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7화 (87/196)

저승에서 행복해라 지숙아ㅠ_ㅠ87회

달의 호흡

토레스 말에 따르면 ‘달빛석’을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연했다.

달빛석은 전설로만 내려져오는 아이템이자, 광석이었으니까.

구할 수 있었으면 진즉 내가 구했을 터.

그렇다고 만월검의 성능이 안 좋냐.

그것도 아니었다.

토레스는 내게 말했다.

‘이것은 나의 역작이다. 이런 아이템을 또 만들 수 있을까 싶군. 크크.’

비록 달빛석으로 만들진 못했지만,

달빛석에 최대한 근접한 천석(天石)으로 만들었다.

천석이란,

고산지대에 가끔 발견되는 희귀한 광석이었다.

생김새나 쓰임새가 달빛석과 유사한 게 특징이었다.

달빛석과 천석의 차이란 금과 은의 차이랄까?

차이가 심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분명한 건 천석에도 달빛석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소량의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

천석.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단단하다고 일컬어지는 금속인 아다만티움.

두 가지 재료가 토레스의 손에서 ‘만월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탄생했다.

나는 가볍게 만월검을 휘둘렀다.

가벼웠다.

만월검을 가만히 하늘높이 들었다.

거울처럼 투명하던 검신 부분이 달빛을 머금고 하얗게 색이 서서히 바뀌었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만월검을 내렸다.

달빛 초식을 사용하는 족족 검이 박살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앞에 보이는 큰 바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월을 머금은 것처럼 하얗게 완전히 변한 만월검.

나는 가볍게 큰 바위를 향해 만월검을 휘둘렀다.

서걱.

“....”

두부를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바위.

아무래도 달빛에 영향을 받으면 성능이 향상되는 모양인데.

나는 흡족한 얼굴로 상현달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검집에 만월검을 집어넣었다.

토레스 영감이 서비스라며, 검집도 함께 줬다.

크르릉!

얌전히 뒤에서 구경하던 레이가 내 무릎으로 달려왔다.

간드러지게 하품을 하는 레이.

“레이. 잠시만. 아직 안 끝났어.”

나는 레이를 잡고 무릎에서 떼어냈다.

크르릉. 크릉. (빨리 끝내. 나 졸려.)

레이가 앞발로 눈을 비비며 군말 없이 나무 옆으로 가서 앉았다.

이제는 레이의 말을 알아듣는 것에 완전히 적응을 해서 그런지,

별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만월검을 옆에 내려놓으며 가부좌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았다.

서이란의 노트에 적혀 있던 0초식.

‘달의 호흡.’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서이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달의 호흡만 할 줄 알아도 달빛 계승자로서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이 세계에서 능력자들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사용했다.

능력자들은 마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혜 스텟이 높으면 마나가 늘어나고 능력의 데미지 및 효과가 상승한다.‘

단순명료하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세계 랭커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마법사 젤다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마나는 너희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라고.

서이란 역시 젤다와 같은 의견이었다.

[각자 가진 능력이 다르듯, 가진 마나 역시 다르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마나=지혜 스텟’ 이라는 공식을 세우는 건지. 참으로 애석하도다.]

서이란의 노트에 나오는 말이었다.

[자신만의 마나를 갈고 닦을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지금부터 친절히 달빛 계승자의 마나인 ‘달빛력’을 갈고 닦는 법을 알려 줄 테니.]

그의 노트를 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첸의 말에 따라 우연히 얻게 된 ‘달빛력’.

이게 달빛 계승자만의 마나였다니.

[우선 달빛 호흡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달빛 호흡이 뭐냐고? 네 몸 안에 달빛력을 순환시킴으로써, 달빛 속성을 네 몸에 체화하는 거지. 무협지 같은 거 보면 ‘운기조식’이라는 말 나오잖아. 그런 거랑 비슷해. 이해하지 후대?]

달의 호흡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서이란이 말 거는 느낌이 들었다.

