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90화 (90/196)

이 놈이.90회

피닉스

"아야!“

한설휘에게 딱밤을 맞은 피닉스.

날개로 머리를 문지르며 한설휘를 쳐다봤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피닉스를 바라보는 한설휘.

“나랑 불의 계약 할래?”

“불의 계약?”

“응.”

날개로 머리를 긁적이는 피닉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그게 뭐냐면..”

녀석의 물음에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한설휘.

“오호~!”

제대로 이해를 한 게 맞는지 날개를 부딪히는 피닉스.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한다!”

반응만 보면 승낙할 것 같더니.

거절을 하는 피닉스.

“싫어?”

한설휘가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물었다.

“응!”

“왜 싫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나는 재빨리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제빵사의 장갑을 끼고 ‘염옥의 불꽃’을 들고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염옥의 불꽃을 피닉스 앞에 내려놓았다.

“어..어?!”

휘둥그레 한 눈으로 염옥의 불꽃을 쳐다보는 피닉스.

녀석과 마찬가지로 휘둥그레 한 눈으로 나를 보는 한설휘.

“이건..?!”

“서진아 이건..”

“맞아. 지옥불이라고 많이들 말하는 염옥의 불꽃.‘

염옥의 불꽃은 30년 전 ‘암흑기’ 때 반짝 등장했다가 곧바로 단종 된 아이템이었다.

불꽃의 온도가 미친 듯이 높다는 것 말고는 딱히 쓰임새는 없었다.

하지만 대상이 피닉스라면 쓰임새가 있었다.

“계약하면 이거 줄게.”

“진짜로?!”

피닉스는 먹이로 불꽃을 먹었다.

불꽃의 농도와 질이 높을수록 피닉스는 환장했다.

“좋아!”

역시.

“대신 조건이 있어!”

날개를 촥 펼치는 피닉스.

“하루 종일 네 옆에 붙어 있는 건 못해. 그러니까 ‘소환수’로 계약 하자!”

나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소환수로 계약을 해도 별 차이는 없었다.

평상시에 레이나 뚜뚜처럼 계속 옆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정도?

한설휘도 괜찮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오늘 계약 못했으면 다음에 또 올 뻔 했는데.

나는 옆에서 한설휘와 피닉스가 ‘불의 계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 + +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 안.

한설휘의 표정은 걱정과 설렘이 공존 했다.

“나 가슴이 두근거려.”

걱정 보다는 설렘이 커 보였다.

“내가 피닉스랑 불의 계약을 맺다니..”

“가길 잘했지?”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째려보는 한설휘.

“그걸 말이라고 해?”

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입가가 웃을 것처럼 씰룩씰룩 거렸다.

“몸에 마나가 넘치는 기분이야.”

피닉스의 마나를 공유하고 있는 탓이었다.

“근데..왜 이렇게 입에 휘뚜루라는 말이 감기는 것 같지?”

피닉스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탓이었다.

“근데 왜 불꽃을 먹고 싶어지는..”

한설휘가 입을 닫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몸에 땀과 수분을 쫙 뺐더니 몸이 녹초 같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 숨을 자려고 하는데 옆에서 작게 한설휘가 흥얼거렸다.

“휘뚜루 마뚜루.”

“....”

한설휘가 제발 피닉스의 병신력만 안 닮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지숙이 죽었다.”

어두운 실내에 울려 퍼지는 공허한 제로의 목소리.

쩌적.

목소리는 공허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지,

그가 딛고 있는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무거운 침묵이 실내를 지배했다.

섣부르게 입을 열었다가는 침묵이 목숨을 앗아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여는 한 남자.

“아버지시여.”

레볼루션의 간부 중 하나인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의 몸은 아까부터 비정상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고 있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목소리마저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어금니를 무는 라이언.

“지숙의 복수를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가서 전부 죽여 버리겠습니다.”

“....”

“아버지시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라이언.

어느새 다가 왔는지 키 작은 남자가 라이언의 턱 끝에 단검을 들이댔다.

“앉아라, 라이언.”

“크윽..”

홀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키 작은 남자의 한 마디에 침울성을 삼키며 자리에 앉는 라이언.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키 작은 남자.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두침침한 남자였다.

“샤인.”

“예.”

제로의 말에 대답하는 키 작은 남자.

“포포.”

“네.”

