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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9화 (89/196)

녀석의 이름이었다.89회

피닉스

모니터로 이 세상을 관찰 할 때, 중후반부에 압도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속성 능력자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뇌(雷) 속성 능력자인 일본의 야마모토 류진.

한 명은 화(火) 속성 능력자인 한설휘였다.

한설휘가 두각을 나타낼 때, 그녀에게 붙은 수식어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중에 이런 수식어가 있었다.

‘창공을 가르는 화염 여제’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창공’이었다.

한설휘는 불을 이용해 흡사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에 그쳤다면 ‘창공’이라는 단어는 붙지 않았다.

피닉스의 존재.

그 존재가 창공이라는 단어를 완성시켰다.

앞으로 10년 후.

내가 맺어주지 않아도 맺어질 연이었다.

피닉스와 한설휘는.

다만 그 시기가 나로 인해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었다.

“누구냐고!!”

피닉스가 날개로 우릴 향해 삿대질을 했다.

“시끄러워!”

한설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10년 후에는 둘이 꽤 꽁냥꽁냥하고 잘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꽤 갈 길이 멀어보였다.

“너희들이 쳐 들어와 놓고 조용히 하라니!!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크냐!! 아아. 지금은 어때? 조금 더 낮출까?”

“....”

가끔 한설휘가 금석을 보면서 짓는 표정이 있었다.

한심한 놈을 넘어서, 답도 없다를 넘어서 거의 경멸 단계.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피닉스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한설휘.

“설휘야.”

“....”

경멸하는 표정을 유지한 채 나를 보는 한설휘.

“놀라지 말고 들어. 네가 어릴 때부터 노래 불렀잖아. 피닉스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쟤야. 쟤가 네가 만나고 싶어 하던 피닉..”

“나도 알아.”

내 말을 끊은 한설휘.

표정을 풀며 이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동심이 파괴 된 기분이야.”

그럴 만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동화책을 보며 백마 탄 왕자님을 꿈 꿀 때,

한설휘는 피닉스를 꿈 꿨다.

한설휘는 지금 그런 느낌이 아닐까?

‘슈퍼맨을 꿈꾸던 아이가 커서 슈퍼맨을 실제로 만났는데, 배가 불룩 튀어 나온 아저씨더라.’

조금 과장이 심하긴 했지만 충격은 그 정도와 비슷해 보였다.

“이봐 친구들!”

피닉스가 우리 앞으로 날아왔다.

녀석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화염을 동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일반인이었다면 화상으로 끝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따뜻하다고 느꼈다.

한설휘 역시 마찬가지인지 별 반응이 없었다.

“어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누구냐고! 아참. 내가 내 소개를 했나?”

“아니.”

“엣헴.”

내 대답에 목청을 가다듬는 피닉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피닉스.

“음..잠시만. 갑자기 소개하려니까 긴장되네. 너희 먼저 소개 할래?”

“나는 서진이야.”

나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한설휘.”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한설휘.

“오오~ 그렇구나. 자 그럼 다시 내 소개를 해볼까!! 나는!!”

“피닉스잖아.”

한설휘가 대신 대답했다.

눈을 깜빡이는 피닉스.

날개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소개를.. 했었나? 음..”

“너 진짜 피닉스 맞아?”

피닉스에게 한 발 다가서는 한설휘.

“아니잖아. 아니지? 너 피닉스 아니지?”

“나 피닉스 맞는데?”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피닉스가 이런 이런..”

피닉스의 몇 번의 확인사살에 말을 잇지 못하는 한설휘.

“피닉스. 잠시 우리끼리 얘기 좀.”

“알았어. 쟤 슬픈 일 있는 것 같은데 위로 좀 잘 해줘.”

피닉스가 앞으로 날아갔다.

나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휘야.”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쟤 그래도 착한 놈이야.”

다만 조금 병신력이 돋을 뿐이지.

“쟤 그래도 말은 잘 들어.”

다만 조금 병신력이 돋을 뿐이지.

“쟤 그래도..”

고개를 드는 한설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 봤어.”

나를 쳐다보는 한설휘.

