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끝!94회
황금 고블린
기말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계속되는 여유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살짝 풀린 상태.
“이 부분 기말고사에 나오니까 별표 쳐 놔.”
나와는 반대로 다른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신지수 교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공부와 담을 쌓은 금석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신지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금석과 딜을 했다.
기말 고사에서 50등 안에 들면 최고급 한우를 사주기로.
나뿐만 아니라 박태산 교관도 금석에게 딜을 했다.
기말 고사에서 성적을 잘 받으면 트레이닝을 쉬엄쉬엄하기로.
초반에는 투지와 열정이 활활 불타는가 싶더니 지금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안 조는 것만 해도 용하네.’
“하암..”
나는 하품을 하며 창밖을 쳐다봤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었다.
헌터 학교의 방학은 기본 두 달 이었다.
하지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친 종합 성적이 전교 5등 안에 들면 방학 기간에 ‘학교 대항전’에 출전해야 했다.
학교 대항전에 출전을 할 경우 방학이 반 토막 났다.
한 달.
중간고사 때 1등을 했고,
기말고사 때는 별 이변이 없으면 5등 안에 들게 분명했다.
내가 학교 대항전에 참가하는 건 기정사실화된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내게 주어진 한 달이라는 방학동안 나는 이래저래 바쁘게 움직일 예정이었다.
그리고.
학교 대항전에 출전해 마지막 퍼즐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중요한 퍼즐조각을 획득 할 예정이었다.
모든 계획은 완성됐고,
이제 실행만 남았다.
“하아암..”
나는 눈을 비비다가 운동장을 쳐다봤다.
운동장 상공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공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6월 20일.
슬슬 때가 되긴 했지.
“하아암.”
재차 하품을 하며 턱을 괴고 운동장을 쳐다봤다.
공간의 균열이 확장되며 게이트로 변하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0개가 넘었다.
운동장에만 국한 된 게 아니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게이트가 동시에 열리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현재 내 눈에 확인 된 게이트만 50개가 넘었다.
띠링.
띠링.
학생들의 핸드폰에 단체 문자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흘러나오는 교내 방송.
[지금 전국 각지에 대량의 게이트가 발생. 교관님들은 학생들을 신속히 대강당으로 피신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교관님들은..]
“갑자기 뭔 일이래?”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며 창밖으로 걸어가는 신지수.
“헐..”
게이트는 이제 100개에 육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딱 소형 몬스터가 나올 정도의 크기.
“나 저렇게 많은 게이트 처음 봐.”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니야?”
믿기 힘든 표정으로 한 마디씩 내 뱉는 학생들.
나는 여전히 천하태평 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1학년 10반. 밖에 그만보고 따라와.”
신지수가 앞문을 열었다.
위이잉-!
위이잉-!
그 때 다시 한 번 울리는 단체 문자.
이번에는 문자소리가 달랐다.
긴급재난문자 소리였다.
“전국에 열린 게이트의 숫자가 만 개가 넘는다고? 꼬맹이들!! 일단 따라와!”
신지수가 단체 스턴에 걸려 있는 학생들을 억지로 교실 밖으로 밀었다.
신지수의 표정은 다급했고, 심각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 개가 넘는 게이트가 열린 건 능력자 사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장 많은 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천 개가 고작이었다.
30년 전.
악마가 남은 불꽃을 태우듯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그로 인한 피해로 암흑기가 시작 됐는데.
만 개의 게이트라니.
사상 초유의 사태가 틀림없었다.
“초유의 사태이긴 하지.”
사상 초유의 대규모 이벤트가 개막했다.
+ + +
대강당에 모여 있는 전교생들과 교관들.
실시간으로 상황을 핸드폰으로 받아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방송을 하는 BJ나 스트리머들이 실시간으로 너튜브로 현재 상황을 촬영하고 있는 영상을 내보내고 있었다.
만 개의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단 한 종류.
산타클로스처럼 보따리를 들고 있는 고블린.
녀석들은 게이트에서 나온 후, 거리를 활보하며 보따리에서 황금색의 동전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게 전부였다.
사람을 공격하지도, 건물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공격 의사가 전혀 없었다.
