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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6화 (86/196)

무사시가 다시 한 번 공중으로 점프를 했다.86회

만월검(滿月劍)

짧은 만남이었다.

아니다.

더 오래 전이었다.

내가 지숙을 알게 된 건.

그녀가 인체 실험에 끌려가고,

인체 실험을 당하고.

그 때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모니터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불쌍하다.

안타깝다.

구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린 소녀가 모진 실험을 당하는 걸 보며.

그래서일까.

악이지만 나는 그녀가 마냥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재 레볼루션 간부들과 실험실에서 탈출 할 때 박수까지 쳤었다.

먹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해가 떴다.

내 손에 잔여물이 떨어지듯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다,

이내 그 마저도 사라졌다.

‘아파..너무 아파..’

내 손에 고여 있는 빗방울이 내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지숙의 상념이 내게 들리는 것 같았다.

외면하듯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칼집에 검을 꽂아 넣는 무사시.

그의 앞으로 생에 한 번도 비상해보지 못한 가녀린 육체 하나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나는 손에 고여 있는 빗방울을 움켜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 참..”

뭐 같네.

+ + +

지숙이 죽었다.

그로인해 레볼루션 간부 중 둘이 죽었다.

표면상으로는 레드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한 명이었지만.

‘이제 남은 건..’

나는 창밖을 쳐다봤다.

화창했던 날씨가 오후에 접어들면서 점점 어둑어둑 해지는가 싶더니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탁. 탁.

창문에 부딪히는 빗줄기.

나는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지켜봤다.

+ + +

다사다난했던 수학여행이 모두 끝났다.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장 세리나와 첸이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레이! 뚜뚜!”

레이와 뚜뚜를 첸네 집에 맡겼었다.

이번 여행에 세리나는 불참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비능력자인 애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빌런의 습격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고 치면, 능력자인 애들에 비해 비능력자 애들이 대항력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다행히 이번 여행에는 빌런의 습격 같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건’이 있긴 했지만.

레이와 뚜뚜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꼬리에 근육 생기겠다.”

내 말에도 뚜뚜와 레이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크르릉?(먹을 거는?)

“....”

잠깐 까먹고 있었다.

레이를 펫으로 등록 후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는 걸.

크르릉!(설마 빈손이냐!)

그럴 리가.

나는 캐리어에서 도쿄 특산물을 꺼내서 거실로 던졌다.

신나서 뛰어가는 레이와 뚜뚜.

“재밌게 다녀왔느냐, 껄껄.”

앞에 서있던 첸이 물었다.

“서진아!”

방에서 쪼르르 나온 세리나가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세리나 하이~ 아 저 근데.”

나는 열려있는 현관을 쳐다봤다.

“애들이 수학여행 뒤풀이 하자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시아. 한설휘. 금석.

그리고 박아름까지.

“안녕하세요!!”

“리나 안농!”

“실례하겠다!”

“..안녕하세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다.

나는 멋쩍은 얼굴로 첸을 쳐다봤다.

“뚜뚜랑 레이 데리고 간다니까 기어코 따라 와가지고..”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젓는 첸.

“잘 됐구나. 마침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저녁이 되겠구나. 껄껄.”

나는 세리나를 쳐다봤다.

세리나 역시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다 아는 애들이니까.. 괜찮아.”

그렇게 시작 된 저녁 식사 자리.

대가족이 한데 모인 것처럼 시끄러웠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시끄러움의 주축은 금석과 정시아였다.

“야이 새끼야!! 고기를 한 점씩 집어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 첸 할아버지가 이거 비싼 고기라잖아!!”

“사람마다 한 점의 기준이 다른 법인 거 모르냐, 마귀? 우걱우걱.”

“사람마다 좋아하시네.”

세 점의 고기를 집는 금석.

그의 고기를 인터셉트한 정시아.

개의치 않고 새로운 고기를 집는 금석.

다시 인터셉트하는 정시아.

“..마귀.”

“좋은 말로 할 때 한 점씩 집으시지?”

두 사람과는 다르게 마주보고 앉아 있는 박아름과 세리나는 조용했다.

한 번씩 세리나가 박아름에게 말을 걸기는 했다.

“마늘 좋아해? 구운 마늘 맛있는데.”

“....”

세리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박아름.

“안..좋아해?”

“....”

