끼 때문에 S급 아이템이 몇 개나 부셔진 줄 알아? SS급 아이템도 세 개나 터져나갔다고. 그래서.. 그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냐? 은둔 고수 빌런 뭐 그딴 건 아닐 거 아니야.”
“저도 확실히는 몰라요. 나중에 채린씨한테 물어봐요.”
“아니 말을 안 해준다니까?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잖아. 확실하지 않은 거라도 좋으니까 말해봐. 내가 아는 랭커라는 랭커한테 다 수소문을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대. 그런 무지막지한 놈.”
“알면요?”
“응?”
“알면 뭐 어떻게 하시게요?”
“물어내라 해야지. 내 아이템 값.”
내 말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만물상.
말을 하고서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하긴. 내가 그 놈 정체를 알아서 뭐하겠냐. 근데 너는 괜찮냐? 어제 그 놈이랑 싸우는 것 같더만.”
“보셨어요?”
“살짝?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이열~ 근데 너 쫌 변한 것 같다? 쫌.. 몸에서 광택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달빛력을 꽤나 소모했지만,
하루 만에 다시 max를 찍었다.
그래서 ‘달의 가호’ 능력 효과로 달빛막이 형성 돼 있는 상태였다.
“아이템 효과 같지는 않은데.”
나를 관찰하듯이 쳐다보는 만물상.
“형, 잠시만요.”
그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화젯거리를 그가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돌리기로 했다.
나는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옆에 아무렇게 던져놓았던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고블린 하의, 신발, 장갑’
그리고 ‘고블린 영혼’까지.
만물상과 거래를 하기로 했던 아이템들이었다.
“어디 갔다 왔..”
포인트 상점을 닫자마자 만물상이 입을 열었다가,
내 손에 들린 아이템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간식 앞에 강아지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만물상.
“형도 꺼내셔야죠.”
나는 고블린 아이템들을 뒤로 살짝 빼며 말했다.
“치사하기는.”
투덜대며 허공에다가 손을 뻗는 만물상.
몇 번 휘젓더니 허공에서 아이템 하나를 불쑥 꺼냈다.
평범하게 생긴 그물처럼 생긴 아이템이었다.
특이하다면 그물의 색이 하얀색이라는 점이랄까?
‘천사의 올가미.’
육안으로 보이는 건 어떨지 모르나 무려 'S등급‘ 아이템이었다.
대상의 능력을 하나 봉인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봉인 지속 시간은 영구 지속이 아닌,
몇 시간 정도였다.
S급 아이템인데 너무 짧지 않냐고?
그 대신 논타겟팅이 아닌, 타겟팅 아이템이었다.
목표물을 설정하고 투척만 하면 100%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게 이유였다.
만물상의 많고 많은 아이템 중 이 아이템을 선택한 이유가.
레볼루션의 간부인 샤인을 논타겟으로 무언가를 적중시킨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타겟팅이 가능하고 효과가 출중한 아이템이 필요했는데, 딱 안성맞춤이 ‘천사의 올가미’라는 아이템이었다.
“형?”
고블린 아이템들을 만물상의 무릎 위에 올리고,
그의 손에서 천사의 올가미를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손에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만물상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뭔가 내가 적자인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씨알도 안 먹혔다.
나는 억지로 만물상의 손에서 천사의 올가미를 빼앗았다.
“으으..”
“형, 쉬어요.”
아쉬운 얼굴로 천사의 올가미를 쳐다보는 만물상을 뒤로 하고 나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 +
토레스.
인간과 드워프의 혼혈이자 내게 ‘만월검’을 선물한 하프 드워프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의 대장간에 도착하자마자 ‘달빛석’을 내밀었다.
“뭐냐, 그건?”
망치질을 하다가 내 손에 들린 달빛석을 힐끔 쳐다보는 토레스.
빛을 거의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달빛석은 빛나고 있었다.
“설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토레스.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달빛석?!”
달빛석을 낚아채 요리조리 살펴보는 토레스의 두 눈이 알사탕처럼 크게 변했다.
좋은 광석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게 바로 대장장이라는 직업이었다.
“이걸로 검 한 자루만 만들어 주세요. 비용은 두둑하게 지불 하겠습니다.”
“내가 만들어달라고 하면 넙죽 만들어줄 것 같으냐?”
‘표정을 보니 만들어줄 것 같은데?’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크흠..”
탐욕적인 얼굴로 달빛석을 관음 하듯 살피던 토레스.
멋쩍은 헛기침과 함께 달빛석을 조심스레 뒤쪽 통나무 위에 올려놨다.
“근데 왜 검이냐? 검이라면 내가 저번에 분명히 ‘천석’으로 만들어 준..”
허리춤에서 만월검을 꺼내,
토레스에게 내밀자 입을 다무는 토레스.
어제 제로가 내 공격을 막은 후로,
만월검이 부식하는 것처럼 이가 빠지고 있었다.
이가 빠진 곳은 희미하지만 검게 그을린 것 같이 변해 있었다.
“대체..”
내게서 만월검을 받아든 토레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게냐!!”
호통을 치며 칼등으로 내 허벅지를 한 대 쥐어박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서 호통을 친 게 아니라,
무슨 짓을 함으로써 만월검이 상해서 호통을 친 게 분명했다.
집 나간 자식이 엉망진창이 돼서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만월검을 살피는 토레스.
“악마와 싸웠던 게냐?”
“....”
“이건 분명 악마의 기운일 지언데.”
역시 연륜이 장난이 아니었다.
“헌데 만월검을 이 지경으로 만들 정도면 최소 상급 악마는 돼야 할 텐데..”
