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83화 (83/196)

지름신이 강림 할 때였다.83회

아이템 박람회

“안 팔아.”

단호했다.

나는 2층 난관에 몸을 걸치고 1층을 내려다보고 있는 만물상을 쳐다봤다.

“왜요?”

분명히 설명은 파는 것처럼 해 놨으면서.

몸을 옆으로 살짝 틀며 나를 쳐다보는 만물상.

“내가 어제 말했던 것 같은데. 아이템끼리 교환. 혹은 내가 사는 거 아니면 안 팔아. 오케이? 형 지금 바쁘니까.”

손을 젓는 만물상.

“딴 데 가서 놀아라잉.”

“....”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나 보자.

“10억 드릴게요.”

최하급 S급 아이템의 시세였다.

내 말에 콧방귀를 뀌는 만물상.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15억.”

역시나.

“30억. 40억. 50억. 100억.”

100억까지 불렀을 때 드디어 흥미가 돋는지 나를 쳐다보는 만물상.

“집에 돈이 많은 건 알겠는데 말이야.”

내 머리에 딱밤을 약하게 때리는 만물상.

“네 돈이 아니잖아. 안 그래?”

“....”

“100억에 내가 팔았다고 치자. 그럼 너희 아버지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 만물상 새키 하급 S급 아이템을 100억에 파는 양아치 새끼구나~ 아 존나 비호감이네~”

나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만물상을 쳐다봤다.

“이 바닥에서는 신용과 이미지가 생명인데.”

다시 딱밤을 때리려는 만물상.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세계적인 기업 회장님에게 미운 털 박히라고? 안되지 안 돼~”

“그럼 한 20억에 팔아요.”

“아.. 거 참 귀찮게 하네. 안 꺼져?”

“....”

플랙스를 하나 싶었다.

헌데 만물상의 태도는 강경했다.

아쉬움에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템 박람회의 유령처럼 만물상의 곁을 배회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1층 로비로 모이기 시작했다.

1시간이 벌써 지난 모양이었다.

집합시간이었다.

+ + +

아이템 박람회 밖.

“구경들 잘 했나?”

“네에!”

“네!!”

박태산의 말에 병아리들이 삐약삐약거렸다.

“지금 시간은 3시. 6시까지 아이템 박람회를 계속 구경하던,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던 자유 시간을 주려고 한다.”

“와아!!”

“그 전에 먼저.”

호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흔드는 박태산.

“첫 날 보물찾기에서 아이템 등급 쪽지를 뽑은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라.”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앞으로 나갔다.

“따라와라. 나머지 학생들은 잠시 대기할 수 있도록 한다.”

40명의 학생들은 박태산을 따라 다시 아이템 박람회 안으로 들어갔다.

+ + +

“오늘 박람회에서 본 아이템 중에 아무거나 골라라.”

만물상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저는 ‘칠흑 도끼’요!”

“‘오우거의 갑옷‘이요!”

도라에몽의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내는 것처럼 허공에다가 손을 뻗는 만물상.

학생들이 말하는 아이템을 바로바로 꺼내서 학생들에게 투척했다.

학생들이 말하는 아이템 등급은 주로 C~E등급 아이템들이었다.

하지만 점점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등급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샐러맨더 팔찌.”

한설휘가 말한 아이템은 B급 아이템 중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불 속성 화력을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만물상의 미간이 아주 잠깐 찌푸려졌다.

찰나의 순간이라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역시 태문 할배 손녀라 이건가. 보는 안목이 괜찮네.”

샐러맨더 팔찌를 꺼내 한설휘에게 던지는 만물상.

한설휘는 내가 착용하고 있는 악세사리를 부러워했었다.

그래서인지 생에 첫 악세사리 아이템을 손에 쥐자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을 했다.

“캐스퍼 귀걸이!!”

정시아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한설휘와 마찬가지로 정시아의 선택도 악세사리였다.

아무래도 내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정시아도 한설휘와 마찬가지로 내 악세사리를 부러워 죽으려고 했으니.

캐스퍼 귀걸이는 A급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효과로는 ‘은신’ 기능이 있었고, 부수적으로 어둠 속성 저항력이 약간 깃들어 있었다.

A급 쪽지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나를 제외하고 정시아가 유일했다.

정시아의 말에 이번에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만물상.

“그거는 전시 안 한 아이템인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채린 언니한테 들었는데요?”

