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슬슬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였다.96회
기말고사
기말고사 날이 밝았다.
일정은 중간고사랑 동일하게 실기시험에 앞서 필기시험이 먼저였다.
첫 과목은 ‘몬스터학개론’이었다.
“....”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근데 뭔가 난이도가 중간고사에 비해 확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끄응..”“하..”
문제는 다른 학생들이었다.
시험 감독인 몬스터학개론 교관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상당히 음험했다.
5분.
중간고사와 마찬가지로 5분만에 다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벌써?”
몬스터학개론 교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
몬스터학개론 교관이 많을까,
내가 더 많을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험장을 나갔다.
+ + +
몬스터학개론 뿐만 아니었다.
다른 과목들도 난이도가 상승 해 있었다.
이렇게 되자 슬슬 금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박태산 교관의 과목인 ‘전술의 이해’ 시험지를 받아들며, 금석을 힐끔 쳐다봤다.
시험지를 보자마자 머리채를 잡아 뜯고 있었다.
‘40등 안에 들 수 있으려나.’
자세를 고쳐 잡고 ‘전술의 이해’ 시험지를 풀기 시작했다.
역시나 초반과 중반까지는 중간고사와 동일하게 술술 풀렸다.
후반도 서술형이라 시간이 걸렸다 뿐이지, 완벽하게 풀었다.
마지막 문제.
-아래의 보기를 읽고 ‘나’ 입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서술하시오.
[의문의 거인 악마가 등장 했다. ‘나’를 포함한 동료 다섯 명은 각각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중략.. ‘나’는 이 팀의 리더다.]
빌런의 습격 때 일어난 사건을 박태산이 시험 문제로 재구성한 ‘보기’였다.
“음..”
시험지를 보며 처음으로 고민 했다.
중간고사 때도 유일하게 이번 과목의 마지막 문제에서 고민했다.
‘보기’의 핵심은 중간에 적혀 있는 ‘성직자가 5분 안에 도착 한다’였다.
그 문장으로 인해 ‘도주’라는 선택 사항이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중간고사랑 흡사했다.
중간고사 때도 박태산은 ‘나’를 중심으로 적과 싸우기를 강요했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살폈다.
도심에서 떨어진 농가 지역이었다.
도심에 비해서는 인구가 적긴 했지만,
도주를 선택할 시 희생이 불가피했다.
나는 펜을 몇 번 굴리다가 답을 적기 시작했다.
박태산이 원하는 대로 거인 악마와 싸우는 답안을 적었다.
중간고사 때는 박태산이 의도적으로 빌런에 대한 정보를 누락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포함한 아군의 일부 정보를 누락시켰다.
누락 된 정보는 아군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나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A급 아이템을 두르고 있다.’
‘S급 아이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정보가 전부였다.
나는 이러한 정보를 이렇게 해석했다.
‘내 임의로 아이템을 대입 시켜도 된다.‘ 라고.
그래서 대입 시켰다.
거인 악마를 때려잡을 수 있는 아이템들을.
하지만 아군의 능력과 능력치가 그렇게 높거나 좋지 않았다.
그래서 거인 악마를 잡을 수 있는 전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식으로 전개를 했다.
아군은 버텼고,
성직자가 도착해 거인 악마를 소탕했다.
아이템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기에,
가능한 답안이었다.
아마도 내 답안이 정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누락 시켰으니.’
나는 시험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시험은 이걸로 끝이었다.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 + +
교관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하나 있었다.
서진. 과연 이번에도 전 과목 만점을 기록 할 것인가.
기말고사 첫 날이 저물고,
학생들이 모두 하교했다.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교관실.
여러 명의 교관들이 허탈한 얼굴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정아영 교관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일부러 이번에는 박태산 교관님처럼 몇 몇 문제를 어렵게 꼬아서 출제를 했거든요. 근데..”
서진의 시험지를 쳐다보는 몬스터학개론 교관.
“이번에도 만점이네요.”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아영 교관.
“외국어 과목도 마찬가지에요.”
“..진짜 뭐하는 애랍니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천장을 보며 허탈함을 교환하던 두 교관이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박태산 교관을 향했다.
“에이, 설마.”
“에이.. 박태산 교관님 과목도 만점은 아니겠죠.”
“중간고사 때는 만점이었잖아요.”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태산 교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 때 교관실로 들어오는 신지수 교관.
