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지겟쬬!98회
기말고사
끼리끼리 논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는 바다.
헌데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 적용 되는 말이지, 아무데나 막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정시아, 한설휘, 금석.
세 명 모두 리얼리티 설정을 80%바꿨다.
그 때문인지 나 역시 그럴 거라고 확신한 모양인데.
‘중간고사 때는 미로의 설정을 마음대로 바꾸더니.’
“교관..”
박태산 교관을 부르려다가 나를 보고 있는 학생들을 쳐다봤다.
‘쟤들 표정은 왜 저래?’
당연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라면 당연히 80%를 할 거라는 시선.
“....”
강함과 고통은 비례하지 않았다.
강해도 고통은 쟤네나 나나 매한가지였다.
내가 미적지근한 태도로 철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자,
박태산 교관이 한 마디 했다.
“80%가 부담되면 말해라. 낮춰주겠다.”
그의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말은 안했다 뿐이지,
‘에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80%보다 쟤들의 시선이 더 부담되네.’
“80%로 하겠습니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대도 안 맞으면 60%나 80%나 도긴개긴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프로그램 훈련장.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등에 메고 있는 칼집에서 만월검을 꺼내들었다.
“흠..”
앞에서 생성 되는 프로그램 생명체를 쳐다봤다.
크기를 보아하니,
거대종은 아니고.
생김새를 보아하니,
우악스러운 몬스터도 아니고.
“음?”
나는 의문을 표했다.
도합 세 개의 프로그램 생명체가 윤곽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명체의 윤곽이 몬스터가 아니었다.
‘인간과 닮은 몬스터가 뭐가 있더라.’
그런 생각을 하며,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 때.
“....”
나는 천장에 달려 있는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박태산이 분명 나를 보고 있을 터.
목소리에 살짝 날을 세워, 항의했다.
“사람은 쫌 아니지 않나요?”
내 앞에 생성 된 프로그램은 인간과 닮은 몬스터가 아닌, 세 명의 인간이었다.
얼굴 표정이나 복장을 보면 빌런이 확실하긴 한데.
내 말에 박태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박태산이 일부러 인간으로 프로그래밍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정시아 때에 말했던 것처럼 상대가 과하다 싶으면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과하다고는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인데.
나는 앞에 생성 된 프로그램 인간들을 쳐다봤다.
잠에 빠져든 것처럼 셋 다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래서 능력치고 스텟이고 아무것도 아는 정보가 없었다.
상대가 몬스터면 단번에 생김새를 보고,
능력이나 스텟을 유추할 수가 있는데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관상가도 아니고.
왕이 될 상인지 노비가 될 상인지 어찌 알겠는가.
이 부분에 있어서 박태산 교관 역시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는지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상대에 대한 간략한 정보다. 숙지하면 손을 들어라.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박태산 교관의 목소리.
나는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희대의 살인마 트리오.
1900년대 초반 등장한 빌런. 그들은 능력자 사회 역사상 가장 많은 살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사망자 수가 13000명에 육박한다. 비공식 통계까지 합하면 20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 된다. ‘가장 많은 수의 인명 피해를 낸 빌런’이라는 제목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돼 있기도 하다.
‘1900년대 초반이면.’
내가 모를 만도 했다.
나는 초중반에 나오는 쓸데없는 설명을 스킵하고 살인마 트리오의 능력치를 읽었다.
-살인마 트리오는 개개인으로 따졌을 때는 A급 능력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셋이 뭉치면 S급을 넘어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살인마 트리오의 능력은 세 명 모두 풍(風) 속성이다.
-그들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날과도 같다.
‘까다롭겠는데.’
달빛 능력에는 카운터가 별로 없었다.
별로 없는 카운터 중 하나를 꼽자면 바람 계열 능력자였다.
나보다 이동 속도가 빠를 경우 공격을 히트시키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달빛 계승자를 대중적인 카테고리 안에 넣는다고 치면,
검사에 가까운 능력자였으니까.
‘개인 능력치는 A급. 셋이 합치면 S급이라.’
나는 손을 들었다.
내 신호에 빌런들의 눈이 서서히 떠지기 시작했다.
