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10화 (110/196)

110회

사람 살려!!

금석은 살면서 한 번도 등을 돌린 적이 없었다.

그게 설사, 죽을지언정.

고난과 역경.

혹은 누군가와 싸움을 하게 되더라도 절대 물러섬이 없었다.

‘투견(鬪犬).’

금석은 마치 투견과도 같았다.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일지언정 등은 돌리지 않았다.

그래야 언젠가 상대의 목덜미를 물 수가 있으니까.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으니까.

고아원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금석의 이런 삶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헌데 헌터 학교에 입학 이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녀석들이 많다.’

하지만 금석은 굴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모조리 꺾어 버릴 거니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박태산과 고아원에 잠깐 머물 때까지만 해도 금석의 이런 생각은 유효했다.

박태산 마저도 금석은 언젠가 꺾을 상대라고 인식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박태산과 함께 도착한 울릉도.

그 곳에서 박태산의 스승이라는 자를 만난 순간 금석은 개장수를 만난 투견처럼 머리가 쭈뼛 서며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네가 키우는 강아지냐?”

박태산의 스승. 박진이라는 남자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그의 말에 박태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뚜뚜라고 제 제자가..”

“아니, 아니.”

박태산의 말을 끊은 박진.

뒷짐을 지고 천천히 금석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이 금석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한 눈에 보기에는 그저 동네 할아버지로 보였지만 금석의 눈에는 보였다. 개량 한복 안에 꿈틀거리는 무시무시한 근육과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펌핑 돼 있는 혈관들이.

‘어쩌면 박태산 보다도 더 근육질..’

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박진이 덥썩 금석의 턱을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이 놈 보게. 눈빛이 꼭 투견이로구나.”

“저..스..스승님.”

옆에 서 있던 박태산이 양 손을 들고 박진의 행동을 만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박진이 힐끗 쳐다보자 곧바로 꼬리를 말며, 손을 내리는 박태산.

“일 없다.”

금석의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던 박진이 손을 거두며 말 했다.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박진.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오랜만에 제자 얼굴 봐서 좋긴 하다만, 이만 가봐라.”

“스승님!”

“어허, 이 놈이.”

고개를 살짝 돌려 박태산을 쳐다보는 박진.

‘아무리 네가 꽤 머리가 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박진의 눈에는 애송이이자, 코흘리개 제자였다.

예전 같았으면 말대답하는 제자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겠지만, 지금은 예전이 아닌 현재.

‘나도 많이 물러졌군.’

제자가 말대답하는 걸 그냥 넘어가려는 너그러운 아량이라니.

박진은 스스로 그런 자신을 흡족해하며 박태산 옆에 서 있는 녀석의 제자를 쳐다봤다.

‘아무리 약간 힘을 줬다고는 해도. 쯔쯧. 요즘 것들은 너무 허약하단 말이지.’

금석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땅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금석.

금석은 본능적으로 느끼고야 말았다.

‘절대 이길 수 없다.‘

그 누구를 만나도 이런 절대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헌데 지금.

절대적 감정이 절대적인 무력감으로 금석을 덮쳐왔다.

덜덜.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

아니다.

이건..

‘무력감에서 찾아오는 자신에 대한 분노.’

어금니를 깨물며 억지로 고개를 치켜드는 금석.

20m 떨어진 곳에서 박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박태산이 산처럼 느껴졌다면,

박진은 전혀 닿을 수 없는 하늘로 느껴졌다.

“씨..발..씨발..”

웅얼웅얼 거리는 금석.

헌터 학교에서부터 느끼던 강자에 대한 좌절감이 절대적 강자 앞에서 응어리가 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위기가 처하면 꿈틀거리기 마련이었다.

금석은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꼬리를 말아버리면 자신의 자존심이 스크래치가 아니라 완전히 죽어버린다는 걸.

이런 금석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박진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던 뚜뚜가 금석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멍멍!!

박진에게 달려드는 뚜뚜.

축구공처럼 몸을 작게 만들고 있던 뚜뚜의 몸체가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박진 앞에 당도 했을 때 뚜뚜의 몸체는 곰 보다 더 커져 있었다.

크르르!!

거대한 주둥아리를 벌려 그대로 박진의 머리를 물어뜯으려는 뚜뚜.

퍽.

가볍게 들어 휘두른 것처럼 보이는 박진의 손바닥에 홈런 당한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갔다.

“보통 강아지가 아닌 모양이로구나.”

