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17화 (117/196)

117회

라이언

'라이언 혼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황급히 만월검을 회수하며,

거리를 벌렸다.

레이 역시 내 뜻을 읽고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사제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으나,

옷감이 모두 검정색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금의 틈이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옷을 제외한 부분은 검은색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래서 보이는 건 두 눈 밖에 없었다.

보이는 두 눈 역시 흰자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라이언 혼자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로라니..’

이 세계관에서 현재 가장 마주쳐서는 안 될 인물을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본래 제로는 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내게 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왜.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레이에게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다.

‘절대. 절대, 공격하지 마.’

절대 은신 상태에서 공격을 했다.

헌데, 제로는 마치 우리가 보이는 것처럼 손쉽게 우리의 공격을 막아냈다.

원래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제로라는 인물에 대해.

하지만 단 한 번의 공방으로 더 뼈저리게 알게 됐다.

‘괴물.’

절대 이길 수 없을뿐더러,

만약 제로가 지금 공격을 감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도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채린과 만물상을 버리는 패로 쓸지라도 레이와 함께 도망쳐야 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제로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검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제로.

꽁꽁 싸맨 제로의 옷소매에서 검은 기운이 담배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는가 싶더니, 감쪽같이 옷소매 안으로 사라졌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보면서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건.

제로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치 범접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것’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감이 경고를 했다.

눈빛을 피하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고.

“아..아버지시여?”

라이언이 제로를 불렀다.

내게서 시선을 옮겨, 라이언을 쳐다보는 제로.

‘후우..’

그제야 나는 참아왔던 숨을 쉬었다.

숨이 턱턱 막혀서 죽을 뻔 했다.

“여긴..어쩐 일이십니까?”

한 마디로 ‘광폭’하던 라이언의 기세가 빠른 속도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 쪽 무릎을 꿇고 제로를 올려다보고 있는 라이언.

“그건 내가 묻고 싶구나.”

“....”

“여긴 어쩐 일이더냐?”

“그것이..”

라이언의 표정이 꼭 부모에게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여긴 보는 눈이 많구나. 집에 가서 얘기하자꾸나.”

허공에 손을 동그랗게 한 번 젓는 제로.

아까 봤던 검은 연기가 다시금 튀어나와, 타원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포털?’

완성 된 타원형은 분명히 포털이었다.

아직까지 이 세계에서는 포털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네. 저기 있네.’

포털은 출구와 입구를 임의로 설치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거리. 혹은 공간 제한이나 제약이 있는지 나도 정확하게 몰랐다.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 역시 일종의 포털의 한 종류였다.

어쨌든 다행이다.

‘조용히 가려나보네.’

하긴.

지금부터 대놓고 세계의 헌터들과 전면전을 하기에는 제로 입장에서 시기상조였다. 지금 라이언이 저지른 짓만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다행이었다.

진심으로.

‘가라. 빨리 포털 안으로 냉큼 들어가. 빨리 들어가서 눈앞에서 사라져. 빨리.’

지금 이 순간 내게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1초, 1초가 피를 말리게 했다.

라이언이 블랙홀처럼 보이는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모습이 사라진 라이언.

다음 차례는 제로였다.

포털 안으로 한 발자국 집어넣은 제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녀석의 입은 분명히 붕대로 인해 전혀 보이질 않았다.

헌데 내게 분명히 뭐라고 말을 했고, 그 말은 분명히 내게 전해졌다.

[살려두면 나중에 후환이 되겠구나.]

머릿속에 울리는 제로의 말.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4..’

울리자마자 나는 곧바로 버프를 3단계에서 4단계로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늦고야 말았다.

아니, 늦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괴수가 아가리를 벌려 나를 집어 삼키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제로는 포털 앞에 있었고, 눈앞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내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이쿠.”

눈을 감으려고 할 때, 내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도로 눈을 떴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구만.”

“....”

오늘 무슨 날일까?

