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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5화 (85/196)

지숙은 죽는다.85회

지숙

수학여행 4일차.

4박 5일 일정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콜록..콜록..”

나는 기침을 했다.

내 옆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신지수 교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몸살이 날 수가 있나? 어제는 분명히 멀쩡했잖아.”

“콜록..”

나는 대답 대신 기침을 했다.

“흐음..”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의 신지수 교관.

그녀는 크게 다친 게 아니면 자가 치유를 권장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를 치유 능력으로 치유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콜록..”

“오늘 마지막 날이잖아. 거의 자유 여행 마냥 애들을 풀어줄 생각인데. 숙소에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안 아쉽겠어?”

나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콜록..”

“흠.. 그래. 푹 쉬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콜 해. 알았지?”

“네.”

신지수가 숙소에서 나갔다.

나랑 같이 방을 쓰는 애들은 신나서 이미 나가고 없었다.

숙소에 홀로 남겨졌다.

나는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다가 슬금슬금 이불을 걷어냈다.

“효과 직방이네.”

나는 기지개를 켰다.

하나도 안 아팠다.

포인트 상점에서 300포인트 주고 구입한 ‘꾀병 약’ 덕분에 몰골이 병자처럼 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창가로 걸어가, 밖을 쳐다봤다.

교관들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호텔에서 벗어나고 있는 게 보였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그래서 홀로 자유롭게 활동 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야마 가문을 못 믿는 게 아니었다.

미야마 가문이라면 내 훈수대로 지숙을 죽일 게 분명했다.

다만 혹시나 발생할 변수가 있을까봐.

그 점이 조금 걱정이 됐다.

저승의 소녀가 개입하지 않기로 한 시점부터 변수는 없다고 봐야 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니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변수가 발생해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

지숙이 죽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티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혹시 몰라 마스크도 썼다.

“마스크 쓰고 다니세요, 여러분. 건강도 조심..”

거울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나 지금 누구한테 말하냐?”

고개를 흔들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현재 시각은 10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지숙이 몇 시에 아이템 박람회를 습격할지 몰랐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지금 습격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아이템 박람회 근처까지 이동했다.

“저기가 제일 잘 보이겠네.”

택시에서 내린 후, 아이템 박람회가 가장 잘 보이는 핫스팟을 찾았다.

허름한 5층짜리 상가 건물이었다.

근처로 다가가 주변을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눈치를 살피다가 플라이를 시전 해 단숨에 5층 옥상에 올라갔다.

폐자재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옥상이었다.

예상대로 아이템 박람회 외곽이 훤히 보였다.

나는 폐자재 중 나무판자 하나를 가져와 바닥에 깔고 앉았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경비는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관람객의 유동도 거의 없었다.

“먹을 거라고 들고 올걸.”

꾀병을 부리느라 아침을 걸렀더니 허기가 졌다.

잠깐 먹을 걸 사러 갔다 올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화창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이템 박람회를 중심으로 반경 1km 정도만 하늘이 흐려진 상태였다.

1km를 넘어서면 여전히 화창한 날씨였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속성 능력자들의 능력이 뛰어나면 지형이나 지물을 바꾸는 걸 넘어서 자연까지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시우가 있었다.

빌런의 습격 당시 녀석이 사용했던 ‘녹턴’ 같은 경우는 낮에도 하늘을 밤처럼 어둡게 만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능력의 편차에 따라 범위가 달랐다.

그 당시 서시우는 기껏해야 200m정도 하늘을 어둡게 물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반경 1km의 하늘이 누군가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지숙.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타날 줄이야.

한줄기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이제는 소나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판자 하나를 더 주워 와서 머리에 올렸다.

아이템 박람회에 시선을 고정했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 소식에도 외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사무라이들은 요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물상이 박람회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옆을 따르는 타쿠야.

어디에도 미야마 가문의 가주인 무사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물상은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누군가 자신의 아이템을 털러 온다는 사실도,

그게 누구인지도.

만약 알았다면 곧바로 박람회를 접었을 게 분명했다.

쿠당탕탕!!

지숙이 박람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박람회 안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입구에 서 있다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는 만물상과 타쿠야.

들어가며 사무라이들을 향해 눈빛을 보내는 타쿠야.

외곽을 지키고 있던 사무라이들이 갑자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바닥에 단체로 투척하는 사무라이들.

쩌억.

쩌적.

박람회 외곽이 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박람회 천장이 있는 곳으로 아이템을 투척하는 사무라이들.

천장을 시작으로 건물 외면이 외곽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이템 박람회 인근과 박람회 건물이 아이스 스케이트장에라도 온 것처럼 얼어붙었다.

수(水) 속성에 대한 카운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상극인 화(火) 속성이 있었다.

하지만 카운터 중 가장 극 카운터는 물을 얼릴 수 있는 빙(氷) 속성.

이건 상대적으로 능력이 우위에 섰을 때 가능한 말이었다.

빙 속성은 물을 얼릴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화 속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수 속성은 얼음을 녹일 수도 있었다.

멀리서 두 사람이 박람회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 됐다.

한 명은 미야마 가문의 수장인 미야마 무사시였고,

다른 한 명은 음양사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빙 속성 능력자였다.

쿠당탕!!

콰콰쾅!!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점점 소음이 커지고 있었다.

지숙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이 아니었다.

단 한 번.

빙 속성 능력자가 지숙 보다 능력이 많이 뒤처지기 때문에 한 번도 감지덕지한 기회였다.

파도에 떠밀리듯 다량의 물이 박람회 입구로 쏟아져 나왔다.

떠밀려 나온 것들 중에는 사무라이들도 있었고, 아이템들도 있었다.