나는 힐끔 쳐다보는 토레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네 녀석이 너무 멀쩡하고. 흠..”
“언제까지 가능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앞으로의 일정에 무기 없이 임하기에는 다소 위험했으니까.
‘학교 대항전이 끝날 때까지는 완성 됐으면 좋겠는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는 토레스.
“2..달이요?”
“내가 누군지 벌써 잊었느냐? 2주다. 2주. 이 놈아. 먼젓번에 만월검을 만든 경험과 기록이 있으니 그렇게 시간이 안 걸릴 거다. 그런데..”
만월검을 높이 들어 올리는 토레스.
내 목에 만월검을 겨눴다.
“아직 만들어 준다는 소리도 안 했거늘! 여기가 패스트푸드점인 줄 아느냐!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주게! 제 아무리 날고 긴다는 놈들도 사정사정 해야지 겨우 만들어줄까 말까 한데 너 같이 새파란 애송이가 감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나는 만월검을 살짝 옆으로 치우며,
허리를 숙였다.
“크흠..”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는 토레스.
“생각 좀 해보겠다.”
그 말이 내게는 만들어주겠다는 말로 들렸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대장간을 나섰다.
+ + +
레이가 달빛 늑대로 각성을 하면서 몸집이 대형견처럼 커졌다.
레이가 만약 진짜 견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레이는 늑대였다.
그것도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늑대.
레이와 함께 이동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그 시선들은 하나 같이 곱지 않았다.
아무리 세계관이 몬스터가 존재하고 능력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다 자신과 상관없는 얘기들이었다.
즉, 그들의 입장에서는 거리를 활보하는 늑대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헌터 협회 건물에 있는 아이템 상점에 들렀다.
사람이 있는 곳을 다닐 때마다 레이를 포인트 상점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레이도 포인트 상점에 들어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템 코너 중 ‘애완동물’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었다.
거의 뚜뚜나 레이처럼 능력 있는 동물들을 위한 아이템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아이템은 단연 이거였다.
‘크기 변환’ 아이템.
금석의 애완견 뚜뚜는 스스로 자유자재로 몸의 크기를 변환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능력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레이처럼 일반인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크기의 동물이나 몬스터는 대게 밖으로 데리고 다닐 때 ‘크기 변환’ 아이템을 자주 애용하는 편이었다.
크기 변환 아이템은 전부 모양새가 제각각이었다.
옷처럼 제작 돼 있는 것도 있었고,
악세사리처럼 제작 돼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각 아이템 앞에는 이러한 라벨이 붙어 있었다.
-소형 강아지 크기로 변환 가능-
-중형 강아지 크기로 변환 가능-
-대형 강아지 크기로 변환 가능-
크기 변환 아이템의 기준은 강아지 기준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포인트 상점에서 레이를 꺼냈다.
“레이.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아무래도 소형이나 중형이 괜찮아 보이는데.
크르르.
눈앞에 진열장을 훑어보던 레이.
크릉.(저거.)
주둥이로 한 쪽을 가리켰다.
목걸이 형식으로 제작 된 아이템이었다.
새하얀 눈송이가 예쁜 목걸이었다.
나는 밑에 부착 된 라벨을 쳐다봤다.
-초소형 강아지 크기로 변환 가능-
“....”
초소형이라니.
초소형이면 레이가 각성하기 전의 크기와 흡사할 텐데.
“레이. 다른 거 고를 생각 없어? 저거 착용하면 되게 작아져. 너 각성하기 전처럼.”
크르르.(상관없어.)
주관이 뚜렷한 늑대 같으니라고.
나는 곧바로 레이가 찜한 아이템을 계산하고 레이의 목에 채웠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는 레이.
크릉?(이거 어떻게 써?)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계속 움직였다.
“마나를 넣으면 됩니다.”
직원에게 물어보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착용과 동시에 크기가 변환 되면 악용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일부러 마나에 반응하도록 제작했습니다.”
직원의 말을 그대로 레이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CG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레이의 크기가 작아지는가 싶더니 각성 전의 레이와 똑같은 크기로 변했다.
크기 변환 아이템 역시 작아진 레이에 맞게 작아졌다.
“오~ 신기하네.”
레이 역시 나랑 생각이 비슷한지 앞발과 뒷발로 그루밍 하듯이 자신의 몸을 긁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레이의 몸집에 적응을 했는지 작아진 레이의 몸체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질감은 없어?”
크르릉.(눈높이가 달라진 것 말고는 괜찮아.)
나는 레이를 품에 안았다.
“어머..”
“저기 좀 봐.”
“와.. 진짜 귀엽다.”
“저 남자는 누구지? 모델인가?”
아이템 상점에는 나 외에도 손님이 꽤나 붐볐는데,
그들의 시선이 모두 내가 있는 쪽으로 향해 있었다.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와,
솜털처럼 귀여운 늑대의 조합.
이 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없던 호감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쿠웅!
그때 헌터 협회 건물 상층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건물이 잠깐이지만 흔들릴 정도로 큰 굉음이었다.
-고객 여러분,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상층부에서 헌터들 사이에 약간의 무력충돌이 있었지만, 곧바로 해결 됐습니다. 쇼핑, 혹은 관광하는데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
헌터 건물의 상층부.
일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상층부에는 협회장실을 비롯해서, 협회에 필요한 부서가 마련 돼 있었다.
‘오늘 오후에 헌터 협회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기로 했어요.’
아침에 채린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였고,
방금 전 굉음은 아무래도 대회의실에서 난 소리 같은데.
채린을 잘하고 있으려나.
‘슬쩍 가볼까?’
아이템 상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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