[달빛 호흡을 할 줄 알면 달빛 초식을 사용해도 몸에 무리가 덜 간다고.]

“....”

[어디 그 뿐인 줄 알아? 또 뭐가 있냐면..]

“쫌 닥쳐.”

[이 타이밍에 조용히 하라고 할 것 같은데. 내 말 맞지, 후대? 어디 선조한테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꾸 서이란의 노트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라 집중이 되지 않았다.

“후우우..”

숨을 깊게 내 뱉으며 다시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몸 안에서 흐르는 달빛력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마음이 서서히 편안해지며 머릿속의 잡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심장 부분을 누가 간질이는 것처럼 묘한 자극이 느껴졌다.

꿈틀꿈틀.

심장 부분에서 느껴지는 자극의 정도가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태동하듯 꿈틀거리는 자극.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는 것처럼 심장 주변 부위로 퍼져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벽에 가로막힌 듯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발버둥.

꿈틀꿈틀.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극’이라는 녀석이 힘을 낼 수 있게.

쿵. 쿵.

자극의 정도가 심해졌다.

인간으로 치면 벽을 손으로 미는 정도에서 발로 차는 정도로 변했다.

그래서인지 순간 머릿속으로 ‘아프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시였다.

나는 다시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때 갑자기 자극이 멈췄다.

‘자극’이라는 녀석이 스스로 멈춘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멈춘 거였다.

“야!!”

나는 눈을 떴다.

크르릉!(방해 하지마!)

레이가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있었다.

“지금이 몇 신 줄 알아?!”

정시아가 팔짱을 끼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 뒤로 보이는 해를 쳐다봤다.

날이 밝았다.

분명히 어제 저녁에 뒷산에 올라 왔는데.

크릉! 크르릉!(주인을 방해 하지 말라고! 아무리 주인 친구라고 해도 가만 안 둔다!)

레이가 계속 정시아의 다리를 공격했다.

나는 레이를 품에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신데? 지금?”

“10시!!”

“..지각이네.”

“태평하네. 근데 너..”

내 몸을 빤히 쳐다보는 정시아.

“도대체 뭘 했길래 몸에 땀이 그렇게나 나는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내 몸을 쳐다봤다.

그녀 말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일단 내려가면서 얘기하자. 너 때문에 지금 황금돌대가리 지수 언니한테 잡아먹히기 직전이야.”

“왜?”

“너 어딨냐고 물어보니까 황금돌대가리가 엄근진 한 목소리로 ‘모른다.’라고 했거든.”

“....”

금석에게는 분명히 어제 기숙사를 나설 때 ‘뒷산에 간다~’라고 말 했는데.

‘아..’

한 마디도 덧붙였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다른 애들이 나 찾으면 모른다고 해줘~’

이 의리 있는 자식.

덕분에 ‘달의 호흡’에 대해 조금이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근데 보통 아침까지 안 보이면 먼저 찾으러 오지 않나?‘

역시, 금석.

말 하는 건 기똥차게 잘 들어요.

+ + +

대대적인 행사가 전부 끝이 났다.

중간고사.

학교 최강자 선발전.

그리고 수학여행까지.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나태해져 있었다.

교관들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지 터치를 심하게 하진 않았다.

나 역시 수업하는 내내 다른 생각에 집중해 있었다.

‘달의 호흡’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학교 마치면 곧바로 뒷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금요일이 됐다.

“하암..”

나는 하품을 했다.

달의 호흡 때문에 요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집중 후, 눈을 뜨면 해가 뜨기 직전이었던 적이 태반이었다.

눈을 비비며 마지막 수업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한설휘가 다가왔다.

“괜찮아?”

“응?”

“너 피곤해 보여.”

당연하지.

5일 동안 잠을 거의 못 잤으니까.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괜찮았다.

“내일 괜찮겠어?”

한설휘가 걱정스레 물었다.

내일은 주말이었고, 내일 한설휘와 함께 어디 가기로 했다.

