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 말이 경고로 잘 먹혔는지 내가 로비를 떠나는 내내 내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박상면 지배인이었다.104회
차인수
"휘뚜루~ 마뚜루~“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뚜루~ 마뚜루~”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라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백록담의 깊숙한 곳.
그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휘뚜루!!”
피닉스가 날개를 척하니 올렸다.
피닉스의 몸집은 독수리처럼 커져 있었다.
“마뚜루!!”
피닉스의 날개에 손을 올리며 크로스 자세를 취하는 한설휘.
방학 5일차.
피닉스와 친분을 쌓기 위해 녀석의 행동을 따라하던 중, 내면의 유치함을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
한설휘는 바보처럼 웃으며 손을 올리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바로 했다.
‘위..위험해.’
아직까지는 자각할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피닉스의 병신력을 더 옮기라도 하는 날에는.
“훈련이나 하자!! 휘뚜..”
자신의 입을 막는 한설휘.
‘너무 입에 붙었어.’
한설휘는 병신력 고인물과 조금 거리를 둘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복귀 했을 때 애들이 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휘뚜루..마뚜루..”
작게 중얼거리는 한설휘.
거리를 두기에는, 그녀는 병신력의 늪에 빠지고야 말았다.
+ + +
“오호!!”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정시아.
그녀의 눈앞에 블랙맘바 한 마리가 사자의 몸을 타고 올라가 목을 조르고 있었다.
취이익.
사자의 다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보며 블랙맘바가 탐스럽게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실제로 보니까 어때?”
정시아의 옆에 있던 흑인 남자가 물었다.
정시아를 밀림의 한가운데까지 안내한 원주민이었다.
“역동적이네.”
정시아는 자신의 능력 중 ‘킹 코브라’를 떠 올렸다.
모습은 분명 블랙 맘바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소환 한 블랙맘바는 아무런 특색이 없는 거대한 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늬만 블랙맘바인 거대한 뱀.
서진이 왜 실제로 블랙맘바를 보라고 했는지,
정시아는 알 것도 같았다.
정시아는 눈앞에 보이는 블랙맘바의 모습에,
자신의 능력인 ‘킹 코브라’를 투영해 보기 시작했다.
날렵하고,
한 번 문 먹이를 절대 놓지 않는 독사.
그것도 어마 무시한 맹독을 지니고 있는.
정시아가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을 때, 사자의 숨이 멎었다.
취이이.
사자의 목을 조르던 몸을 푼 블랙맘바.
정시아를 쳐다보더니 숲 속으로 사라졌다.
“가요.”
정시아가 원주민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킹 코브라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눈으로 확인한 블랙맘바의 역동성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싶었다.
원주민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윽고 차는 밀림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개운하네.”
나는 기지개를 키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밖에서 노숙을 며칠 하다가 씻고 잠을 잤더니, 너무 상쾌했다.
레이 역시 마찬가지인 듯, 길게 하품을 하며 몸을 한 차례 털었다.
11시.
현재 시간이었다.
또 밖에서 노숙 할 생각에 일부러 늦잠을 잤다.
푹 잘 수 있을 때 푹 자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것도 있고.
너무 일찍 일어나면 시간이 붕 떠서 일부러 늦게 일어난 것도 있었다.
‘12시에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나는 대충 씻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벌써 가십니까?”
처음 보는 직원이 내게 객실용 키를 받아들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고개를 들이밀고 소곤거리는 직원.
“어제는 통쾌했습니다.”
“아..”
“청소하던 직원이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봤거든요.”
어제 박상면 지배인에게 대놓고 면박 준 걸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평소에 행실이 거지같으면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할까 싶었다.
“무슨 일 있으면 본사로 연락해.”
직원의 표정이 꼭 은혜 입은 신자처럼 변했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레이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
내부 고발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발의 내용이 타당만 하다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쉬쉬했다.
고발 해봤자 바뀌는 건 쥐똥이고,
오히려 고발 한 사람이 ‘내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해고 되는 게 다반사였으니까.
