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보니 100화에 딱 맞아 떨어졌네요! 야호!101회
방학 계획
“나는 학교 대항전 시작하기 전까지 한라산에서 훈련 할 생각이야.”
한설휘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피닉스.
한설휘의 말에 팔짱을 끼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닉스가 지내는 곳이 내가 가진 속성이랑 잘 맞기도 하고. 또..”
어깨에 올라타 있는 피닉스를 아기 다루듯이 무릎으로 내린 한설휘.
“그곳에 가면 닉스랑 친화력을 더 빨리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휘뚜루~ 마뚜루~”
한설휘의 무릎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피닉스.
“아무래도 닉스가 멋대로 튀어나오는 게 친화력이 아직 낮아서인 것 같아.”
“휘뚜..루? 그게 무슨 마뚜루한 소리야!!”
춤을 멈추고 머리로 한설휘의 턱을 박으려고 점프를 하는 피닉스.
간단하게 손을 들어 피닉스를 저지한 한설휘가 정시아를 쳐다봤다.
“시아야, 너는? 너는 방학 때 뭐 할 거야?”
“나? 나는 아프리카에 한 번 가보려고.”
“아프리카?”
“응. 블랙맘바를 실제로 한 번 보고 싶어서. 영상으로만 봤지 아직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리고 누가 그러더라.”
나를 힐끔 쳐다보는 정시아.
“실제로 보고 관찰하면 능력 사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아, 진짜?”
정시아의 말에 한설휘의 눈이 자연스럽게 내 쪽을 향했다.
“설휘야.”
“응?”
“금지구역 넘어가는 거 질색하잖아. 넘어가려고?”
“그..그게..”
내 말에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한설휘.
“장난이야.”
눈이 마주쳐서 그냥 해 본 소리였다.
플라이 능력이 없더라도 피닉스가 있으니,
녀석의 거처까지 가는데 별 문제가 없을 테고.
나는 정시아와 한설휘의 방학 계획에 흡족 했다.
‘한 달 후 모습이 기대 되네.’
과연 지금 보다 얼마나 더 성장해서,
얼마나 더 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너는?”
“뭐가?”
“방학 계획 말이야. 뭔가 엄청~~ 대단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겠지? 그렇겠지?”
말을 하는 정시아의 눈이 반짝반짝 거렸다.
“레이랑 여행 갈 건데?”
“엥? 어디로?”
나는 내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여기저기.”
조금 더 확실히 말을 해주고 싶어도,
이런 식으로밖에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김서방을 찾듯이,
대한민국을 들쑤시고 다녀야 했다.
‘은빛 늑대’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일단 전생에서 서진이 밟았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드르륵.
방학식이 끝나고 곧바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기숙사에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금석이 방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뒤를 따라 나오는 뚜뚜.
“황금 돌대가리. 뭐 급한 일 있어?”
정시아를 쳐다보는 금석.
“도망가야 한다.”
“도망?”
“....”
금석의 표정은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해 보였다.
연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철권(鐵拳), 박진.
박진은 박태산의 스승이었고, 박태산에게 학기 중에 부탁 했었다.
방학 때 금석과 박진 선생님을 만나러 가줄 수 있냐고.
그 결과 방학식이 시작하자마자 박태산은 금석을 데리고 박진 선생님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
금석 입장에서는 방학에도 박태산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끔찍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금석은 또래에 비해서는 월등한 성장력과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포지션을 하나로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딜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탱커도 아니고.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박태산에게 문자를 보냈다.
-금석 도주 시도 중.
띵동.
내 문자에 기다렸다는 듯이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으로 나가려던 금석.
뚜뚜를 데리고 급하게 창가 쪽으로 동선을 회전했다.
야수의 본능 때문인지 보지 않아도 손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띵동.
다시 한 번 울린 초인종.
무시하고 창문을 활짝 연 금석이 그대로 발코니에 발을 올렸다.
