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11화 (111/196)

111회

사람살려2

사신 길드 길드장실.

“....”

사신 길드의 길드 마스터 채린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수북하게 쌓인 서류 뭉치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채린은 휴식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방학 시즌이 아무리 헌터에게 성수기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세계 길드 랭킹 5위 진입.’

목표가 있기에, 어찌어찌 하루하루를 버티고는 있었지만.

“고되다, 고돼.”

손으로 책상을 더듬으며 펜을 집은 채린.

눈을 뜨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고 했다.

따르릉.

“....”

때마침 울리는 전화 벨소리.

발신자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뒤집어 놓으려다가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됐다.

‘조금 더 쉬고 싶어.’

좋은 핑계 거리였다.

평소였다면 부재중 전화로 돌렸을 테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적절했다.

친구 전화도 아닌 세계적인 랭커인 만물상의 전화.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을 합리화하기에는 꽤 좋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여보세요.”

목소리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여~ 채린.

“..네.”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영 아니네?

“..왜 전화 하셨어요?”

만물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채린은 후회를 했다.

그냥 부재중으로 돌리고 업무나 볼걸, 하고.

만물상의 목소리를 듣자, 어째 피로감이 더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그 반응? 우리가 전화 못 할 사이도 아니고. 왜 그렇게 섭섭하게 말하냐고~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만물상의 목소리에 잔뜩 껴 있는 장난기에 채린은 손으로 눈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음..그래? 하긴, 요새 일이 많지? 그래도 나랑 밥 한 끼 정도는 가능하겠지?

“네?”

-나 곧 한국에 갈 거 같거든~

“왜요? 아..그게..죄송해요, 오빠.”

말을 하고나서 채린은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기댔다.

만물상이 한국을 오는데 ‘왜요?’라니.

그것도 송곳처럼 퉁명스러운 말투로.

‘한국에 올 수도 있지.’

자신이 뭐라고 거기에 날을 세운담.

-죄송은 무슨. 나는 네가 그렇게 뾰족할 때마다 섹시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 더..

“한국에 무슨 좋은 아이템 떴대요?”

만물상의 시답잖은 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말을 곧바로 돌린 채린.

-응. 어떻게 알았어?

“오빠가 아이템이 아니면 한국에 올 일이 없으니까요.”

-왜 없어? 너 보러..

“오시면 연락주세요. 밥 한 끼 해요.”

-오케이~

채린이 만물상과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그가 세계적인 랭커인 이유도 있었지만, 질척거리는 스타일이 아닌 점도 한몫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내려놓는 채린.

가볍게 자신의 뺨을 몇 번 때렸다.

“이제 다시 시작해 볼..”

똑똑.

“....”

이 정도 되면 하늘에서 쉬라고 점지해준 게 아닐까 싶다.

“들어와.”

길드장실 문이 열리고, 부길드 마스터인 홍련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드가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깜빡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난 모양.

레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신 길드로 찾아와 채린에게 다이렉트로 보고하고 있었다.

‘레볼루션에 관해.’

홍련이 나가고 레드가 길드장실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스터.”

“..오랜만은. 그래,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까?”

이왕 이렇게 업무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끊긴 거,

대놓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쉬려고 마음을 먹은 채린.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가려고 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

글러먹었다.

소파로 걸어가는 대신 제 자리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채린.

“서진씨와는 연락 하고 있어?”

“그게.. 며칠 전에 연락 오셔서 집중해야 하니 본인이 연락하기 전까지 연락 일절 하지 말라고 하셔서..”

“음..그래?”

채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자신도 연락을 해보던 차였다.

그 때 서진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채린씨 저 당분간 잠수요.’

중요한 일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을 할 뿐,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채린은 아무것도 몰랐다.

‘수수께끼 같은 남자.’

하지만 얼굴 하나만큼은 진실성 하나로 무장한 남자였다.

그 잘생긴 얼굴을 오늘 같이 피로한 날에 한 번 보기라도 여느 피로회복제도 안 부러울 것 같은데.