뚜뚜가 날아가는 걸 보며, 별 감흥 없는 감상평을 내놓는 박진.

“이 씨바아아알!!”

이마까지 혈관이 도드라지게 돋아 있던 금석의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졌다.

박태산이 저지를 하려고 했지만, 금석은 막무가내였다.

박진에게 달려드는 금석.

“씨..발?”

금석이 한 말을 되 내이는 박진.

“그것도 모자라 감히 어른에게 대드는 행동까지?”

박태산은 박진이 하는 말에 반박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른이 아니라 감히 나에게 대드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거겠죠.’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불도저처럼 들이대는 금석의 복부를 가볍게 발로 걷어차는 걸로 이 상황을 종료하는 박진의 무력.

그 무력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했다.

꿀꺽.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떠오르는 박태산.

학창시절 박진의 무력 앞에 얼마나 많이 얻어 터졌던가.

아직도 옛 생각을 하면 치가 떨렸다.

박태산은 자신의 앞까지 굴러온 금석을 일으켰다.

발차기 한 방에 흰자를 드러내며 기절해 있었다.

“네 제자 놈, 버릇이 어릴 때 너를 닮았구나. 어린놈이 욱하는 성격하고는. 주먹찜질을 해버릴까 보다.”

“스승님.”

“왜?”

“이 아이를 훈련..”

“고통의..희열.”

말을 하다가 금석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본 박태산.

아차 싶었다.

이 녀석의 회복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하다는 걸.

박태산은 말해주고 싶었다.

금석에게.

하지만 고통의 희열과 함께 자신의 품에서 튀어나가는 금석의 움직임은 마치 스프링 같았다. 그래서 잡질 못했다.

그래서 금석은 스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박진의 주먹찜질이 시작 됐다.

‘박진의 주먹찜질은 몬스터 중 회복력이 좋다고 알려진 트롤도 버티질 못한다.’

이 사실을 금석에게 말해주려고 했는데.

“스..스승님..”

박태산은 주춤거리며 박진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예전에 자신이 저 주먹에 저렇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저절로 몸이 굳었다.

“그러다 애 잡겠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은 예전 박진의 제자로 있던 풋내기가 아니지 않던가.

기합처럼 말을 내 지르며 박진에게 달려가는 박태산.

“많이 컸네?”

“....”

“태산아.”

“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벌써 까먹은 거냐?”

“아닙니다.”

“그런 놈이 어른에게 소리를 질러?”

“....”

박진이 싫어하는 인간은 버릇 없는 인간이었다.

라고 박진은 말하지만 박태산은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에게 개기는 인간.’

고로,

“너도 오랜만에 좀 맞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금석과 박태산을 주먹으로 두들기기 시작하는 박진.

“크흐읍..”

박태산은 오랜만에 맛보는 박진의 주먹찜질에 저도 모르게 ‘강철화’ 능력을 사용할 뻔 했다. 하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면 이 인간 역시 능력을 사용해서 때릴 게 분명한 걸 박태산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울릉도 합숙 훈련이 시작 됐다.

+ + +

울릉도 합숙 훈련 2주차.

박태산 괜히 왔다는 후회를 하루에 수백 번은 하고 있었다.

“스승님..저는 왜..”

“왜? 왜에?”

“아..아닙니다.”

등에 거대한 바위를 짊어지고 땀을 흘리던 박태산이 곁눈질로 옆에서 자신과 동일하게 바위를 짋어지고 있는 금석을 쳐다봤다.

처음 며칠 동안 금석은 몇 번 박진에게 개기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뿐이었다.

그 후로 금석은 해탈한 사람처럼 박진의 훈련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멍멍..

금석이 안쓰러운지 금석 옆에서 구슬프게 우는 뚜뚜.

그게 뚜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뚜뚜는 지능이 높은 강아지였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박진이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금석과 함께 박진에게 덤비다가 보신탕이 될 뻔한 후로 뚜뚜는 박진을 쳐다도 보질 않았다.

“너희들이 훈련 시켜달라고 찾아왔지 않느냐?”

“....”

“....”

맞다.

여기에는 반박할 게 전혀 없다.

적어도 박태산 입장에서는.

하지만 금석 입장에서는 참 할 말이 많았다.

아침에 기상 후, 평생 해보지도 않은 아침밥을 준비하고 박진의 거처를 청소해야 했다.

그 후 지금처럼 돌과의 사투 후, 점심밥을 준비해야 했다.

그 후 다시 무식하게 힘만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했다.