“쟤가 피닉스가 맞다고 쳐. 그게 왜? 뭐? 내 슬럼프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지.”

“그러니까 무슨 상관?”

나는 손으로 한설휘가 착용하고 있는 샐러맨더 팔찌와 토레스에게 받은 장갑을 가리켰다.

두 아이템은 공통적으로 화염 속성의 화력을 올려주는 아이템들이었다.

한설휘가 화력에 집중하는 이유.

그 이유는 그녀의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설휘의 화력은 지금도 충분히 강력했다.

하지만 한설휘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한설휘.

그녀는 자신과 비교 대상으로 동급생들을 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내. 혹은 세계적인 랭커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으니까.

당연히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한설휘의 슬럼프는 그녀의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었다.

욕심과 보는 눈을 조금만 낮추면 그녀는 더디지만 분명히 성장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한설휘의 욕심을 충족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성장에 대한 욕심은 내게 독이 아닌 득이었으니까.

“그런 아이템 열 개 착용하는 것보다 쟤랑 ‘불의 계약’하는 게 더 효과 좋아.”

내 말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한설휘.

“불의..계약?”

잘못 들은 것처럼 되물었다.

“응.”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설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피닉스를 쳐다봤다.

피닉스는 현재 천장에서 떨어지는 용암을 입 벌리고 받아먹는 중이었다.

불의 계약은 통상적으로 ‘불의 정령’과 맺는 계약을 의미했다.

하지만 정령이 아니더라도 피닉스처럼 영물이라면 불의 계약이 가능했다.

한설휘는 정령사가 아니었지만,

‘불의 계약’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불 속성 능력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태양 길드의 유망주가 모를 리가.

태양 길드에는 불 속성 몬스터를 길들여 ‘불의 계약’을 하고 데리고 다니는 능력자가 몇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불의 계약을 하게 되면,

내가 레이를 교감 능력을 통해 펫으로 등록한 것처럼 서로의 능력과 스텟을 공유하게 된다.

더 나아가 서로의 ‘고통’ 및 ‘감정’을 공유했다.

일심공동체.

피닉스의 능력과 스텟을 공유하게 되면,

한설휘의 슬럼프는 안녕이었다.

문제는 불의 계약은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피닉스와 한설휘는 오늘 처음 만났다.

이게 오늘의 걸림돌이라 할 수 있었다.

피닉스와 한설휘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야 편하게 말 할 수 있었지만,

한설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휘뚜루~ 마뚜루~”

용암을 먹은 피닉스가 기분 좋은지 다시 노래를 부르려다가 우리를 쳐다봤다.

“얘기 다 했어?”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피닉스.

“근데 너희..”

한 발짝 더 다가오는 피닉스.

우리를 번갈아, 유심히 쳐다봤다.

“몸에서 불 냄새가 나는데. 킁킁. 너희 불 능력자야? 특히 너!!”

날개로 한설휘를 가리키는 피닉스.

“네 몸에서 나는 향긋한 불 냄새가 자꾸 내 코를 간지럽힌다고! 그러니까!! 네 불 맛 좀 볼 수 있을까?”

“....”

한설휘가 아무 말 없이 피닉스 머리 위로 ‘불 소나기’를 시전 했다.

“오오오!!”

고개를 뒤로 젖혀 불 소나기를 받아먹는 피닉스.

‘장작 태우기’를 시전 했는지 불 소나기가 거세졌다.

“이야아!!”

환호성을 지르는 피닉스.

“네 불 맛 쩐다!!”

피닉스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가리 벌려.”

“응?”

“벌려 봐.”

“아~”

피닉스의 입에 ‘소각’ 능력을 사용하는 한설휘.

피닉스의 입에 한설휘의 화염포가 그대로 꽂혔다.

“우웁..우웁..”

“맛있어?”

“우웁!”

장작 태우기를 시전 하는 한설휘.

화염포의 화염이 더 굵어졌다.

“우우웁!!”

화염에 대한 치사량 따위는 없는 것인지 벌린 입을 닫을 생각을 안 하는 피닉스.

가지고 있는 마나를 다 소모한 건지,

화염포의 화력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연소되듯 캔슬 됐다.