콰쾅!!

콰콰쾅!!

얼음으로 뒤덮인 박람회 지붕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잠시 후.

지붕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

물줄기를 타고 비상하듯이 하늘로 떠오르는 지숙.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나는 호주머니에 있는 물방울을 만지작거렸다.

지숙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얼음으로 뒤덮인 광경을 확인 한 지숙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벌렸다.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볼을 부풀리며 박람회의 지붕을 쳐다보는 지숙.

대형 물방울들이 뚫린 지붕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사무라이들도 있었고, 아이템들도 있었다.

옛 게임 중 보글보글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치 그 게임 실사판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방울에 갇혀 있는 사무라이들이 목을 부여잡고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을 본 지숙은 손을 한 번 저었다.

사무라이들이 갇혀 있는 물방울들이 옆으로 날아갔다.

남은 건 아이템을 품고 있는 물방울들뿐이었다.

전부 S급들 아이템이었다.

“게 서라!!”

무사시의 목소리였다.

무사시와 함께 빙 속성 능력자가 지붕으로 올라왔다.

그들을 따라 왼쪽 팔을 움켜잡고 있는 타쿠야가 올라왔다.

타쿠야의 왼쪽 팔이 물에 몸을 오래 담그고 있으면 쭈글쭈글해지는 것처럼 변해 있었다.

그 정도가 쭈글을 넘어서 쪼글에 근접해 있었다.

성인의 팔이 거의 어린아이 팔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결국.. 어휴. 조심하라니까.”

지숙에게는 ‘물독’이라는 능력이 있었다.

저건 물독에 당한 흔적이었다.

독인만큼 저대로 내버려두면 팔을 타고 독이 퍼져,

온 몸이 쪼그라들 게 분명했다.

분명히 경고를 했는데.

타쿠야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 손이 달려 있는 어깨 축을 내리쳤다.

“....”

왼 손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타쿠야의 표정 변화는 전혀 없었다.

마치 남의 팔을 자른 것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벗어 어깨를 대충 휘감았다.

“....”

보는 내가 다 아팠다.

“내려와라 이 년아!!”

하늘에 떠 있는 지숙을 보며 무사시가 소리쳤다.

지숙은 깔끔히 무사시를 무시하고 물방울에 들어 있는 아이템을 쳐다봤다.

5개였다.

입술을 삐죽 내미는 지숙.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철수하기로 결정했는지 손을 들었다.

내리는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지기 시작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정도로 거세졌다.

지금이다.

지금이 지숙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빙 속성 능력자가 양 손을 들고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대기가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 냉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빗줄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빗줄기는 자석에 이끌리듯 지숙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굵어진 빗줄기 탓에 무한동력처럼 많은 빗줄기가 한 번에 지숙을 덮쳤다.

도망가기 위한 장치가 도리어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셈이었다.

탱. 탱.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튕겨 나가는 얼음 빗줄기.

지숙이 물방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물방울은 대상을 가둘 수도 있었지만 본인에게 사용해,

방어 능력으로도 쓸 수 있었다.

물방울 안에서 심술 난 얼굴로 달려드는 얼음 빗줄기를 쳐다보는 지숙.

이 모든 과정은 지숙이 자신에게 물방울을 시전하게 하게끔 유도하는 절차였다.

빙 속성 능력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스 프리즌(Ice prison)!"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몸을 휘청였다.

이 한 번에 모든 마나를 쏟아 부은 듯 했다.

그 결과.

지숙을 감싸고 있는 물방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완전히 얼리지는 못했는지 물방울 안에 있는 지숙이 토끼 눈을 뜨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정도로 괜찮았다.

칼로 물은 벨 수 없었지만,

얼음은 벨 수 있었다.

제 자리에서 점프를 하는 무사시.

검을 양 손으로 잡으며 허리 뒤로 활시위를 당기듯 양 손을 가져갔다.

무사시의 뒤로 환영처럼 야차의 모습이 보였다.

검을 부드럽게 앞으로 쭉 뻗으며 X자로 두 번 허공에 검을 그었다.

위로 처 올리며 한 번.

아래로 내리며 한 번.

옥상에 착지를 한 무사시.

덤덤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지숙은 여전히 물방울 안에서 표면을 감싸고 있는 얼음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 때.

푸슈슈-!

퓨슈슈-!

두 번의 일정한 소리의 파공음이 울렸다.

그리고.

지숙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

선이 생기는가 싶더니 X자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무사시.

그는 근접 보다 원거리에서 더 강한 검사였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물방울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몸을 만졌다.

그녀가 만들어낸 물방울은 자신 포함 전부 사라져 있었다.

고스란히 비에 노출이 된 지숙.

그녀의 몸을 타고 피와 빗물이 범벅이 돼, 아래로 흘러 내렸다.

한 눈에 봐도 지숙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만큼 중상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빗줄기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하늘에 떠 있었고,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유심히 지숙을 쳐다봤다.

거리가 있어서, 잘은 안 보였지만 상처가 깊긴 해도 내장까지는 안 닿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버려두면 빠른 시간 안에 과다출혈로 죽을 게 분명했다.

검을 고쳐 잡는 무사시.

그도 알고 있었다.

지숙이 곧 죽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확실히 목숨을 끊으려는 듯 보였다.

“..시발.”

나는 욕을 내 뱉었다.

살면서 한 번 제대로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드는 꽃처럼 가련한 게 또 있을까.

팟.

손에 쥐고 있던 지숙이 내게 건넨 물방울이 터졌다.

내가 터트린 게 아니었다.

지숙이 죽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실제로 그녀의 눈이 서서히 풀리고 몸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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