세계관 최강자 정상회담 같은 그런 날?

나는 내 앞에서 별 일 아닌 듯 검은 연기가 나고 있는 자신의 팔뚝을 털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세계 랭커 2위이자,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이무신.’

그가 팔뚝에 나는 연기를 털다말고 나를 힐끔 쳐다봤다.

“괜찮은 게냐? 넋이 완전히 나간 얼굴이로구나.”

이 양반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나는 이무신의 뒤쪽을 쳐다봤다.

제로도.

포털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하아..”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살아서 안도한 것일까.

다리가 풀리려고 했고,

때 마침 다가와 내 몸을 받치는 레이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근데 협회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좌중을 둘러보는 이무신 협회장.

나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라이언의 난동에 많은 헌터들이 죽었고,

많은 부상자들이 있었다.

“내 새끼들이 이 사달이 났는데 안 올수가 있나. 너무 늦은 것 같긴 하지만..끌끌..”

보통 협회장이 이렇게 직접 등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라이언이 아무리 재앙급으로 난동을 부렸다고는 해도 말이다.

실제로 이무신 협회장은 라이언이 난동 부릴 때는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가 등장 후에 곧바로 나타났다.

제로는 크게 기운이나 마나를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금이 응축하고 있는 ‘질’이 남달랐다.

‘제로의 마나에 반응한 건가?’

“아무튼.”

나는 레이에게서 몸을 때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끌끌.”

레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 이무신 협회장.

친숙한 손길인 것처럼 레이가 머리를 갖다 댔다.

레이가 낯을 가리긴 하지만 안 가리는 사람도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디 크게 다친 데는 없고?”

“예.”

“그래. 손 보태는 데 애썼다. 이제 가서 푹 쉬 거라.”

“..예?”

“뒷수습은 어른들에게 맡기라는 소리다, 이 놈아.”

내 머리에 딱밤을 놓는 이무신 협회장.

“뒷수습까지 너한테 손 벌리면 되겠냐, 이 놈..아.”

다시 딱밤을 놓으려는 이무신의 손을 피하며 한 쪽을 쳐다봤다.

반쯤 무너져 있는 사신 길드가 있는 쪽이었다.

쓰러져 있는 만물상과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채린.

“저 저쪽에 볼 일이..”

“살아있다.”

“예?”

“만물상 놈, 살아있으니까 걱정 말거라.”

“....”

뭔 놈의 영감이 이렇게 태도가 강경할까.

띠링. 띠링.

나 역시 강경하게 밀어붙이려고 할 때 전화가 울렸다.

“잠시.”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핸드폰을 꺼냈다.

-주근깨-

“....”

바보 3인방 중 한 명이자 박쥐와 함께 다니는 녀석 중 한 명이었다.

‘살아 있어?’

박쥐와 함께 바보 3인방이 다 죽은 줄 알았다.

라이언은 자비가 없는 놈이었으니까.

실제로 달빛석의 여파로 잠깐 저승의 모니터실에 갔다가 이승으로 복귀하기 직전 봤던 영상에서 바보 3인방 중 홀쭉이와 돼지가 쓰러져 있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피떡이 된 박쥐를 깔고 앉아 있는 라이언.

그들의 뒤에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홀쭉이와 돼지의 모습.

어디에도 주근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화면에 안 잡힌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주근깨 역시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피를 흘리며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전화가 왔다.

주근깨한테.

‘받아보면 알겠지.’

귀에 핸드폰을 갖다 댄 순간,

나는 내가 설정한 가설과 확신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진님!!

주근깨는 화면에 안 보였던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자리에 없었던 게 분명했다.

귀에 울리는 주근깨의 목소리.

-도와주세요..아..아무도 숨을..안 쉬어요..서진님..제발..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다.

“위치. 응. 금방 갈 테니까 쉼 호흡 하고 있어. 너 지금 너무 호흡이 가팔라. 그래, 그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레이의 등에 올라탔다.

“가려고?”