셋이서 펼치는 연계 플레이만 조심하면 상대는 가능 할 것 같았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1단계.’
미리 버프를 걸었다.
바람계열 능력자는 대부분 민첩의 스텟이 다른 스텟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괜히 여유부리다가 시작과 동시에 사망처리 될 수가 있었다.
‘달빛 제 2초식. 월광쇄도(月光殺到).’
내친김에 2초식도 시전 했다.
이번 양상은 속도전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고,
나는 시작과 동시에 결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속도전에서 한 번 내가 밀리기 시작하면,
손 쓸 방법이 없어질지도 몰랐다.
‘눈 한 번 더럽게 늦게 뜨네.’
눈 뜨는 시간이 천년만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시아가 했던 것처럼 시작 전에 유리한 포지션을 점하고 싶었지만, 정시아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반칙성에 가까운 플레이가 정상참작이 될 여지가 많았다.
나는 만월검을 들고 있는 손목을 돌리며 기다렸다.
눈을 모두 뜬 빌런들.
나를 발견하자마자 포지션을 잡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기.”
파워를 살짝 아래로 조정했다.
빌런들을 배려해서가 아니었다.
풀 파워로 시전 했다가는 아무리 튼튼하다고 하는 프로그램 훈련장이라고 해도, 무사할지 장담을 못했다.
괜히 망가트리느니, 파워를 낮추는 편을 선택했다.
반달 모양의 1초식이 빌런들을 향해 날아갔다.
쇄에엑!!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나는 곧장 1초식의 뒤를 따라 앞으로 대시했다.
1초식을 사방으로 산개하며 피하는 빌런들.
역시 피할 줄 알았다.
1초식인 달빛 가르기는 데미지 면에서는 다른 초식들 보다 압도적인 면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상대의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적중 난이도가 올라갔다.
특히 이 녀석들처럼 민첩 스텟이 높은 바람 속성 능력자일 경우는 속박 능력을 연계하지 않은 이상 맞추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훼이크 용도로 썼다.
본체는 나였다.
산개하는 빌런 한 명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곧장 만월검을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달의 축복과,
월광쇄도를 사용한 상태였다.
솔직히 일격에 한 명을 제거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서걱.
팔 한쪽이 나가떨어졌다.
“....”
개인 스텟과 능력치는 A급이라고 하더니.
뭔가 낚인 기분인데.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팔을 잃은 빌런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피도 흐르지 않았다.
피 대신 그 자리에 스파크가 튀며 ‘지직’소리가 날 뿐이었다.
내게서 거리를 벌리려는 빌런.
나는 곧장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 잡았다.
재차 만월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쉬이익-!
새애액-!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바람소리.
나는 황급히 만월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빠른 반응 속도였다고 생각했다.
헌데 살짝 늦었는지, 내 뺨에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내렸다.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이 가위로 난도질 한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있던 곳을 쳐다봤다.
휘이익.
휘익.
집 하나는 거뜬히 먹어치울 정도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살벌한 소리를 내며 제 자리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이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당장이라도 빨려들 것만 같았다.
나는 빌런들을 쳐다봤다.
내가 회피 동작을 가져가는 찰나의 순간에 포지션을 다 잡은 모양새였다.
나를 중심으로 삼각형 꼴로 포지션을 잡은 세 명의 빌런.
양 손을 들고 있었다.
내가 한쪽 팔을 절단 낸 빌런도 양팔을 들고 싶은지, 팔을 잃은 어깨를 들썩들썩 거렸다.
“....”
뭔가 사신 길드의 ‘지주진’에 갇힌 꼴이 됐다.
나는 혹시나 하고 팔을 잃은 빌런을 향해 도약했다.
사아아-!
거센 바람이 내 움직임을 저지했다.
뚫고 가자니 몸이 분해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바람이 잠잠해졌다.
대신 중앙 지역은 회오리바람이라는 거대한 바람의 압박이 있었다.
마치 태풍의 눈 안에 갇혀서 회오리바람이랑 스파링 하는 느낌이었다.
회오리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빌런들이 형성한 결계를 살폈다.
확실히 팔을 잃은 빌런 쪽 결계가 다른 곳에 비해 취약하기는 했다.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기.‘
외팔 빌런을 향해 나아가던 반달 모양의 달빛.
