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이득.84회
아이템 박람회
자유시간이 시작 됐다.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람회에서 발길을 돌렸다.
정시아나 한설휘도 마찬가지였다.
금석 역시 그녀들을 따라갔다.
갑자기 대규모 인원이 빠져서 그런지 박람회가 순간 한산해진 느낌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몇 명의 학생들과 함께 박람회에 남아 있었다.
아이템들을 조금 더 구경할 생각이었다.
아까 미처 보지 못한 아이템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박람회를 돌아다녔다.
E급에서 S급까지.
한 바퀴 쭉 돌았다.
“딱히 없네.”
박람회에 있는 아이템을 전부 합쳐도 만물상이 가진 아이템의 반절도 되지 않았다.
만물상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음 박람회를 열면 한 번 가 봐야지.’
만물상은 3개월 간격으로 박람회를 열었다.
그 때마다 내놓는 아이템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탁.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장발을 뒤로 묶고 있는 무사시 가문의 타쿠야였다.
나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타쿠야.
타쿠야 뿐만 아니라 박람회 안에는 심심찮게 미야마 가문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서양 점술가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사시에게 받은 야차가 그러져 있는 옷 조각은 훈수 포인트 상점에 잘 보관해 둔 상태였다.
1층 로비에 서서 아직 2시간이나 남아 있는 자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생각 중일 때, 어린 아이 한 명이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부모님을 놓친 것 같은데.
나는 별 생각 없이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 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엄마인가?’
가녀려 보이는 키 작은 여자가 아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왜 혼자 있어?”
“흐엥..흐에엥..”
“괜찮아, 괜찮아. 흥 해.”
“크응!!”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여자.
다정한 태도 때문인지 아이의 울음이 서서히 멈췄다.
“엄마랑 아빠는?”
“몰라..훌쩍..”
“그래?”
“웅..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사라져써..흐으..”
부모 얘기에 아이가 다시 울음을 터트리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다정한 말투로 아이를 달래는 여자.
‘착한 여자네.’
말하는 걸 들어보면 부모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복장이 여기 직원도 아닌 것 같고.
저런 선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달래는 여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이의 부모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정시아의 메두사에 당한 것처럼 몸이 굳는 걸 느꼈다.
내가 시선을 안 피하자 고개를 갸웃하며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여자.
“저기..”
“....”
“혹시 저 아이 알고 계세요?”
아니.
저 아이는 모르겠고.
‘너는 알아.’
레인보우 간부. 지숙.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눈을 깜빡이는 지숙.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음.. 어디서 봤더라.. 분명 최근에..아!”
손바닥을 치는 지숙.
“아버지가 틀어 준 영상에 나왔던 사람!!”
아버지가 틀어 준 영상이라는 말을 듣자 내 머릿속은 자동으로 그녀의 말을 번역했다.
‘제로가 틀어 준 빌런의 습격 때 내가 달빛 계승자로 활약한 영상.’
“우와..실물은 이렇게 생겼구나.”
나를 요리조리 관찰하던 지숙.
“아, 맞다!”
잠깐 까먹고 있던 일을 떠올렸는지 바보처럼 웃으며 아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데리고 나한테 오는 지숙.
“헤헤..”
바보처럼 웃었다.
지뢰를 밟은 듯하다.
+ + +
박람회에는 미아보호소가 따로 설치 돼 있지 않았다.
대신 공지나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부스가 작게 하나 설치 돼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초록색 티에 검정색 바지. 그리고..”
나는 옆에 서 있는 아이를 쳐다봤다.
“이름이랑 나이.”
손가락을 드는 아이.
“6살. 정호연..이요.”
나는 마이크에 아이가 말한 정보를 그대로 옮겼다.
“6살 정호연 어린이의 보호자 분. 1층 로비에 있으니 데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마이크에서 입을 떼며 아이 옆에 서 있는 지숙을 쳐다봤다.
잘했다는 듯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숙이 아이템 박람회에 있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내일 박람회를 털어야 하는 입장에서 사전조사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 옆에서 마치 한 편인 것처럼 있는 건 참으로 이상했다.
+ + +
“금방 오겠죠?”
지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발을 까딱까딱 거렸다.
“네..뭐.”
1층 로비에 마련 된 의자에 지숙. 아이. 나.
순으로 나란히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중이었다.
빤스런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지숙이 계속 내 팔을 잡았다.
“같이 있어주세요. 엉엉. 혹시나 아이 부모님이 안 나타나면 어떡해요. 엉엉.”
이런 연유로.
“맛있어?”
지숙과 나 사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
아까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응!”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지숙.
나는 힐끔 지숙을 쳐다봤다.
누가 아이인지 모를 정도로 표정이 해맑고 순수해 보였다.
어떤 사람이 저 여자를 보고 감히 악의 축이라고 생각을 하겠는가.
정보를 알고 있는 나 역시 긴장감이 해제되려고 하는데.
다른 레볼루션 간부들은 대놓고 악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지숙은 아니었다.
태어난 환경이 달랐다면.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면.
그녀는 충분히 세상으로부터 축복과 사랑을 받을 능력자임이 분명했다.
씁쓸했다.
인체 실험에 끌려간 게 그녀 잘못이 아닌데.
그녀는 피해자일 뿐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 주소는 악의 편에서 한 기둥을 맡고 있는 레볼루션 간부인 걸.
“야이 새..”
만물상이 내 앞을 지나면서 내게 말을 걸려고 했다.
나는 표정을 있는 대로 다 구기며 눈짓으로 꺼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표정을 보고 인상을 쓰는 만물상.
“미친 놈.”
만물상이 지나갔다.
“어? 서진..”
우리 학교 학생들이 내게 아는 척을 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인상과 함께 입모양으로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시발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이 미친 것들아.’