옆에 서 있던 이무신 협회장이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나를 힐끗 쳐다봤다.

“어른한테 맡기라면서요?”

“끌끌. 아주 제 편한 데로 사는 녀석이로구나. 어여, 가 보거라. 급한 일 같은데.”

“예. 여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레이의 등을 한 차례 두드렸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레이.

“녀석, 말하는 거 하고는. 끌끌.”

서진과 레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보며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는 이무신.

“흐음..”

검은색 연기가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이 기운은 마치..”

제로와 라이언이 사라진 포털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는 이무신.

“협회장님!!”

“....”

“조회 결과 아무런 결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빌런 명단에도, 헌터 협회에도 등록 돼 있지 않았습니다. 포털 역시 위치 추적을 시도해 봤으나, 추적을 시도한 공간 능력자들이 도리어 정신 지배를 당하는 통에..”

“김비서.”

“예, 회장님.”

“여기 수습이나 신경 쓰도록 하지.”

“..예.”

이무신의 머릿속에 특정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무신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30년 전.

그 녀석은 분명히 소멸했다.

‘늙어서 걱정이 많아진 게 분명하구만.’

그 녀석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김비서.”

“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비서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이무신 협회장을 쳐다봤다.

“빠른 시일 내에 각 길드 마스터들 좀 협회로 불러주게.”

“예, 알겠습니다.”

괴한에게 국내 헌터 수십 명이 죽었고, 수십 명이 중상을 당했다.

이건 쉬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단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수습이 한창인 현장을 지켜보던 이무신.

젊은 남녀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젊은 남녀는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했다.

쓰러져 있는 한 남자와,

그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한 여자.

“오빠..오빠!! 회장님..만물상 오빠 좀 살려..회장님? 지금 뭐 하시는..”

발로 축 늘어진 만물상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리는 이무신.

“뭐하세요, 지금!!”

채린이 눈물과 피로 범벅 된 얼굴을 하고 버럭을 소리를 질렀다.

만물상은 자신을 위해 희생을 했다.

그러한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눈앞에 있는 사람이 협회장이라고 할지라도, 채린은 선 넘는 행동은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

“아이!! 이 영감탱이가, 진짜!!”

채린의 품에서 팅겨 나오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만물상.

“한참 분위기 좋은데 왜 간섭이야!! 앙??”

“....”

만물상을 쳐다보는 채린의 표정이 오묘해지는가 싶더니,

점점 싸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오해야, 오해.”

양 손을 들고 뒷걸음질을 치는 만물상.

“나 진짜 다쳤어. 나 진짜 아프다고. 진짜야!!”

“어쩐지..어쩐지..”

중얼거리는 채린.

“손의 위치가 계속 이상하다고 했어.”

“오..오해라니까?”

“이리와요, 오빠.”

“나 진짜 아파. 여기서 더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

“누가 때린다고 했어요?”

“네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

주먹을 쥐고 만물상을 노려보던 채린.

고개를 돌려 이무신 협회장을 쳐다봤다.

“서진씨 보셨어요, 회장님?”

“전화 받고 어딜 급하게 가더구나.”

“....”

어딜 갔을까.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걸렸다.”

“어..어?!”

만물상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발을 쳐다봤다.

거미줄이 만물상의 발을 옭아매고 있었다.

“한 눈 파는 줄 알았죠?”

만물상에게 걸어가는 채린.

“채..채린아..그게..아니 미안..아니..음..?”

눈앞에 선 채린을 보며 횡설수설하는 만물상.

그러다가 채린이 하는 행동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양 팔을 들어 가볍게 만물상의 몸을 껴안는 채린.

“살아서..다행이에요, 오빠.”

“....”

만물상은 철저한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래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게 수지타산이 맞는지에 대해.

이 정도 보상이면..

‘목숨 앞으로도 종종 걸어야겠네.’

손해는커녕.

만물상은 생각했다.

이건 분명,

개이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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