그 후 저녁밥.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밤에는 여름이라 벌레가 운다며 박진이 밖에 있는 벌레들을 다 잡으라고 했다.

박진의 집은 산속이라 벌레가 미친 듯이 많았다.

그래서 사실상 벌레를 다 잡는 건 불가능 했다.

하지만 잡지 않으면 주먹찜질을 당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벌레를 잡다보면 동이 텄고, 동이 트면 박진은 쪽잠이라도 자게 해줬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다.

라고 금석은 생각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매 끼니마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랄까?

하지만 모자랐다.

워낙 활동량이 많아서 뒤 돌면 배가 고파졌다.

‘도망쳐야 한다.’

어느 순간 금석의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금석은 ‘자기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드코어한 일상을 ‘자기 치유’ 능력이 못 따라가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졸기 일쑤였고,

입에 고기를 넣다가 졸기 일쑤였다.

금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박태산은 등에 돌을 짊어지고, 이름 그대로 태산처럼 서 있었고 박진은..

‘졸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저 인간은 우리를 훈련 시켜놓고 졸기 일쑤였다.

하지만 진짜 조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번 요령을 피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그때마다 귀신같이 눈을 떴다.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는 진짜 같은데.’

이번에는 진짜 졸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처럼 코를 곤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금석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뚜뚜에게 교감 능력으로 신호를 보내는 금석.

금석을 보며 구슬프게 울고 있던 뚜뚜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훈련하고 있는 장소는 박진의 집에서 약간 떨어진 산 정상이었고, 이곳에 있으면 산 밖 풍경이 눈에 훤하게 들어왔다.

‘마침 배가 들어오고 있다.’

지금이다.

지금 밖에 없다.

지금이 아니면..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맞아서 그런지 ‘만약’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몸에 제동을 걸었다.

만약..잡히기라도 하면..

“끄응..”

금석은 받치고 있는 돌에 머리를 몇 차례 박았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생각이 많았던가.

그냥 들이박고.

생각 안 하고 다시 박고.

그런 스타일이지 않은가.

몇 번 돌에 머리를 박자 머리에 피가 가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야 머리가 아무 생각을 안 하네.’

무념무상으로 몇 번 쉼 호흡을 하는 금석.

냅다 양 손으로 들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를 박진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뚜뚜!”

금석의 외침에 기다렸다는 듯이 금석의 품에 안기는 뚜뚜.

금석은 곧장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했다.”

“....”

“아주 네 어릴 적 판박이구나. 저 놈은.”

금석이 던진 돌을 가볍게 상체를 숙여 피한 박진.

눈을 뜨고 재밌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작은 미끼를 여러 번 던졌다가,

이번에 큰 미끼 한 번 던졌더니 냉큼 물어버리는 모습이라니.

“인내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생존욕구가 뛰어난 것인지. 아무튼.”

가볍게 다리를 돌리며 스트레칭 하는 박진.

“오늘 저녁 메뉴는 보신탕이다!”

그 말을 남기고 박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

홀로 남은 박태산.

어릴 적 박진의 훈련을 견디다 못해 도주했던 때를 떠 올렸다.

그 날을 박태산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날처럼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맞은 기억이 또 없었으니까.

그로인해 그 후로는 박진에게 아주 순종적으로 변하기는 했다.

아마도 금석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실력 하나는 확실하신 분이니..”

‘가르침의 방식이 유별나서 그렇지.’

박태산은 돌을 내려놓을 생각을 1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이탈한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 +

“사람 살려!!”

금석의 SOS 신호.

그 신호에 한 여자가 반응했다.

“돌대가리!!”

그녀의 이름은 신지수.

뭔지는 모르겠지만 금석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금석의 뒤로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따라오는 이를 보기 전까지는.

“..박진..선생님..?”

금석이 여객선에 몸을 날리기 전,

금석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 찬 박진.

흡족한 얼굴로 바다에 빠진 금석을 쳐다봤다.

“선생..님?”

“..지수? 네가 여긴 어쩐 일이더냐?”

인사도 잠시.

수영으로 여객선을 따라잡으려는 금석을 향해 박진이 사자후처럼 소리를 질렀다.

“지금 돌아오면 10대! 내가 잡으러 가서 잡히면 100000000대!”

신지수는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빛의 속도로 항구로 돌아오는 금석의 표정.

저 표정은..마치..

‘큰일 났다를 넘어서서, 좆 됐다를 넘어서서, 부처?!’

금석은 초연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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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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