“이 여자가.. 어이 꼬맹이.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전시 한 아이템 중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까 캐스퍼 귀걸이는..”

만물상에게 다가가는 정시아.

“오빠.‘

“오..오빠?”

“오빠아~”

만물상의 옷소매를 잡고 앙탈을 부렸다.

“크흠..”

30대의 남자에게 ‘오빠’라는 단어는 꽤나 치명적인 단어였다.

만물상에게 제대로 치명타로 적중했는지 허공에 손을 뻗는 만물상.

캐스퍼 귀걸이를 꺼내서 정시아에게 내밀었다.

“아싸아!”

캐스퍼 귀걸이를 손에 넣은 정시아.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한설휘 옆으로 달려갔다.

이제 남은 건 나 하나였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만물상에게 내밀었다.

총 13개의 아이템 등급이 적혀 있는 쪽지.

“넌 뭔데 이렇게 많냐?”

“그러게요?”

A등급 1개.

B등급 1개.

C등급 2개.

D등급 3개.

E등급 6개.

‘300 캡슐’을 못 산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획득 할 아이템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본래라면 만물상의 보따리 사정을 생각해서 적당한 선에서 선택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먼저 E급.

“임프의 꼬리. 난쟁이 신발. 슬라임 갑옷. 변장의 귀재. 오크의 나팔. 천상의 향신료.”

E급 중 상황에 따라 D급. C급까지 넘볼 수 있는 최상품들이었다.

“고블린 가면. 마법사 고블린 지팡이. 홉 고블린의 갑옷.”

이른바 고블린 세트.

개개인이 지닌 효과는 딱 D급이었지만 세 아이템을 모두 착용하면 세트 효과가 굉장했다.

세트로 착용시, B급 아이템의 효과를 누릴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C급.

“오우거 건틀렛. 오우거 부츠.”

이 또한 고블린 세트와 마찬가지로 시너지가 나는 아이템 조합이었다.

몇 가지 아이템이 누락되기는 했지만 두 개 만으로도 충분 B급에서 A급 아이템의 효과를 기대 할만 했다.

이제 남은 건 B급 아이템 한 개와 A급 아이템 한 개였다.

여기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자..잠시만.”

내가 부르는 아이템 목록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만물상.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옆에 있는 기둥을 손으로 짚었다.

“너 정체가 뭐냐?”

“....”

“아니 전부 최상품만 부르는 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세트 효과까지 알고 있냐, 이 말이다. 세트 효과는 아이템 수집가들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인데. 어엉?”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길래 300 캡슐 팔라고 할 때 팔지 그랬어.’

“아직 B등급이랑 A등급 하나씩 남았는데. 말해도 되죠?”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또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B등급은 ‘심연의 구슬’. A등급은 ‘롱기누스의 창’이요.”

“커헉..”

기와 코가 막히는 대신 입을 틀어막는 만물상.

지금까지 내가 부른 아이템 목록은 내게 그다지 필요가 없는 아이템들이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각 등급별로 최상급 품목이라는 태그를 달고 거래가 가능한 아이템들이었다.

팔던지. 아이템 교환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할 생각이었다.

“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냐?”

만물상이 손가락을 들어, 내게 삿대질을 했다.

“고기 무한 리필 집에 가서!! 입장권만 띡 내고!! 가게 문 닫을 정도로 고기를 양심 없이 쳐 먹으려는 짓이라고!!

“만물상님. 저희 학생에게 말씀을 조금 가려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이..”

박태산 교관의 말에 입을 닫고 계속 내게 삿대질을 하는 만물상.

‘엄살이 심하네.’

내가 말한 아이템을 주더라도 만물상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생각하면 빙산의 일각이나 다름없었다.

‘별 티도 안나겠구만.’

나는 느긋하게 부들부들하는 만물상을 쳐다봤다.

쉽사리 보따리에서 내가 말한 아이템들을 꺼내오지 못하고 있는 만물상.

부자라고 해서 지갑을 넙죽넙죽 여는 부자도 있는 반면,

지갑을 꾹 닫고 있는 부자도 있었다.

만물상은 후자 쪽이었다.

“야.”

드디어 아이템을 줄 마음이 생겼는지 내 앞으로 걸어오는 만물상.

“잠시 얘기 좀 하자.”

내 어깨를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가는 만물상.