“엥? 여러분들 퇴근 안하고 뭐해요?”
교관실을 훑어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채점하고 있었어요.”
정아영 교관이 말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신지수 교관.
“원래 시험 다 끝나면 다 같이 채점하는 게 저희 학교의 국룰 아니었던가요?”
말을 하며 정아영 교관 앞에 있는 시험지를 집어 드는 신지수 교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옆에 있는 몬스터학개론 시험지도 집어 들었다.
“와..정상 아니네 진짜. 설마 내 과목도..”
혀를 내두르다가 자신의 자리로 뛰어가는 신지수 교관.
지문인식 서랍에 손을 갖다 댔다.
삑.
서랍이 부드럽게 열렸다.
시험지를 뒤적거리다가 ‘서진’이라고 적혀 있는 시험지를 꺼내드는 그녀.
빠르게 서진의 시험지를 훑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정아영 교관과 몬스터학개론 교관.
“어때요?”
“틀린 거 있어요?”
두 교관이 신지수 교관을 재촉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두 교관을 쳐다보는 그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 진짜 또 올 백 나오는 거..아닌가요?”
“....”
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지수 교관.
“아직 저희의 희망!! 박태산 교관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박태산 교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박태산 교관 옆에는 진즉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교관이 한 명 있었다.
아이템 교관.
박태산 교관을 대신해서 고개를 든 아이템 교관.
“뭐예요? 그 표정? 그런 불쌍한 표정 짓지 마요.”
신지수 교관의 말에도 아이템 교관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에이. 왜요, 왜. 교관님 시험은 내일이잖아요. 왜 그런 표정을..”
말을 하며 슬쩍 박태산 교관의 앞에 있는 시험지를 쳐다보는 신지수.
서진의 시험지였다.
“태산씨~ 태산 교관님~ 만 점은 아니죠?”
신지수 교관의 말에 태산 같은 어깨를 꿈틀거리는 박태산 교관.
묵묵히 시험지를 서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요? 결과는 알려주고 가야지. 태산 교관님? 태산씨? 야!! 박태산!!”
교관실을 나가는 박태산 교관.
남겨져 있는 이들이 의자를 끌고 와서 아이템 교관을 쳐다봤다.
“옆에서 다 봤을 거 아니에요. 어때요. 몇 개는 틀렸죠? 최소 한 개라도.”
신지수 교관의 말에 앞에 있는 A4를 돌돌 말아서 담배 피는 시늉을 하는 아이템 교관.
“그게 말이죠.”
A4를 내려놓으며 입을 여는 아이템 교관.
“박태산 교관님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마지막 문제에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자문..이요?”
“예. 자신이 모르는 아이템 용어가 나와서 이게 실존하는 아이템인지 묻더군요. 그래서 시험지를 쳐다봤죠.”
“쳐다봤는데?”
“그게.. 마지막 문제 빼고는 채점을 끝낸 상태더라고요. 후우..”
A4를 다시 돌돌 말다가 신지수 교관이 손을 탁 치자 한 숨을 쉬는 아이템 교관.
“일단 마지막 문제 빼고는 만점이었습니다.”
“와..”
“진짜..”
“여러분 진정하세요. 우리에게는 아직 마지막 문제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몬스터학개론과 정아영 교관을 독려하는 신지수 교관.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아이템 교관을 쳐다봤다.
“일단 마지막 문제 내용을 말씀 드리자면.”
앵무새처럼 길게 말을 하는 아이템 교관.
“수치상으로는 ‘나’와 일행들이 전멸하는 시나리오인데.”
“제 생각도요.”
얘기를 다 들은 몬스터학개론 교관과 정아영 교관이 의견을 교환 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아이템 교관.
“박태산 교관님이 의도한 건지 안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빠져 있더라고요.”
그의 말에 신지수 교관이 곧바로 말했다.
“설명 했잖아요. A급. S급.”
“교관님. 그리고 다른 교관님들. 아이템 등급을 나누는 지표는 분명히 정확한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나 상황에 따라 아이템 등급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아이템 교관의 말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세 교관.
“그리고 같은 등급이라도 상대나 상황에 따라..”
“교관님.”
“..예?”
“본론 좀요.”
“..예.”
신지수 교관의 말에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는 아이템 교관.
손을 내리며 말했다.
