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07화 (107/196)

오늘은 삼겹살에 소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나이다............107회

전지적 레이 시점

나는 늑대다.

태어나고 보니 주둥이가 유난히 길었고,

검은 털이 복슬복슬 했다.

태어나고 보니 동물들이 ‘달빛 수호자’니,

‘은빛 늑대’라는 소리를 지껄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신선했다.

태어나 처음 개울가에 내 모습을 확인 했을 때.

“멋있게 생겼네!”

나는 내가 늑대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들은 못생겼으니까.

+ + +

늑대는 다른 동물에 비해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결속력.

혹은 소속감.

그런 것이 나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은빛 늑대란 말이지.”

연로한 늑대 한 마리가 입을 열었다.

그는 늑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늑대였다.

은빛 털과 수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염이 지느러미처럼 길게 뻗어 있는 것만 봐도 나이가 많다는 걸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왜 털이 검은 거야?”

연로한 늑대.

나는 그를 ‘문스’라고 불렀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다른 늑대들이 그를 그렇게 불러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게 됐다.

내 질문에 자신의 할 말을 하던 문스.

앞발을 들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려고 했다.

나는 그의 발길을 피했다.

나도 이제 1살이었다.

문스는 나를 언제까지 어린 애 취급을 할 생각인지.

‘휴.’

내 행동에 ‘크르르’ 거리던 문스.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아직 어리기 때문이지.”

나도 알고 있었다.

다른 늑대들은 전부 털이 은빛인데 자신만 검은 털을 가진 이유를.

그런데 요즘 들어 은빛 늑대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곤거림이 나는 점점 거슬렸다.

“보통 1살 쯤 되면 은빛 털로 털갈이를 한다고 하던데?”

나는 내 몸을 쳐다봤다.

검다.

곰 새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검다.

“그리고 1살 쯤 되면 몸이 제법 성장한다고 그러던데?”

작다.

다람쥐 새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작다.

내 말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문스.

호탕하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어디서 주워왔나 보지! 캬캬캬!”

“....”

나는 앞발로 문스의 머리를 세게 때리고 산의 정상 부근으로 뛰어갔다.

나를 따라온 문스.

“농담이야, 농담.”

알고 있었다.

문스는 유일한 내 친구였다.

그는 다른 늑대들이 나에 대해 수근 거릴 때 나를 감싸느라 바쁜 늑대였다.

기분이 뒤숭숭했다.

‘나는 언제쯤 은빛 늑대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다른 늑대처럼 은빛 털을 가질 수 있을까.

때가 되면 언젠가는 나도 은빛 늑대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다.

나는 다만 성장이 더딘 ‘예외’일 뿐이었으니까.

“문스.”

내 부름에 나와 같이 산 아래에 펼쳐진 인간들의 세상을 쳐다보던 문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가가 상념에 젖어 있었다.

종종 문스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문스.”

재차 부르자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는 문스.

“문스는 달빛 계승자가 있다고 믿어?”

“....”

문스의 표정이 깊은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리움에 대한 갈망이 내게도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움에 대한 실체가 없다는 걸.

‘달빛 계승자.’

아무도 본 적도,

아무도 존재여부를 몰랐다.

그저 태어난 사명이 그렇게 설계가 된 것처럼,

은빛 늑대는 달빛 계승자를 기다렸다.

먼 옛날.

달빛 계승자와 세상을 활보한 은빛 늑대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져 올 뿐, 은빛 늑대에게 달빛 계승자는 그저 꿈이자 평생의 염원이었다.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달빛 계승자를 만나는 것.

단 하나의 소원이 더 있다면 그와 함께 세상을 유랑하는 것.

은빛 늑대들이 노래처럼 부르는 말이었다.

아우울~

문스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구슬프게 울었다.

문스의 소원 역시 다른 은빛 늑대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은빛 늑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늑대였고,

시름시름 앓는 날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달빛 계승자에 대한 염원에 대한 불꽃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더 활활 타고 있는 것도 같았다.

“문스. 근데 왜 여기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여기에 달빛석이 있기 때문이지.”

“달빛석?”

“오래전부터 달빛을 머금어 온 오래 된 돌이 하나가 있지. 그 돌을 지켜야 해.”

“왜?”

“달빛 계승자님이 오시면 전해줘야 하거든.”

“....”

화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많은 늑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달빛 계승자’에 대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달빛 계승자라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순간 행복감이 찾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달빛 계승자가 실존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아직 내 털이 검어서 그런가?’

나는 문스와 한동안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봤다.

+ + +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2살이 됐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몸집이 작았고, 검은 털을 가직 늑대였다.

“쟤 좀 봐.”

“은빛 늑대 아닌 거 아니야?”

이제 대놓고 은빛 늑대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닥쳐!!”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은빛 늑대 무리에 있는 검은 늑대.’

나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나라고 검은 털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도 은빛 늑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전혀 은빛 털이 날 기미가 안 보였다.

크르르.

어느 무리든 집단을 형성하면 ‘대장’이 있었다.

특히 은빛 늑대처럼 밖에 문을 잠그고 있는 집단은 대장이라는 위치가 절대적이었다.

대장 늑대가 요즘 들어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내가 검은 털인 이유를 설명 할 방법이 없었다.

‘떠날까.’

그 생각을 요즘 하고 있었다.