그러자 어이가 없는 얼굴로 사라졌다.
“후..”
내 옆에는 지뢰가 있었고,
나는 지뢰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저 이렇게 아이템 많은 거 처음 봐요.”
지숙이 뒤로 고개를 젖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놀이동산 가면 이런 느낌일까요? 혹시..”
나를 쳐다보는 지숙.
“놀이동산 가 봤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요? 어때요? 재밌어요? 저는 놀이동산에 가보는 게 꿈이에요. 근데.. 혼자서는 사람 많은 데를 잘 못 가서.. 헤헤..”
“친구들이랑 가면 되죠.”
“친구들이요? 저 친구 없는데..아..! 있긴 한데 다들 너무 바쁘고 안 가려고 할 걸요? 아~ 놀이동산 가보고 싶다.”
놀이동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 30대 남녀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호연아!!”
아무래도 아이의 부모인 모양.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멀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혼자서는 조금.. 무서웠거든요.”
지숙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싱긋 웃는 지숙.
“그럼 저는 이만..”
지숙이 가려고 했다.
“저기요.”
지숙이 나를 쳐다봤다.
“놀이동산. 같이 갈래요?”
“..네?”
“근처에 놀이동산 하나 새로 생겼거든요. 시간 되면 저랑 같이..”
내게 쪼르르 달려오는 지숙.
“진짜요?! 진짜 진짜?”
“네.”
별 다른 의도는 없었다.
긴장감이 풀어져서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그냥 그러고 싶었다.
+ + +
놀이동산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놀이기구도 도심에 있는 놀이동산이라 그런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토끼 모양 머리띠를 하고 있는 지숙은 너무도 신나보였다.
내 손을 이끌며 놀이기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탄 우리.
솜사탕을 하나씩 들고 벤치에 앉았다.
“너무 재밌다!!”
지숙을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네요. 아아~ 행복해.”
“....”
솜사탕을 뜯어먹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0분.
곧 집합 시간이었다.
“어? 우리 저거 안 탔지 않아요?”
지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이끌었다.
지숙이 나를 끌고 간 곳에는 대관람차가 있었다.
“이거는 보통 연인끼리 타는..”
“네? 뭐라고요?”
언제 탔는지 관람차 안에서 나를 쳐다보는 지숙.
“....”
나는 관람차에 탑승했다.
“우와아~”
점점 해가 저물고 있었다.
관람차가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도쿄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노을 진 도쿄 시내.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예쁘다..”
창에 바짝 붙어서 감탄 하는 지숙.
“다음에 또 올 수 있겠죠?”
관람차가 정상에 도착했을 때, 혼잣말인 것처럼 중얼거리는 지숙.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아까부터 가슴 한 편을 찌르는 것만 같던 느낌이 바늘에서 송곳으로 변한 것처럼 아파왔다.
그녀와 놀이공원에 온 건 별 다른 의도가 없는 게 아니었다.
긴장감이 풀어진 것도 아니었다.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미안하다..’
내일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내 가슴을 억눌렀다.
누가 악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레볼루션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잘못을 따지고 악에 대한 기준을 정의하기에는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의 기준은 명확하게 규정 돼 있었다.
나는 그저 그 기준 위에서 저울질이 아닌, 경주마처럼 악을 처단 해 세상을 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냥 그러면.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컴퓨터처럼 쓰고 싶은 기능만 on/off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지금 내 마음은 너무 불편했다.
“저 살면서 오늘만큼 행복했던 날이 없는 것 같아요!”
관람차에서 내리며 지숙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내 말에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지숙.
그녀만의 기쁨 표현법인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때는 동물원도 가 봐요, 같이. 알았죠?”
“..네.”
“헤헤. 신난다. 친구 생긴 기분이에요!”
“....”
“저 할 게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하는데..”
아쉽다는 듯이 바닥을 보는 지숙.
“짜안!”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손을 펼치는 지숙.
엄지손가락만한 물방울 모양의.
아니 진짜 물방울이었다.
“선물!”
물방울을 받아 들었다.
액체 괴물처럼 흐르지 않고 내 손바닥 위에서 찰랑 찰랑거렸다.
“행운의 부적이라고나 할까! 헤헤. 농담이고 제 능력의 일부인데 지니고 있으면 물 저항력을 조금 높여주는데 도움을 준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지숙이 뛰어갔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드는 그녀.
“다음에 꼭!! 동물원 같이 가요!!”
잠시 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제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그녀가 남기고 간 물방울을 쳐다봤다.
“....”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지숙을 죽이는 게 내가 아니라서.
만약 내가 지숙을 죽여야 했으면..
나는 물방울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 +
수학여행 3일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호텔 숙소 침대에 앉아 물방울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고, 300캡슐이 들어있는 구체를 집어 들었다.
구체를 열고, 안에 담겨 있는 300캡슐을 삼켰다.
잠시 후.
[보너스 스텟 300포인트를 얻으셨습니다.]
나는 스텟 창을 열었다.
-이름: 서진
나이: 17세.
체력: CC(50)
근력: CC(20)
지혜: CC(10)
민첩: C(43)
달빛력: 50
어제 달빛력을 모두 소모해서 그런지 달빛력 수치가 상당히 낮아져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 후, 300포인트를 민첩과 지혜 스텟에 투자했다.
체력과 근력 스텟에 비해 지혜와 민첩 스텟이 상대적으로 올리기가 더 힘들었다.
-이름: 서진
나이: 17세.
체력: CC(50)
근력: CC(20)
지혜: BBB(10)
민첩: BBB(43)
달빛력: 50
300캡슐 덕분에 C급이던 지혜와 민첩 스텟이 B급에 진입을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본래라면 상당히 기뻐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가 멍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