“좀 잠잠한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레드?”

서진은 떠나기 전 경고했다.

레볼루션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너무 평화롭다고나 할까.

채린은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후,

오히려 폭풍전야 같은 평화가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이런 채린의 심정을 십분 공감하는지 레드로 변장한 박쥐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구보다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게 박쥐였기에 지금과 같은 평화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평화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인데,

그 대가가 도대체 무엇일까.

얼른 수면 위로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잠잠해도 너무 잠잠했다.

‘홀로그램 회의도 요즘에는 안 열리고.’

“아, 몰라 몰라. 평화로우면 좋은 거지. 안 그래?”

“..네.”

“나가 봐.”

“네.”

현 상황에서 레볼루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채린은 자리에 착석을 하며, 곧바로 시선을 서류에 옮겼다.

일 할 시간이었다.

+ + +

“불안하다, 불안해.”

사신 길드를 나서며 박쥐가 중얼거렸다.

요즘 박쥐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불안하고 불안한 박쥐는 요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입에 달고 살았다.

멈칫.

대로를 걷다가 180도 회전하며 주변을 살피는 박쥐.

‘휴. 이러다 제 명에 못 살지.’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옥의 티를 눈을 부릅뜨고 찾던 박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명이라고 해봤자, 레볼루션에 몸담은 순간 끝났다고 생각한 박쥐였다.

하지만 명줄을 가슴에 숨기고 꾸역꾸역 살다보니 어찌어찌 지금까지는 살아있기는 한데.

‘고역이다, 고역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애들이라도 데려올 걸.’

애들이라 해봤자 서진이 붙여준 바보 3인방이 전부였다.

하지만 녀석들이라도 곁에 있으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을 떼어놓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슨 일은 필히 레볼루션과 관련 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말은 바보 3인방 역시 자신과 함께 휩쓸린다는 얘기인데.

그건 다 같이 죽자는 말과 동일했다.

‘어휴.’

녀석들은 알까?

대장의 마음을?

괜히 그런 생각을 하자 우쭐해진 박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랄 맞게도 화창하네.”

저벅저벅.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박쥐.

너무 신경이 예민해서인지 자신의 발소리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자꾸만 귀를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자극했다.

박쥐는 얼른 서진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서진이 옆에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그가 해결해 줄 것 같았다.

서진은 박쥐 마음에 있어서 부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물론 자신을 현 상황에 놓이게 한 건 서진이 분명했지만, 박쥐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 배를 탄 순간 충성을 하기로 마음먹었음으로.

“집 청소는 다 해놨으려나.”

사신 길드에서 마련해준 하우스에 가까워질수록 불안했던 박쥐의 마음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

박쥐는 옆에 샛길에서 걸어 나오는 한 남자를 본능적으로 쳐다보고야 말았다.

조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가벼운 아웃도어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특이사항이라면 옷이 터질 것처럼 몸이 우락부락하고 키가 2m는 족히 넘어 보인다는 점.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랄까?

박쥐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숨을 한 번 들이 키고, 숨을 뱉지를 못하고 있었다.

“뭐야, 그 표정?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지도 않은가본데?”

살가운 멘트를 치며 박쥐에게 다가오는 남자.

박쥐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네가 여긴 어쩐 일..”

“어쩐 일은.”

박쥐 앞으로 다가온 남자.

박쥐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허리를 숙여, 씨익 웃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왔지.”

“확..인? 아니 그 보다 너는.. 아버지가 분명 중국에 가라고 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박쥐는 최대한 평정심을 가지고 말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누가 목젖을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떨려왔다.

남자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돌로 찍어 누르는 것처럼 박쥐는 어깨가 금방이라도 으깨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자.”

입술을 깨물고 버티는 박쥐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는 남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들어가서 천천히 얘기를 나눠 보자고.”

“....”

“내가 봐둔 곳이 있는데, 그 곳으로 가자고.”

박쥐의 어깨에서 손을 치우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는 남자.