‘참 그지 같은 사회지.’
잡생각을 하며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이동했다.
번화가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빌딩에 들어갔다.
“몇 층이 좋으려나.”
몇 층이 가장 관전하기 좋을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이동했다.
5층은 카페와 피시방이 있는 층이었고,
나는 카페로 향했다.
“애완동물 출입금지입니다.”
단호하게 말을 한 여직원.
내 얼굴을 보자 갑자기 얼굴이 시벌게지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반응을 보니 말만 잘하면 레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내가 입을 열자마자 덩치가 큰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자기야, 무슨 일이야?”
“....”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여직원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를 경계하듯이 쳐다보는 남자. 저 경계심은 학교에서 익히 봐왔던 경계심이었다.
잘생긴 남자에 대한 1차원적인 경계심.
본능 같은 거였다.
내가 못생겼어도 과연 이 남자가 등장 했을까?
“저 아이스티 한 잔만 준비해주세요. 이 아이는 다른데 맡기고 올 테니까.”
품에서 블랙 카드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며 카페를 빠져나왔다.
5층의 구석에 마련 된 화장실로 들어가,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레이. 여기 잠깐 있을 수 있지?”
크르릉?(오래 걸려?)
하얀 방에 엎드리는 레이.
“아니, 별로?”
크르릉.(다녀와.)
“간식이라도 사다 줄까?”
크릉. 크릉. (괜찮아.)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포인트 상점을 열고 닫았는데, 점점 조심하게 됐다.
포인트 상점을 열면 내 모습이 포인트 상점에 머무는 동안 현실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순간이동한 줄 착각할 우려가 있었다.
나는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카드..여기 있습니다.”
경계심 가득하던 남자가 정중하게 내게 카드를 내밀었다.
블랙 카드가 가진 힘이었다.
블랙 카드가 만약 아이템이라면 이런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돈의 후광’
카드를 집어넣으며 잠시 기다렸다.
“아이스티 한 잔 나왔습니다.”
여직원이 아이스티를 내밀었다.
아이스티를 들고 비어있는 창가 자리 중 아무데나 가서 앉았다.
11시 55분.
창 너머로 밖을 쳐다봤다.
평화로운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5분 후.
건물 10층 높이의 창공에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이트 반응이었다.
띠링. 띠링.
게이트 반응이 일어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핸드폰이 울렸다.
경고 문자였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턱을 괴고 게이트가 완성 되는 걸 쳐다봤다.
“빌딩 지하에 임시 피난처가 마련 돼 있습니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손님!!”
내가 가만히 앉아 있자,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나를 경계했던 그 남자였다.
“얼른 대피..”
남자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벗어나 밖을 향했다.
게이트는 대형 게이트였는데 완성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시공의 균열이 발생한 직후 완성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꽤나 성격 급한 놈들이 나올 모양이었다.
어찌나 성격이 급한지 게이트에서 붉은 뿔 하나가 튀어나왔을 뿐인데 공격을 시도 했다.
붉은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가닥의 화염줄기.
한 가닥이 내가 있는 카페로 뻗어왔다.
“어..어..”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등에서 만월검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달빛 제 4초식. 보름달 가두기.”
보름달의 표면이 카페의 창가를 넓게 감쌌다.
쿵. 쿵.
화염 줄기가 몇 번, 창가를 감싼 보름달을 두드리더니 소멸 됐는지 잠잠해졌다.
‘달빛 제 5초식. 보름달 부수기.’
보름달 가두기를 캔슬하자 순간 막혔던 시야가 확 트였다.
확 트인 시야로 대형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보였다.
‘화염 뿔 유니콘.’
총 10마리였다.
몬스터 등급으로 따지만 B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였다.
“느..능력자셨군요!!”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근데 나설 생각은 없어.”
“..예?”
“나설 놈은 따로 있거든. 빨리 대피하기나 해. 나 구경해야 돼서 너 신경 못써주니까.”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남자.
밖에 보이는 화염 뿔 유니콘의 화염 뿔이 붉게 빛나기 시작하자 냅다 카페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쪼오옥.