“자세히 적어놨더군요. 아이템의 이름부터 효과까지. 그리고 활용법까지. 저도 정확히 모르는 아이템도 몇 개 적어놨더군요.”
“그 말은..”
“서진 학생이 설정한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거인 악마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그렇게 적어놨기도 했고요.”
“....”
아이템 교관을 보는 세 사람이 눈을 깜박였다.
“근데 이런 답을 박태산 교관님이 의도를 했는지,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답인지 모르겠어서. 근데 만약 제 과목에서 그런 답을 적었다면 저는 만점을 줬을 것 같습니다.”
확인사살에 가까운 말에 신지수 교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요?”
“이대로 저희 교관들이 중간고사에 이어서 한 학생에게 전패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박태산 교관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저..교관님?”
“말씀하십시오!”
“서진 학생의 담임 교관이신데.. 교관님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닌가요?”
“하..하하..”
신지수는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잠깐 깜빡했다.
황금 동전 때 당한 걸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살짝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긴 하죠.”
“저도.”
“금방 다녀올게요.”
교관실을 나서는 신지수 교관.
+ + +
“여기 있을 줄 알았어.”
학교 내부에 설치 된 정원.
정원 앞에 설치 된 벤치에 앉아 있는 박태산에게 다가가는 신지수.
박태산 옆에 가서 앉았다.
“만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서진 말이야. 네 과목도 만점이냐고. 오늘 친 다른 과목은 싹 다 만점이거든.”
“....”
실내 정원이었지만 천장이 뚫려 있는 탓에 나비 몇 마리가 정원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박태산.
신지수는 그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언제나 이랬다.
박태산은 버퍼링이 꽤 심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적응해서인지 신지수는 재촉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시험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교관들끼리 시험 결과를 공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 한다.”
“야.”
주먹으로 박태산의 어깨를 때리는 신지수.
“내가 둘이 있을 때는 말 그렇게 선 긋는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지. 그냥 쫌 그래. 라고 하면 될 걸.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
“어휴. 답답아. 답답아.”
뻥 뚫린 천장을 쳐다보는 신지수.
“이번에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이랑 비슷한 영화 하나 개봉한다던데.”
말을 하며 슬쩍 박태산의 얼굴을 쳐다봤다.
“보러갈까?”
“..아니.”
“왜? 너 그 때 보니까 얼굴 시뻘게져가지고 좋아하더만.”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뻥 치시네! 야한 장면 나올 때 눈 똥그랗게 뜨는 거 다 봤거든?”
“....”
“또. 너 꼭 대답하기 힘들 때만 버퍼링 걸리더라.”
“....”
다시 천장을 보는 신지수.
“이제 진짜 여름인가 봐. 여름에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오면 좋겠다. 제주도라던지. 아니면..제주도라던지. 아~ 제주도 가고 싶다~ 이번 여름에~ 아~ 제~주~도~”
“여름에 나 어디 갈 때 있어.”
고개를 홱 돌려 박태산을 쳐다보는 신지수.
“뭐라고?!”
“금석 데리고 박진 선생님 만나 뵈러 가야 돼.”
“왜? 갑자기? 왜? 나는 이해가 안 되는데? 너 박진 선생님 완전 무서워하잖아. 그리고 금석은 왜 데리고 가는 건데?”
“약속 했어.”
“약속? 누구랑? 어떤 년이야?”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태산.
따라서 일어서는 신지수.
가려는 박태산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오늘 내가 묻는 거 중에 하나도 제대로 대답 안 해준 거 알아? 나 너무 섭섭해지려해.”
“....”
“나는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야? 나만 그렇게 생각해? 말 나온 김에 오늘 딱 정하자. 나 도저히 이렇게는 답답해서 못 살겠다. 나는 네가 좋..”
“영화 볼 때 얼굴 빨개진 거.”
신지수의 말을 끊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박태산.
“네가 내 손 잡고 있어서야.”
“..뭐..라고?”
“내 손 잡았잖아. 네가. 그래서 얼굴 빨개진 거라고.”
“그..그럼 뿌리쳤으면 됐잖아!”
“그러고 싶지 않았어.”
“....”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휘뚜루~ 이열~ 분위기가 마뚜루~ 한데? 휘뚜루 마뚜루~”
관객 한 마리가 난입했다.
“이리오라고!!”
뒤를 이어 한설휘가 난입했다.
“어? 교관님들 안녕하세요!”
신지수는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