샤인의 옆에서 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10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대답했다.

“레드. 라이언.”

“네.”

“아버지시여.”

제로의 부름에 답하는 레드와 라이언.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는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아버지로서 면목이 없구나.”

“사실 저는 아버지.”

포포가 입에 물고 있는 사탕을 내렸다.

“지숙 누나가 언젠가는 죽을 줄 알았어요. 너무 착해빠졌잖아요.”

“포포 이 새끼가!!”

라이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샤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두 번 말하게 하지마라.”

샤인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라이언을 향해 혓바닥을 내미는 포포.

“크으...”

라이언이 책상에 이마를 박으려고 했다.

하지만 홀로그램이라 박을 수가 없었다.

“포포의 말이 맞다.”

“아..아버지시여!”

“지숙은 마음이 너무 여려, 언젠가는 여린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칼을 들이 밀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구나.”

간부들을 쳐다보는 제로.

“이번 아이템 박람회에 호위를 맡은 건 분명 미야마 가문이었다. 미야마 가문은 칼을 잘 쓰는 걸로 유명한 가문이지. 그런데.”

영상 하나를 트는 제로.

CCTV 영상으로 보였다.

아이템 박람회로 뛰어가는 두 남자.

한 명은 미야마 무사시였고, 한 명은 빙 속성 능력자였다.

“미야마 가문의 가주와 일본에서 유명한 빙 속성 능력자다.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내 눈에는 마치 지숙이 나타나길 기다린 걸로 보이는구나.”

“동감입니다.”

“저도 그런 것 같은데요, 아버지?”

“예.”

유일하게 대답을 안 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레드. 네 생각은 다른가 보구나.”

“아..아닙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러냐.”

“예.”

영상을 끄는 제로.

“아무래도 우리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는 것 같구나. 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던지.”

제로의 눈빛이 좌중을 훑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 중에 첩자가 있다니.”

라이언의 말에 제로의 시선이 레드에게 꽂혔다.

“레드.”

“예.”

“어째서 채린이라는 여자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냐?”

“..예?”

“너를 의심해서가 아니다. 너에게 의도가 있겠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니라. 내가 분명 싹을 자르라고 했거늘.”

“그..그게..”

“아시잖습니까, 아버지시여.”

대신 대답하는 라이언.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웬일로 라이언이 레드의 편을 들었다.

라이언의 말에 레드를 지그시 쳐다본 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괜한 노파심에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예.”

고개를 숙이는 레드.

그를 힐끔 쳐다보는 라이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우리의 가족이 죽었다. 그냥 넘어가자니 마음이 너무도 불편하구나.”

“아버지시여.”

손을 드는 라이언.

“제가 가서 미야마 가문을 박살내고 오겠습니다.”

“아니다.”

“아..아버지시여?”

“이번에는 샤인이 다녀오는 게 좋아 보이는구나.”

“예.”

짧게 대답하는 샤인.

“혹여 가족을 또 잃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라이언.”

“..예.”

“너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단다. 중국에 S급 유물이 대량 발견 됐다는 소식이 있더구나.”

“예.”

“거길 다녀 오거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저는요?!”

“포포. 너는 하던 대로 웨스트 월드에 매진하도록 해라.”

“아~ 지겨운데~”

그렇게 회의가 모두 끝이 났다.

홀로그램을 종료한 라이언.

“이 씨바아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다 집어 던지거나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손에 잡힌 물건을 쳐다보는 라이언.

지숙과 단 둘이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였다.

“지켜준다는 약속..못 지켰다.”

바닥에 머리를 찧는 라이언.

고개를 드는 라이언의 이마에 피가 흘러내렸다.

“내가 꼭.. 널 죽인 원흉을 잡아서 쳐 죽여주마.”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하려다가 마는 라이언.

핸드폰 액정에는 ‘레드’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레드..이 새끼..하는 짓이 꼭 누구랑 닮았단 말이지.”

그나마 멀쩡한 소파에 몸을 기대는 라이언.

가슴팍에 지숙과 찍은 사진을 올리고 생각에 잠겼다.

+ + +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박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있었던 회의 내용을 내게 전하는 박쥐.

“그렇단 말이지.”

-예. 쫄려서 죽을 뻔 했습니다.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 하지마.”

전화를 끊었다.