오직 황금 동전만 주구장창 뿌려대고 다녔다.
보따리 고블린을 죽이면 연기처럼 곧바로 증발하듯 사라졌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 한 두 명씩 거리로 나와 보따리 고블린이 뿌린 황금 동전을 줍기 시작했다.
-저는 감정사 능력이 있는 BJ입니다. 이건 진짜 황금입니다!!
학생 한 명이 틀어놓은 영상에서 BJ가 황금을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대놓고 거리로 나와 황금을 줍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점점 사람들끼리 마찰과 다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재난경보는 계속해서 울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
보따리 고블린은 전혀 공격 의사가 없으니까.
학생들이 높게 점프를 하며,
운동장에 쌓여있는 황금을 쳐다봤다.
아무도 건들지 않은 황금이 운동장에 열매가 맺히듯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나는 교관들을 힐끔 쳐다봤다.
슬슬 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교관들은 밖에 상황이야 어떻든 간에, 상황이 해제 될 때까지 학생들을 통제 할 모양새였다.
나는 신지수 교관에게 다가갔다.
“교관님.”
“응?”
“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픈데요.”
“참아.”
“교관님.”
“왜?”
“교관님한테만 특별히 말씀드릴게요.”
신지수 교관의 귀에 입을 갖다 댔다.
“줍는 사람이 임자.”
내 속삭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지수 교관의 콧구멍이 살짝 벌렁거렸다.
“제 예언에 따르면 12시에 고블린이 전부 사라질 거예요. 그 전에 황금을 많이 줍는 게 개이득입니다.”
신지수의 눈과 입이 벌렁거렸다.
“이런 기회. 놓치실 거예요?”
신지수의 심장이 벌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지수는 돈 욕심이 있는 여자였다.
수학여행 때 학생들을 상대로 내기 도박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크흠..”
주변 교관들의 눈치를 살피는 신지수 교관.
“정아영 교관님~”
옆에 서 있던 외국어 교관을 불렀다.
“저 서진이 데리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애가 너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혼자 보내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상황이 상황인데.”
“알겠어요.”
“네!”
신지수 교관과 함께 뒷문을 통해 대강당을 나왔다.
“진짜야?”
뒷문을 닫자마자 물어보는 신지수 교관.
그녀의 눈동자에 황금이 굴러다녔다.
“네.”
내 확답에 입꼬리가 승천할 정도로 올라가는 그녀.
헌터 학교는 청정구역이었다.
사방에 황금이 널려 있었다.
“이게 전부 황금이라니..”
황금 하나를 주워든 신지수 교관.
이빨로 세게 물었다.
“오오.. 이빨이 나갈 것 같아.”
모내기를 하듯 황금을 주워, 주머니에 넣기 시작하는 그녀.
“화장실 급하다는 거 뻥인 거 다 알아.”
허리를 피는 그녀의 주머니가 터질 것처럼 두둑해졌다.
“너는 집에 돈도 많으면서 욕심은. 뭐해? 안 줍고?”
“교관님.”
“응?”
“아침 먹은 게 탈이 나서 화장실에 전세 낸 걸로 하죠. 교관님은 그런 저를 계속 기다린 거고.”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는 슬금슬금 신지수 교관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해? 어디 가려고? 이리와. 이리 안와?”
플라이를 시전 했다.
“야!! 야이 새끼야!!”
“교관님. 그거 입에는 물지 마세요.”
나는 곧장 기숙사로 날아갔다.
+ + +
멍멍!!
크르릉?(일찍 왔네?)
뚜뚜와 레이가 내 곁으로 뛰어왔다.
“일이 조금 있어가지고.”
나는 쪼그려 앉아, 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뚜뚜. 레이. 너희 후각 좀 빌려줄래?”
멍멍?
크릉?(무슨 말이야?)
“일단 나가자. 나가면서 설명해줄게. 뚜뚜. 몸 크기 좀 레이처럼 만들어 봐.”
레이와 뚜뚜를 양 팔에 한 마리씩 안고 기숙사를 나섰다.
+ + +
보이는 족족 능력자들이 죽이고 다니는 바람에,
보따리 고블린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의 고블린이 도심 속을 활보하며 황금 동전을 뿌려대고 있었다.