나는 시선을 돌려 한설휘와 첸을 쳐다봤다.

한설휘의 할아버지인 한태문과 첸이 친구이다 보니 첸과 얘기하는 게 편해 보이는 한설휘.

멍멍!!

크르릉!!

뚜뚜와 레이가 식탁 아래에서 식탁을 쳐다봤다.

나는 식혀놓은 고기를 두 녀석에게 내밀었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마음이 되게 공허 했었다.

근데 이렇게 다 같이 함께 있으니 공허한 마음이 점차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식사 자리가 거의 끝날 무렵.

“그 소식 들었느냐?”

첸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첸을 향했다.

“토레스 영감이 너희들에게 줄 아이템을 다 만든 것 같더구나.”

“....”

“....”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수학여행가기 전, 토레스 영감은 우리를 교장실에 불러서 분명히 말했다.

우리를 위한 아이템을 만들어준다고.

“오오!!”

“와!! 기대 돼!”

나 역시 기대가 됐다.

과연 토레스 영감이 달빛 계승자를 위한 아이템으로 무엇을 만들어줬을지.

+ + +

토요일 아침.

수학여행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저녁 늦게까지 뒤풀이를 해서인지.

몸이 상당히 찌뿌둥했다.

침상에서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였다.

-대장간으로 아이템 찾으러 와라.

하지만 문자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토레스.

그의 문자가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 겟통방이 시끄럽게 울렸다.

-정시아: 야!야! 빅 뉴스! 토레스 영감님한테 문자옴!

-한설휘: 나도 받았어! 신난다!!

-금석: ㅋ

-정시아: 우리 다 같이 모여서 갈래?

-한설휘: 좋지, 좋지!

-정시아: 1시간 후에 학교 앞에 있는 백화점 앞에서 만날까?

-한설휘: 응응!(따봉하는 곰돌이 이모티콘)

-정시아: 조아아아써!

나랑 금석은 부록 같은 개념인지 우리의 의사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대충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가니 금석이 외출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갈까?”

“..엉.”

우리는 기숙사를 나섰다.

+ + +

도심 외곽에는 대장간이 상업단지처럼 밀접하게 한 곳에 뭉쳐 있는 구역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대장간의 마을이라 불렀다.

대장간의 마을로 들어서자 찜질방에 들어온 것처럼 화끈한 열기가 우리를 반겼다.

깡! 깡!

귀를 강타하는 쇠 부딪히는 소리.

“나 대장간 마을 처음 와봐.”

정시아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 따라서 몇 번 와보긴 했는데, 올 때마다 신기한 것 같아.”

한설휘가 말했다.

유난히 두꺼운 팔뚝으로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들.

자신만의 템포가 있는지 일정한 간격으로 마찰음이 울렸다.

양 옆으로 도열해 있는 대장간을 쭉 지나쳤다.

대장간의 끝에 다다르자 다른 대장간 보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작은 대장간 하나가 나타났다.

“여기 맞아?”

정시아가 근처에 다른 대장간이 있나 살폈다.

“우리 할아버지가 대장간 마을 제일 끝에 있는 대장간이 토레스 할아버지 대장간이라고 그랬는데..”

눈앞에 있는 대장간이 너무 초라해서일까.

두 여자는 의구심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여기 맞아.”

그녀들을 향해 한 마디 했다.

내 말에 나를 쳐다보는 두 여자.

“헐..”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턱 끝으로 허름한 대장간 앞에 진열 돼 있는 무기들을 가리켰다.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대장간의 무기들은 중국산인가 싶을 정도로 거무틱틱 했다. 하지만 앞에 진열 돼 있는 무기들은 광택과 함께 멋스러움을 자랑했다.

“대장간이 넓고 크다고 해서 대장장이의 솜씨가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나는 성큼성큼 대장간으로 걸어갔다.

대장간의 내부 역시 겉모습만큼이나 허름했다.

허름한 와중에 난잡하기까지 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패대기쳐 놓은 망치들과 미완성의 아이템들.

그 너머에 토레스로 보이는 남자가 망치를 들고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기 실례..”

깡! 깡!

토레스는 집중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 대장간 앞에 선 아이들.

나랑 마음이 통했는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토레스 쳐다봤다.

깡! 깡!

그의 움직임은 다른 대장장이들과 달랐다.