“양심 있으면 몇 개는 구닥다리 같은 걸로 골라. 그러면 아이템 한 두 개 서비스로 얹어줄게. 어때?”

나와 협상을 하려고 했다.

“싫은데요?”

“....”

협상의 갑과 을의 위치는 명확했다.

갑의 말에 눈을 감고 쉼 호흡을 하는 을.

“왜 싫은데? 너희 나이 때는 아이템 많은 게 개이득이야. 몰라? 아이템 질적인 측면은 나중에 성인 되고 나서 따져도 문제없다고. 오케이?”

“저는 양보다는 질이라서요.”

“이..이...후. 그래. 좋다. 다 좋은데. ‘롱기누스의 창’이랑 고블린 세트는 빼자. 딱 여기까지. 더는 말 안할게. 콜?”

나는 부처와 같은 평온한 얼굴로 만물상의 얼굴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시렁~”

“....”

약 오른다는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만물상.

“캡슐..”

작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300 캡슐..”

“네?”

고개를 드는 만물상.

“300 캡슐!!”

버럭 소리를 질렀다.

“300 캡슐 가지고 싶다며? 그거랑 퉁치자.”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나는 협상 과정에서 처음으로 얼굴에 호기심과 탐욕이 있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런 표정 변화에 선심 쓰듯이 말을 하는 만물상.

“300캡슐 줄 테니까 네가 말한 아이템은 전부 없던 걸로 하자. 오케이?”

A급 이하 아이템 13개로 S급 아이템과 맞교환이라.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득이었다.

A와 B급이 여러 개도 아니고.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협상에서의 갑은 나였다.

그리고.

만물상은 분명 아이템의 질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시하는 건 양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13과 1의 숫자를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즉.

아직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그건 분명 괜찮은 말씀이기는 한데.”

“또 뭐. 뭐어!! 뭐어어어어!!”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요?”

“뭐어?! 이런 미친놈을 봤나!! 300캡슐은 하급 S급이라고는 하지만 조오오온나게 희귀 아이템이라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고 받아도 모자랄 판에. 손해? 손해에?”

“네. 손해.”

“..표정이 진심이네? 진심으로 네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중이네? 진짜네? 내 눈이 지금 어떻게 된 게 아니네, 지금?”

“네.”

“와~~”

기가 찬다는 듯이 뒤를 도는 만물상.

두통이 오는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디 한 번 말해봐. 네가 왜 손해인지. 개소리하면 약속이고 나발이고 아이템 하나도 안 줄 테니까.”

뒤를 돈 만물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제가 말한 아이템을 시장에 내다 팔았을 때, 80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300캡슐은 많이 쳐 줘도 50억 이상은 힘듭니다. 그러니 시장가치로 따졌을 때 제가 30억 손해죠. 아닌가요?”

“....”

아이템의 값어치는 분명 상대적이었다.

하지만 시장 거래가라는 게 분명 존재했다.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만물상.

양 손을 들었다.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어제 봤을 때는 그냥 샌님인 줄 알았더니, 이거 순 양아치 새끼였네.”

“칭찬이죠?”

“지랄~”

보따리에서 300캡슐이 들어 있는 구(球)를 꺼낸 만물상.

내 가슴을 때리듯이 내밀었다.

“자. 그리고 30억 손해는 어떻게 해줄까? 돈으로 줘? 아님 아이템?”

“음..”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나중에 제가 가진 아이템이랑 형이 가진 아이템이랑 교환 하나만 해주세요.”

“그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야? 쓰레기 아이템 들고 와서 S급 아이템이랑 교환 해주세효~ 횽님~ 이 지랄 하려고? 차라리 지금 말해. 30억이면 A급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도 되니까.”

그래서 안 된다는 거다.

만물상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 S급 아이템 하나가 꼭 필요한 게 있었다.

“형이 탐낼만한 아이템 들고 갈게요. 콜?”

“..어휴. 지랄도 지랄도.”

만물상이 내 입을 쥐어박으려는 시늉을 했다.

“나 기억력 안 좋은 편이니까, 네 알아서 해라. 나중에 까먹어도 모른다.”

“네.”

순 뻥이었다.

만물상 보다 기억력 좋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야구공만한 구체를 만지작거렸다.

구체안에서 캡슐 하나가 나를 영롱하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300캡슐을 얻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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