‘한설휘의 정체기를 뚫어주러.’

“응. 약속했잖아.”

“너 피곤하면 다음 주에 가도 괜찮은데.”

“괜찮습니다~”

“알겠어. 혹시나 내일이라도 피곤하면 말해. 알겠지?”

“응.”

한설휘가 자리로 돌아갔다.

“하암..”

하품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제 드디어 달의 호흡에 대해 눈을 떴으니까.

+ + +

뒷산.

이제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레이도 알고 있었다.

나를 앞질러서 뛰어다니는 레이.

크르릉!(빨리 와!)

한참 앞에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속도를 높여서 레이의 뒤를 쫓았다.

산 정상에 도착했다.

크릉. 크르릉?(해 뜨기 전에 말해주면 돼?)

첫 날 이후 나는 레이에게 알람 역할을 맡겼었다.

나는 가볍게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오늘은 괜찮아.”

내일 한설휘와 약속이 있기는 했지만,

주말이었다.

여유는 충분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찬가지로 내 옆에 앉으며 우리가 올라온 길을 쳐다봤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혹시나 누군가 나타날까봐 감시를 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영특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곧바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자극까지 가는 단계는 이제 손쉬웠다.

자극이 꾸물꾸물 거리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 단계까지도.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전신으로 퍼져나간 자극이 한 번 퍼졌다가 도로 심장 부근으로 몰려들었다.

[이 단계까지 왔으면 거의 성공 한 거나 다름없다. 퍼졌던 달빛력이 다시 심장으로 모이는 현상은 네가 제대로 ‘달의 호흡’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달빛력이 완전히 네 몸에 팽창했을 때, 녀석들을 도망 못 가게 잡아라. 그리고 유지해라. 유지에 성공했다고? 그럼 그 상태에서의 호흡법을 기억해라. 그 호흡법이 앞으로 네가 숨 쉬는 호흡법이 될 테니.]

“후우..”

나는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 집중했다.

심장에서 달빛력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달빛력이 온 몸을 지배 했을 때.

응꼬에 힘을 줄 정도로 달빛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5초 정도 머무나 싶었다.

스르르 풀리는 것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달빛력.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5초의 시간이 10초가 되고 30초가 되고 1분이 됐다.

지속성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구지속이 되진 않았다.

달빛력이 온 몸에 퍼져나갔다.

나는 최대한 지금 내가 어떤 식으로 호흡을 하고 있는지 제 3자 입장에서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스으읍.”

가볍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후우우.”

가볍게 한 번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스으읍. 후우우.”

일정한 간격으로 동일한 호흡을 유지했다.

몸에 퍼져나간 달빛력이 제 자리에서 요동치듯 움직였다.

머릿속이 점점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지면 빠질수록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까먹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숨을 쉴 때 마다, ‘한 번 쉬었다. 두 번 쉬었다.’이렇게 인지를 안 하는 것처럼.

사아아.

체내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은 곧 따스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바람은 내 몸을 따라 자유롭게 유영 하듯,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목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온 바람.

콰쾅!!

심장의 벽을 허물 때처럼 바람이 거세게 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띵 할 정도로 바람의 기세는 거셌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바람이 멋대로 하기를 내버려뒀다.

콰콰쾅!!

몇 차례 머리가 울렸다.

그리고.

조금씩 머리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릿속이 점점 청명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머리를 한 번 휘저은 바람.

산개하듯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달의 호흡을 습득 하셨습니다.]

[신체 스텟이 변경 됐습니다.]

[달빛력은 최대 ‘10000’까지 저장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눈을 떴다.

아직 새벽이었다.

하지만 곧 새벽이 지나갈 예정인지 해가 뉘엿뉘엿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크르릉?(괜찮아?)

레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크릉. 크릉.(주인 몸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번쩍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의 몸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 했다.

내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벼워져 있었다.

머릿속도 상당히 맑아져 있었다.

달의 호흡을 체화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