“짐 싸서 얌전히 기숙사에서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
현관에서 언제 돌아왔는지 박태산이 금석의 발을 발코니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갈 곳이 있습니다.”
도주가 실패 했지만 금석은 당황하지 않고 박태산의 눈을 마주했다.
“갈 곳?”
되묻는 박태산.
“고아원 동생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금석의 표정은 결연하다 못해, 비장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예?”
“떠나기 전 고아원에 들렀다 갈 생각이었으니까.”
“....”
“짐 다 싼 거 같은데, 현관으로 나와라.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던 박태산.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가는 게 좋겠군.”
박태산은 이제 완전히 금석 조련사나 다름없었다.
박태산의 말에 금석은 얌전히 발코니를 나와 거실로 걸어왔다.
급해 보이던 표정은 사라지고,
약간 들 뜬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련 참 잘 시켰네.’
고아원 이후의 일정을 소화하게 되면 오백프로 후회하게 될 게 분명한데.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살아와라.”
금석을 보며 딱 한 마디 했다.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씨익 웃으며 현관으로 나가는 금석.
멍멍!!
뚜뚜가 뒤를 돌아 우리를 보며 인사했다.
‘뚜뚜야. 너도 살아남아라.’
차마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박진 선생이라면 뚜뚜를 잡아먹으려고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만 뚜뚜에게도 고단한 여정이 될 게 분명했다.
금석과 뚜뚜가 기숙사를 나갔다.
“나도 슬슬 일어나야겠다.”
정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한설휘가 따라서 일어났다.
“심심하면 나한테 문자하던지 전화 해!”
정시아가 기숙사를 나갔다.
“서진아 갈게.”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한설휘도 기숙사를 나갔다.
남은 건 나와 레이.
둘 뿐이었다.
“레이. 우리도 슬슬 가볼까?”
크릉!
본격적인 일정에 앞서 몇 군데 들를 데가 있었다.
+ + +
“이런 예의 바른 학생을 보았나?”
간호실에서 약을 정리하고 있던 신지수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학식 했다고 인사하러 온 학생은 네가 처음이야. 오구구.”
이번에는 내 엉덩이를 두드리려고 하는 신지수.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교관님.”
“응, 말해.”
어떻게 해서든 내 엉덩이에 손을 대려는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아름이는요?”
“아름이? 집에 갔지.”
“영도요?”
“그럼~”
포기하고 손에 힘을 푸는 신지수.
가볍게 손목을 돌리며 옆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처음 봤잖아.”
다리를 꼬는 신지수.
“아름이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거.”
“....”
“방학식이 끝나고 그러더라. 집에 간다고. 캬~ 얼마나 대견하니. 다 나라는 훌륭한 교관이 옆에 있기 때문에..”
“교관님.”
“응?”
박아름이 자기 의사를 표현한 건 분명 괄목할 일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영도는 더 이상 박아름의 아버지인 박대식의 땅이 아니었다.
‘대머리 신사.’
그 녀석이 왕이었고,
박아름은 몰락한 왕가의 왕녀나 다름없었다.
대머리 신사가 과연 박아름을 가만히 내버려둘까?
영도의 유일한 치유 능력자인 박아름을?
“혼자 보냈다가는..”
“서진아.”
“네.”
“나야.”
“..네?”
“나라고. 신지수. 내가 그렇게 멍청하게 아름이를 혼자 보냈을 것 같아?”
“오오!!”
“맞아.”
“....”
“아 씨.. 그 생각을 못 했네. 기다려봐. 채린한테 연락해서 사신 길드 애들 좀 붙여달라고 해야겠다.”
핸드폰을 꺼내서 채린에게 연락하는 신지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핸드폰을 내리며 나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간호실을 둘러봤다.
‘훈수 둘 게 뭐 없으려나.’
간호실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일정을 소화하기에 앞서 신지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을 훈수 리스트에 올리고 싶었다.
느낌상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판 스퍼트를 하러 온 건데.
“너 근데 아름이 좋아하냐?”
“네?”