정부와 헌터의 통제를 벗어난 시민들의 숫자 역시 보따리 고블린과 대칭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
그야말로 혼잡 상태.
도로의 차들도 전부 멈춰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동물 두 마리를 품에 안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활보하고 있었다.
황금 동전은 단 하나도 줍지 않았다.
“다른 냄새 나면 바로 말해죠.”
보따리 고블린의 몸에서는 고블린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출발에 앞서 뚜뚜와 레이에게 고블린의 냄새를 맡게 했다.
멍멍!!
크르릉!!(잠시만!!)
나는 뜀박질을 멈췄다.
도심 한가운데였다.
보따리 고블린들이 차 위로 뛰어다니며 황금을 뿌려댔고,
사람들은 무법자처럼 도로 위의 동전을 주웠다.
멍멍!!
크릉!(저기!)
뚜뚜와 레이가 앞발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보따리 고블린 보다 조금 덩치가 큰 고블린 한 마리가 등에 보따리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녀석의 몸에서 은은한 금색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찾았다.
‘황금 고블린.’
나는 곧바로 황금 고블린을 향해 돌진 했다.
“키키.”
나를 보고 있는 황금 고블린.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공격 의사가 전혀 없었다.
다리로 황금 고블린을 자빠트린 후,
발로 황금 고블린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잠시 후.
다른 고블린들과 마찬가지로 증발하듯이 사라지는 황금 고블린.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고블린들과는 다르게 아이템 하나가 드랍 돼 있었다.
“고블린 가죽은 필요 없는데.”
나는 줍는 대신 뚜뚜와 레이를 품에서 내렸다.
“이 냄새야. 앞으로 이 냄새만 찾으면 돼. 알겠지?”
고블린 가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뚜뚜와 레이.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뚜뚜와 레이를 품에 안았다.
“가자.”
아까처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고태공 사태.’
훗날 이번 사건을 사람들이 강태공에 비유해 부르는 말이었다.
보따리 고블린들이 뿌리는 황금 동전은 전부 가짜였다.
12시가 지나면 전부 사라지거나 ‘나뭇가지’ 혹은 ‘벌레’. 혹은 ‘동물의 배설물’로 둔갑했다.
진짜는 보따리 고블린들 사이에 섞여 있는 황금 고블린이었다.
황금 고블린은 100마리당 한 마리 꼴로 출현을 했고,
잡으면 아이템을 드랍했다.
드랍한 아이템은 12시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황금 고블린이 드랍하는 아이템은 제각각이었다.
그렇긴 해도 하나의 연관성은 있었다.
전부 고블린에 관련 된 아이템이라는 것.
이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쩌다 황금 고블린을 잡았다 치더라도 그 이유를 몰랐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다.
+ + +
고태공 사건.
이 사건은 내게는 이벤트나 다름없었지만,
단순한 헤프닝은 아니었다.
정확히 정오 12시에 시작해서 자정 12시에 사건이 종결 됐다.
정확히 12시간.
그 시간에 뿌려진 막대한 황금.
그로인해 12시간 동안 황금 시장이 요동쳤다.
몇 시간이 채 되지도 않은 시간에 황금 값이 떡락을 했다.
떡락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폭락.
정부는 당부했다.
사건 조사를 끝마칠 때까지 황금 거래를 중단하라고.
하지만 일부 황금을 거래하는 상인들.
혹은 브로커들은 보따리 고블린이 뿌린 황금 동전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일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12시간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길바닥에는 남아 있는 황금이 없었다.
사태를 관망하며 정부와 헌터 협회의 지시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손에는 황금이 한 조각도 없었다.
그 사람들은 불안했다.
개나 소나 다 황금을 손에 들고 있는데 자신들만 없다는 게.
그래서 사람들에게 황금을 사기 시작했다.
헐값이든 비싼 값이든.
그리고 정확히 12시가 됐을 때.
황금 동전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경제 혼란이 찾아왔다.
대혼란 정도는 아니었다.
일부였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몇 몇 사람들은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고,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 사태를 이렇게 불렀다.
골드 코인. 사태라고.
[작품후기]
오늘은 한 편입니다. 내일 연참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