괜찮다는 말은 박쥐를 안심시키기 위한 멘트였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네.”

미야마 가문에 복수를 할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너무 빨랐다.

그것도 배정된 인원이 샤인이라니.

잠깐 미야마 가문에 귀띔이라도 해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배정자가 샤인이라는 말에 그 마음이 싹 사라졌다.

샤인이라면 아무리 귀띔을 해줘도 멸문을 피하기 어려웠다.

계획대로 되긴 했다.

일본 능력자에게 모든 걸 덮어 씌웠고,

성공했다.

그런데 조금..

“찝찝하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어차피 버리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숙을 죽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박쥐를 활용하는 데 제약이 걸린 느낌이 들었다.

첩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채린을 왜 안 죽이고 있냐는 말도 나왔다.

이건 박쥐를 활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뭔가 적신호가 켜진 느낌일지도 몰랐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서이란의 노트를 집어 들었다.

아직 서이란의 가르침은 끝나지 않았다.

+ + +

“웬 놈이냐!”

일본 도쿄에 위치한 미야마 가문.

복면을 쓰고 있는 한 남자가 들이닥쳤다.

그 남자는 남자치고는 키가 작았다.

손에 들고 있는 적색의 검을 제 자리에서 휘두르는 남자.

그러자 그에게 다가가던 미야마 가문의 사무라이들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야마 가문의 마당이 순식간에 시체로 뒤덮였다.

시체의 무덤 위에 태연하게 서 있는 남자.

샤인.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별채에서 나오는 사무라이들을 쳐다봤다.

“제로-원.”

짧게 중얼거리는 샤인.

그게 전부였다.

헌데 사무라이들의 몸이 절단되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웬 놈이냐!!”

웃통을 벗고 있던 무사시가 자신의 검을 들고 등판했다.

이번에도 짧게 중얼거리는 샤인.

“제로-원.”

하늘로 솟구치는 무시사의 왼 팔.

하지만 사무라이들처럼 몸이 양분 되지는 않았다.

샤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이 새끼가..”

비틀거리는 무사시.

“제로-투.”

무사시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기를 다진 것처럼 무사시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나갔다.

꿈틀거리던 샤인의 눈썹이 멈췄다.

“끝인가.”

침묵이 가라앉은 마당에 단조롭게 한 마디를 툭 내 뱉는 샤인.

그의 시야에 지붕을 통해 달아나는 사무라이 한 명이 보였다.

외팔 사무라이였다.

그는 외팔로 어린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이탈을 감행하고 있었다.

“쥐새끼.”

샤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타쿠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침착성과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는데.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도저히 타쿠야의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미야마 가문의 사무라이들이 한 남자에게 괴멸 당했다.

뿐만 아니라 가주인 무사시 마저 아무런 힘도 못 써보고 죽었다.

덜덜덜.

타쿠야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한 남자.

그는 죽음. 그 자체.

아니, 죽음 후의 영혼까지 먹어치워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타쿠야는 선택했다.

미야마 가문의 어린 가주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하기로.

그런데.

복면을 쓰고 있는 남자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죽는다.’

아직 거리가 100m나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마치 바로 뒤에 있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타쿠야는 직감했다.

‘끝이다.’

타쿠야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 가주를 쳐다봤다.

기절해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평온했다.

“살아남으십시오. 도련님.”

어린 가주를 눈앞에 보이는 넓은 마당에 내려놓고 위로 도약했다.

목표가 자신인지 어린 가주가 아닌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

“여기까지군.”

타쿠야는 뒤를 돌았다.

최소한 죽는 순간에 뒤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복면 쓴 남자.

복면이 살짝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잔상처럼 남자의 몸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남자의 몸은 저곳에 있었다.

하지만 잔상처럼 다가온 형체가 주는 위압감은 분명 저 남자의 것이었다.

타쿠야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저 남자가 빨랐다기 보다는 자신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러 가닥의 번개.

“남의 집 위에서 뭐하는 짓들이냐!!”

야마모토 류진이 마당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뒤로 보이는 야마모토 류헤이.

다행히 번개로 인해 남자의 공격이 빗나갔다.

그렇다고는 해도 타쿠야의 가슴이 어느새 인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버틸 만 하다.’

그런 생각을 한 타쿠야.

곧장 류진과 류헤이가 있는 마당으로 쇄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복면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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