“간호실 올 때마다 아름이 안부 물어보는 게 영~ 수상하단 말이지.”
“교관님.”
“왜?”
“아시잖아요.”
“뭘?”
“교관님에게는 박태산 교관님뿐이듯이 저에게는 설휘..”
“아오!!”
갑자기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는 신지수.
“박태산 이 개쉐이!!”
“....”
“박태산 이 개똥보다 못한 쉐이!”
갑자기 박태산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금기어를 꺼낸 것 같았다.
한참을 욕하던 신지수.
“말이 돼?”
“....”
“오늘 방학식 했어. 사람이 말이야!!”
허공에 삿대질을 하는 신지수.
“남들 쉴 때는 쉬어야지. 그렇게 열심히 교관 일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안 그러냐, 서진아?”
“..하하.”
“방학 때 학생들 가르쳐봤자 추가 수당도 안 나와요. 어휴!”
박태산을 부추긴 게 나라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간호실 컴퓨터 모니터에 포털 사이트 하나가 떠 있었다.
포털 사이트 상단에 적혀 있는 문구는 이러했다.
-남자친구랑 여름에 가기 좋은 데이트 명소.
아직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신지수는 이미 상상 속으로 박태산과의 노후 계획까지 짜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신지수가 검색한 사이트를 보자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할 수는 없는 법!‘
“도시락 싸서 가보시던지요.”
“어디를?”
“박태산 교관님이 있는 곳에요.”
“미쳤어? 거길 내가 왜 가?”
“얼핏 듣기로는 박진 선생님 댁에 간다는 것 같던데. 박진 선생님 계신 곳이 울릉도 아닌가요? 여름에 울릉도면 꽤 괜찮아 보이는데. 교관님 입에 머리카락.”
말을 하며 자연스레 신지수의 입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교관님은 너무 치마를 짧게 있는 경향이 있어요. 박태산 교관님이 말은 안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고 있을 걸요?”
옆에 보이는 약품 차트를 들어 신지수의 무릎 위에 올렸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교관님은 머리카락을 왼 쪽으로 가르마 타는 것 보다는 오른 쪽..”
내 손을 잡는 신지수.
“어허. 선은 넘지 말지?”
“..넵.”
훈수를 멈췄다.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그후로 필사적으로 신지수에게 훈수를 뒀다.
[훈수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 1이 적립 됩니다.]
열 번 넘게 메시지가 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훈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신지수.
“꺼져!! 날파리도 아니고 옆에서 웽~ 웽~ 거릴래, 자꾸? 너 때문에 약품 정리를 못 하겠잖아!”
쫓겨났다.
“....”
닫힌 간호실 문을 보며 손을 들었다.
“나랑 눈사람 만들..”
쿠당탕탕!!
신지수가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곧장 도망쳤다.
‘아..’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 +
“세리나와 함께 세나가 있는 곳에 가 있을 생각이란다. 껄껄.”
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첸의 표현은 틀리지 않았다.
세나가 있는 곳은 맞았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거실에서 레이와 뛰어놀고 있는 세리나를 쳐다봤다.
첸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웃는 표정을 쉽게 볼 수 있었다.
3달.
세리나가 각성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첸의 보살핌 덕분에 각성을 한다고 해도 전생처럼 능력 부조화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서진아.”
“예?”
첸과 함께 거실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중 첸이 근엄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혹시나..크흠..”
말을 하다가 헛기침을 하는 첸.
“아니다. 아니야. 껄껄.”
뭐지.
똥을 닦다 만 것 같은 이 찝찝함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 갈 곳이 몇 곳 더 남아 있었다.
“벌써 가려는 게냐?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다음에요.”
나는 거실로 걸어가서 세리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잘 지내고 있어. 시간나면 한 번 보러 갈 테니까.”
“응!”
이제 세리나의 머리에 손을 얹을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각성을 하게 되면 키가..
‘나랑 비슷했던가. 나 보다 조금 작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세리나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가 현관으로 걸어갔다.
“레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