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08화 (108/196)

108회

내리치는 달빛

크르릉.(나는 은빛 늑대가 아니야.)

한 편의 소설 같은 레이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이야기를 끝낸 후,

새침하게 내게서 등을 돌린 레이.

나는 손을 들어 가볍게 레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레이의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말해서는 안 될 비밀.

혹은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처럼.

아울..아우울..

아픈 것처럼 레이가 낮게 울었다.

나는 레이가 진정할 때까지 몇 번이고 레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레이가 은빛 늑대건, 은빛 늑대가 아니건 내게 중요치 않았다.

내게 레이는 그냥 레이였다.

단지 그 뿐이었다.

“괜찮아.”

내 한 마디에 레이의 떨림이 점차 멎기 시작했다.

‘뭘까.’

궁금증이 들었다.

레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레이는 은빛 늑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반 늑대도 아니었다.

4살까지 유아기에 멈춰 있는 성장 상태.

그리고 많은 것들이 잠겨있는 레이의 상태 창.

‘분명 뭐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레이의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레이.”

레이의 등에서 손을 때며 레이를 불렀다.

크릉.(왜?)

등을 돌린 채 대답하는 레이.

나는 억지로 레이의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내가 실망했을 거라 생각해?”

크르릉..

“내가 은빛 늑대들처럼 너를 외면할 거라고 생각해?”

크르릉..

나는 손을 레이의 머리 위에 올려,

미약하게 달빛을 내뿜었다.

레이는 달을 좋아했다.

레이는 달빛을 좋아했다.

하지만 티를 잘 내지 않았다.

항상 내가 훈련하며 달빛력을 방출할 때마다,

레이의 눈빛이 반짝반짝하게 빛난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손을 통해 전해지는 달빛력에 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레이의 눈동자가 중심을 잡아갔다.

레이가 은빛 늑대는 아니더라도,

은빛 늑대 일족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해.”

크르르.

“실망하지도, 너를 외면하지도 않을 거니까.”

말을 하며 레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눈빛에서 믿음을 읽은 것인지 레이가 내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와서 머리를 비볐다.

“근데, 레이.”

크르르.(왜?)

레이가 어느 정도 진정한 이 시점에서 대화를 끝내면 좋겠지만, 우리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아있었다.

“은빛 늑대 서식지는 왜 찾아 간 거야? 네가 먼저 공격 했다는 소리는 또 뭐고?”

레이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분명히 그랬다.

자신이 먼저 공격해서, 자신이 다친 거라고.

‘왜?’

레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은빛 늑대 서식지에서는 레이를 반겨줄 늑대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런 곳을 굳이 레이는 자신이 찾아갔다.

그리고 다쳤다.

‘도대체 왜?’

레이의 몸이 다시금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달빛력을 내뿜었다.

이전의 떨림이 슬픔이었다면,

지금의 떨림은 분노에 가까웠다.

레이가 이빨을 보이며 털을 곤두세웠다.

크르르.(문스.)

나는 레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크릉.크르르.(문스를 보러갔어. 내가 정상 부근에 묻어줬거든. 근데..)

“근데?”

크르르..크르르!!(녀석들이 문스 무덤을 없앴어!!)

레이가 분개했다.

크르르!! 크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레이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나는 손에 힘을 살짝 가해서 레이의 머리를 눌렀다.

“그래서 공격했어?”

크르릉!!(문스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고!!)

레이 인생에서 은빛 늑대라는 종족은 완전히 악당이나 다름없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은빛 늑대는 사명감이 투철하며 집단의식이 굉장히 강한 종족이었다.

‘가보면 알겠지.’

나는 진통제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

레이의 팔에 주사했다.

수면제 효과도 있는 탓에,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던 레이의 몸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자고 있어.”

레이가 잠에 드는 걸 확인하며,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레이와 함께 은빛 늑대 서식지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레이의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가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그게 여러 입장을 생각해 봤을 때 괜찮아 보였다.

나는 첸의 집 마루로 걸어 나갔다.

“일로와.”

구경이라도 났는지,

많은 동물들이 첸의 집 마당에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중에 가장 후미에서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는 동물 한 마리를 불렀다.

내 부름에 처음에는 외면하던 녀석.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걸어왔다.

“멧돼지.”

크어엉.

코앞까지 다가와서 딴청을 피우는 멧돼지.

덩치로 보나, 전투력으로 보나 이 녀석이 이곳의 대장격이었다.

그래서 임무 하나를 맡기기로 했다.

“저 안에 새끼 늑대 한 마리 잠자고 있는데 나 올 때까지 지키고 있어.”

크엉. 크엉.(내가 왜?)

“네가 여기 대장 아니야?”

꾸에엑!(물론이지!)

멧돼지의 울음소리가 변했다.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부탁 들어주면 갔다 와서 고기 줄게.”

꾸엑! 꾸에엑!(좋다! 나만 믿어라!)

단순한 놈.

고기 준다는 말 뻥인데.

“응. 그럼 부탁한다.”

하늘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레이의 이야기가 꽤 길었던 탓이었다.

나는 지붕에서 산 정상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몸을 움직였다.

+ + +

“이리오너라~”

산 정상 부근에 다다랐을 때,

공기가 갑자기 확 차가워졌다.

여름에서 갑자기 날씨가 겨울로 바뀐 느낌이랄까.

그 느낌 때문에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곳이 은빛 늑대 서식지라는 걸.

“아무도 없느냐!”

양반 흉내를 내며 주변을 살폈다.

