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18화 (118/196)

118회

영결식

"아버지시여.“

빛이 거의 없는 습하고 어두운 지하실.

이곳은 레볼루션 홀로그램 회의의 주된 장소이자, 레볼루션의 비밀기지였다.

또한 실험실이기도 했다.

제로를 부른 라이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라이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참으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중국에 출장을 보냈다.

헌데,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한국에 갔다.

왜냐고?

‘지숙의 복수.’

지숙은 분명 일본에서 죽었고,

일본인에게 죽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스파이.’

아버지는 분명 그리 말했다.

라이언 역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잡았다.

스파이를.

‘레드로 변장한 박쥐.‘

어떻게 박쥐가 레드 행세를,

그것도 모자라 지숙을 죽일 수 있었는지.

라이언은 캐내려고 했다.

헌데, 이 놈이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쳐 맞아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놈이 아닌데 말이다.

그 때, 전화가 왔다.

박쥐 휴대폰으로.

‘채린.’

라이언은 직감했다.

이 여자라고.

이 여자가 지숙을 죽인 진범이라고.

그동안 자신의 수하를 여러 번 죽인 전적이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라면..

이 여자가..

감히 버러지 같은 년이..

“라이언.”

“..예.”

“내가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으면, 너는 죽었다.”

“예?”

“달빛 계승자 손에.”

“....”

아버지는 농담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말은 라이언의 귀에 농담처럼 들렸다.

‘죽어? 내가? 그깟 애송이한테?’

라이언은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아버지의 말은 절대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말이 잘못 됐다고 생각했다.

“믿기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나도 꽤나 놀랐단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라이언의 눈썹이 꿈틀댔다.

“성장세가 그토록 가파르다니. 마치 우리 막내와 성장세가 비슷해 보이더구나.”

“아버지시여!!”

고개를 든 라이언.

“그깟 애송이와 막내를 비교하시다니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 아차 싶은 라이언.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하지만..아버지가 안 오셨으면 달빛 계승자는 제 손에 죽었을 겁니다. 분명히.”

“크큭..크하하하!!”

아버지의 웃음소리.

살면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고 있었다.

한참을 웃던 아버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며 손을 내밀었다.

“레드의 본체를 이리다오.”

“....”

박쥐의 몸에서 뜯어온 걸 어떻게 알았을까?

‘역시, 아버지로구나.’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달라고 안 했으면 라이언은 자신이 가지고 놀다가 죽일 생각이었다.

다시 살아나봤자 레드는 눈엣가시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품에서 레드의 본체인, 모기가 담긴 캡슐을 꺼낸 라이언.

아버지 손에 살포시 올렸다.

“많이 말랐구나. 근데 라이언.”

“예.”

모기를 살피던 아버지.

라이언을 내려다봤다.

“내가 너를 왜 중국에 보냈는지 아느냐?”

“그야 막내를 위해..”

“아니다.”

“....”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무슨..말씀이십니까?”

“일어나라, 라이언.”

아버지의 말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는 라이언.

키는 라이언이 훨씬 컸지만, 언제나 아버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자신은 어른 앞에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하는 일에는 변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

변수.

도대체 무슨 뜻일까.

변수라고 하면 스파이를 뜻하는 것 같은데.

스파이라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

“아..아버지?”

라이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쳐다봤다.

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려고 하고 있었다.

“너의 쓰임새는 여기까지다, 라이언.”“아버지?”

“훌륭하게 네가 스스로 증명해 주었구나.”

“그..그게 무슨..크윽..크아악!!”

라이언의 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하는 아버지.

라이언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아버지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었다.

“크어억..큭..”

고통에 찬 라이언의 신음소리.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라이언의 고개가 힘없이 앞으로 쳐졌다.

“썩 마음이 좋진 않구나, 라이언.”

말과는 다르게 웃고 있는 제로의 입.

“막내의 저녁으로는 썩 훌륭하겠군.”

라이언의 몸을 마치 인형 다루듯이 질질 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제로.

수많은 철창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빛이 조금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철창 앞이었다.

철창의 문을 여는 제로.

“오늘은 포식하겠구나.”

라이언의 시체를 철창 깊숙한 곳으로 던졌다.

쿵.

아그작. 아그작.

라이언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뼈를 씹어 먹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배..고..파..”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공허한 목소리.

오랫동안 굶은 것처럼 무척이나 허기져 보였다.

제로는 힐끔 자신의 손에 있는 레드의 본체를 쳐다봤다.

“기다려라, 막내야. 곧 배불리 먹게 해 줄 테니.”

철창문을 닫고 뒤를 돈 제로.

“복수할 기회를 줘야겠지?”

철창 사이로 걸어가며 레드의 본체를 향해 말을 하는 제로.

제로의 말에 캡슐에 죽은 듯이 앉아 있던 모기가 날아올랐다.

“배..고..파..배..고..파..배고..파. 배고..파!!!!”

뒤에서 들리는 막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제로였다.

+ + +

“흑흑..”

주근깨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실내는 무척이나 더웠지만, 바닥에 있는 싸늘한 시체들 때문에 그렇게 덥다고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박쥐와 바보 3인방이 지내는 숙소의 지하에 창고처럼 크진 않은 공간이었지만, 아지트처럼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 있었다.

주근깨의 말을 들어보니 박쥐가 만든 장소라고 했다.

박쥐는 이곳을 자신만의 ‘은신처’. 혹은 ‘안식처’라고 불렀다고 했다.

나는 바닥에 형체가 불문명한 시체 3구를 쳐다봤다.

한 명은 살집이 두툼했고,

한 명은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말랐으며,

한 명은 목 부근의 살점이 뭉텅 뜯겨져 나가 있었다.