“캬하!”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한 것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입을 날개로 스윽 닦는 피닉스.

날개를 척하니 들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엄지척하는 포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꺼억.”

그러다 트림을 하는 피닉스.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는 것처럼 불줄기가 한 차례 흘러나왔다.

“배부르니까 졸리네. 너희들 여기 계속 있을 거야?”

피닉스가 날개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말을 하는 녀석의 몸집이 급격하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처럼 손바닥만 하게 작아진 피닉스.

한 번 자면 꽤 오랜 시간 자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나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복잡한 심경으로 피닉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첫 만남에는 무리인가.’

한설휘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가자.”

피닉스의 날갯짓이 멈추기 시작했다.

따로 자는 공간이 없는지 바닥에 살포시 안착을 한 피닉스.

“한설..휘?”

피닉스 앞에 쪼그려 앉는 한설휘.

나를 올려다봤다.

“자는 것만 보고 가자.”

“....”

피닉스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피닉스의 곁을 떠날 생각을 안 하는 한설휘.

나는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 + +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한설휘와 내가 화염에 대한 친화력이 남다르다고는 해도 면역은 아니었다.

몸에 수분이 점점 말라가는 느낌에 나는 몇 번이고 포인트 상점을 열어 물을 조달했다.

하지만 점점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한설휘.”

요지부동의 자세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피닉스를 보고 있는 한설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우리 이러다 탈진해. 여기서 둘 다 탈진하면 진짜 답도 없다고.”

“..잠시만. 잠시면 돼.”

아까부터 저 소리였다.

나는 얼음물을 한설휘에게 내밀었다.

포인트 상점에서 꺼낼 때까지만 해도 분명 얼음물이었다.

하지만 꺼내자마자 얼음이 바로 녹아버렸다.

그냥 물을 마시는 한설휘.

“고마워.”

“....”

내가 억지로 끌고 와놓고 갈 때도 억지로 끌고 갈수도 없고.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방광도 이제는 한계였다.

나는 한설휘를 힐끔 보고 구석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려고 했다.

“있잖아, 서진아.”

“..응?”

“얘 불길은 참 따뜻해.”

지퍼에 가져 간 손을 떼며 한설휘를 쳐다봤다.

“무슨 말이야?”

“사람의 성격처럼 불길에도 성격이 있거든. 근데.. 얘 불길은 참 따뜻해. 악의가 전혀 없어.”

“..내가 말했잖아. 걔 착한 녀석이라고.”

다만 병신력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한설휘가 손을 들어 피닉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야! 너 그러다 화상..안 입네?”

분명 피닉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길은 온도가 상상 초월할 텐데.

“내가 말했잖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한설휘.

“얘 불길에는 악의가 전혀 없다고.”

“..그래서 결정은 했어? 어떻게 할지?”

내 물음에 잠깐의 침묵을 가져가는 한설휘.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얘가 응할지 안 할지 모르잖아.”

그 소리는.

불의 계약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말이지.

“그건 걱정 하지마. 무조건 응하게 돼 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선물을 준비 해 왔거든.”

“선물?”

“응.”

무려 3000p나 주고 산 ‘염옥의 불꽃’.

이거 하나면 끝이었다.

“입 닫고 있으니까 진짜 피닉스 같아.”

계속해서 피닉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한설휘.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지 피닉스가 몸을 뒤척였다.

“휘뚜루..”

몇 번 몸을 뒤척이던 피닉스.

날개로 한설휘의 손을 덮었다.

“따뜻..응?”

날개를 치우며 눈을 뜨는 피닉스.

한설휘를 빤히 쳐다봤다.

“너 지금 이 몸에 손 댄 거야?”

“응.”

“..오호.”

몸을 일으킨 피닉스.

한설휘의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시 손 대 봐.”

머리를 갖다 대는 피닉스.

녀석의 말처럼 피닉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한설휘.

“오호~”

셀프로 한설휘의 손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설휘가 오늘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팽이처럼 한설휘의 손아래에서 빙글빙글 돌던 피닉스.

한설휘의 손을 치우며 한껏 멋있는 척 포즈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너.”

“....”

“남자친구 있냐?”

선 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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