만월검에 턱을 올리며 빨대로 아이스티를 빨았다.
10마리의 화염 뿔 유니콘이 동시에 파이어 볼 같은 화염 구체를 사방으로 날렸다.
따로 충전 할 시간이 필요 없는지 연속으로 발사했다.
총 수십 발의 화염 구체가 순식간에 허공을 뒤 덮었고,
바람에 여기저기 흩날리듯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중 몇 발이 내가 있는 쪽으로 향해왔다.
“아 놔. 관전 명당인 줄 알았더니.”
다른 명당인 것 같았다.
나는 만월검을 들어 올려 보름달 가두기로 창가를 틀어막았다.
쿵! 쿵!
아까는 노크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주먹으로 때리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 타격이 없었다.
소리가 잠잠해졌다 싶을 때,
다시 보름달 가두기를 캔슬 했다.
지상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을 쳐다보니, 상가건물들이 화염 구체에 많이들 파손 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수막 같은 것들에 불이 붙어 있었다.
인명피해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시민 속에 섞여 있던 능력자들 덕분에 아직까지 피해는 심각해 보이질 않았다.
능력자 몇 명이 지상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보였다.
화염 뿔 유니콘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야 하는데, 저 중에는 플라이 능력이 있는 능력자가 없어보였다.
나는 다시금 아이스티에 꽂혀 있는 빨대를 물었다.
화염 뿔 유니콘을 보아하니 한 번 공격을 하고 나면 탄창을 교체하듯 충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슬슬 등장할 때가 됐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드디어 내가 광주에 온 이유가 등장했다.
여러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는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녀석.
양 옆에 끼고 있는 여자들의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웃고 있는 표정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하늘을 지배하다시피 떠 있는 화염 뿔 유니콘을 봤음에도 하늘을 보고 있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여자들의 손에 키스를 하며 양해를 구하는 행동을 하는 기생오라비.
가볍게 점프를 했다.
플라이 능력이 있는지 녀석의 몸이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몸 밖으로 미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내가 있는 5층 높이 정도까지 떠오른 기생오라비.
뭐라고 중얼거렸다.
파아아!!
사아악!!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그의 왼 편에는 거센 돌풍이 불었고, 그의 오른 편에는 폭포수처럼 거센 물방울이 소용돌이쳤다.
거센 돌풍이 잠잠해지며 온 몸에 나뭇잎과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바람의 상급 정령.’
거센 물결이 걷히며 인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물의 상급 정령.’
두 상급 정령이 나타나자마자 화염 뿔 유니콘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기생오라비.
곧바로 움직이는 바람의 정령에 반해, 머뭇거리는 물의 정령.
손을 들어 물의 정령을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아래를 슬쩍 보고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때리는 대신 물의 정령을 향해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기생오라비.
입모양만 봐서는 욕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지못해 기생오라비의 명령을 따르는 물의 정령.
하늘을 향해 물을 한 차례 흩날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으로 물을 조종하는 바람의 정령.
두 정령의 합작으로 10마리의 화염 뿔 유니콘은 빠른 시간 안에 정리가 됐다.
정리가 되자마자 물의 정령의 팔목을 잡은 기생오라비.
곧장 내가 있는 카페로 다가왔다.
창문을 통해서 카페 안으로 들어온 기생오라비.
그대로 물의 정령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 쓸모없는 년이!!”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기생오라비.
“디지기 싫으면 눈깔아.”
“....”
세종대왕 헌터학교 전교 1등.
전설의 카사노바라는 별명과 함께 개차반이라는 별명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별명 중 가장 녀석을 잘 나타내는 별명은 아무래도 이거였다.
‘정력..이 아닌 정령의 왕.’
역대급 재능과 능력이라고 평가가 자자한 정령사.
‘차인수’
학교 대항전을 나가 포섭해야 할 인물이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근데 조금.
“눈 깔라고!!”
상태가 병원 가봐야 할 정도인 것 같은데.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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