‘돼지, 홀쭉이, 박쥐.’

나는 박쥐의 시체 앞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

내가 박쥐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느껴야할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

박쥐가 이렇게 죽은 건 분명 내 탓이 컸다.

아니, 내 탓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건,

내 덕분이었다.

박쥐는 처음 나를 만났을 당시 독충을 먹고,

존재맹세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그래서 라이언에게 나에 대해 언급을 못한 게 아닐까?

안 한 게 아니라?

안과 못의 차이는 크다.

왜냐하면..

“흑..흑흑..”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만 울어.”

“흑..”

“그만..울라고!”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끄윽..끅..”

억지로 울음을 삼키려는 소리가 더 귀에 거슬렸다.

저 소리가 내게 ‘못’이 아니라 ‘안’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라이언과 제로의 등장.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시체들.

박쥐는 ‘배신’이라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캐릭터였다. 독충을 먹고 존재맹세 계약서를 작성한 탓에, 라이언에게 내 존재를 말하고 싶었지만 ‘못’한 게 분명했다.

‘안’한 게 아니라.

분명히 배신을 할 수 있었으면,

했을 놈이 바로 박쥐였다.

뿐만 아니라 박쥐는 본래 레볼루션에 몸을 담고 있던 나쁜 녀석이지 않은가?

“....”

서진에게 빙의 후, 여러 죽음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연이 닿아 있는 인물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리 박쥐가 나쁜 놈이라고 합리화를 해도,

아무리 내가 아니어도 죽을 놈이었다고 생각을 해도.

‘미안하다. 박쥐.’

내 과실이다.

“주근깨. 나가자.”

죽은지는 얼마 안 돼 보였지만,

환경이 습하고 더워서 그런지 벌써부터 구더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네 친구들 구더기 밥 되는 거 보고 싶어? 저대로 방치할거야?”

주근깨를 데리고 억지로 지하실을 나섰다.

+ + +

다음날.

대대적인 영결식이 열렸다.

라이언에게 죽은 헌터들의 영결식이었다.

그곳에 박쥐와 돼지, 홀쭉이를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따로 주근깨와 함께 사신 길드가 관리하는 야산에 묻었다.

“흐윽..”

시체 세 구를 한 곳에다가 묻었다.

나는 따로 묻으려고 했지만,

주근깨가 그러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며 반대했다.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다.

“흑..”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울고 있었지만,

눈물이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손수건을 주근깨한테 건네며 뒤를 돌아 한 눈에 훤히 보이는 도심을 쳐다봤다.

정상 부근이라 그런지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영결식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레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레이가 달빛 늑대라 그런지, 쓰다듬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채린과 짧게나마 통화를 했다.

갑자기 라이언이 쳐들어왔다.

그리고 공격했다.

그게 전말의 전부였다.

오늘 아침까지 생각한 결론은,

라이언의 돌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숙의 죽음으로 눈이 돌아가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돌발 행동.

제로는 그런 라이언의 돌발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거고.

라이언이 돌발 행동을 저지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레드로 변장을 한 박쥐의 존재를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제 채린에게 듣기로는 조만간 헌터 협회장 주최 아래 길드 마스터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그 뜻은 헌터 협회장이 이번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희소식이자,

나쁜 소식이었다.

레볼루션은 현재 벌집이나 다름없었다.

벌집에서 나온 벌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건 분명 희소식이었지만, 괜히 벌집을 쑤시는 불상사를 낼 수도 있었다.

벌집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벌집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벌집이었다.

과연 벌집을 만든 인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내버려 두려고 할까?

그래서 채린에게 당부했다.

레볼루션 존재에 대해 철저히 숨겨달라고.

대답은 알겠다고 했지만 확실히 잘 모르겠다.

대놓고 라이언에 의해 자신의 길드가 공격당하고,

길드원이 여럿 죽었는데 내 말을 순순히 따라줄지.

이렇게 된 거 길드끼리 연합을 해서 레볼루션을 쓸어버리자고 말한 걸로 봐서는 레볼루션에 대해 말을 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내가 아는 미래와 많은 게 달라졌는데 여기서 더 달라져서 레볼루션 녀석들이 더 꽁꽁 숨어버리고 작당모의를 해버린다면 내가 아는 미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길드끼리 연합을 해서 레볼루션을 이길 확률은 1%도 되지 않았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1%지, 솔직히 말하면 0%나 다름없었다.

‘혹시 모르지.’

한국 연합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똘똘 뭉친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 레볼루션을 소탕할 수 있을지도.

“서진님.”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뒤에서 주근깨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뒤를 돌아보자,

눈물샘이 드디어 마른 것인지 눈물을 그친 주근깨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외출을 안 했다면 저도..”

무덤을 힐끔 쳐다보는 주근깨.

표정이 경직 됐다.

“저는 제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

“저 강해지고 싶어요, 서진님. 그래서 홀쭉이와 돼지. 대장님의 복수를 하고 싶어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주근깨.

‘이거 뭔가..’

무협지에서 많이 보던 클리셰 같은데.

“너 불 능력자지?”

“네!!”

주근깨는 한설휘와 마찬가지로 불. 혹은 화염 능력자였다.

아까까지 울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주근깨의 목소리는 기운이 넘쳐흘렀다.

“태양 길드에 소개장 써 줄 테니까, 내일부터 태양 길드로 출근 하도록 해.”

태양 길드는 불 속성 능력자 길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불 속성 능력자가 대다수를 차지다.

혼자가 된 주근깨를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됐는데 잘 됐네.’

“넵!!”

“그래. 이제 슬슬 내려가자.”

만날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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