여태껏 나와 같은 전례가 없었다고 은빛 늑대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생후 2년이 될 때까지 검은 늑대인 늑대는 내가 처음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은빛 늑대가 아닐지도 몰라.’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문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산 정상에서 몸을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문스.

그는 1년 사이에 부쩍 늙었다.

하루에 네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문스.”

문스는 내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슬펐다.

그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거라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왔어?”

문스가 고개를 돌려 친근하게 나를 쳐다봤다.

‘따스해.’

나를 보는 문스의 눈은 항상 따뜻했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문스 옆에 엎드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그냥이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문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스는 얼마 전부터 입버릇처럼 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달빛 계승자님을 만나러 가야 해.’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싶었다.

그러려니 했다.

문스 정도의 나이가 되면 무작정 기다림에 지칠 법도 하니까.

나는 앞발에 턱을 올리며 앞을 쳐다봤다.

문스가 나를 존중해주듯, 나 역시 문스의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생각일지라도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아암.”

나는 하품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머리 위로 따뜻한 뭔가가 올라왔다.

아마도 문스의 앞발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은 꿈 꿔.”

좋은 꿈이라.

그게 무슨 꿈일까?

내가 은빛 늑대가 되는 꿈?

아니면 이곳에서 탈출하는 꿈?

그것도 아니면.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

+ + +

“문스? 문스!!”

나는 문스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뛰어다녔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발이 바닥에 푹푹 빠졌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스가 사라졌다!’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느낌이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친구 문스가 사라졌다.

어디에도 없었다.

빗물에 몸이 녹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지나가는 늑대들을 붙잡고 물었다.

“문스 봤어?”

녀석들은 콧방귀를 꼈다.

“알게 뭐야?”

“....”

나는 검은 늑대라서 찬밥이었고,

문스는 늙은 늑대라서 찬밥이었다.

늙었다고 해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스는 늑대들에게 몽상가 같은 소리를 자주 하고 다녔다.

그래서 태생적 ‘별종’인 나와는 다르게,

문스는 점점 늑대들에게 ‘미친 늑대’ 취급을 받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문스가 사라졌음에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사라져서 다행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문스!!”

은빛 늑대 서식지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어디에도 문스는 없었다.

“문스..”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문스가 있었다.

나는 문스를 계속 찾아다녔다.

+ + +

문스가 발견 된 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장 늑대가 문스의 시체로 보이는 늑대 시체 하나를 입에 물고 나타났다.

“문스.. 문스!!”

나는 한걸음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

“문스..”

문스였다.

피투성이가 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문스가 틀림없었다.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문스의 시체를 바닥에 던지다시피 내려놓는 대장 늑대.

크르르.

짧게 으르렁거렸다.

“노망난 늙은이 같으니라고.”

짧게 말을 하며 뒤를 도는 대장 늑대.

거기까지는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의 말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리는 말은 수용 범위를 벗어난 말이었다.

“늙었으면 곱게 죽을 것이지, 동네방네 달빛 계승자를 수소문 하고 다니다니.”

“....”

문스는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살아생전에 마지막 힘을 짜내서.

“함부로.. 말 하지마!”

대장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가볍게 뒷발로 귀찮다는 듯이 나를 걷어차는 대장 늑대.

나는 여러 바퀴 구르며 뒤로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를 보는 수많은 시선들.

그 중에 내 편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가 됐다.

+ + +

문스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스가 사라진 이후.

‘버틴다.’

나는 그저 죽지 못해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4살이 됐다.

여전히 몸집은 작았고, 털은 검은색이었다.

오히려 몸집이 이전보다 더 작아졌다.

충분히 먹이를 섭취를 못하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할당되는 먹이가 줄어들고 있었다.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은빛 늑대들이 나를 진즉 포기한 것처럼,

나 역시 나를 포기하려고 했다.

‘나는 은빛 늑대가 아니야.’

포기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은빛 늑대가 아닌데,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문스처럼 거창한 꿈이 있는 게 아니었다.

꿈이 있어, 서식지를 벗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배불리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나는 서식지를 벗어났다.

+ + +

‘끝났다.’

그렇게 생각 했다.

서식지를 벗어나자마자, 다양한 동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해 왔다.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마음은 더 만신창이라 그런지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크르르.

나는 앞에 보이는 하이에나들을 보며 최대한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하지만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울음소리가 새가 우는 소리 보다 작다고 생각했다.

하이에나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이에나들이 주춤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 옆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늑대로구나!!”

인간의 모습을 살면서 처음 봤다.

“여기는 진짜 없는 동물이 없네.”

나를 번쩍 들어올리는 인간.

나는 반항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내 상처부위를 때렸다.

끼잉..낑..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근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좋은 냄새 나.’

인간에게서 여태까지 맡아 본 냄새 중,

가장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품이라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얼핏 문스가 나온 것도 같았다.

문스가 내게 말했다.

“좋은 꿈 꿔.”

나 역시 문스에게 말했다.

좋은 꿈꾸라고.

훗날 다시 문스가 꿈에 나왔을 때 나는 말을 정정했다.

네 꿈은 내가 이루어주겠노라고.

그러니 편안하게 잠들라고.

[작품후기]

여러분들.

제가 채찍질을 해주십시오.

욕을 해주십시오.

아무래도 나태지옥에 빠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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