아슬아슬하게 외팔 빌런 앞에서 와해됐다.
나는 화력을 높여 다시 한 번 시전 했다.
끼익.
끼이익.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이번에도 전과 결과가 동일했다.
하지만 과정은 조금 달랐다.
달빛 가르기가 강해진 만큼 달빛 가르기를 막는 바람의 강도가 강해졌다.
쿠우우.
우우우.
어느새 다가왔는지 회오리바람이 있지도 않은 아가리 벌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회오리바람을 피해, 옆으로 도약하며 사방으로 ‘달빛 가르기’를 난사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반달 모양의 달빛.
내 예상이 맞다면 빌런들이 생성한 결계는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가, 취약 부위에 순간적으로 힘을 몰아주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사방으로 달빛 가르기를 사용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할까.
나는 이걸로 빌런들의 결계를 부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적어도 결계의 균열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를 향해오던 회오리바람.
갑자기 분열을 하듯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방향은 정확히 내가 달빛 가르기를 시전한 곳이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에 난입한 회오리바람.
심판이라도 되는 것 마냥 중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언 했다.
막으려는 자의 판정승이라고.
심판의 결과에 승복한 뚫으려는 자는 굴복하듯 모습을 감췄다.
부업(?)을 마치고 돌아온 회오리바람.
크기가 반 토막 나 있었다.
달빛 가르기를 막는데 막대한 힘을 보태고 편파판정에 힘을 쓰고 온 모양인데.
나는 결계 중 사신 길드의 ‘지주진’을 높게 평가했다.
속박 면에서는 어떤 결계보다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속박을 한 번 풀 수만 있다면 결계의 방어 측면에서는 다소 허술한 면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빌런들이 생성한 바람 결계는 지주진과 반대였다.
속박 면에서는 회오리바람만 피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결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방어 측면에서는 지주진 보다 몇 수 위였다.
솔직히 감탄했다.
아무리 100% 전력으로 안하고는 있다지만 연속되는 달빛 가르기를 모두 막을 줄이야.
반 토막 난 회오리바람이 자식을 낳는 것처럼 내 상반신만한 회오리바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분명 본체 회오리바람의 크기가 작아진 걸 보면,
빌런들의 마나소모가 극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 ‘달의 축복’과 ‘월광 쇄도’를 유지하고 있는 탓에 물을 틀어놓은 것 마냥 달빛력이 줄줄 세어 나갔다.
현재 내게 남아 있는 달빛력은 5000 가량.
벌써 반이나 소모했다.
꼬마 회오리바람 수십 개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달빛 제 4초식. 보름달 가두기.’
나는 일단 내 몸을 보름달 안에 가뒀다.
보름달 가두기는 상대방을 속박시킬 수도, 나를 보호하는 쉴드 능력으로도 사용 할 수 있었다.
지직.
지지직.
회오리바람이 밖에서 보름달을 긁는 소리를 냈다.
보름달 가두기를 쉴드로 사용 했을 경우 방어력이 웬만한 탱커보다 높았다.
고작 회오리바람에 뚫릴 능력이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단순한 방법으로 최대 출력으로 달빛 가르기를 몇 번 시전하면 바람 결계가 무너질 것 같긴 했다.
근데 그건 쫌 너무 임팩트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과연 이 방법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정시아와 한설휘를 떠올렸다.
그녀들이 보여준 임팩트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전교 1등자리 놓치기 싫은데 말이지.”
본래 욕심이 없던 자리였다.
그런데 덜컥 중간고사 때 올랐다.
올라보니 1등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달의 축복은 총 5단계까지 사용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버프 효과가 배가 됐다.
다만 높은 단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텟이 충족이 돼야 하는데.
[현재 2단계까지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내 스텟은 B등급.
2단계까지 사용 가능 했다.
가급적이면 1단계에서 해결하고 싶었는데.
“2단계.”
시전과 동시에 몸에 박하를 바른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퍼지기 시작했다.
결정 했다.
1등자리를 사수하기로.
[작품후기]
병원 갔다오니 허리가 조금 괜찮아진 느낌이 드는군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