곳곳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하얗게 물들어있는 나무나 돌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은빛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마중이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

나는 뒷짐 지고 있는 손과 걸음걸이를 바로 했다.

달빛 계승자라서.

혹은 침입자라서.

무슨 이유에서라도 나를 마중 나올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닌 모양.

나는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정상으로 걸어갔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드디어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인기척은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 수 십.’

수 십 마리의 짐승이 거친 숨소리를 뿜어대고 있었다.

정상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마주했다.

수 십 마리의 은빛 늑대들을.

늑대들은 잘 훈련 된 군사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마중은 아니더라도 나를 기다리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유독 덩치가 큰 은빛 늑대 한 마리가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누가 봐도 이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

녀석이 하는 말은 인간의 언어였다.

녀석의 말에서 이상하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인간의 말을 하기 때문에?

아니다.

그 때문이 아니다.

나를 쳐다보는 저 눈빛.

당장이라도 어금니를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을 저 흉흉한 눈빛.

‘왜지?’

말하는 걸 보면 내가 달빛 계승자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그런데 저 눈빛을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솔직히 환대하는 분위기를 예상했다.

달빛 계승자를 만나는 게, 은빛 늑대의 평생소원이자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대놓고 달빛력을 흘렸다.

그럼에도 대장 늑대의 눈빛은 여전히 흉흉했다.

“영광이라면서 눈빛은 전혀 아닌데?”

내 말에 대장 늑대가 몸을 살짝 아래로 낮췄다.

그 뿐이었다.

녀석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저희는 오래전부터 달빛 계승자를 기다려왔습니다.”

나는 대장 늑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저희는 ‘가짜’ 혹은 ‘반쪽’ 달빛 계승자를 여러 차례 마주해 왔습니다.”

“....”

“당신이 ‘진짜’ 달빛 계승자라는 걸 저희 종족에게 증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이해했다.

대장 늑대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의구심’이었다.

대대손손 단 한 가지 숙명을 가지고 살아가다보니,

숙명에 대한 데이터가 자연스레 계승되고 있었다.

대장 늑대는 단순한 대장 늑대가 아니었다.

녀석은 그간 달빛 계승자를 기다리며 죽어간 은빛 늑대들의 기억과 숙명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늑대였다.

녀석은 하나였지만, 하나가 아니었다.

‘면접을 볼 줄이야.’

솔직히 프리패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깐깐하게 굴어도 이해하기로 했다.

“뭘 증명하면 되는..”

나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장 늑대의 은빛 털이 반짝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나를 보는 눈빛이 점점 살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급기야 입을 벌리며 뾰족한 치아를 드러내는 대장 늑대.

“증명은 총 두 단계입니다.”

말을 하는 대장 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으르렁 때문인지 뒤에 도열해 있는 은빛 늑대들이 파급 효과처럼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가지고 있는 ‘힘’을 저희에게 증명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장 늑대가 말하는 ‘힘’이란,

달빛 능력을 말하는 게 확실했다.

증명 방법은 따로 언질이 없어도 바로 알아차렸다.

아우울!!

나는 등에 메고 있는 만월검을 꺼내들었다.

몇 번 황소처럼 발울 구르던 대장 늑대.

내게 총알처럼 달려들었다.

눈을 한 번 깜빡했을 때,

내 앞에 도착했을 만큼 빠른 스피드였다.

‘달빛 제 2초식. 월광쇄도.’

나는 곧바로 달빛 능력을 사용하며 대장 늑대와 거리를 벌렸다.

몇 번의 술래잡기를 하던 중,

나는 다시 한 번 내게 버프를 걸었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1단계.’

크르르!!

다행히 늦지 않았다.

내게 아가리를 들이대는 대장 늑대.

녀석의 아가리에 만월검을 가로로 집어넣으며 제지했다.

크르..크르..

입에 만월검을 물고 있음에도 이성을 잃은 것처럼, 계속해서 나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대장 늑대의 움직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크르르..크르르..

크르..크르..

난 대장 늑대와 일기토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내 바람이었던 모양이었다.

나와 대장 늑대를 천천히 에워싸던 은빛 늑대들이 한 발, 한 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일대일에서 일대다수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살짝 빡센데?’

게임으로 따지면 레벨 300은 돼야 깰 수 있는 퀘스트를 300찍자마자 혼자서 깨러 온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딱 퀘스트 레벨 제한이 풀리자마자 깨러 온 느낌.

그것도 파티 퀘스트인데 혼자서 깨러 온 느낌.

다양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은 평온했다.

막 레벨 300을 찍었다고는 하나,

나는 일반적인 능력자가 아니었다.

“너희 다쳐도 모른다.”

살짝 봐주고 있었는데,

다구리를 치려고 하니.

만월검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가했다.

아가리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물고 있던 만월검을 놓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서는 대장 늑대.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

발도술 자세를 취하며 한 번에 은빛 늑대들을 쓸어버리려다가 멈칫했다.

은빛 늑대는 내 입장에서 몬스터가 아닌 NPC였다.

‘죽이는 건 쫌 그런가.’

자세를 바로하며 다른 초식을 사용하려고 자세를 잡을 때, 대장 늑대를 비롯한 은빛 늑대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침을 질질 흘리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마치 어서 달빛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처럼.

‘달빛 제 8초식.’

녀석들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로 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8초식.

“내리치는 달빛.”

만월검의 검 끝이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달빛이 요동치며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달빛이 모인 걸 확인 한 후,

만월검을 앞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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