행위 예술을 보는 것처럼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망치질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망치질에서 진심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우리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토레스의 망치질을 구경했다.

깡!!

작업이 끝났는지 마침표를 찍는 소리가 났다.

망치를 내려놓는 토레스.

“들어와라.”

우리가 입구에 서 있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바닥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를 피해 토레스 앞으로 걸어갔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토레스 옆에 있는 용광로의 열기가 피부가 아플 정도로 화끈거렸다.

하지만 토레스는 태연하게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일찍 왔구나. 하긴.”

우리의 얼굴을 스윽 훑는 토레스.

“버선발로 안 온 것만도 용하지. 너희 학교 선배 중에 팬티 바람으로 뛰어온 녀석도 있는 걸 아느냐? 크크.”

자리에서 일어나는 토레스.

“내 아이템을 조금이라도 일찍 받아보고 싶었던 거겠지. 너희도 그러냐?”

“예!!”

“네!!”

정시아와 한설휘가 양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나와 금석을 쳐다보는 토레스.

표정이 꼭 대답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넵!”

나는 금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고개를 끄덕이는 금석.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토레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대장간 구석으로 걸어갔다.

총 세 개의 아이템을 들고 나오는 토레스.

“방어구 관통력이 20%나 되는 단검이다.”

“20..%요?”

토레스에게 단검을 받은 정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시아는 토레스에게 방어구 관통력이 있는 단검을 주문했다.

헌데 20%라니.

시중에서 10%의 방어구 관통력만 있어도 최상급 아이템으로 분류 됐다.

‘역시 토레스.’

“내구성도 꽤 튼튼하니 막 써도 될 거다.”

“감사합니다!!”

정시아가 절이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건 화(火) 속성 능력 ‘데미지 20% 상승효과’가 있는 장갑이다.”

“20%..요?”

토레스가 별 다른 특색이 없는 빨간 장갑을 한설휘에게 내밀었다.

정시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한설휘.

통상적으로 아이템에 붙어 있는 수치상의 효과는 방어구 관통력과 마찬가지로 10%면 최상급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토레스가 만든 아이템은 전부 다 20%였다.

만물상에게 받은 샐러맨더 팔찌.

그리고 토레스에게 받은 데미지 증가 장갑까지.

단순히 딜러라는 포지션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설휘는 현재 폭군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단순 화력면만 놓고 보면 세계 랭커 200위 안에 들 정도라고나 할까?

“옛다.”

금석에게 신 발 한 켤레를 던지는 토레스.

“보니까 민첩 스텟이 낮아 보이더구나. 사이즈는 네 발에 맞게 알아서 줄어드니까 신기만 하면 된다.”

신발을 받아든 금석.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토레스가 준 신발로 갈아 신었다.

토레스의 말처럼 금석의 발 사이즈에 맞게 조절 되는 신발.

제 자리에서 몇 번 뛰어보더니 원래 신고 있던 신발을 집어 들었다.

신발을 용광로에 집어던진 금석.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갔다.

“크크.”

금석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수염을 만지며 웃는 토레스.

토레스가 들고 있던 아이템은 완전히 동났다.

“제 아이템은..”

“그게 말이다. 크흠.”

방금까지 자신이 앉아있던 곳을 쳐다보는 토레스.

그곳에 열이 점차 식어가는 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1시간. 아니 2시간이면 된다.”

“....”

토레스가 호언장담하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너희들 먼저 가. 나 기다렸다가 갈게.”

“왜? 같이 기다리자.”

“기다려줄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 빨리 가서 오늘 받은 아이템 시험해보고 싶잖아.”

내 말에 두 여자가 방긋 웃으며 눈알을 굴렸다.

“가도 돼. 금석도 데리고 가.”

내가 살살 어깨를 밀자 마지못해서 대장간 밖으로 걸어 나가는 한설휘와 정시아.

멀어지는 그녀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 + +

1시간. 2시간. 3시간.

그러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영감님? 어르신? 선생님?”

내 부름에 계속 ‘잠시면 된다!’라고 외치던 토레스.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성 됐다. 만월검(滿月劍). 크하하!!”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영롱한 검 한 자루.

달 귀걸이에 이어 내 두 번째 달빛 계승자 전용아이템을 습득했다.

[작품후기]

진짜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을 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썼다 지웠다를 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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