그가 향하는 곳은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바보3인방이 거주하는 숙소가 있는 방향이었다.

남자가 박쥐에게 하는 말의 어조는 명령조였다.

하지만 박쥐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전혀 그럴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포승줄에 포박당해 끌려가는 노예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남자의 말대로 그의 뒤를 따라가던 박쥐.

“아, 참.”

“흐읍!!”

뭔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 둔탁해 보이는 물건을 품에서 꺼내는 남자를 보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사각형으로 생긴 물건은 도장처럼 아랫부분이 하나의 문양으로 각인 돼 있었다.

십자가.

박쥐가 저 문양을 모를 리가 없었다.

서진을 만나기 전까지 몸에 저 문양을 새기고 있었으니까.

레볼루션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저 문양을 몸에 새기고 있었다.

간부들을 제외하고.

십자가 문양은 일종의 ‘계약’이었다.

레볼루션에 충성을 다 한다는.

어길시 목숨이라는 ‘제약’이 따르는 계약이었다.

박쥐는 처음 십자가 문양을 몸에 새겼을 때를 떠 올렸다.

불에 지지는 고통.

주변에서 느껴지는 음침하고 습한 냄새.

귓가에 속삭이는 누군가의 험악하고도 위협적인 말.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박쥐는 오줌을 지렸었다.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르자 박쥐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떨지 않으려고 했던 노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해서 좋네.”

덜덜덜.

“안 그러냐, 박쥐야?”

레드로 변장한 박쥐.

레볼루션 간부이자, 서진을 만나기 전 자신의 대장으로 있던 라이언의 말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서진님..’

어떻게 라이언이 자신이 박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는 몰랐지만, 박쥐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남자가 떠올랐다.

‘살려주세요..’

박쥐의 허리 약간 아랫부분이 격렬하게 진동을 하며,

찔끔찔끔 무언가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 + +

“뭔가 귀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귀를 간질이며 눈앞에 놓인 달빛석을 쳐다봤다.

난공불락도 이런 난공불락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다.

달빛이 약한 낮에도 해보고,

달빛이 강한 밤에도 해보고.

몸에 ‘달의 축복’을 두르고도 해보고,

훈수 리스트에 있는 애들의 능력을 사용해서도 해보고.

한 손으로도 해보고,

양 손으로도 해보고,

발로도 해보고.

그것도 모자라 만월검으로 부수려고도 해봤다.

헌데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10초.’

달의 축복 2단계를 시전 했을 때.

그리고 양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내가 달빛석의 기운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이상은 정신력으로 버티려고도 해봤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 들며 당장이라도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치 눈앞에 뷔폐 한상을 가져다 놓고 한 번에 다 먹어야 하는 것만 같았다.

다 못 먹으면 다시 리셋.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내가 얻은 건.

아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골 싸매고 있는 게 무료하고 따분해서 한 번씩 달의 초식을 사용하며 몸을 풀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상현달 귀걸이와 달빛석이 공명하듯이 빛을 내며 소모 된 달빛력이 곧바로 차올랐다.

6초식 이상의 초식을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달빛력이 전혀 마를 생각이 없었다.

‘달빛석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쩝..”

사실이라고 해봤자 달빛석을 손에 넣고 싶은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된 게 전부였다.

“조금 더 성장하고 올까?”

게임을 하다보면 모든 아이템에는 착용 가능. 혹은 획득 가능한 레벨이나 조건이 있기 마련이었다.

달빛석은 현재 내가 손에 넣기에는 아이템의 레벨이 너무도 높은 것일 수도 있었다.

달빛석을 손에 넣을 뾰족한 방법이 안 떠오르자,

괜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상 아랫부분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환기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무슨 일..”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레이가 이를 드러내며 발톱을 치켜세우고 홀로, 은빛 늑대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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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 분들을 위해 주변 인물들 위주로 최근 편들을 구성했습니다.

보는데 불편함이 없으시길ㅠㅠㅠ

제가 죽일놈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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